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계 악신으로 살아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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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차볶음밥
작품등록일 :
2024.08.02 02:07
최근연재일 :
2024.08.12 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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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3 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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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체절명의 위기

DUMMY

등세극은 거대한 드래곤의 형상을 한 동상을 지나 섬세하게 조각된 기둥 사이를 걷고 있었다.


놀라운 것은 그 모든 것이 얼음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었다. 얼음으로 이루어진 궁전.


하지만 그런 놀라운 풍경을 보면서도 등세극의 반응은 그저 심드렁할 뿐이었다.


- 갸르릉-!


그의 품에는 작은 설표가 안겨 있었다. 등세극은 천천히 설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때 얼굴이 창백한 엘프가 그에게 다가왔다.


“...꼭 여기서 지내야겠나?”


- 카르릉-!!


등세극 대신 새끼 설표가 경계하는 소리를 냈다.


“이런 짐승은 또 왜 주워온 거냐···?”


“나를 따라오더군.”


“응···?”


얼음으로 이루어진 방에 다다른 등세극이 탁자에 설표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아무튼, 앞으로 신세를 좀 지도록 하겠네.”


“도무지 말을 들어 먹질 않는군. 마음대로 해라.”


등을 돌려 방에서 나가려던 엘프가 멈칫하며 다시 고개를 돌렸다.


“저, 저거 지금 뭐하는 거냐?”


엘프가 가리키는 것은 탁자 위에 몸을 웅크리고 앉은 설표였다.


“무얼 말하는 거지?”


엘프가 경악한 표정으로 설표에게 다가갔다.


“대, 대체 이 짐승이 뭔 해괴한 짓거리를 하는 거지?”


엘프가 가리키는 설표는 눈을 감고 연신 그르렁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얼핏 보면 그냥 쉬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블루드래곤인 카이베른의 눈에는 그렇지 않았다.


비록 미약한 기운에 불과했지만, 분명 이 짐승은 마나를 순환시키고 있었다.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이 벌어지고 있음에도 등세극은 별일 아니라는 듯 말했다.


“아, 별것 아니다. 그저 운기를 가르쳤을 뿐이지.”


“그, 그게 가능하다고?”


“녀석의 몸에 맞는 혈도를 찾고 여러 차례 진기도인을 반복해주니 기분이 좋은지 이제 스스로 알아서 소주천을 하더군.”


“...미치겠군.”


“궁금하지 않나? 이 녀석이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을지.”


카이베른은 대륙 북부에 자리를 잡고 천년에 가까운 세월을 살아왔지만, 정말이지 이토록 그의 흥미를 이끌어내는 이는 처음이었다.


“...정말이지 해괴한 짓거리군. 알아서 해라.”


말은 까칠했지만 뒤돌아선 카이베른의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즐거움이 가득했다.


****


사회적으로 특권을 가진 계층을 귀족이라 부른다.


하지만 권리에는 책임이 따르는 법이었다.


영토를 하사받은 귀족은 계약에 따라 주군을 보좌하며, 전시에는 징병을 통해 병역의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


“거창!!”


게이탄 자작가의 기사, 실베르는 징집병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두두두두-!!


지축이 울린다. 굳이 뒤를 돌아보지 않아도 상황을 알 수 있었다.


실베르는 게이탄 자작가에서 징집된 병사들의 표정을 살폈다.


어떤 이는 잔뜩 굳은 표정으로 연신 창을 고쳐잡고 있었으며, 어떤 이는 잘 버티는 것 같으면서도 얼굴이 하얗게 질려있었다.


누군가는 수염이 까칠하게 난 중년 남성이었으며, 누군가는 이미 머리가 하얗게 센 노인이었다. 그리고 누군가는 아직 머리에 피도 마르지 않은 애송이에 불과했다.


전쟁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혹독했다. 패배한다면 더더욱이나.


“체이텀! 정신 차리고 창을 똑바로 세워라!”


실베르는 고작 열여덟에 징집된 목공의 셋째 아들을 향해 소리쳤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전쟁을 처음 겪는 이들의 공통적인 반응이었다.


