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한 야구 천재가 회귀당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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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글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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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0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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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9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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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드 로저

DUMMY

퍼억


공이 포구하기 위해 내밀었던 미트와 한참을 벗어나 들어온다. 10구밖에 던지지 않았는데 벌써 이런 공이 5개째다. 에효.. 오늘 경기는 쉽지 않겠구나.


“좋아, 주드! 오늘 공 아주 죽여주는데?”


생각과는 다른 말이 뇌를 거치지 않고 튀어나가는 자신을 보며 아주 대견하다는 생각을 하길 잠깐, 또 반대투구가 들어온다.


“미안해요 스탄. 오늘 이상하게 컨트롤이 잘 안되네요.”


“네 공은 힘이 좋아서 제구 좀 안돼도 다 빗맞을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던지라고!”


큼 큼. 잠깐 표정관리가 안 됐나? 곧 메이저리그에 올라가실 몸인데 이 정도 투수 케어도 못하면 안 되지.


내 이름은 스탠리 에반스. 레딩 파이틴 필스의 주전 포수이자 6번 타자로 활약하는 마이너리거다.


작년 9월 확장 로스터 때 팀의 3번째 백업포수로 잠깐이지만 빅리그도 다녀왔던 그야말로 예비 메이저리거라 할 수 있지.


단 2경기만에 로스터에서 탈락한 건 그냥 두 걸음 올라가기 위한 한 걸음의 후퇴랄까?


어쨌든 이런 내가 보건대 오늘 뉴햄프셔 피셔캣츠와의 경기는 아주 힘들게 흘러갈 것 같다.


선발이 저렇게 제구가 안 잡혀서야.. 몇 구 던지지도 못하고 조기 강판되는 게 벌써부터 눈에 선하다.


물론 선발이라는 족속들이 아주 예민하고 알 수 없는 것들이라 연습투구에서 저러다 갑자기 좋아질 수도 있지만 글쎄.. 내 경험상 그런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그냥 상대 팀 타자들이 트롤 짓을 해주기만을 바랄 수밖에..


빅리그 쪽의 아직 건재한 소식통에서 오늘부터 콜업을 위한 스카우터들을 마이너리그에 파견 보냈다는 희소식을 들은 게 얼마 전인데 이러면 나가린가?


이런 젠장, 오늘 아침만 해도 좋았던 기분이 바닥을 친다. 스카우터 앞에서 저렇게 제구 안되는 변화구들을 마구 던지다가 잘못해서 포구 실수라도 하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차라리 그냥 두들겨 맞고 얼른 내려가는 걸 바라면 너무 속 보이려나? 여튼 그러고 싶은 심정인 건 사실이다.


우와아아아아


내 이런 기분과는 상관없이 심판의 경기 시작 호루라기 소리에 관중들이 환호하는 소리가 들린다.


후우.. 요새 필리스가 잘나가고 있으니 지난 3년간 잘 오지도 않던 팬들이 슬슬 몰려들더니 오늘은 정말 많이도 왔다.


왜 하필 오늘 이렇게 많이 오는 건데? 눈치도 없이!


그래도 이해는 한다. 내 홈타운도 여기 레딩이니까. 아마 내가 이 팀의 포수만 아니었어도 저기 어딘가 앉아있겠지.


오늘은 내야뿐 아니라 평소에는 텅텅 비어있던 외야 관중석까지 꽉 들어찬 걸 보니 여기 와있는 태반의 홈 팬들은 저기 센터 필드에서 우익수와 공을 주고받고 있는 저 아시아인 중견수를 보기 위해 왔을거다.


처음엔 보너스 머니를 쓸데없이 썼다고 피켓 들고 단장을 당장 해고하라는 시위를 하던 팬들을 다섯 달 만에 당장 단장과 종신계약을 맺으라고 강요하게 만든 장본인이자 한 달 만에 하위 싱글을 씹어 먹고 올라와 여기 더블 A에서도 변함없는 몬스터 모드를 보여주는 선수.


길었던 필리스 외야의 잔혹사를 끝내줄 마지막 희망인 리는 내가 봐도 반할 수밖에 없는 선수니까.


휘이익 펑


이런. 딴 생각을 하다가 공을 놓칠 뻔했다. 정신 차리자고 에반스!


휘이익 펑


“포 볼!”


우려했던 대로 공이 존 안에 안 들어온다. 1회 선두타자부터 볼넷이라니 정말 최악의 시작이구나.


그래도 다음 타자만 잘 잡으면 아직 기회는 있다. 다음 타자만.


