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계 악신으로 살아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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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차볶음밥
작품등록일 :
2024.08.02 02:07
최근연재일 :
2024.08.12 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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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9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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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신의 선언

DUMMY

천지를 울리는 거대한 기운.


쿠구구구궁-!!


단 일 검에 절벽이 무너져내렸다.


무너져 내리는 절벽을 바라보며 세인트 볼테르가 검을 회수했다.


“오오···. 나디아시여···.”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는 두 명의 사제가 머리가 하얗게 변한 채로 바닥에 쓰러져있었음에도 사제들은 자신들의 신을 찬미하고 있었다.


성공적으로 임무를 완수했다고 생각한 것일까? 더 이상의 순교가 필요치 않다는 점 때문일까? 사제들의 얼굴에는 안도감이 선명하게 어려있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불행히도 흩날리는 눈보라 사이로 덤덤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일말의 의구심조차 품지 못하는 건가?”


그의 시선은 사제들을 향해있었다.


“아아···. 이럴 수가-!!”

“어찌-?!”


대지를 선명하게 가른 검의 흔적. 그것은 신의 위엄이 드러난 장면이었으며 의심할 수 없는 악신의 최후였다.


그런데 어찌 저자는 멀쩡하게 다시 나타난 것일까?


“......”


볼테르의 몸에 빙의한 나디아가 사제들에게 명했다.


“기도하라.”


사제들을 바라보는 하얀 눈동자가 섬뜩했다.


“의심하지 말지어다, 다만 기도하고 너희의 신을 바라보라. 그리하면.”


나디아의 섬뜩한 시선이 다시 나타난 악신을 향했다.


“내, 너희의 믿음에 부응하리라.”


대기를 울리는 나디아의 음성에 사제들이 다시 두 손을 번쩍 들어올렸다.


고오오오오-!!!


나디아의 검이 하얗게 물들어갔다.


하얗게 타오르는 성화.


화아아아악-!!!


그것은 검을 감싸는 것을 넘어 하늘을 찌를 것처럼 솟아올라갔다.


실로 놀라운 광경.


하지만 그 모습을 지켜보는 등세극의 모습은 여전히 태연하기만 했다.


놀랍긴 했다.


무림에서 수많은 고수를 상대하면서도 보지 못했던 신기였다.


패도적인 도법을 자랑했던 무림맹주라는 사내도, 내력이 대해와 같다던 소림의 승려조차도 저런 신기는 보여주지 못했다.


누가 감히 저 괴이할 정도의 검강을 버텨낼 수 있을까?


과연 스스로 신이라 칭할만 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아무리 그 위력이 하늘에 닿았다 한들, 그 본질은 아무런 의미도 부여하지 못한 공허한 검에 불과했다.


닿지 못할 검을 두려워할 이유는 하등 존재하지 않았다.


등세극은 형형한 눈빛을 발하며 자신을 바라보는 나디아에게 한마디를 건넸다.


“결정했다.”


나디아는 더 이상의 대화는 무의미하다 생각했는지 답을 하지 않은 채 검의 기운을 계속해서 키워갔다.


하나둘 픽픽 쓰러지는 사제들.


머리는 하얗게 새어있었고, 언뜻 보이는 피부는 마치 목내이처럼 딱딱한 나무의 껍질과도 같았다.


등세극의 입술이 단호한 의지를 담은 채 움직였다.


“너를 그 자리에서 밀어내겠다.”


마침내 모든 기운을 발산한 것인지 나디아가 거대한 함성을 내지르며 검을 위로 들어 올렸다.


귀가 멀것같은 소음 속에서 등세극은 덤덤하게 입술을 열었다.


“나는.”


휘오오오오오-!!!


하늘에 닿은 성검이 천천히 떨어져 내렸다.


“너를 적으로 정의하마.”


등세극이 처음으로 허리춤에서 검을 뽑았다.


스릉-!


****


만년설.


그 아래 숨어있던 대지가 길게 갈라진 채로 붉은 속살을 드러냈다.


대지의 기나긴 상처가 시작된 지점.


