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계 악신으로 살아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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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차볶음밥
작품등록일 :
2024.08.02 02:07
최근연재일 :
2024.08.12 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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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0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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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 이행

DUMMY

신의 참격이 남긴 깊은 상처로 눈발이 계속해서 흘러내려 갔다.


그 끝은 어디에 닿아있을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어둡기만 했다.


놀라울 정도로 장엄한 광경이었지만 등세극의 눈은 그리로 향하지 않았다.


등세극의 시선이 향한 곳은 설원이었다.


그저 눈이 쌓인 설원.


그곳은 볼테르와 사제들의 시신 위로 눈이 쌓인 곳이었다.


그 광경을 가만히 지켜보던 등세극이 입을 열었다.


“나디아가 태초의 신을 모방한다는 건 어떤 의미지?”


눈보라 사이로 스며들 듯 나타난 블루드래곤 카이베른이 등세극을 멀뚱멀뚱 쳐다보며 말했다.


“태초의 신, 그러니까 네가 말하는 주신은 더 이상 이 땅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음.”


가만히 팔짱을 낀 채 더 이야기해보라는 듯한 등세극의 태도에 카이베른은 어이가 없다는 듯 웃으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태초에 존재한 하나의 신 그리고 약 천년 전에 벌어진 마계의 침공.


태초의 신은 마계의 악신들을 상대로 고군분투하였으나 결국 마지막 순간 자신을 희생하여 마계로 통하는 문을 봉인하는 것을 선택하였다.


악신들을 마계로 돌려보냄과 동시에 그의 신격은 여러 신격으로 분리되었고 그의 육신은 조각나 대륙 곳곳에 떨어졌다.


분리된 신격 중 하나가 나디아이고, 주신의 육신 조각은 하나하나가 미증유의 힘을 담고 있는 성물인 셈.


문제는 종족 전쟁으로부터 시작됐다.


인류를 뒤에서 지원해 마침내 대륙의 패권을 장악한 나디아는 그녀가 확보한 성물을 이용하여 자신의 형제자매들을 하나씩 봉인하고 신격을 흡수하기에 이른 것이었다.


“무슨 자신감으로 나디아를 도발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그녀가 보유한 성물만 최소 세 개는 될 거다.”


“그래서 성물은 어디에 있지?”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뭐, 하지만 굳이 네가 찾지 않더라도 자연히 보게 될 거다.”


“음?”


“단순 빙의로는 어찌할 수 없다는 걸 깨달은 나디아가 다음으로 동원할 것은 성물의 힘일 테니까.”


“그런가? 흥미롭군.”


****


나제르 왕국의 왕성, 하얀 사제복을 입은 청년이 국왕의 앞으로 나아왔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폐하.”


“어서 오시오! 한동안 공석이던 성자로 임명되었다 들었는데 우리 나제르 왕국에 처음으로 방문할 줄은 몰랐소! 하하!”


“공식 석상에서는 말을 아끼긴 하지만, 북부 국가 중 가장 신실하게 여신을 섬기는 국가가 바로 나제르 왕국 아니겠습니까? 모두 국왕 전하의 은덕이고 여신의 은총이겠지요.”


“하하하! 우리 성자님이 알아봐 주니 참으로 기쁘군! 그래, 긴히 의논할 일이 있다 들었는데 이야기를 해보시게. 내 경청하겠네.”


하얀 사제복의 청년은 하얗게 미소 지으며 나제르 국왕의 눈을 응시했다.


마치 그린듯한 선한 미소가 나제르 국왕의 눈을 사로잡았다.


“과거 여신께서는 종족 전쟁에서 공을 세운 세 명의 지도자와 두 명의 영웅에게 성물을 하사하셨지요.”


성자의 목소리는 한없이 나긋하고 부드러웠다.


그런 성자의 눈을 바라보는 나제르 국왕의 눈빛이 점차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성자는 계속해서 입을 열었다.


“그 영웅 중 한 분이 바로 킬리안 나제르 경이셨지요. 뱀파이어 혈족을 정화한 것으로 볼테르 경이 유명하다지만, 뱀파이어 종족의 예기를 꺾어버린 것은 사실상 그분이셨죠.”


나제르 국왕이 천천히 대답했다.


“그렇지···. 그렇지···.”


성자의 눈이 반달 모양으로 휘어들었다.


“대륙에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그대의 힘이 필요합니다. 여신께서 그대의 선대에 하사한 성물의 계약에 응하기 바랍니다.”


“알...겠소.”


나제르 국왕의 고개가 수그러지며 그의 눈가에 깊은 그늘이 드리워졌다.


****


대륙 중부.


안디오스 왕국, 헤일로 왕국, 로살리아 왕국.