긴장으로 온몸에 불필요한 힘이 들어가고, 이로 인해 호흡이 가빠지며 시야가 좁아진다.


나름 짧은 훈련 동안 손에 익었다 싶었던 창이 무겁게만 느껴질 것이다.


적이 다가오면 머리가 하얗게 비워지며 그동안 배웠던 모든 것을 내던지고 본능적인 움직임을 취하게 된다.


있는 힘껏 창을 쥐고 찌르거나, 그저 다가오는 적을 바라보며 멍하니 서 있는 것.


그렇다면 적어도 창을 바르게 겨누어 지탱하는 편이 아군에게도 본인의 생존에도 도움이 될 것이 분명했다.


두두두두-!!


땅이 울리는 소리가 더 가까워져 왔다. 실베르는 몸을 돌려 적을 바라봤다.


대륙에는 인간 이외에도 지성을 지닌 존재들이 상당수 존재했다. 인간은 그들을 ‘몬스터’라 지칭하며 경계했다.


감히 인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오우거, 그보단 작지만 괴이한 재생능력을 보여주는 트롤, 바다에서는 재앙으로 통하는 씨서펀트 등.


몬스터들은 하나같이 인간에게 위협이 되는 무시무시한 존재였지만, 대륙인들이 가장 경계하고 두려워하는 존재는 따로 있었다.


대륙 전쟁 당시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까지 버티고 저항했던 존재.


그것이 오크라는 몬스터였다.


그 어떤 혹독한 환경에서도 놀랍게 적응하고 번식하여 어떻게든 살아남는 생존력.


인간과 비교하여도 결코 떨어지지 않는 지능과 인간을 뛰어넘는 타고난 육체.


희박하지만 비상식적일 정도로 강한 특이 개체의 출몰까지.


오크는 인간이 대륙의 패권을 장악하는 데 있어서 가장 큰 장애물이었다.


다만, 인간이 오크를 물리치고 대륙의 패권을 잡을 수 있었던 것은 단 하나의 차이점 때문이었다.


오크는 부족 단위로 머무를 뿐 국가 단위로 뭉치지 못하는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인간이 오크를 몰아낸 뒤, 약 백여 년이 지난 지금.


대륙력 115년.


그 상식은 폐기될 수밖에 없었다.


도무지 수를 셀 수 없을 정도의 오크 대군이 하이덴 협곡을 향해 몰려오고 있었다.


이미 북부의 일부 영지는 녀석들의 거친 발에 짓밟혀 폐허가 되었다.


실베르는 몰려오는 오크 대군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지원군이 오고 있다! 그때까지 우리는 녀석들을 반드시 이곳에서 저지한다!!”


오크들의 대규모 남하에 북부 귀족들은 빠르게 연합하여 하이덴 협곡에 방어선을 구축했다.


천혜의 요새와도 같은 이곳의 지형지물을 이용한다면 지원군이 올 때까지 버티는 것은 그리 어려워 보이지 않았다.


오크들이 협곡의 중간쯤을 지났을 때, 협곡의 양쪽 절벽 위에서 중간 지휘관들이 힘차게 외쳤다.


- 쏴라!!


쐐애애애애액-!!


화살이 협곡을 까맣게 덮으며 오크들에게로 쏟아져 내렸다.


오크들은 투박한 방패를 들어 올렸지만.


퍼버버버벅-!!


“취익-?!!”

“취이이익-!!”


위에서부터 날아든 화살은 오크의 투박한 방패를 단번에 꿰뚫었다.


순식간에 전열이 무너지며 오크들의 진군 속도가 늦춰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오크들은 땅에 쓰러진 동료들의 시체를 거리낌 없이 밟으며 다시금 달리기 시작했다.


녀석들은 동료의 죽음에도 전혀 동요하지 않는 듯 보였다.


“저, 저게 뭐야?!”

“오···. 나디아시여.”


동족의 시체를 서슴없이 밟으며 시뻘건 안광을 흩날리는 오크들의 흉포한 모습은 생업에 종사하다 갑자기 끌려 나온 징집병들이 견디기엔 너무도 가혹한 것이었다.


