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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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멸기록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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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1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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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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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7 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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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추럴, Not 내추럴 (1)

DUMMY

2. 내추럴, Not 내추럴




사망사건 접수 시, 긴급 출동한 경찰은 도착 시점부터 현장 반경 10m 이내 관계자 외 출입을 금지 조치한다. 오늘처럼 사건 현장이 단독 세대의 주거 공간인 경우, 건물 부지 전체에 민간인 출입을 제한한다. 민간 전파 차단막 설치로, 언론이나 개인의 드론 접근도 차단한다.


사건 현장에는 데이터 수집과 기초 분석을 위한 기계 장치가 투입된다. 수집된 정보는 본부로 전송된다. 경찰청에서는 이 초동 수집 데이터를 기반으로, 사회적 파장 등급 판정과 담당 수사관 배정 프로그램이 가동된다. 사회적 파장 등급이 A인 경우, 고위직 경찰이 입실한 SLPD 사무실에 긴급 상황 알림이 뜬다.


“어머, 저 집에 뭔 일 났나 봐!”

“어? 저기 그 집 아니야? 이름 뭐더라? 그, 국회의원 있잖아!”


출입 제한만으로 완벽하게 소식이 차단되진 않는다. 오가는 경찰들이며, 통제구역 경계에 배치된 공영 로봇들의 모습은 ‘저곳에 무슨 사건이 일어났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일정 간격으로 배치된 경비용 공영 로봇들은 접근금지 안내, 출입 통제, CCTV 역할을 동시에 수행한다. 서비스직 같은 업무용은 인간의 외형과 목소리를 흉내 낸 휴머노이드들이 배치되지만, 이런 현장용은 그럴 필요가 없다. 집게발 같은 다리, 제압용 그물과 테이저건 따위가 탑재된 투박한 본체, 그 위에 카메라와 탐지기가 장착된 금속 덩어리다.


이런 기종은 공격이나 탐지에는 수준 높은 기술력을 적용하지만, 이외에는 최소한의 기능을 삽입한다. 가까이 다가가면 출력되는 음성은 고저 없는 기계음이다.


“사건 관계자 외 출입 금지입니다.”


킴은 공무 시설에서 경찰용 차량에 탑승하고, 내리고, 현장 입구를 향해 걷는 내내 사건 데이터에만 집중하던 중이다. SLPD에서 지급받은 팔찌형 디바이스로 띄운 홀로그램에 박힌 시선은 로봇에게 답하는 와중에도 그대로다.


“본 사건 담당 수사관이다.”


출입을 막은 로봇을 쳐다도 보지 않는 킴이 대충 한 손으로 회색 제복 자켓 윗주머니를 뒤적인다. 피 묻은 옷은 공무 시설 지하 3층 세탁실에 맡겼다. 여벌 옷이 없던 관계로 어쩔 수 없이, 그 칙칙한 SEL 시 정부 공무원용 제복을 지급받아 갈아입은 상태다.


킴이 SLPD 계약직 공무원 카드를 꺼내 내밀자, 로봇의 헤드에 달린 카메라가 카드를 스캔한다. 담당 수사관 신원 확인을 마친 로봇이 한 걸음 옆으로 비켜선다.


킴이 통과하고, 뒤이어 동행인이 가로막힌다. 경찰이 있는 자리에서 불법 취득한 데이터 이야기를 나눌 순 없기에, 일단 킴의 파트너직을 수락하고 함께 온 모건이다.


“사건 관계자 외 출입 금지입니다.”

“내 파트너야. 입장 시켜.”


킴이 성의 없는 목소리로 명령한다. 명령을 듣고도 로봇은 즉각 모건을 통과시키지 않는다. 로봇의 카메라 초점이 모건을 위아래로 훑는다. 제복 차림이 아닌 모건을 민간인으로 인식한다.


“민간인은 출입할 수 없습니다.”


그제야 킴은 홀로그램에서 눈을 떼고, 로봇과 모건의 대치를 본다. 모건은 입을 꾹 다물고 뚱하니 보고만 있다. 킴은 아침에 카페에서 휴머노이드들을 무시하고 인간 직원인 이든을 찾아 주문하던 모건을 떠올린다. 로봇이랑 말 섞을 생각이 없는 것 같다.


‘안드로이드 혐오자야 뭐야?’


공무원 카드를 보여주면 간단히 해결될 상황이지만, 모건에겐 그런 게 없다. 킴은 인질극 소동에서 모건이 군인이라 추측했으나, 파트너 배정 과정에서 민간인용 용역 계약서가 끼어드는 걸 보고 현역이 아닌 걸 알았다.


“A급 사건이라더니, 뭐 이런 깡통을 배치해 놨어.”


킴은 모건을 나무라는 대신 배치된 기종에 대해 투덜거린다. 담당 수사관인 자신이 파트너라고 보장했음에도 인과관계를 자동으로 도출하지 못하는 이 로봇이 성가시다.


“야, 깡통. 너 이거 공무집행 방해다. 사건 번호 2126-A-NR-0046 특수조항 제1항 조회해.”

“조회 중입니다.”


데이터 로딩에 약간의 시간을 소모한 로봇이 조항을 읽어낸다. [특수조항 제1항, 담당 수사관 킴 킴은 수사 과정에 파트너 한 모건과 동행한다. 출입이 거부될 시, 수사 지연에 대한 책임은 출입을 통제한 측에 있다.] 안내할 사항이 아니기 때문에, 음성 출력은 하지 않는다.