그곳엔 한 사내가 자신의 가슴을 움켜쥔 채 한쪽 무릎을 꿇은 채 앉아있었다.


쿨럭-!!


한차례 기침을 내뱉자 시뻘건 핏물이 그 입술을 따라 흘러나왔다.


“나디아시여···.”


볼테르는 그 생의 마지막 순간에 자신이 평생을 섬기던 신의 이름을 불렀지만.


휘오오-!!


들려오는 것은 쓸쓸한 바람 소리뿐이었다.


이곳에서 보고 들은 모든 것은 그의 신앙을 송두리째 뒤엎는 것이었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온 것인가···?’


볼테르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자신과 함께 온 일행을 바라봤다.


차가운 바닥에 쓰러져 있는 사제들의 위에는 이미 눈이 소복이 쌓여있었다.


볼테르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당신은···.”


저벅-!


눈을 밟으며 한 사내가 그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사내는 덤덤한 말투로 그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녀가 차라리 힘의 통제권을 네게 넘겨주었다면 적어도 이렇게 무력하게 당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훌륭하구나 무사여.”


악신의 인정.


어째서인지 볼테르는 마음 속에 엉킨 한줄기의 앙금이 풀어지는 것을 느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검은 머리의 사내.


그가 볼테르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굳이 내가 누구인지 알려고 할 필요없다.”


볼테르는 그에게 되물었다.


“...어째서입니까?”


“나디아가 너희에게 ‘희망’을 주었다면, 나는 그저 내버려 둘 것이기 때문이다.”


볼테르는 문득 눈앞의 사내가 지은 옅은 미소가 무척이나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나는 악신이라 할 수 있겠지. 그뿐이다.”


푹-!


어쩌면 이 땅의 새로운 신이 될지도 모르는 이 앞에서 볼테르는 마지막 숨을 내뱉으며 고개를 숙였다.


차가운 바람이 그의 몸을 한차례 쓰다듬고 지나갔다.


****


대륙력 118년.


오크의 남하를 막아낸 카이산 왕국은 폐허 속에서 다시금 싹을 피워냈다.


꽃이 화사하게 핀 봄날.


안톤 카이산 국왕은 공주의 생일을 맞아 수도에서 축제를 열 것이라 선포했다.


카이산 왕국의 수도 니벨룬.


거대한 왕성의 별궁에서는 연회 준비가 한창이었다.


올해 열아홉 번째 생일을 맞는 프레이야 공주는 물이 오른 미모를 자랑했다.


아버지인 안톤 국왕의 연한 금발을, 어머니인 왕비의 아름다운 이목구비를 물려받은 프레이야는 모두가 인정하는 카이산 왕국 제일의 미녀였다.


“공주님, 너무 아름다우셔요!”


누구든 녹아내릴 것만 같은 프레이야의 환한 미소에 시녀들은 감탄을 늘어놓으며 단장을 도왔다.


안톤 국왕은 프레이야 공주의 생일을 기념한 연회가 이어지는 동안, 술과 음식을 풀어 백성들에게도 축제를 즐길 것을 종용했다.


왕국의 재정을 담당하는 스크루지 백작은 극구 반대했으나, 안톤 국왕의 단호한 결단으로 이루어진 결정이었다.


덕분에 니벨룬의 곳곳은 이미 축제 분위기였다.


들뜬 백성들의 사이로 귀족들을 태운 마차들이 하나둘 니벨룬의 왕성으로 입장하고 있었다.


“와! 정말 아름다워요!”


전쟁 영웅. 새롭게 자작 위를 받은 실베르와 결혼한 평민 출신 귀부인 에스더는 처음 보는 수도의 풍경을 보며 감탄을 늘어놓았다.


아름다운 아내가 입을 벌리며 마차 바깥으로 고개를 내밀려 하자, 실베르 자작이 웃으며 말했다.


“하하! 조심하시오.”


다시 마차로 고개를 집어넣은 에스더가 설렌다는 듯 실베르 자작에게 말했다.