오크들의 모습이 어느새 눈에 선명할 정도로 다가오자, 징집병들의 창이 휘청이며 떨렸다.


“제대로 창을 세우지 못해?!”


실베르는 미친 듯이 소리를 질렀으나, 이미 협곡은 오크들의 함성으로 귀가 먹먹할 정도였다.


- 크와아아아-!!


그리고 마침내 다가온 격돌의 순간.


징집병들로 이루어진 선두의 창진은 오크들을 제대로 저지해내지 못했다.


콰과과과곽-!!


창에 꿰뚫려 몸부림치는 오크들도 있었으나, 오히려 창을 쳐내며 뛰어드는 오크들이 더 많았다.


“으아아악-!!”


협곡에는 오크들의 함성에 이어 인간의 처절한 비명이 함께 어우러지기 시작했다.


“스, 승산이 없어! 퇴각을 건의해야 해!!”


게이탄 자작가의 병력을 인솔하기 위해 나온 헥스 게이탄이 헛소리를 지껄이며 뒤돌아 도망치기 시작했다.


북부 귀족 수뇌부들이 모인 곳으로 향한 것이었다.


“뭐, 뭣?!”


무너진 전열을 향해 뛰어들려던 실베르는 차후 자신의 주군이 될 이가 망언을 내뱉으며 도망가는 모습을 멍하게 바라봤다.


헛소리를 얼마나 크게 내질렀는지 병사들의 사기가 크게 흔들리는 것이 느껴질 정도였다.


전투는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


“하아···.”


실베르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들며 소리쳤다.


“물러서지 마라! 검을 들어라!! 버텨야 한다!!”


오크와 인간이 서로 엉겨 붙어 싸우는 난전이 본격적으로 벌어졌고, 실베르는 검을 들고 전장으로 뛰어들었다.


****


피의 강.


북부 귀족들이 지원군이 오기까지 결사 항쟁을 다짐했던 하이덴 협곡.


협곡을 따라 오크와 인간에게서 나온 피가 저지대를 향해 천천히 흘러내렸다.


타다다닥-!!


대부분의 오크는 남하하였지만, 일부 오크들은 이곳에 남아있었다.


놈들은 곳곳에 불을 피워둔 채 고기를 굽고 있었다.


“취륵! 인간, 약하다.”


“약하면 먹잇감이 되는 거다. 취륵!”


곳곳에 하얀 뼈 무리가 쌓여있었다.


그때, 협곡 한켠에 쌓여있던 시체 무더기가 살짝 움찔거렸다.


‘끄으···.’


문득 눈을 뜬 실베르는 몸을 짓누르는 무게감에 소리 없는 신음성을 흘렸다.


‘어, 어찌 된 거지?’


수뇌부가 결국 도망을 선택하는 그 순간에도, 실베르는 오크들과 맞서 싸우기를 선택했다.


그는 오크들과 뒤엉켜 처절하게 싸웠다.


실베르는 오러를 능숙하게 활용할 수 있는 기사였기에 수많은 오크를 베어냈으나, 그 역시도 수적 열세를 이겨낼 수는 없는 법이었다.


계속된 난전에 그의 팔다리는 둔해져갔고, 결국 죽음을 불사하고 몸을 던지는 오크의 돌진을 피할 수 없었다.


실베르는 마지막 순간에도 달려드는 오크의 심장에 검을 찔러넣었으나, 뒤통수에서 느껴지는 충격과 함께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죽지 않았구나.’


의식을 되찾은 실베르는 가만히 주위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고요한 것을 보니 전투는 끝이 난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간간이 들려오는 말소리는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오크들이 떠드는 소리.


‘결국, 참패했구나.’


실베르는 숨을 한차례 가다듬고 자신을 덮은 오크의 몸을 밀어냈다.


푸우욱-!


최대한 조용히 몸을 빼낸 뒤 자신의 검까지 챙긴 실베르는 다시 자리에 엎드려 퇴로를 모색했다.


