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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1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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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2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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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올스타

DUMMY

53화












“축하한다. 백건우.”


톰 글래빈에게 체인지업을 전수받기로 한 지도 1달이 지났다.

우리는 도저히 시간을 맞출 수가 없었다.

애틀랜타와 그린빌은 차로 2시간 거리였지만 메이저리거는 메이저리그 일정으로 바빴고 우리 마이너리거도 돈은 못 벌지만 원정 다니느라 바쁜 건 똑같았다.

주로 비행기를 타고 다니는 메이저리거보다 우리는 버스를 타고 다녀서 길에서 버리는 시간이 더 많았다.


“오히려 좋아. 지금은 투심 패스트볼과 너클볼을 연마하는 것만으로도 벅차니까. 성적도 좋아서 서둘 이유가 없어. 오히려 비시즌 때 만나 차근차근 배우는 게 나에게 유리해. 체인지업뿐만 아니라 제구력 잡는 법과 경기 운영법도 배워야지.”


나는 전혀 급하지 않았다.

전반기 선발 등판 성적으로 11승 무패, 평균자책 0.97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전반기 일정이 거의 끝나가던 날.


“백건우. 호세. 감독님이 찾는다. 감독실로 가봐라.”


매니저가 클럽하우스에 들어와서 나와 호세를 호출하자 동료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축하해. 건우. 호세.”

“뭐를?”

“이렇게 해도 모르겠어? 보나 마나 승격이잖아. 너희 둘은 반 시즌 만에 트리플A로 승격한 거야. 아니면 빅리그 콜업 일지도 모르지!”

“정말? 시기가 좀 이상한데...”


마이크 글래빈이 장담한다며 큰소리를 쳤다.

그는 매일 특훈을 받으며 몸쪽 공포증에서 벗어났고 한 달 만에 타율이 3할을 넘어섰다.

마이크는 2년 전 트리플A로 승격했던 경험을 자랑했다.


“트리플A 선수가 된다는 건 빅리그에 한 발을 담근다는 뜻이야. 너희들처럼 어린 나이에 트리플A 승격이라니! 완전 대박이야.”


마이크가 하도 호언장담해서 나와 호세는 기대감을 가지고 감독실에 들어갔다.

그런데.

우릴 부른 건 트리플A 승격도 아니고 빅리그 콜업은 더더욱 아니었다.

마이크가 그럼 그렇지.


“축하한다. 건우. 호세. 너희 둘은 올스타 퓨처스게임 월드 대표 선수로 뽑혔다. 가서 보스턴 구경도 하고 잘 놀다가 오도록 해. 대신 절대 무리하면 안 된다.”


나는 올해부터 신설된 올스타 퓨처스게임에 나가게 되었다.

메이저리그 올스타전 본경기 전날에 벌어지는 전야제 경기였다.

경기장은 보스턴 펜웨이파크다.

퓨처스게임은 특이하게 미국 대표팀 대 월드 대표팀으로 구성되었는데 한국인인 나와 베네수엘라인인 호세는 월드 팀 소속이었다.


“영감님. 죄송한데요. 이번 올스타 휴식기에 무지개송어 낚시는 못 가게 되었습니다. 제가 퓨처스 올스타라는 것에 뽑혀서 보스턴에 가봐야 해요.”


나는 일단 필 니크로 옹에게 전화를 걸었다.

올스타 휴식기 때 그의 조지아 시골집에 놀러 가기로 전에 약속했었기 때문이다.

거기서 낚시도 하고 너클볼도 연마할 계획이었다.


“퓨처스 올스타? 이제는 별게 다 생기는군.”

“그러게요.”

“잘 됐어. 축하하네. 나도 이번에 보스턴에 초대를 받았는데 거절했거든. 자네도 간다고 하니까 나도 겸사겸사 가봐야겠네.”

“선생님도요?”

