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계 악신으로 살아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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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차볶음밥
작품등록일 :
2024.08.02 02:07
최근연재일 :
2024.08.12 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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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5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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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교국의 성기사

DUMMY

투두두두둑-!!


어둑한 밤. 빗방울이 지붕을 때리고 있었다.


철벅 철벅-!


흙탕물을 밟으며 로브를 걸친 사내가 여관의 문을 열고 들어왔다.


“방을 하나 잡으려 합니다.”


불을 쬐며 졸고 있던 여관 주인이 침을 닦으며 물었다.


“음. 남은 방이 많지 않은데, 작은 방도 괜찮으신가요?”


“괜찮습니다.”


“로브를 말려드릴까요?”


“아, 그렇다면 감사히.”


사내가 천천히 로브를 벗어냈다.


짧게 다듬은 적발.


날카롭게 솟은 콧날과 그 아래 매력적으로 뻗은 붉은 입술.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완성하는 호수같이 깊은 눈동자.


모든 것이 조화로웠으며, 아름다웠다.


“허어···.”


여관 주인의 입에선 의도치 않은 탄성이 새어나왔다.


트리스탄이 여관 주인에게 로브를 내밀었다. 여관 주인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로브를 받아 벽난로 근처에 펴서 걸었다.


“어디로 가면 되겠습니까?”


“아···! 방은 이 층 왼쪽 끝에 있습니다.”


방의 열쇠를 받은 트리스탄이 이 층으로 올라가자, 주인은 작은 한숨을 내쉬며 혼잣말을 내뱉었다.


“거참, 보기 드문 미남일세. 그려.”


****


나디아 교국.


모든 국가가 인정하는 중립 국가.


교국은 작은 도시국가에 불과했지만, 그 누구도 교국을 무시할 순 없었다.


나디아 여신을 섬기는 교국이 대륙 전역에 미치는 영향력 때문이었다.


대륙인 대부분이 믿는 주신 나디아를 섬기는 이들을 누가 감히 건드릴 수 있겠는가?


나디아 교국에서 가장 유명한 이는 백 년에 가까운 세월을 살아왔다는 대주교였지만.


그만큼이나 유명한 이가 하나 더 있었다.


성기사의 정점에 선 사나이.


세인트 볼테르.


약 20년 전. 한 도시를 잠식했던 뱀파이어 혈족을 단신으로 정화했다던 전설적인 성기사였다.


전설 같은 이야기에 따르면 굳은 신앙심으로 무장한 그에게는 그 어떤 정신 공격도 통하지 않았으며, 그가 휘두르는 성스러운 오러의 불꽃은 부정한 방법으로 불멸하게 된 뱀파이어들의 존재 자체를 세상에서 지워버렸다고 전해졌다.


트리스탄이 찾아온 것은 바로 그 전설적인 성기사 볼테르였다.


오크 대전사와의 전투 이후 깨달음은 올 듯 말 듯 그를 괴롭혔다.


그의 눈앞에 놓인 벽은 작은 틈이라도 생긴다면 금방이라도 깰 수 있을 것처럼 보이면서도 도무지 그 작은 틈을 허락하진 않았다.


그리하여, 그가 택한 것은 대륙을 돌아다니며 강자들과 겨루는 것이었다.


나디아 교국의 최중심부에 있는 거대한 대신전.


이곳이 그의 첫 번째 목표였다.


가만히 눈을 감은 트리스탄은 곧 그의 몸을 떨리게 만드는 거대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아마 거대한 기운의 주인 역시도 그를 느꼈을 것이었다.


멀찍이서 대신전을 바라보는 것도 잠시.


곧 대신전에서 한 무리의 인원이 우르르 몰려왔다. 대신전 소속의 사제들이었다.


그들의 태도는 정중했다.


“대주교께서 뵙기를 청하십니다.”


사제들의 인도를 따라 대신전으로 들어가자 신전 중앙에 대리석으로 조각된 웅장한 크기의 여신상이 보였다.


한 손은 가슴에 다른 한 손은 하늘을 향해 뻗은 여인.


한때 대륙의 구석에서 움츠린 채 살아가던 인류에게 ‘희망’을 선물했다는 여신.


나디아의 조각상이었다.


성기사와 사제들의 인도를 따라 웅장하게 솟은 거대한 기둥들 사이를 지나 대신전 내부에 조성된 정원에 도착했다.


정원의 중앙 공터에는 초로의 노인이 자리를 잡고 있었으며, 그 뒤에는 거대한 체격의 장한이 시립해있었다.


트리스탄은 노인에게 예를 갖추어 인사했다.