“한 모건 님은 출입이 가능합니다. 신분증을 제시해 주십시오.”

“뭐합니까? 빨리 보여주고 들어가죠.”


내내 못마땅한 듯한 표정의 모건은 킴의 재촉에 마지못해 움직인다. 바지 뒷주머니에서 민간 ID카드를 꺼내 보이자, 신원을 확인한 로봇이 길을 비킨다. 연둣빛으로 잔디가 깔린 정원을 지나며, 킴은 홀로그램을 끈다. 현관문은 열려 있다. 경찰이 드나들며 열어둔 것이다.


“들어올 때 문 닫지 마세요. 다시 열려면 번거로워지니까.”

“안 닫아.”


현관으로 들어서며 킴이 모건에게 주의를 준다. 집주인이 이용하던 상업용 AI의 작동 명령은 차단된 상태다. 평소 프로그래밍대로 로봇들이 집안일을 하다가 현장을 훼손하는 걸 막기 위해서다. 그 때문에 문을 여닫는 동작도 중지되어 있다.


사건 현장은 담당 수사관이 도착할 때까지 발견 당시와 동일하게 보존된다. 공영 AI는 담당 수사관이 현장에 도착해 지시를 시작할 때까지 대기 상태다. 곳곳에 설치된 데이터 수집 기기는 킴이 인식 반경에 들어올 때마다 파란 불빛을 깜빡인다.


현관에 신발을 벗어둔 두 사람이 들어서자, 발걸음마다 바닥재를 노크하는 마찰음이 울린다. 킴이 걸음을 멈추고 모건의 발을 돌아본다. 킴과 달리 양말을 신지 않은 금속성의 맨발이 보인다.


“뭐? 왜?”

“깜빡했네요.”


킴은 허리 벨트에 찬 미니백에서 고탄성 PVC 재질의 신발 커버를 꺼낸다. 한 켤레는 모건에게 건네고, 한 켤레는 본인이 신는다. 일회용품 사용이 금지된 후로 사건 현장에서 신는 발 커버다. 사용 후엔 공무 시설 세탁실을 거쳐 재사용된다.


“내 발소리가 시끄럽다, 이거야?”

“저도 신었잖아요. 신으랬는데 까먹었던 것뿐입니다. 자, 뭐 만지려면 장갑 꼭 끼시고.”

“만질 생각 없거든.”


킴이 모건에게 PVC 장갑 한 쌍을 건네고, 본인 것도 손에 낀다. 모건은 건네받은 장갑을 데님 자켓 주머니에 쑤셔 넣는다.


‘이게 본업이 아니란 건가? A급 사건을 수사할 자격이 된다면서?’


킴은 수사 시 갖추는 준비물이 익숙지 않아 보인다. 모건이 들은 건, 킴이 촉탁 수사관이란 것과 이 사건이 사회적 파장 등급 A라는 정도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킴과 모건은 서로의 직업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 킴은 사건 데이터 홀로그램에 빨려 들어갈 기세로 집중해 있었고, 모건이 뭐라 말을 걸려고 하면 ‘잠깐만요.’ 하곤 말이 없던지라, 제대로 대화가 시작되지도 못했다.


‘뭐하던 새낀지 점점 더 수상하네.’


모건이 킴의 정체에 대해 생각하며 설렁설렁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동안, 킴은 곧장 거실과 주방을 지난다. 처음 와보는 집이지만 홀로그램으로 구조를 파악했기에, 금방 피해자가 발견된 욕실에 이른다.


피해자는 발견 당시의 그 자리에 있다. 사망 사건의 담당 수사관이 첫 번째로 결정하게 되는 사안이 ‘즉시 시신을 검시과로 인계할 것인지, 직접 살핀 후에 진행할 것인지’인데, 킴은 후자를 택했다.


“시체는 뭐 하러 직접 들여다보겠단 건데?”


현장 초동 데이터로는 정확한 사망 시각과 사인을 분석할 수 없고, 발견 당시 상황을 촬영한 데이터는 언제든 재생할 수 있다. 그래서 수사관들 대다수는 직접 시신을 살피기보단 부검부터 서두르게 한다.


“부검 결과 나오려면 시간 걸리잖아요. 먼저 확인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너 뭐, 법의관 출신이야?”

“아뇨. 그건 아닙니다. 그냥, 부검 결과 나올 동안 내내 헛다리 짚고 있을 가능성을 좀 줄이고 싶달까.”


킴은 너른 욕실 끝 쪽에 비치된 길이 2미터(m) 가량의 욕조로 다가간다. 피해자는 그 안에 반듯하게 누운 채다. 옷차림은 고무줄 반바지와 헐렁한 반소매 셔츠 구성인 연분홍색 파자마다.


“···이···아닌 것 같은데.”

“뭐가 아니라고?”


피해자의 가슴팍에 난 총상 자리를 이 각도, 저 각도로 들여다보던 킴이 웅얼거린다. 욕실 특유의 울림 덕분에 더 알아듣기 어렵다. 한 걸음 떨어진 자리에서 멀찍이 지켜보던 모건의 물음에, 킴은 분명한 발음으로 알린다.


“이 사람, 내추럴 아닌 거 같다고요.”


이 사건의 사회적 파장 등급을 높인 원인은 피해자의 신원이다. 자택에서 주검으로 발견된 인물은 국회의원 강 소율, 천연인종주의자인 내추럴 휴먼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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