가장 찬란하게 발전한 문명이라 자부하는 그들의 자부심은 마법 공학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었다.


마법 공학, 군사력, 소출, 문화, 학문 그 모든 분야에서 그들은 최고여야만 했다.


그것은 당연히 기사들의 수준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실제로 ‘그랜드마스터’란 단어의 유래 자체가 대륙 중부에서부터 시작된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들의 자부심은 검은 가면을 쓴 한 괴한에 의해 처참하게 찢겨나갔다.


그의 정체는 아무도 확인하지 못했다.


안디오스 왕국의 그랜드마스터 왕실 기사단장, 헤일로 왕국의 그랜드마스터 함지트 경, 로살리아 왕국의 잇샤 마탑 수호기사.


각국을 대표하는 기사들은 검은 가면의 괴한이 찾아온다면 자신이 친히 그 가면을 벗겨주겠노라 자신했지만 결국 그들 역시도 소문의 재료 그 일부가 되고 만 것이었다.


이런 괴한을 두고 사람들은 설왕설래하며 다투었고, 음유시인들조차도 몰래 음지에서 노래를 만들어 불렀다.


단연코 가장 많은 이들이 생각하는 괴한의 정체는 카이산 왕국의 영웅이자, 브리탄 왕국에서 라니스터 공작과 겨룬 뒤 사라졌다는 트리스탄이었다.


백성들은 그가 트리스탄일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지만, 중부의 세 국가는 결코 이를 용납하지 않았다.


하찮게만 생각했던 북부의 영웅에게 중부의 강자들이 줄줄이 패배했다는 것을 어찌 인정할 수 있을까?


세 국가는 약속이라도 한 듯, 이 사안에 대해서 침묵했으며.


덕분에 그 소문의 트리스탄은 유유히 카이산 왕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너무 서두르지 말거라. 무작정 검을 휘두르기보다 정확한 자세로 한 번을 휘두르는 것을 목표로 삼거라.”


“예! 스승님!”


트리스탄의 옆에는 왜소한 소년이 목검을 쥔 채 따라오고 있었다.


카잔.


천둥번개와 함께 울부짖던 소년은 트리스탄의 제자가 되어 검을 배우기 시작했다.


비록 나이 차가 크지 않은 사제지간이었지만, 그간 트리스탄의 모든 행적을 지켜볼 수 있었던 카잔으로서는 스승을 무조건적으로 믿고 따를 수밖에 없었다.


사실상 대륙 북부와 중부를 모두 평정한 사내.


어쩌면 대륙에서 가장 강한 사내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스승님, 그런데 카이산 왕국에는 어쩐 일로 방문하시는 겁니까?”


“음···.”


트리스탄은 고개를 들어 먼 산을 바라봤다. 그의 눈에는 어느새 애틋함이 감돌았다.


“약속을 지키기 위함이다.”


****


카이산 왕국이 오크의 침공으로 국력이 약해진 후.


북부 대륙의 패권 경쟁은 사실상 나제르 왕국과 론돈 왕국에게로 넘어갔다.


하지만 나제르 왕국이 론돈 왕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며 균형의 추가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중립 국가인 나디아 교국과 해상 왕국인 브리탄 왕국을 논외로 친다면 결국 나제르 왕국이 북부 대륙의 패권국으로 굳게 올라서게 된 것.


프레이야 공주의 생일을 기념하는 연회에는 그런 나제르 왕국의 셋째 왕자 니콜로 나제르가 참석해있었다.


“호오···.”


제롬 왕자의 옆에 앉아서 공주의 입장을 지켜본 니콜로가 작게 감탄사를 터트렸다.


과연 카이산 왕국의 가장 아름다운 꽃이라는 이명에 걸맞은 미모.


소문대로 눈이 부실 정도의 미인이었다.


“프레이야 공주가 참으로 아름다우시군.”


평가를 하는 듯한 니콜로의 말에 카이산 왕국의 제롬 왕자는 쓴웃음을 지으며 침묵했다.


여성 편력이 심하다는 소문이 들려오는 니콜로 왕자.


오라비로서 그런 그를 바라보는 시선은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나 니콜로가 프레이야 공주에게 청혼하고자 찾아온 것이라면 더더욱이나.


그때였다.


집사가 당황한 얼굴로 제롬 왕자에게 다가왔다.


국가의 위신이 걸린 행사에서 이런 허술한 모습을 보이다니. 불편한 심기로 되묻자 집사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무슨 일인가?”


“...왕자님, 트리스탄 경께서 찾아오셨습니다.”


“뭐, 뭐라고?”


조금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왕국을 위기에서 구해준 이후 사라진 트리스탄 경이 이년 만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


제롬 왕자는 서둘러 집사의 어깨를 붙잡으며 재촉했다.