“교국의 대주교를 뵙습니다.”


“그대는 누구신가?”


“저는 트리스탄이라 합니다.”


“음. 잘못 들은 것이 아니라면, 분명 카이산 왕국을 구해낸 영웅의 이름이 트리스탄이었던 것 같네만. 본인이신가?”


“구했다는 말에는 어폐가 있으나, 함께 싸운 것은 맞습니다.”


“흠. 볼테르 경은 어찌 생각합니까?”


대주교의 물음에 그의 뒤에 시립 해있던 볼테르가 담담한 어조로 답했다.


“한 가지 조건이 있다면 문제가 없다고 생각됩니다.”


“조건 말입니까?”


“대주교님께서도 아시다시피 제게는 아직 마무리하지 못한 임무가 있지 않습니까? 본디 기사의 결투란 목숨을 거는 것이지만, 서로를 상하지 않게 하는 선에서 그치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볼테르의 말에 놀랐는지 대주교가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그 정도란 말입니까?”


“...감히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상대입니다.”


아무리 상대가 전쟁 영웅이라고 한들, 볼테르는 이미 이십여 년 전부터 영웅이라 불려오던 기사였다.


그런 그가 눈앞의 청년을 두고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니.


대주교의 눈빛이 깊게 내려앉았다.


“...그렇군요. 볼테르 경의 제안을 그대는 어찌 생각합니까?”


“바라던 바입니다. 교국에 손님으로 찾아와, 무도한 짓을 벌일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습니다.”


****


볼테르의 검은 무거웠다.


굳이 따지자면 오크 대전사의 검과 비슷했다.


하지만 볼테르를 완력만 믿고 공격 일변도로 돌진하던 오크 대전사와 비교하기엔 미안한 수준이었다.


콰아아앙-!!


오크 대전사가 자신의 힘에 취해있었다면, 볼테르는 무거움을 이용할 줄 아는 이였다.


크게 검을 부딪친 이후, 볼테르는 즉시 트리스탄에게 몸을 부딪쳐왔다.


카가가각-!!


트리스탄은 갑주를 입지 않았기에 그의 어깨를 검으로 막아냈지만, 이내 볼테르가 휘두른 팔꿈치 공격을 피하기 위해 몸을 숙여야만 했다.


후우웅-!!


몸을 숙이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볼테르의 무릎이 올라왔다.


“읏-!!”


어쩔 도리없이 몸을 웅크리며 오러를 운용하여 무릎을 방어했다.


뻐어억-!!


트리스탄의 몸이 뒤로 튕겨 나갔다.


정신이 아득해질 것 같은 거대한 충격이 온몸을 덮쳐왔다.


입속이 터진 듯 비릿한 피 맛이 느껴졌지만, 조금도 멈춰있을 순 없었다.


곰처럼 거대한 볼테르가 이미 검을 위로 치켜든 채 지척까지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트리스탄은 오러를 끌어올려 볼테르의 검을 막아냈다.


콰아아앙-!!


“크흣-!!”


검신을 기울여 볼테르의 짓누르는 힘을 흘려내려 하자, 곧바로 볼테르의 거대한 어깨가 그의 가슴팍을 노리고 짓쳐 들었다.


쉴 틈을 주지 않고 밀려드는 공격에 트리스탄은 헛웃음을 흘렸다.


검으로 상대의 중심을 흐트러트린 다음 초근접 박투로 상대를 박살 낸다고 해야 할까?


확실히 까다로웠다.


트리스탄은 스승의 가르침을 떠올렸다.


- 무공이라는 것은 끊임없이 돌아가는 고리와도 같다. 그러기 위해선-


‘호흡을 정리하거라.’


트리스탄은 빠르게 몸을 틀어 볼테르의 육탄전을 회피했다.


“흐읍-!”


거칠어져 가던 호흡을 가다듬었다.


‘관찰을 게을리하지 말거라.’


트리스탄은 격하게 몸을 트는 과정에서도 시선만큼은 볼테르에게로 고정했다.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훌륭한 전사였다.


물 흐르듯 이어지는 공격은 물론, 기의 운용 역시도 능숙했다.


다만, 그의 기운 운용은 강박적일 정도로 규칙적이었다.


마치 심장 박동처럼.


볼테르가 다시 빠르게 달려드는 모습이 보였다.


‘생각을 멈추지 말거라.’


트리스탄은 상대에게 맞서 돌진했다.


콰아앙-!!


서로의 검이 중상단에서 강하게 부딪쳤다.


카가가각-!!


힘으로 짓누르던 볼테르의 검을 흘려냈다. 볼테르의 근접 공격이 들어올 타이밍이었다.