“프레이야 공주님이 그렇게 아름다우시다면서요! 직접 만나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음···. 공주님이라. 자작 위를 받을 때 언뜻 뵈었지.”


“그래서요! 그래서요? 정말 그렇게 아름다우세요?”


“크, 크흠. 내 눈엔 그대가 더 아름답소.”


“어머!”


결혼한 지 아직 일 년도 채 지나지 않은 그들은 여전히 서로를 뜨겁게 사랑하고 있었다.


게다가 에스더에게 실베르는 생명의 은인이나 다름이 없었다.


에스더는 실베르 자작의 어깨에 고개를 기대며 말했다.


“그분은 어디 가셨을까요?”


“음···.”


실베르는 에스더가 묻는 대상이 누군지 금방 알아챘다.


“트리스탄 경···.”


남편은 그분에 대해 말을 아꼈지만, 어쩌면 오늘은 대답해주지 않을까 하는 소망으로 에스더는 물었다.


안 그래도 얼마 전에 방랑 시인이 영지에 방문했던 터라 궁금증이 더 커진 상태였다.


“그분은 어떤 분이신가요?”


“음···.”


그녀의 물음에 역시나 남편의 얼굴이 사뭇 진지해졌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평소와는 다른 것이었다.


“당신, 그때를 기억하오?”


실베르가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에스더는 즉시 알아차렸다.


“그럼요. 아직도 그때 그 장면이 눈에 선한걸요. 당신이 마을을 유린하던 오크를 헤치며 내게 다가오던 장면을 어찌 잊겠어요?”


“나도 비슷하다오.”


실베르의 눈은 과거의 그 어느 때를 회상하는 것 같았다.


“요새를 둘러싼 오크의 물결은 바다와 같았고, 우리는 그저 요새에 갇혀 있었다오. 결국은 거친 파도에 휩쓸릴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지.”


“......”


“하루를 버텨냈다오. 성 앞에 오크의 시체가 산처럼 쌓였지만, 그 누구도 환호하지 않았다오. 그 이유를 아시오?”


“...어째서인가요?”


“오크 놈들을 아무리 죽이고 죽여도 그 수가 줄지 않았기 때문이오. 그 압도적인 진격 앞에 우리의 숭고한 희생은 그저 다가올 파멸을 미루는 것에 불과했지. 하지만 셋째날부터 무언가 달라지기 시작했소. 기적이었지.”


실베르는 흥분한 듯 호흡이 조금씩 거칠어졌다.


“눈에 보이는 오크 놈들의 수가 줄어들더군. 두려움이 없는 줄로만 알았던 녀석들이 불안감에 떨고 있었소. 단 한 사람 때문에 말이오.”


“트리스탄 경···.”


“그렇소. 그분이 수만의 오크 무리를 뚫고 요새로 다가왔을 때 내 옆에 있던 소년병이 했던 말이 아직도 기억이 나오.”


- 신이시여.


“나 역시 한 사람의 독실한 나디아 여신의 신자였지만, 그 불경스러운 말에도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더군.”


“......”


“그날 우리는 구원받았다오.”


어느덧 마차가 속도를 줄이고 있었다. 실베르는 표정을 풀며 가볍게 에스더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괜한 이야기를 했군. 신경 쓰지 마시오.”


이내 부부가 서로 껴안은 마차가 왕성의 정문에 도착했고, 반짝이는 판금 갑주를 입은 기사들이 다가와 예를 갖추었다.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신분패를 보여주시겠습니까?”


실베르 자작이 자신의 신분패를 보이며 부드럽게 말했다.


“실베르 트리튼 자작이오.”


“트리튼 자작님을 뵙습니다! 실례했습니다!”


기사가 다시금 예를 갖추자, 깔끔한 복장의 왕궁 사용인이 다가왔다.


“마차에서 내리시면 여기서부터는 제가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짐은 저희가 숙소로 옮겨놓겠습니다.”


“고맙네. 그리 해주게.”


실베르는 마차에서 먼저 내려 에스더의 손을 잡고 숙소로 향했다.