“어, 어서 안으로 모시게!”


****


한동안 닫혀있던 연회장의 문이 열렸다.


“트리스탄 경께서 입장하십니다!”


흰색 셔츠에 기다란 수트를 걸친 젊은 사내가 천천히 연회장에 입장했다.


“뭐, 뭐라고??”

“트리스탄 경?”


연회를 즐기던 모든 귀족의 고개가 돌아갔다. 음악은 계속해서 흘러나왔으나, 연회장 중앙에서 춤을 추던 모든 이들마저 일시에 춤을 멈추고 입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저벅-! 저벅-!


트리스탄은 연회장의 입구를 따라서 이어진 레드 카펫을 밟으며 나아갔다.


연회장에는 시끄러운 침묵이 흘렀다.


그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지만, 그들의 표정은 실로 다양했다.


의아함, 놀라움, 경외심.


실베르 역시도 그의 모습을 바라보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고작 이년 사이.


소년은 완연한 사내가 되어있었으나 그 특유의 신비로운 외모는 여전했으며.


주위를 짓누르는 듯한 분위기는 더욱 짙어져 있었다.


‘더 강해지셨단 말인가?’


트리스탄은 침묵 속으로 가라앉은 연회장을 천천히 나아갔고.


“허···.”


누군가 참지 못하고 내뱉은 신음성이 연회장을 고요하게 울렸다.


어느새 연회장의 중심부까지 연결된 레드 카펫이 끝이 나고 트리스탄은 중앙에서 춤을 추다 멈춘 이들의 사이를 헤치며 나아갔다.


그가 멈춰선 곳은 귀빈석.


나제르 왕국의 니콜로를 일견한 트리스탄은 자리에 앉아있는 프레이야 공주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아름다운 프레이야 공주님, 열아홉 번째 생일을 축하드립니다.”


순간 모든 이의 이목이 그에게로 집중됐다.


그리고 마침내 트리스탄은 빙긋 미소지으며 입을 열었다.


“제게 아름다운 공주님과 춤을 출 기회를 주시겠습니까?”


연회장 곳곳에서 경악성이 터져 나왔다.


프레이야 공주가 연회의 주인공이라 한들 이미 나제르 왕국의 왕자가 그녀에게 청혼하러 찾아왔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


그런 프레이야 공주에게 다른 이가 춤을 신청한다는 것은 관례에 어긋나는 것이었다.


“이자가-?!”


얼굴이 붉어진 니콜로 왕자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려 하자 뒤에서 그의 어깨를 잡는 이가 있었다.


결국, 선택은 프레이야 공주에게로 넘어갔고 그녀는 트리스탄이 뻗은 손 위에 우아한 움직임으로 살포시 손을 올리며 답했다.


“왕국의 영웅이신 트리스탄 경께서 이리 요청하시니 그 청에 응할 수밖에 없겠네요.”


침묵으로 가득한 연회장의 중앙으로 트리스탄과 프레이야가 손을 잡은 채 나아왔다.


마침 울려 퍼지는 몽글몽글하고 달콤한 분위기의 연주곡.


트리스탄이 조용히 속삭였다.


“약속을 지키러 왔습니다.”


프레이야가 답했다.


“너무 늦었잖아요.”


“그런가요?”


“아뇨. 잘 모르겠어요.”


연주곡을 따라 연회장의 중앙에 선 두 사람은 천천히 춤을 추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조금 삐걱거리는 듯했으나, 곧 두 사람이 추는 춤사위는 부드럽게 이어져갔다.


화려하거나 격정적인 춤은 아니었으나, 보는 이들은 작게 감탄을 터트렸다.


비록 동작은 단순할지 몰라도 그들의 춤은 몽글몽글한 연주곡에 너무도 잘 어울렸다.


귀빈석에 앉아있던 나제르 왕국의 니콜로 왕자는 어느새 자리에서 사라졌고, 제롬 왕자는 웃는 듯 우는 듯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아 와인을 홀짝거렸다.


시린 달빛이 테라스 사이로 비치는 아름다운 밤.


한 연인의 시간은 멈추기라도 한 듯 천천히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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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압도적인 재능 +1 24.08.07 43 4 14쪽
7 해상 왕국 24.08.06 49 5 13쪽
6 교국의 성기사 24.08.05 54 5 11쪽
5 영웅출현 24.08.03 60 5 14쪽
4 절체절명의 위기 24.08.03 72 5 14쪽
3 하산하거라 24.08.02 68 7 12쪽
2 소년을 만나다 24.08.02 80 6 12쪽
1 이름을 묻다 24.08.02 115 6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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