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계 악신으로 살아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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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차볶음밥
작품등록일 :
2024.08.02 02:07
최근연재일 :
2024.08.12 02:13
연재수 :
1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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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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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2 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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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저주

DUMMY

화려한 무늬가 새겨진 금빛의 잔.


선홍빛의 액체가 바닥의 홈을 타고 천천히 스며들어 가고 있었다.


또옥-!


어두운 지하 공동. 제단 위에 누워있는 누군가의 입으로 액체가 떨어져 내렸다.


미라처럼 말라비틀어진 형태.


그의 심장 어림이 박동하기 시작했다.


두-근-!


****


두-근-!


황홀할 정도로 달콤한 향에 심장이 뛰었다.


또옥-!


입가로 무언가 한 방울 떨어져 내렸다.


‘아아···. 참으로 황홀하구나.’


심장이 뛴다.


두-근-!


‘여긴 어디지? 진조 녀석을 처리하는데 성공한 걸까···?’


심장 박동이 빨라졌다.


두근-! 두근-! 두근-! 두근-!


기억이 하나씩 돌아오고 있었다.


‘그래, 내 직접 진조 녀석의 심장에 말뚝을 박아넣었지.’


어떻게 살아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살가죽이 뼈에 달라붙은 인물이 어둑한 지하에서 몸을 일으켜 세웠다.


‘수하들을 이끌고 북부로 향해 나라를 세웠구나. 그런데 여긴 어디지···?’


문득 전쟁이 끝나고, 여신을 마주했던 순간이 떠올랐다.


- 그대가 간절히 원하는 바를 이루어줄 거랍니다.


“오, 오오···! 여신이시여. 제가 원하는 것은···. 제가 원하는 것은-”


킬리안은 몸을 멈칫했다.


종족 전쟁의 영웅, 킬리안은 마침내 모든 기억을 되찾았다.


“여신이시여, 어째서···.”


그가 바랐던 것은 ‘영생’이었다. 그가 일군 모든 것들을 내려놓고 떠나고 싶지 않았다.


모든 소망을 이루어주는 성물이라 하지 않았던가?


어째서 그가 바란 ‘영생’ 대신 끝나지 않는 ‘영원한 고통’만이 주어진 것인가?


어찌하여 그가 그토록 증오해오던 마물 그 자체가 되어버린 것인가?


‘응?’


누군가의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어둠 속에서 눈을 하얗게 뜬 청년이 그에게로 다가왔다.


순박한 웃음.


킬리안은 저도 모르게 청년에 대한 경계심이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누구-”


“오랜만이네요. 킬리안.”


“......!!”


“그대에게 기회가 다시 찾아왔답니다.”


킬리안은 몸을 부들부들 떨며 청년을 바라봤고, 청년의 미소는 한층 더 짙어졌다.


“인류를 위해 헌신할 기회 말이에요.”


****


일단의 기사 무리가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철컥-! 철컥-!


멋들어진 판금 갑옷을 걸쳐 입은 기사들이 뛰어다닐 때마다 바닥이 진동했다.


왕궁 곳곳에 근무하던 왕실 기사단이 국왕의 명에 따라 모여든 것이었다.


비번이던 기사들 역시도 예외는 아니었다.


“모두 모였나?”


왕실 기사단장의 물음에 최선임 기사가 보고했다.


“왕실 기사단 총원 백이십! 모두 모였습니다!”


일단 빠르게 모든 인원을 파악하여 보고한 최선임이었지만, 그의 눈은 설명을 요구하고 있었다.


긴급한 상황이라면 왕실 기사단 모두가 소집되는 것은 이해하지 못할 것은 아니었으나, 론돈 왕국과의 전쟁도 마무리된 지금 대체 무슨 위급한 상황이 있단 말인가?


그리고 연무장도 아닌 이런 방으로 소집한 이유는 또 무엇이고?


하지만 대답을 해주어야 할 왕실 기사단장도 그 이유를 알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전하께서 어떠한 연유로 모이라 명하셨는지는 모르겠군. 하지만 전하께서 직접 오신다고 하셨으니 일단은 기다리거라.”


“...알겠습니다.”


마침 그때 왕실 기사단이 모여있는 방 앞에 도착한 나제르 국왕이 근위 기사에게 명령했다.


“문을 열어라.”


끼익-!


왕실 기사단 일동이 절도있는 모습으로 국왕에게 예를 취해 보였다.


“국왕 전하를 뵙습니다!!”


별다른 대답 없이 방안으로 들어온 국왕은 뒤를 바라보며 말했다.


“가져오라.”


국왕의 뒤로 근위 기사들이 들고 오는 것은 금속으로 이루어진 ‘관’이었다.


