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계 악신으로 살아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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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차볶음밥
작품등록일 :
2024.08.02 02:07
최근연재일 :
2024.08.12 02:13
연재수 :
1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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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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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7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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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쪽

압도적인 재능

DUMMY

브리탄 왕국의 라니스터 공작.


그가 연무장에서 취한 첫 행동은 허리춤에 걸려있던 검을 풀어놓는 것이었다.


트리스탄이 의아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자 라니스터는 멋쩍은 웃음을 띠며 연무장 한켠으로 걸어가 바닥에 놓인 작살을 들어 올렸다.


“나는 본디 기사가 아니었네.”


“......?”


“배를 타는 선원이었지.”


“......??”


금시초문이었다.


“배가 난파되어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신해서 이른 나이에 배에 올라 물질을 했네. 씨서펀트가 나타나면 작살을 던졌지.”


“......”


“아는가? 목숨이 오가는 현장에서 때때로 인간은 불가사의할 정도의 잠재력을 발휘하곤 한다네. 폭풍우가 치던 날이었지. 씨서펀트가 일으킨 파도에 선배 선원들이 튕겨 나가 물에 빠진 직후, 날아드는 녀석의 꼬리를 보며 나는 오러를 각성했네.”


들어본 적이 있었다. 희박하지만 오러 연공법을 따로 배우지 않더라도 자연적으로 오러를 깨우치는 이들이 존재해왔다는 것을.


“비록 늦은 나이였지만 나는 작은 기사단에 입단하여 오러를 제대로 배우기 시작했고, 오년이 지나자 더 이상 왕국 내부에선 상대를 찾을 수가 없더군. 사람들은 그런 나를 두고 압도적인 재능이라 불렀다네.”


“......”


“맞는 말이지. 나는 그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었고, 누구도 듣지 못하는 것을 들었으며, 아무도 느끼지 못하는 것을 느낄 뿐이었다네. 그것이 재능이란 것이겠지.”


“......”


“자네는 어떤가? 나의 직감은 자네가 나와 비슷한 부류라고 말하고 있다네.”


어떤 대답을 원하는 것일까?


“나 역시도 한때 답답한 마음에 왕국을 떠나 강자들과 겨루고 싶다는 생각을 품었지만, 현실에 막혀 그리하지 못했네.”


이내 라니스터 공작이 다소 흥분된 듯한 기색으로 연무장 중앙으로 나아왔다.


“그런 내게 이 순간은 무척이나 설레이는군. 자네는 나를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라 믿네.”


한껏 기대감을 내비치며 다가오는 라니스터 공작을 바라보며 트리스탄도 검을 천천히 뽑아 들었다.


스릉-!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천천히 원을 그리며 대치하던 어느 순간.


타앗-!


트리스탄의 섬전같은 돌진을 시작으로 전투가 시작됐다.


****


투콰악-!!


날렵한 작살날이 연무장 바닥을 파헤치며 박혀 들어갔다.


트리스탄은 그 공격을 피해냈지만, 반격을 도모할 수는 없었다.


처음 보는 스타일의 전투 방식.


지금까지 그가 상대한 이들은 거리를 좁히며 다가오는 공격적인 스타일이었다.


오크 대전사도, 세인트 볼테르도.


하지만 라니스터 공작은 그들과 사뭇 달랐다.


라니스터는 땅에 박힌 작살을 빠르게 회수했음에도 불구하고 후속 동작을 취하지 않았다.


그저 트리스탄을 날카로운 눈빛으로 응시하며 다시 천천히 연무장을 거니는 라니스터.


등허리로 차갑운 식은땀 한 방울이 흘러내렸다.


지금까지 그를 상대한 이들이 느꼈던 기분이 이랬을까?


라니스터는 작살을 창처럼 이용하며 트리스탄의 검을 철저히 방어해내다 생각하지도 못한 타이밍에 날카로운 반격을 가하곤 했다.


그래. 마치 지금까지의 그의 전투 방식과 유사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저 철통 방어를 뚫어낼 수 있을까?


어떻게 그의 반격을 흘려낼 수 있을까?


트리스탄은 숨을 고르며 천천히 라니스터와 대치했다.