****


화사한 꽃과 푸른 나무가 조화롭게 가꾸어진 별궁.


“어머나!”


에스더가 별궁의 아름다운 정원을 보며 입을 틀어막았다.


한차례 오크들에 의해 밟혀 초토화된 영지에서 지내왔기에 그녀에게 이곳은 마치 별세상처럼 보였다.


연회장 내부에 입장한 실베르 자작을 향해 여럿이 아는 체를 했다. 전쟁 당시 함께 싸웠던 전우들이었다.


그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에스더를 소개한 실베르는 곧 에스더에게 속삭였다.


“마음 편히 즐기고 계시오. 이야기를 좀 하고 오겠소.”


“그래요!”


에스더의 눈은 이미 곳곳에 놓인 간식거리에 고정되어 있었다.


실베르는 살짝 웃고는 곧 연회장 곳곳에 있는 귀족들에게로 향했다.


귀족들에게 연회란 곧 업무의 연장이었으며, 정치가 이루어지는 현장과도 다름이 없었다.


한편, 에스더는 화려한 별궁의 연회장을 보고 감탄하고 있었다.


거대한 연회장의 규모만큼이나 화려하게 빛을 반사하는 샹들리에.


한편에서 연주되는 감미로운 음악.


화려한 옷을 입고 서로의 자태를 뽐내는 귀족들.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곳곳에 배치되어 연회장을 철통같이 수호하는 멋진 기사들.


모두가 처음 보는 장면이었다.


이내 그런 그녀에게 다가오는 이들이 있었다.


“어머! 우리는 우리끼리 이야기를 좀 할까요?”


실베르 자작과 친한 귀족들의 부인들이 모여서 그녀에게 접근한 것이었다.


“좋아요!”


“어머나! 피부를 좀 봐. 어쩜 이렇게 깨끗할까?”


곧 그들은 작은 조각 케이크가 놓인 테이블 옆에 자리를 잡고 자연스레 이야기꽃을 피웠다.


“우리 앞으로도 가끔 모여서 이야기하는 자리를 만드는 게 어떨까요?”


“저는 좋아요!”


그때였다.


연회장의 입구에서 응대하던 집사가 목청 좋게 외쳤다.


“카이산 왕국의 가장 아름다운 꽃, 프레이야 카이산 공주님께서 입장하십니다!”


또각-! 또각-!


두 명의 시녀가 드레스를 정리해준 것을 마지막으로 연회장으로 등장한 프레이야 공주의 입장에 모든 이들이 탄성을 내지르며 오늘의 주인공을 향해 박수를 보냈다.


짝짝짝짝짝-!!


또각-! 또각-!


박수갈채 사이로 레드 카펫을 밟아가는 프레이야의 걸음걸이는 당당했으며 한없이 우아했다.


아름다운 곡선을 이루며 떨어지는 그녀의 목과 어깨선을 따라 순백색의 드레스가 나풀거렸으며 길게 늘어진 옅은 금발이 그녀의 어깨에 가볍게 튕기며 찰랑거리고 있었다.


카이산 왕국의 가장 아름다운 꽃이라는 별칭에 전혀 부족함이 없는 자태를 뽐내며 단상에 선 프레이야 공주가 가볍게 드레스를 들어 올리며 손님들에게 인사했다.


주인공의 입장과 함께 연회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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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저주 24.08.12 28 3 12쪽
11 계약 이행 24.08.10 33 6 12쪽
» 악신의 선언 24.08.09 36 5 13쪽
9 악신 토벌 24.08.08 38 6 13쪽
8 압도적인 재능 +1 24.08.07 43 4 14쪽
7 해상 왕국 24.08.06 49 5 13쪽
6 교국의 성기사 24.08.05 53 5 11쪽
5 영웅출현 24.08.03 59 5 14쪽
4 절체절명의 위기 24.08.03 71 5 14쪽
3 하산하거라 24.08.02 68 7 12쪽
2 소년을 만나다 24.08.02 80 6 12쪽
1 이름을 묻다 24.08.02 115 6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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