근위 기사들이 방 중앙에 ‘관’을 내려놓고 바깥으로 나갔다.


끼익-!


다시금 닫힌 문.


왕실 기사단장이 대표로 국왕에게 물었다.


“전하, 이것은···?”


“위대한 결정의 과정은 그다지 아름답지 않을 때가 많지. 대의를 위해 소의 희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전하···?”


“그대들의 숭고한 희생이 필요하네.”


“저, 전하! 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콰앙-!!


그 순간 관의 뚜껑이 터지듯 허공으로 날아가더니 희끗한 무언가가 왕실 기사단장을 향해 날아갔다.


콰득-!!


“커, 커헉-?!”

우악스러운 악력으로 왕실 기사단장의 목을 젖힌 채 이빨을 박아넣는 존재.


창백한 얼굴과 붉은 안광, 그리고 날카로운 손톱.


그 모습은 분명 피를 갈망하며, 부정한 방법으로 불멸을 손에 넣었다는 사악한 존재. 뱀파이어였다.


“배, 뱀파이어-?!”

“단장님-?!”


왕실 기사들은 그들의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에 대해서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어찌 뱀파이어가, 그것도 왕성의 중심에서 나타난단 말인가?


“마, 막아라!!”


왕실을 수호하기 위해 평생을 검을 갈고닦은 이들이기 때문이었을까?


그들은 국왕을 수상쩍게 여기면서도 본능적으로 국왕을 둘러싸 보호했다.


그들이 우왕좌왕하던 그 짧은 시간, 뱀파이어는 어느새 숨이 멎은 왕실 기사단장의 목에서 이빨을 뽑아냈다.


쿠웅-!


힘없이 바닥에 쓰러지는 왕실 기사단장의 육신.


나제르 왕국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소드마스터. 왕실 기사단장의 최후는 너무도 초라한 것이었다.


“흐으으···.”


입가에 묻은 피를 핥아내며 만족스럽다는 듯한 소리를 내는 뱀파이어.


“죽어라! 이 마물!”


분노한 왕실 기사들이 검을 뽑아 들고 그에게로 쇄도했다.


좁은 공간에서 육중한 갑옷을 번쩍이며 몰려드는 기사들.


아무리 단장을 죽인 뱀파이어라 할지라도 이 철갑의 파도를 막아낼 수 있을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여전히 피 맛에 취해있던 뱀파이어의 가슴팍에 가장 앞에서 돌진하던 기사가 검을 박아넣으려던 그 순간.


뱀파이어의 모습이 사라지고, 기사의 검은 허망하게 허공을 찔렀다.


- 키이이이이이익-!!!!


사라진 뱀파이어 대신 순식간에 나타난 수백 마리의 박쥐 떼가 날카로운 소리를 내지르며 기사들의 얼굴을 덮쳐갔다.


“으, 으아악-?!!”

“끄아악-!!”


한 왕실 기사는 연신 검을 휘두르며 왼손으로 얼굴에 붙은 박쥐를 떼어내려 했지만, 이미 그의 목에는 대여섯 마리의 흡혈박쥐들이 달라붙어 있었다.


도무지 떼어낼 수 없는 박쥐들의 공격에 아비규환이 펼쳐졌다.


국왕을 지키기 위해 후방에 빠져있던 왕실 기사는 충격을 받았는지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치며 읊조렸다.


“지, 진조···?!”


전설과도 같은 이야기였다.


적게는 백여 마리, 많게는 수천 마리의 흡혈박쥐로 변할 수 있다는 능력.


그것은 오직 뱀파이어의 군주. 진조만이 가진 능력이었다.


가장 짙은 피.


모든 뱀파이어의 시조.


“어, 어째서!”


그런 전설적인 진조를 잡아 죽인 영웅. 킬리안 나제르가 세운 위대한 국가에서 왜 진조가 등장한단 말인가?


흡혈박쥐에게 피를 빨린 왕실 기사들이 하나둘 바닥에 차가운 몸을 눕혔고, 아직 살아있는 이들은 극도의 공포에 젖어 들어갔다.


승산이 있을 리가 없었다.


오직 킬리안처럼 인간을 초월한 강자만이 진조를 상대할 수 있을 뿐. 어정쩡한 이들의 존재는 오히려 있으니만 못한 존재였다.


그저 진조에게 피를 헌납하고 영양분이 될 존재들.


그럼에도 기사들은 다가오는 죽음 앞에서 도망가지 않았다.


그들의 뒤에 그들이 충성을 바치는 군주가 서 있었기 때문에.


“으아아아-!!”

기사의 검에 베인 흡혈박쥐가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떨어졌지만, 그보다 많은 박쥐가 그의 얼굴과 목을 덮쳐들었다.


소란은 오래가지 않았다.