우와아아아


갑자기 3루 쪽 원정 응원석에서 함성이 터졌다.


아, 맞다. 저 선수가 있었지. 어떻게 저걸 깜빡할 수가 있지?


오늘 전체적으로 산만한 분위기에 포수 마스크를 한 번 세게 쳤다. 집중!


그나저나 운도 지지리도 없지. 무사 1루에 주자를 두고 타일러 메이슨이라니.. 생각보다 일찍 무너질 수도 있겠는데?


어쨌든 난 최선의 선택을 해야 하는 포수. 지금 상황에선 스플리터다. 잘만 되면 빗맞은 타구에 더블 플레이도 가능한 공.


제발 잘만 들어와주길.


따아아악


하지만 나의 망상은 저 어마어마한 타구 소리에 바로 깨졌다. 아래로 많이 꺾이지도 않은 스플리터가 밋밋하게 존 중앙으로 들어왔고 실투를 놓칠 리 없는 메이슨이 공을 쪼갤 듯이 저 멀리 보내버렸다.


중견수와 우익수 사이로 쭉쭉 뻗는 타구는 누가 봐도 2루타성 코스였고 1루에 있던 주자는 타구를 힐끔 보더니 의심 없이 2루로 달리기 시작했다.


마운드에서 힘없이 고개를 숙이는 투수를 보며 케어를 위해 마운드에 한번 올라가야겠다는 생각을 하던 찰나 저 멀리 외야 관중석이 웅성웅성 거리거니 터질듯한 함성소리가 들렸다.


이런 미친! 저걸 잡아? 진짜로?


저러니 팬들이 뻑이 가지. 조금만 있으면 슈퍼스타가 될 것 같은데 오늘 가서 사인이나 미리 받아놔?


타구를 보자마자 먼 거리를 전력질주해 슬라이딩을 하며 아웃카운트를 늘린 중견수는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빠르게 일어나 1루로 공을 뿌렸다.


아웃!


우와아아아


우와. 저거 대충 봐도 100마일은 그냥 넘기겠는데? 아.. 맞다. 쟤도 투수였지. 심지어 100마일은 우습게 던지는..


팬들의 우레와 같은 함성소리를 들으며 마운드로 올라가자 이젠 어느 정도 가라앉은 투수가 보였다.


“주드, 잘하고 있어. 그렇게만 하는 거야. 야수를 믿고 던지면 저렇게 알아서 아웃카운트를 늘려 주잖아?”


“네. 이제 좀 진정이 되는 것 같아요, 스탄. 잘 던져볼게요!”


“아 그리고 오늘 저 친구한테 밥 사주는 거 잊지 말고. 둘이 룸메이트였던가?”


“네. 지금 기분으론 일주일도 사줄 수 있을 것 같아요.”


저 중견수 얘기를 하자 오늘 처음으로 환한 웃음을 보여준 투수는 그 뒤로 갑자기 언터처블 모드가 발동했다.


처음에 얘기했던 그 쉽지 않을 일이 오늘 일어날 모양이다. 그 뒤로 8타자를 상대하며 단 하나의 출루도 내주지 않고 4개의 삼진을 보태며 모두 범타 처리를 했으니.


하지만 좋기만 했던 분위기가 깨지고 다시 위기가 찾아왔다. 다시 타석에 들어오는 저 2번 타자, 저 빌어먹을 메이저리거 때문이다.


투수 상태를 보기 위해 마운드를 살피니 벌써부터 불안불안해 보인다. 저러는 것도 이해가 가는 게 아까 맞은 타구는 누가 봐도 안타가 맞았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다시 공이 날린다.


볼 볼 파울 볼 파울


간신히 파울이 된 저 마지막 타구는 선상에서 살짝 벗어난 대형 파울 홈런이었다. 나도 넘어갔다고 착각할 만큼 무시무시한 타구.


이건 올라가야겠지? 젠장 내가 보육원 선생도 아니고 오늘 도대체 몇 번을 올라가는 거야?


마음속으로 투덜대며 올라간 마운드에선 얼굴이 새하얘진 투수와 내야수들, 그리고 여기에 있어서는 안 될 사람이 나를 반겨줬다.


“헥헥, 스탄, 아까 우리가 말한 거 잊지 않았죠? 지금입니다, 지금!”


사실 까먹고 있었다. 센터 필드에서 마운드까지 달려와 헉헉대는 중견수와 오늘 오전에 했던 말을.


음.. 그런데 그걸 지금 상황에서? 과연 저 멘탈 상태의 투수가 실전에서 처음 던지는 공을 제대로 구사하는 게 가능할까?