타앗-!!


이번에도 먼저 거리를 좁히며 다가간 것은 트리스탄 쪽이었다.


콰앙-!


트리스탄은 허초를 섞어가며 라니스터의 실수를 유도하려 했으나, 라니스터는 살짝 움찔거리기만 할 뿐 속아 넘어가지 않았다.


라니스터의 눈은 전투에 임하는 이의 그것이라 볼 수 없을 정도로 지독하게 가라앉아있었다.


‘저 눈.’


과연 씨서펀트가 일으키는 물보라 속에서도 침착하게 작살을 박아넣었다던 이의 눈일까? 라니스터는 휘몰아치는 검풍에도 눈 한번 깜빡하지 않았다.


한창 트리스탄의 검을 방어해내던 라니스터의 작살이 순간적으로 흐릿해지며 날아들었다.


피이이이잉-!!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날아드는 작살이 바람을 가르며 기묘한 소리를 냈다.


‘그리고 기괴할 정도의 속도.’


공격을 피해 뒤로 물러선 트리스탄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라니스터 공작의 무기는 보는 눈과 날카로운 공격이었으나.


그의 무기 역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렇다면 굳이 이 싸움을 피하고 싶지 않았다.


처억-!

트리스탄이 천천히 자세를 낮추자 라니스터 역시도 그런 그를 의식하며 자세를 낮추었다.


“후우···.”


트리스탄은 호흡을 정리했다.


“후우···.”


두 차례.


“후우···.”


세 차례.


그리고 그 호흡을 마지막으로 트리스탄은 땅을 박차며 튀어 나갔다.


파아앙-!!


트리스탄의 검이 연신 빛을 반사하며 빠르게 라니스터에게로 쏟아져 내렸다.


압도적인 속도의 연격.


콰앙-!! 콰콰쾅-!! 쾅-!!


하지만 라니스터는 덤덤한 기색으로 그 모든 검격을 차분히 막아냈다.


하나씩 하나씩 순서대로. 그저 빠른 속도로 막아낼 뿐이었다.


불과 3초가 지나기도 전에 수십 합이 지나갔다.


하지만 그것이 끝은 아니었다.


연신 막혀서 튕겨 나가면서도 트리스탄의 검은 가속을 더해갔다. 마치 환영같은 푸른빛의 검영이 허공에 찬란하게 흩날렸다.


라니스터의 고요한 눈빛이 처음으로 흔들렸다.


콰콰콰콰쾅-!! 콰콰쾅-!! 콰앙-!!


그럼에도 라니스터는 여전히 큰 흔들림 없이 트리스탄의 검을 막아냈다.


두 사람은 숨조차 통제한 채로 치열하게 공방을 주고받았다.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눈에 보이지도 않을 공방을 펼치는 두 사람의 모습은 전설 속에서나 등장할 법한 영웅들의 모습이었다.


“트흡-!”


하지만 깨지지 않을 것만 같던 균형은 결국 균열이 생기고 말았다.


라니스터 공작이 호흡을 통제하는 것에 실패한 것이었다.


처음에는 작은 빈틈에 불과했다. 라니스터는 잠시 움찔할 뿐 여전히 철벽 방어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3초가 지나고, 5초가 지나고 다시 10초가 지났을 때 라니스터는 급격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크, 크흡-!!”


날카로운 반격이 사라진 지 오래였고, 라니스터는 한 걸음 한 걸음 뒷걸음질 쳤다.


그리고 그의 뒷발이 마침내 연무장의 경계를 밟았을 때.


차앙-!!


라니스터가 쥐고 있던 작살이 땅에 떨어졌다.


여전히 충격이 해소되지 않은 듯 작살은 땅에 닿은 뒤에도 뱀처럼 휘며 진동했다.


라니스터는 여전히 작살을 쥐고 있는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지만, 그의 손에는 아무것도 들려있지 않았고 손아귀는 이미 피투성이가 되어있었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하염없이 떨리는 손을 내려다보던 라니스터가 굳은 표정을 풀며 호탕한 웃음을 터트렸다.


“크, 크흐...크하하하하!! 이거 정말 대단하군.”


