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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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멸기록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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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1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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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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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계위원회 (3)

DUMMY

내추럴 휴먼의 처벌을 비공개 회의로 정하는 건, 여론 등 외부적 요인에 휘둘려 강력 처벌하는 사례를 방지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그 대상이 WIS 요원이고, 요원의 활동이 관련된 상황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비공개 회의는 결정권자들의 의사에 따라, 위법한 처사를 졸속 통과할 수단이 되기도 한다. 지금 같은 상황에 킴을 ‘개인’으로서 버린다면, WIS는 은밀한 내부 사정을 묻어버릴 수 있다.


“좋습니다. 참석자 전원이 동의했으므로, 킴 요원에 대한 처결은 우리 셀 시국의 법령에 따라 선고하겠습니다. 선고 내용에 이의가 있으신 분은 최종 표결에서 반대표를 행사할 수 있습니다. 반대표가 30% 미만이면 선고가 통과되며, 번복할 수 없습니다.”


진이 미리 외워 온 것처럼 대사를 읊는다. 킴은 줄리오가, 아니, 오션이 입을 열기 전까지만 해도 WIS 참석자 3인에 대한 기대가 있었다. 정말 최악의 상황이 오면 그들이 30%의 반대표가 되어줄 거라고 말이다. 그러나 이제는 어떤 가망도 느껴지지 않는다. 결과는 뻔하다. 이대로 꼼짝 없이 킴을 셀 시국 법정 최고형에 처하리라.


“셸터 시국 연합 국제정보부 킴 킴 요원에게, 돔 바깥으로의 추···”


그 순간, 제4회의실 내부가 붉게 물든다. 킴 뒤쪽 벽면에서 현재 시각이나 알려주던 푸른 문구가 전혀 다른 것으로 변경되며, 붉은빛으로 깜빡인다.


[사망자 발견: 제7구역 — 살인 사건 의심도 62% — 사회적 파장 등급 A]


그 문장에 제복 입은 사람들이 전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죄송하지만, 긴급상황 발생에 따라 잠시 휴회합니다.”


진을 포함한 제복인들이 회의실을 나간다. 남은 사람은 검정 정장 홀로그램 3인과 킴 뿐이다. WIS 소속만 남은 자리임에도, 이 장소에서 터놓고 내부적인 이야기를 나누기는 곤란하다. 비공개 회의에서의 발언은 녹취되지 않지만, 객관적인 정보는 AI 시스템의 학습 데이터에 축적된다.


“오늘 제 옷차림이 그렇게 별로입니까?”


킴은 세 사람과 하나씩 눈을 맞추다가, 주관적 정보로 분류될 발언을 한다. 수년 전 글로벌 AI 시스템이 ‘주관적 정보 판단 오류’의 축적 과부하로 전산망 마비를 일으킨 후, 관련 법안 개정과 시스템 업데이트가 있었다. 모든 공영(Public) AI는 주관적 데이터를 인식 즉시 폐기한다. 민간의 상업용(Commercial) AI는 보안등급 3급 이상인 공간에서 작동이 차단된다.


“양말이 문제인가? 신경 써서 고른 건데.”


홀로그램 3인의 표정이 의미심장하게 서로와 시선을 맞추다가, 킴을 돌아보며 웃는다. WIS 요원들 사이에는 이런 말이 있다. ‘위태로운 상황에서 아군을 파악하려면 양말을 보여라.’ 이는 위험에 처해 있으면 당근을 흔들라거나, 하트 표시를 하라거나, 고양이 이모티콘을 보내라는 종류와 유사한 소통법이다.


“Però a me piacciono i tuoi calzini. Anch’io voglio avere un paio.”


그렇지만 난 네 양말 마음에 드는 걸, 나도 한 켤레 갖고 싶다. 줄리오가 넉살을 부린다.


“Yeah, It’s a very good choice to show off your luxury item when you’re for a position of this sort.”


이런 자리에서 사치품을 자랑하는 건 참 좋은 선택이야. 여태 한마디도 없이 조용하던 인물도 입을 연다. 위치 코드 [CBR-35S-149E], 까무잡잡한 피부에 물결치는 흑발을 하나로 묶은 여자. WIS 오세아니아 지부장 자날리 타우(Jannali TAU)다.


킴은 저들의 말이 진심인지 놀림인지 잠깐 생각한다. WIS 지부장씩이나 되는 인물들이 이런 장소에서 무의미한 말을 흘리진 않을 거라는데 생각이 미친다. 킴은 어떻게든 주관성 발언을 유지하며 질문하려 애쓴다.


“예쁘게 입고 오라더니, 다들 제 패션 감각이 뛰어난 게 잘못인 것처럼 굴었잖아요?”

“That’s not true, Kim. We’re having so much fun thanks to you. Do you know what would be fun to do if the bus broke down?”


오션이 능글맞은 어조로 그렇지 않다, 네 덕분에 우리는 참 즐겁다면서 질문을 붙인다. 버스가 고장 나면 뭐부터 하는 게 재밌는지 아니? 킴은 차분하게 대답을 고른다.