“그래. 빅리그에서 300승 이상 올린 투수들 모임인데 이젠 살아있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말이야. 가면 기분이 좀 찝찝해. 다음은 내 차례가 아닌가 싶어서. 으헤헤헤~”

“선생님...”

“건우 군. 보스턴에서 봐요.”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조인태 기자에게도 소식을 알려주었다.

그는 반드시 가겠다고 말했다.

좀 망설이다가 오랜만에 부모님께도 전화해서 알려드렸다.


“엄마. 나 미국 올스타전에 나가요.”

“올스타전? 거기는 엄청 유명한 선수들만 나가는 거 아니니?”

“맞아요. 진짜 올스타전은 아니고 전날에 앞으로 올스타가 될 가능성이 높은 어린 유망주 선수들을 불러서 따로 경기를...”


나는 엄마에게 한참 설명을 하면서 후회했다.

역시 세상의 이치가 그랬다.

내가 잘 나가는 사람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방법은 단순했다.

나에 대한 설명이 딱히 필요 없으면 잘 나가는 것이고 설명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못 나가는 것이다.

어쨌든 나는 못 나가는 녀석들 가운데서 가장 잘 나가는 녀석이 되었다.


***


“오오. 마스터. 좌석이 엄청 넓고 너무 편해.”

“호세. 쪽팔린다. 조용히 좀 있어라.”

“마스터는 전에 이런 좌석 앉아봤어?”

“... 나도 처음이야. 근데 이 녀석들은 왜 애틀랜타 공항 티켓을 주고 난리야. 우리 그린빌에도 공항이 버젓이 있는데 시골이라고 무시하는 것도 아니고...”


퓨처스게임 전날.

우리는 MLB 사무국으로부터 왕복항공권과 2박 3일 호텔 숙박권, 여행경비 500달러를 받았다.

그린빌에서 콜택시를 불러 타고 애틀랜타 공항에 가서 보스턴행 비행기를 탔다.

넉넉한 비즈니스석에 호세는 감탄했다.

이 녀석은 워낙 거구라 이코노미석은 고문 기구나 마찬가지였다.


“당신들 야구 선수에요?”

“예. 맞습니다.”


야구 모자를 쓴 나와 호세가 비즈니스석에 나란히 앉아있자 금발의 미녀 스튜어디스가 호기심을 드러냈다.


“어느 팀 소속인데요?”

“아... 브레이브스요.”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어머. 그렇구나. 이번에 보스턴에서 열리는 올스타전에 참가하시는군요!”


금발의 미녀 스튜어디스가 눈을 반짝였다.

전화번호를 물어보면 알려줄 분위기다.

그녀의 파란 눈동자가 슬롯머신처럼 돌아가며 $.$ 달러 마크가 뜬 것 같았다.

미국에서 메이저리그 선수란 부와 명예를 뜻했으니까.


“그게... 올스타는 올스타인데... 올해 처음으로 생긴 퓨처스 올스타라고... 진짜 올스타전 하기 전날에 하는...”


나는 아직 못 나가는 놈이 분명했다.


***


“어라. 사람이 나와 있네.”

“우리는 특별 대우를 받고 있다구. 마스터.”


보스턴 공항에 내리자 출구에서 호텔 직원이 팻말을 들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백건우, 호세 가르시아 환영합니다. - 쉐라톤 보스턴 호텔]


호텔에서 승합차를 보내줘서 우리는 편하게 짐을 싣고 쉐라톤 호텔로 출발했다.

호세는 완전 신이 났다.

차창으로 보이는 보스턴 시내를 구경하며 시골 총각처럼 감탄사를 연발했다.


“우와. 나는 보스턴에 처음 와봐. 정말 멋진 도시구나. 여기에 하버드 대학교도 있지 않아?”

“후후. 역사와 전통이 있는 아름다운 도시죠.”


운전사가 호세를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보스턴 시장이라도 되는 양.


“메이저리거들도 우리 호텔에 묵나요?”

“후후. 아니요. 그들은 포 시즌스에 묵습니다.”