“지금? 가능하겠어 주드?”


“한 번 해보죠. 저 녀석과 하기로 한 내기가 있거든요. 던지라는 대로 던질게요, 스탄.”


잠시 고민을 하는듯했던 투수가 이내 결심을 굳힌 얼굴로 결연하게 대답했다.


음.. 그럼 나도 동기를 조금 추가해 볼까?


“저기 우리 관중석에 뭔가를 열심히 쓰고 있는 정장 입은 아저씨 보여? 내 소식통에 의하면 저 사람이 우릴 메이저리그로 향하게 해줄 스카우터야. 그러니까 주드. 저 상도덕 없는 메이저리거에게 한 방 먹여주고 우린 메이저리그로 올라가는 거야. 갓 잇?”


“옛 썰!”


뒤에서 야수들이 킥킥대는 소리를 애써 무시하고 다시 홈 플레이트로 돌아왔다.


투수만 생각하자 투수만.


아까 오전에 지나가며 리가 말한 구종과 로케이션은 몸 쪽에 붙이는 백도어 슬라이더였다. 확실히 오늘 던지지 않은 공이니 타자에게 이번 한번은 먹힐 가능성이 높다.


생소함은 투수의 최고의 무기니까.


사인을 줄 필요도 없이 타자의 몸 쪽으로 붙어앉아 미트를 가져다 댔다.


제발, 하나만 제대로 들어와주라!


휘이이익


“아 안돼!”


하지만 이내 투수가 던진 공이 타자의 머리 쪽으로 들어오는 걸 보고는 난 절망하듯 소리쳤다.


* * *


4회 초 수비가 방금 끝나고 시작된 공격 이닝, 주드 로저는 덕아웃에 멍하니 주저앉아 조금 전 메이슨과의 승부를 떠올리고 있었다.


퍼억


“주드! 거 봐. 내 말이 맞지? 그 슬라이더는 먹힐 거라 했잖아! 너 이제 그 공 계속 던져야 한다?”


“알았어, 알았다고!”


피식


티격태격하다가 그냥 웃어버렸다. 그래, 눈치 없이 내게 와서 떠들고 있는 내 룸메이트의 말이 맞다.


지금까지 애써 외면하며 살았지만 내 슬라이더는 빅리그에서도 통한다. 오늘 승부로 그걸 확신했다.


아직도 눈에 선명하다. 메이슨이 머리로 날아오는 공을 피하려 타석에서 빠지는 동시에 급격하게 꺾여 스트라이크 존을 통과하는 내 슬라이더가.


물론 그 면도날 같았던 제구는 요행이라 하더라도 그 움직임과 위력은 진짜였다.


내기에서 져 난 꼼짝없이 이 공을 던져야 했지만 기분 나쁜 감정은 1도 들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후련할 정도. 그래도 사인은 어떻게 안되려나?


여하튼 보면 볼수록 신기한 친구다. 이상하게 마음이 가는 친구. 나도 확신하지 못했던 내 공을 한번 보자마자 보장해 줬던 친구.


쟤가 없었다면? 으으으 끔찍하다. 지금도 길을 못 찾고 이것저것 시도하며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었겠지.


음.. 아무래도 오늘 저녁은 햄버거로는 부족하겠어. 더 좋고 맛있는 게 뭐가 있으려나. 쟤가 좋아하는게 스테이크였지 아마?


* * *


[레딩 파이틴 필스의 주드 로저와 진홍 리, 노히터를 합작하다.]


[환상적인 호수비와 타격 그리고 마무리까지? 진홍 리는 누구?]


[신 구종 슬라이더를 장착한 주드 로저, 110구만에 8이닝 무안타 무실점 2볼넷 10삼진의 완벽투를 선보이다.]


작가의말

안녕하세요. 이번화의 주인공인 주드의 이야기는 필라델피아 역대 최고의 투수이자 밥 깁슨, 랜디 존슨과 함께 메이저리그 역사상 가장 뛰어난 슬라이더를 던진 레전드 투수인 스티브 칼튼의 일화를 각색해서 써보았습니다. 스티브 칼튼도 선배였던 밥 깁슨이 슬라이더로 인해 팔꿈치 통증에 시달리자 자신없었던 슬라이더를 던지지 않겠다고 다짐했었지만 미일 친선전에서 오 사다하루가 자신이 백도어로 던진 그 공에 움찔하며 피하자 마구의 봉인을 풀었다고 하죠. 앞으로 더 발전하는 주드의 이야기도 지켜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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