트리스탄은 한차례 그의 공격을 피해냈다.


볼테르는 전장에서 울리는 북소리와도 같았다.


둥-! 둥-! 둥-! 둥-!


트리스탄은 그에게서 들려오는 박자를 느꼈다.


볼테르의 주먹을 피해냈다.


트리스탄은 볼테르의 박자에 앞서 움직였다.


호흡을 내뱉어야 할 타이밍이었지만 오히려 숨을 머금으며 참았다.


반의반 호흡.


찰나의 순간, 볼테르의 박자 사이로 파고들며 다리를 옮겼다.


콰득-!!


트리스탄은 발바닥으로 바닥을 강하게 짓밟으며 허리를 튕겼다. 주먹이 빠르게 뻗어져 나갔다.


무릎을 내밀던 볼테르의 하복부에 트리스탄의 주먹이 틀어박혔다.


콰아아앙-!!


볼테르는 거대한 신형을 비척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볼테르의 갑주 왼쪽 중하단은 처참하게 우그러져 있었다.


“......”


한동안 트리스탄을 바라보던 볼테르의 몸이 무너져내렸다.


쿵-!


무릎을 꿇은 것이었다.


“쿨럭-!”


황당했다.


방심 따위는 없었다. 의심의 여지 없이 최선을 다했다.


아니, 한 치의 실수도 없었다.


그는 완벽하게 모든 것을 펼쳐냈다.


그저 눈앞의 청년이 마지막에 보여준 움직임이 상식적이지 않았을 뿐이었다.


오러로 강화한 신체로도 따라갈 수 없는 기묘하고 빠른 움직임.


“흐, 흐흐···.”


허탈했다.


어찌 저런 재능이 존재할 수 있단 말인가?


사십여 년 전 성기사로 임명되던 날.


그는 자신의 사명을 기쁘고도 엄숙하게 받아들였다.


이후, 그는 단 하루도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 누구보다 일찍 일어나 검을 휘둘렀고, 아침 기도를 마친 뒤에는 더 열심히 검을 휘둘렀다.


그의 나이 서른다섯. 신성한 빛으로 타오르는 오러 블레이드를 발현할 수 있었다.


뱀파이어 정화 사건 이후, 과분하게도 세인트의 호칭을 얻었지만 그럼에도 그는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비록 그 속도는 느렸지만, 그는 조금씩 스스로 강해져 간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그 결과가 이것인가?


볼테르는 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있었고, 청년은 그의 앞에 오연하게 서 있었다.


이제 결투에 법도대로 저 아이는 그의 목에 검을 가져다 대며 승부를 확정 지을 것이었다.


볼테르는 조용히 마음의 준비를 했다.


‘내가 더 약했을 뿐이다.’


그때 볼테르의 시야에 그림자가 졌다.


청년이 그에게 무언가를 뻗어냈다.


“...음?”


손이었다. 그의 것에 비하면 무척이나 작은 손.


의문을 가지고 올려다본 볼테르의 눈에 옅은 웃음을 띤 청년의 얼굴이 보였다.


신비로울 정도로 아름다운 외모였다.


그때 청년의 입술이 움직였다.


“볼테르 경의 공격을 피하고자 무리한 움직임을 취하다 보니 속이 진탕되어 더 이상 승부를 이어갈 수가 없군요. 볼테르 경께서는 제 부족함을 이해해주시길 바랍니다.”


무슨 소리를 하는가 가만히 듣던 볼테르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볼테르는 철제 장갑을 풀고 자신에게 뻗어진 손을 잡았다.


턱-!


비록 작은 손이었지만 그 손바닥에는 굳은살이 빼곡하게 박혀있었다.


트리스탄의 도움으로 몸을 일으킨 볼테르가 말했다.


“과연 카이산 왕국의 영웅이로군. 내가 졌소.”


“무슨 말씀입니까? 지금 저는 검을 휘두르기도 벅찬 상태입니다.”


“식사는 했는가?”


“네? 아, 아직입니다.”


“그럼 신소리 그만하고 식사나 같이하세.”


“그건 좋군요.”


두 사람은 개운한 표정으로 연무장을 유유히 빠져나갔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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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해상 왕국 24.08.06 49 5 13쪽
» 교국의 성기사 24.08.05 54 5 11쪽
5 영웅출현 24.08.03 60 5 14쪽
4 절체절명의 위기 24.08.03 71 5 14쪽
3 하산하거라 24.08.02 68 7 12쪽
2 소년을 만나다 24.08.02 80 6 12쪽
1 이름을 묻다 24.08.02 115 6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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