쿠웅-!


국왕의 앞을 지키던 마지막 기사가 바닥에 몸을 뉘인 뒤.


“흐으으···.”


방 한가운데 녹아내릴 것만 같은 황홀한 얼굴로 서 있는 한 사내가 있었다.


조금 창백하기는 했으나, 그의 얼굴은 나제르 왕궁 중앙에 걸려있는 초상화의 인물과 무척이나 닮아있었다.


종족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으며 나제르 왕국을 세운 영웅.


킬리안 나제르.


그의 앞에 국왕은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나의 위대한 조상이시여···.”


****


카이산 왕궁.


나제르 왕국의 셋째 왕자. 니콜로 나제르.


그와의 접견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카이산 국왕이 함께하는 자리임에도 니콜로는 불퉁한 표정으로 앉아있었다.


대화를 이끌어나가는 것은 그런 니콜로의 옆자리에 앉은 후덕한 인상의 중년인이었다.


“전하, 저희의 방문은 공식적인 외교 사안에 해당하는바, 이번에 벌어진 일에 대해서 나제르 왕국을 대표하여 유감을 표하는 바입니다.”


고작 두 젊은 남녀의 춤 한 번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들의 신분과 책임의 무게가 달랐기에, 그 한 번의 춤은 외교 문제로 비화되기에 충분했다.


문제는 나제르 왕국과 카이산 왕국. 두 국가 간 국력 차이가 무척이나 심하다는 것.


사실 나제르가 어떤 문제로 시비를 걸어오든 카이산 왕국은 철저한 을이 될 수밖에 없었다.


“두 국가 간의 큰 축복이 될 수 있었던 혼약이 틀어지긴 했으나, 나제르 왕국은 여전히 카이산 왕국과의 굳은 신뢰의 관계가 유지되기를 원합니다.”


나제르 왕국, 리세 백작의 말에 몇몇 신료들의 표정이 밝아졌으나, 정치판에서 이골이 닳은 노신들의 표정은 오히려 더 굳어져만 갔다. 결국은 더한 것을 요구하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개인사가 아니었다. 무조건적으로 자국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국가 관계에서 대가 없는 ‘양보’란 존재하지 않았다.


“트리스탄 경은 교국과 브리탄 왕국을 찾아가 각각 볼테르 경과 라니스터 경과의 교류를 나누었다 들었습니다. 하지만 본국에는 찾아오지 않으셨더군요. 때문에 퍼시발 경께서는 항상 그에 대한 아쉬움을 표하셨습니다.”


댄 퍼시발. 나제르 왕국을 대표하는 기사로, 이번 론돈 왕국과의 전쟁에서도 혁혁한 공을 세운 영웅이었다.


“마침 전쟁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우리 나제르 왕국의 수도에서 축제가 이루어질 예정입니다. 만약 트리스탄 경이 방문하여 주신다면 이번 일은 조용히 넘어가는 것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으음···.”


국왕 안톤 카이산이 불편한 기색을 보였다.


“그건 아직 우리가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닐세.”


트리스탄은 카이산 왕국의 영웅이긴 했으나, 엄밀히 말하자면 카이산 왕국의 소속이라곤 할 수 없었다.


작위를 내린 것도 아니었다.


안톤 국왕이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음에도 리세 백작은 여전히 웃는 낯이었다.


“어차피 두 분의 혼인을 추진하실 것 아닙니까? 그리고 말씀드렸다시피 친선 방문을 요청하는 것뿐입니다. 볼테르 경 그리고 라니스터 경과도 서로 상해를 입히지 않는 선에서 교류하셨다 하지 않았습니까? 저희도 그저 퍼시발 경과의 교류를 추진하고자 할 뿐입니다.”


한차례 관자놀이를 누른 안톤 국왕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당사자와 이야기한 뒤 알려주겠네. 이제 그만 물러들 가시게.”


리세 백작은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런! 알겠습니다. 그럼-”


리세 백작과 니콜로 왕자가 안톤 국왕을 향해 가볍게 예를 취했다.


“전하, 그럼 답변을 기다리겠습니다.”


나제르 왕국의 인물들이 나가고, 침묵이 감도는 회의장.


안톤 국왕이 어두운 안색으로 이마를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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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압도적인 재능 +1 24.08.07 43 4 14쪽
7 해상 왕국 24.08.06 49 5 13쪽
6 교국의 성기사 24.08.05 53 5 11쪽
5 영웅출현 24.08.03 60 5 14쪽
4 절체절명의 위기 24.08.03 71 5 14쪽
3 하산하거라 24.08.02 68 7 12쪽
2 소년을 만나다 24.08.02 80 6 12쪽
1 이름을 묻다 24.08.02 115 6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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