라니스터는 떨리는 손을 트리스탄에게 뻗었다. 트리스탄이 그 손을 마주 잡자 라니스터는 얼굴에 만연한 웃음기를 띤 채로 말했다.


“내가 졌네.”


****


이후로도 트리스탄과 라니스터는 몇 차례 더 대결을 진행했다.


하지만 라니스터는 단 한 차례도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


“이건···. 정말이지 묘한 느낌이군.”


라니스터는 자신이야말로 여신의 축복을 받은 선택받은 인간이라 굳게 믿어왔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바다에서 오러를 각성했으며, 늦은 나이에 기사단에 들어갔음에도 순식간에 앞선 이들을 모두 넘어서 한 왕국의 절대자로 등극했다.


그냥 넘어선 것도 아니었다. 초월했다고 해야 할까?


서른이라는 이른 나이에 소드마스터에 다다랐다는 희대의 천재라 불리는 왕실 기사단장도 그에게는 상대조차 되지 않았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압도적인 재능.


하지만 그것은 축복인 동시에 족쇄와도 같았다. 그가 가진 것을 모두 펼쳐놓지 못하게 만드는 족쇄.


왕국에서 내로라하는 기사들을 모아 연달아 상대해도, 한 번에 다수를 상대해도 도저히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내지 못했다.


그 누구도 반응하지 못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거대한 씨서펀트의 동체를 관통해버리는 그의 일격에 반응하지 못한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


어찌 같은 왕국의 기사들을 죽일 수 있을까?


그렇게 자신을 억누르며 지내오던 라니스터의 앞에 트리스탄이 나타난 것이었다.


처음엔 그가 가장 자신 있어 하던 속도에서 밀려 패배했다.


두 번째 대결에선 마치 거대한 산을 마주한 듯한 무거운 검에 짓눌려 패배했다.


세 번째 대결에선 춤이라도 추듯 부드러운 움직임에 홀린 듯 연신 비틀거리다 패배했다.


그리고 조금 전 대결에선 자신이 자랑하는 찌르기에 당해서 패배했다.


덕분에 그가 아끼던 작살의 끝이 뭉그러졌다.


황당했다.


보는 눈에 자신이 있던 그조차도 이것이 가능할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해보지 못했다.


작살의 날카로운 그 끝. 그 첨단에 어떻게 검 끝을 정확히 가져다 댄 것일까?


“자네도 어지간히 힘들겠군.”


“네?”


“자네가 날 봐주면서 상대했다는 것 정도는 충분히 알 수 있네. 상대할 자가 없다는 것은 참으로 답답한 일이지.”


“네?”


라니스터 공작은 여전히 말이 많았다. 그는 트리스탄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주제를 바꾸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하하! 그나저나 정말 브리탄 왕국에 몸을 맡길 생각은 없는가?”


“죄송합-”


“그냥 해본 말일세. 그렇다면 좋겠지만 자네가 그런 선택을 할 리는 없겠지. 그래서 이제 어디로 향할 생각인가?”


“음···.”


“대륙 북부에는 더 상대할 자가 없을 테고, 대륙 중부로 내려갈 테지? 자네가 녀석들의 콧대를 꺾는 모습을 직접 보지 못하는 것이 참으로 아쉽군. 하지만 쉬운 일은 아닐걸세.”


트리스탄의 두 번째 비무행은 성공적으로 끝나가고 있었다.


****


넓고 풍요로운 토양.


북부와는 다르게 뚜렷한 차이를 드러내는 사계절.


대륙 중부에 위치한 세 국가는 단연코 대륙에서도 가장 찬란한 문명을 자랑했다.


그것을 가능하게 만든 것 중 하나는.


‘마법’이었다.


마탑의 존재 그리고 마법사라는 존재.


희박하게 대륙 북부에도 마법사가 존재하긴 했으나, 대부분의 마법사는 마탑에 소속되어 있었다.


여신의 눈물이라 불리는 마나석의 광산이 대륙 중부에만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마나석은 마법 아티팩트, 마법진, 텔레포트, 마법 보호막 등 모든 마법 공학에 필수로 들어가는 재료였다.


그런 마나석을 바탕으로 찬란한 문명을 이룬 중부 대륙이었지만, 사실 평민들의 모습은 그리 다르지 않았다.