“포 시즌스? 그게 우리보다 더 좋은 호텔이에요?”

“...”

“당연히 더 비싸고 더 좋지. 하지만 쉐라톤도 충분히 좋은 호텔이야... 지방 모텔을 전전하는 우리에게는 과분하지.”


나는 당황한 쉐라톤 직원을 대신해서 대답했다.

이렇게 호텔에 도착해서 객실에 들어갔더니(2인 1실) 침대에 선물이 놓여 있었다.


“우와! 올스타 로고가 새겨진 가방과 유니폼, 야구용품들이야. 마스터! 이거 봐. 올스타 손목시계도 있어.”


호세가 성탄절 선물을 받은 아이처럼 기뻐했다.

MLB 사무국이 참 일을 잘했다.

미국에 와서 처음으로 이런 대우를 받아보니까 앞으로 야구를 더 잘해야겠다는 확실한 동기부여가 생겼다.


***


그날 밤.

호세와 시내 구경을 하고 보스턴 맛집에서 스테이크와 해산물 요리를 실컷 먹고 꿀잠을 잔 후에 다음 날 아침 보스턴 레드삭스의 홈구장 펜웨이파크로 갔다.

오래된 벽돌 건물들을 한참 지나자 그 유명한 야구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환영합니다! 미래의 스타들! 이쪽으로 들어오세요.”


나는 깜짝 놀랐다.

올스타전 전날에 곁가지로 벌어지는 작은 이벤트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미국의 모든 스포츠 언론이 총출동했는지 엄청난 숫자의 카메라가 진을 치고 있었다.

기자들 수백 명과 MLB 관계자들이 진을 치고 있다가 미래의 스타들을 환영했다.

호세도 이런 취재진을 마주한 게 처음이라 바짝 얼어버렸다.

기자들이 카메라와 마이크를 들이대자 평소 잘하던 영어도 버벅거렸다.


“어... 저는... 그린빌에서 왔습니다... 남부의 작은 도시인데요... 포지션은 포수구요... 아. 국적은 베네수엘라...”

“생각보다 엄청난 기회였구나.”


나는 기자들을 헤치고 들어가서 신분 확인을 받고 선수 출입구로 들어갔다.

보스턴 레드삭스 1군 선수들이 출입하는 바로 그 통로를 통해서 원정팀 클럽하우스로 들어갔다.


“이것이... 빅리그 클럽하우스...”


태어나서 처음으로 빅리그 클럽하우스에 들어가 보았다.

플로리다에서 썼던 건 스프링캠프용이지 정식 클럽하우스가 아니었다.

100년이 다 되어가는 오래된 야구장이고 원정팀 용이라 생각보다 좁고 불편했지만.


“내가 있는 바로 여기에 베이브루스나 조 디마지오, 테드 윌리엄스 같은 역사 속 위대한 야구선수들이 있었다는 거잖아. 내가 있는 지금 이곳에. 기분이 이상해...”


나는 유령이라도 찾는 사람처럼 낡은 사물함을 손으로 쓰다듬으며 다녔다.

내가 그 위대한 역사에 나의 이름을 남길 수 있을까.

나는 치사량에 가까운 메이저리그 뽕을 맞았다.

그때였다.


“저. 한국인 선수 아니세요.”


한국어가 들려서 돌아보니까 얼굴을 아는 곱상한 동양 남자가 서 있었다.

나와 같은 유니폼을 입고서.


“맞습니다. 김선욱 선배님이시죠? 올스타에 뽑히셨군요.”

“어. 저를 아세요?”

“당연하죠. 한국 최고의 유망주 투수시잖아요. 보스턴 산하 마이너리그에서 뛴다는 건 신문을 보고 알았는데 여기서 만나네요. 반갑습니다. 선배님.”

“같은 학교 출신도 아닌데 선배는 무슨...”

“제가 나이가 어리니까 당연히 후배죠. 말 놓으세요.”

“그. 그럴까?”