“수리공을 부르거나 버스를 갈아타는 게 즐겁겠죠. 버스 기사를 내치는 건 정말 재미없어요.”

“Yes. I mean, to do that. What do you have to act first?”


오션은 다시금 묻는다. 그러기 위해서 먼저 해야 하는 동작. 수리공을 부르거나 버스를 갈아타려면, 선행되어야 하는 것.


“그건······.”


킴은 뒷말을 삼킨다. 버스를 멈추거나, 버스에서 내려야 한다.








거대한 스크린에 빠른 속도로 창이 열리고 닫히기를 반복한다. 수사가 필요한 사건이 발생하면, SLPD 인사기획부 분석실에서 가장 먼저 작동하는 프로그램이다. 현시점의 사건 데이터를 토대로 담당 수사관에 배정 가능한 경찰을 자동 판별한다.


피해자, 가해자 또는 용의자, 사건 관련자나 유착 가능성 등을 검토하고, 해당 사항이 있는 경찰은 그 수사에서 배제하라는 명령값이 적용되어 있다. 자동 판별은 이 1차 과정까지만 활용된다. 위법한 수사관 배정을 방지하는 데 활용하는 것뿐, 최종적인 수사관 배정은 인간의 결정이다.


“청장님!”


징계위원회를 중단하고 나온 이들이 배정실로 들이닥친다. 배정 프로그램의 실행 현황을 모니터링 중이던 인사부 경찰들은 하나같이 당황한 기색이다. 갑작스러운 고위급 인물들의 방문 때문은 아니다. 그런 건 사건의 사회적 파장 등급이 A로 산출됐을 때부터 예견된 일이다.


“배, 배정 프로그램이······.”


인사부의 당황 원인은 중앙 스크린을 빼곡하게 채운 경찰관 프로필 사진과 그 아래 한결같이 찍히는 붉은색 [Unqualified] 표식이다. 경찰 하나가 뭔가 보고하려 입을 열지만, 시작부터 말이 엉키는지 더듬거린다. 진은 손바닥을 들어 보이며 말을 중단시킨다.


스크린 좌측에는 사건 데이터 요약본이 펼쳐져 있다. 진은 그 내용을 훑으며 인상을 구긴다. 사망자 이름을 확인한 순간부터 내내 그런 표정이다. 진이 다시 스크린 중앙으로 시선을 옮긴다. 배정 프로그램은 여전히 무수한 경찰들의 얼굴과 이름에 부적격 표식을 찍고 넘긴다.


“이거 뭐 고장 난 거 아닌가? 왜 적격 판정이 한 명도······.”


진과 함께 들어온 경찰 간부 중 아직 사건 데이터를 다 읽지 못한 이가 의문을 표하다가 멈춘다. 방금 지나간 부적격 판정에 입을 다물지 못한다. 경찰청장인 서문 진의 프로필도 담당 수사관으로 배정이 불가하다면, 누가 적격 판정으로 분류될 수 있단 말인가.


“현장에서 PM37이 발견됐습니다.”


상황을 모니터링 중이던 인사부 중 하나가 답변한다. 경찰 전용(Police-only Model) 보급품 중 하나인 PM37은 전기충격 기능을 탑재한 장갑형 무기다. 성능은 제압용에 그치지만, 착용 시 별도의 부피를 차지하지 않는 휴대성 때문에 한때 SLPD에서 가장 사용률이 높았던 장비다.


“직접 사인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지만, 스턴 글러브(Stun Glove)가 피해자를 무력화시켰을 가능성이 높게 산출됐습니다. PM37 보급 경험자는 전부 부적격 판정되고 있습니다.”


PM37의 전기충격 기능 작동에는 몇 가지 조건이 있다. 먼저, 착용자의 지문이 경찰로 등록된 지문과 일치해야 한다. 온오프(on-off) 스위치는 요철이 없는 형태로 안감 쪽에 있으며, 이 스위치 부분을 특정 박자로 눌러야 작동한다. 보급이 중단된 구형이기에 경력이 짧은 이들은 대부분 사용법을 모르지만, 베테랑 경찰이라면 누구나 사용 경험이 있다.


“이게 무슨 미친 소리야? PM37 쓸 줄 알면 다 의심 인물이란 거야?”

“아니, 그 뭐야. 불법 유통 그거. 튜닝된 건 경찰 아니어도 쓸 수 있다며?”


PM37은 입찰 당시 제조단가가 저렴하다는 장점을 내세워 납품에 채택되었지만, 단가를 낮추기 위해 GPS 기능을 생략했다. 착용자가 경찰인지 확인하는 기능도, 지문 일치 여부 확인을 위한 수신 기능만 있다. 누가 언제 사용했는지 발신하는 기능은 없다. 사용자 및 동선 데이터가 수집되지 않기에, 간혹 분실된 물품이 개조를 거쳐 불법 유통되기도 했다. 보급을 중단하고 전량 회수가 진행된 사유다.


“발견된 PM37은 순정입니다. 튜닝 흔적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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