이른 아침.


크기도 모양도 제각각인 판잣집들 사이로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골목길.


한 소년이 그 복잡한 길을 빠르게 헤치며 우유를 배달하고 있었다.


“아주머니! 여기 우유 왔어요!”

“카잔이구나? 고마워!”


무척이나 복잡한 길이었지만 놀라울 정도로 효율적인 루트로 우유 배달을 마친 소년이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제빵소였다.


철퍽-! 퍼억-!


소년은 능숙한 움직임으로 반죽을 주무르고 내려치기를 반복했다.


해가 저물어가고 고된 노동에도 끝이 찾아왔다.


“오늘도 고생했다! 카잔!”

“감사해요! 내일 뵐게요, 아저씨!”


밝게 인사를 건네고 뒤로 돌아선 소년의 모습에서는 무언가 위화감이 느껴졌다.


입가는 여전히 웃고 있었지만, 두 눈에는 짙은 절망이 담겨있었고, 힘있게 반죽을 주무르던 그의 손은 축 늘어져 있었다.


골목길을 빠르게 누비며 돌아다니던 소년은 어디 갔는지, 집으로 돌아가는 그의 발걸음은 한없이 무거웠다.


곧 도착한 낡은 판잣집 문밖에는 한 사내가 술병을 쥔 채로 쓰러져있었다.


“아버지···.”


술에 거나하게 취했는지, 사내는 고개를 돌려 목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바라보았으나 눈에는 초점이 없었다.


“왜···.”


“......”


“왜 이제야 들어오는 것이냐?”


카잔의 아버지는 도박 중독자였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분명 그의 유년 시절은 행복한 기억들로 점철되어 있었다.


듬직한 아버지와 엄한 어머니 그리고 그를 보살펴주던 누이.


하지만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 삶의 양상은 급격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아내를 잃은 슬픔을 위로해주기 위해 모인 친우들과의 술자리.


그곳에서 무엇을 접했는지, 아버지는 이후로 작은 노름판에 끼어들기 시작했다.


카잔과 누이는 기다렸다. 상실감 때문에 벌어진 잠시의 일탈일 뿐이라 생각하며. 곧 그들이 알던 아버지가 돌아올 것이라 기대하며.


하지만 상황은 더 나빠져만 갔다.


안 그래도 없는 살림이 하나씩 사라져갔으며, 매 끼니 먹던 빵이 반 조각 그리고 반의 반 조각으로 줄어들었다.


최근에는 빚마저 졌는지 험상궂게 생긴 사내들이 찾아오는 일이 빈번해졌다.


“대체···.”


왜 이러느냐는 원망의 말이 목구멍까지 나왔다가 다시 들어갔다.


이미 그가 알던 아버지는 이곳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를 번쩍 들어 목마를 태워주던 듬직한 아버지는 사라지고, 썩은 생선의 눈을 한 앙상한 사내가 바닥에 쓰러져 있을 뿐이었다.


카잔은 사내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누나?”


그의 목소리가 공허하게 울렸다.


카잔은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그는 차마 떨어지지 않는 입을 다시 열어 누이를 불렀다.


“...카르멘 누나?”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카잔의 두 눈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바깥에 쓰러져있던 사내의 멱살을 잡아 올린 카잔이 소리쳤다.


“당신!! 누이를 어떻게 한 거야?!”


잠시 몸을 크게 움찔거린 사내는 돌연 고개를 숙이더니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대답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카잔은 그를 땅바닥에 패대기친 다음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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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악신의 선언 24.08.09 36 5 13쪽
9 악신 토벌 24.08.08 38 6 13쪽
» 압도적인 재능 +1 24.08.07 44 4 14쪽
7 해상 왕국 24.08.06 49 5 13쪽
6 교국의 성기사 24.08.05 54 5 11쪽
5 영웅출현 24.08.03 60 5 14쪽
4 절체절명의 위기 24.08.03 72 5 14쪽
3 하산하거라 24.08.02 68 7 12쪽
2 소년을 만나다 24.08.02 80 6 12쪽
1 이름을 묻다 24.08.02 115 6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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