협곡의 입구와 출구 쪽에는 상당한 규모의 오크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실베르는 협곡 절벽을 살폈다.


절벽은 가파른 경사를 자랑했지만 그리 단단해 보이지는 않았다.


실베르는 엎드린 채로 천천히 자신의 갑옷을 풀어냈다.


절컥-!


잘 풀리지 않는 매듭은 아예 검으로 베어냈다.


갑옷을 풀어내 몸을 가볍게 한 실베르는 오러를 일으켜 손가락을 절벽에 박아넣었다.


절벽을 반쯤 올랐을 때 왼쪽 약지와 소지가 부러지며 정신이 아득해졌지만, 그는 입술을 깨물며 버텨냈다.


“끄으으···.”


그는 불굴의 정신으로 계속해서 절벽에 손가락을 박아넣었고 마침내 절벽을 오를 수 있었다.


절벽에 오른 실베르는 주위를 살폈다.


이미 오크들의 마수에 당한 것인지 멀리 보이는 하이덴 자작가의 성에서는 검은 연기의 줄기들이 하늘을 향해 올라가고 있었다.


“허어···.”


실베르는 산길을 따라 남하했다.


제대로 물도 음식도 섭취하지 못하던 사흘간의 방황 끝에 실베르는 마침내 지원군과 마주했다.


이후로 실베르는 레이튼 공작이 이끄는 군대에 합류하여 다시 수많은 전투에 나섰다.


죽을 위기를 수차례 넘기며 그의 검은 점차 날카로워졌고.


결국, 그의 검에 찬란한 빛이 깃들었다.


소드마스터.


신의 축복을 받은 이만이 다다를 수 있다는 꿈의 경지.


카이산 왕국에는 희소식임이 분명했으나, 그것만으로 전황이 바뀌지는 않았다.


절체절명의 위기는 여전히 빠른 속도로 카이산 왕국의 목을 조이며 다가왔다.


이미 절반에 가까운 영토를 오크에게 빼앗기고 이제는 왕국의 수도인 니벨룬의 코앞까지 오크가 몰려든 상황.


수도로 향하는 길목에 있는 요새. 이곳이 사실상 카이산 왕국의 마지막 보루였다.


이곳에는 노쇠한 국왕을 대신해 제롬 카이산 왕자가 나와 있었다.


제롬 왕자는 쉴 새 없이 돌아다니며 병사들을 격려하고 있었다.


능숙하게 오러를 사용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워낙에 격정적으로 외치고 다녔기에 그의 음성에는 쇳소리가 섞여 있었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은 없다! 이곳에서 놈들을 저지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비단 우리의 죽음으로 끝나지 않는다! 아비와 어미, 아들과 딸. 우리의 모든 가족이 녀석들에게 잡아먹히는 것만큼은 막아야 하지 않겠는가?”


왕국의 미래라 불리는 제롬 왕자가 직접 전장에 나와 병사들을 격려하고 있었지만, 병사들의 사기는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왕자의 말만 듣고 사기를 끌어 올리기에 그들은 너무 어렸다.


성벽 곳곳에는 오크들의 절반도 되지 않을 것 같은 작은 키의 소년들마저 서 있었다.


이제는 왕국의 미래마저도 끌어올 수 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 크와아아아아-!!!


하지만 그런 그들에겐 제롬 왕자의 외침이 아닌 오크들의 함성만이 선명하게 들릴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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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저주 24.08.12 29 3 12쪽
11 계약 이행 24.08.10 33 6 12쪽
10 악신의 선언 24.08.09 36 5 13쪽
9 악신 토벌 24.08.08 38 6 13쪽
8 압도적인 재능 +1 24.08.07 43 4 14쪽
7 해상 왕국 24.08.06 49 5 13쪽
6 교국의 성기사 24.08.05 54 5 11쪽
5 영웅출현 24.08.03 60 5 14쪽
» 절체절명의 위기 24.08.03 72 5 14쪽
3 하산하거라 24.08.02 68 7 12쪽
2 소년을 만나다 24.08.02 80 6 12쪽
1 이름을 묻다 24.08.02 115 6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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