나와 김선욱이 한국어로 한참 이야기를 나누자 호세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 시선이 부담스러웠는지 김선욱이 눈치를 보았다.


“아. 인사하세요. 같은 팀 친구에요. 이름은 호세 가르시아. 베네수엘라 애인데 생긴 건 무섭지만 착해요.”

“그. 그래. 하이~”


김선욱은 착하다는 말에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한국인 기자 형한테 이야기는 들었어. 나보다 어린 한국인 선수가 혼자 미국에 건너와서 공개 트라이 아웃으로 입단했는데 마이너에서 엄청 잘 던지고 있다고.”

“그게 접니다. 하하하.”

“대단하다. 너. 어떻게 혼자 그럴 생각을 했냐?”

“저는 그 방법밖에 없었어요.”


김선욱은 나와 비슷한 시기에 미국으로 넘어왔는데 언론의 큰 관심을 받으며 나의 계약금의 10배 이상을 받았다.


“영어도 능숙하게 잘하고... 너 어린 나이에 진짜 대단하다.”

“선배님. 너무 띄워주시네요.”

“야. 그냥 형이라고 해. 선배는 좀 징그럽다.”

“그럴까요? 형?”

“하하하!”


뭐랄까.

김선욱과 함께 있으니까 든든했다.

클럽하우스에서도 중남미 선수들처럼 나름 동양인 세력을 형성할 수 있었다.


“건우. 네가 월드 팀 선발이다. 가서 잘 던지도록 해.”

“옙! 감독님!”


나는 일일 감독에게 선발 출전을 명 받았다.

이번 월드 팀에 선발된 투수는 단 10명뿐.

나와 김선욱이 여기 뽑혔다는 건 그만큼 잘 던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경기 전 몸을 풀 때도 내가 김선욱과 캐치볼을 하자 호세가 좀 삐친 듯했다.

하여튼 질투가 심한 마누라라니까.


“형. 이게 매덕스한테 배운 투심 패스트볼 그립이에요.”

“매덕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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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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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래의 올스타 +10 24.09.21 5,322 233 12쪽
52 나는 허튼소리 안 해 +11 24.09.20 6,228 244 12쪽
51 겁쟁이 사자와 오즈의 마법사 +11 24.09.19 6,846 246 12쪽
50 땅콩 더 줘 +9 24.09.18 7,545 273 11쪽
49 남부의 환대 +11 24.09.17 8,143 271 12쪽
48 타격이 +10 상승했습니다 +11 24.09.16 8,614 292 12쪽
47 좋은 리듬이야 +7 24.09.15 9,319 293 12쪽
46 여기는 너의 놀이터가 아니야 +18 24.09.14 9,634 280 11쪽
45 로켓맨이 로켓 쏘는 소리 +9 24.09.13 10,122 283 12쪽
44 정말 끝내주는 너클볼 +16 24.09.12 10,578 352 12쪽
43 로페즈만 아니면 돼 +25 24.09.11 10,610 372 11쪽
42 이것이 강철 멘탈의 비결 +9 24.09.10 11,101 327 12쪽
41 배트보이까지 그를 따르더군요 +11 24.09.09 11,435 352 12쪽
40 왜 이름이 낯익지? +13 24.09.08 11,734 32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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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로커와 세탁소 +11 24.09.05 11,829 338 12쪽
36 메이저리그 최악의 남자 +7 24.09.04 12,119 318 12쪽
35 마이너리그의 법칙 #3 +6 24.09.03 12,093 321 12쪽
34 종이 한 장의 공포 +9 24.09.02 12,284 317 12쪽
33 플로리다의 3월 하늘 +9 24.09.01 12,517 321 12쪽
32 언더핸드 투수의 평범한 패스트볼 +12 24.08.31 12,731 331 12쪽
31 마이너리그의 법칙 #2 +6 24.08.30 12,550 315 12쪽
30 기다려라. 내가 간다. 투수 왕국. +7 24.08.29 12,856 31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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