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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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멸기록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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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1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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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9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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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추럴, Not 내추럴 (2)

DUMMY

“왜, 총알이 튕겨 나와 있기라도 해?”


욕조 앞에 쪼그린 킴의 어깨너머로 힐끔거리는 모건의 눈엔 탄피 쪼가리도 보이지 않는다. 킴은 가만히 고개를 젓는다.


“초동 데이터의 총상 크기 분석으론, 피해자가 맞은 건 22구경 탄환입니다. 그런데 여기 총상 주변, 옷이 그을리고 피부가 녹아내린 자국이 손바닥만 하게 퍼져 있죠. 플레임탄을 쓴 것 같습니다.”

“흠···. 저렇게 찔끔 탄 걸 봐선, 어디서 야매로 만든 허접한 걸 갖다 썼나 본데. 그래서, 그게 뭐 어쨌다고?”


플레임탄(Flame Bullet)은 일종의 초소형 소이탄으로, 발화에 특화된 탄환이다. 과거의 소이탄은 권총이나 소총에선 유의미한 화재를 일으키지 못해서 샷건류나 폭탄류에 활용됐지만, 기술력이 발전한 이 시대에는 권총용 탄환으로도 큰 화재를 일으킬 수 있다.


“내추럴이었으면, 굳이 플레임탄씩이나 준비했겠습니까.”


트랜스휴먼의 방탄 피부는 22구경 소총 탄환까진 무리 없이 막아내지만, 피부의 주요 성분은 결국 단백질이라 불길까지 막진 못한다. 생물학적 무기나 화학적 무기 외에, 현 인류의 살상용 무기엔 주로 화염이나 레이저 같은 열 손상 기능이 탑재된다.


“더군다나 이렇게 심장을 조준해서 맞출 정도면. 내추럴한텐, 1세기 넘은 구식 납덩어리도 과하잖아요.”

“글쎄. 내가 보기엔 시작부터 헛다리 같은데. 트랜스를 살상할 수 있는 무기를 썼대서, 맞은 놈이 꼭 트랜스란 법은 없잖아. 내추럴이 얼마나 연약한지 몰랐을 수도 있고. 49층 놈들처럼 말이야.”


킴은 모건이 지적한 오류에 아랑곳하지 않고, 피해자의 신체 구석구석을 살핀다. 옷자락을 들추어 안쪽을 들여다보기도 한다. 피해자의 한쪽 어깨와 목 사이에 상흔이 보인다. 얼룩덜룩해진 색상과 옅은 물집은 화상과 유사해 보인다.


“국회의원을 죽이는데 그 정도 사전 조사도 안 했을까요. 이 사람이 진짜 내추럴이었으면, 총까지도 필요 없단 걸 알았을 겁니다.”


다른 상처나 흉터는 보이지 않는다. 킴은 총상을 제외하면 유일한 그 상흔이 스턴 글러브의 전류흔일 거라고 유추하고, 옷깃을 놓는다.


“게다가 이 사람, 몸에 흉터가 너무 없어요. 내추럴이라면 일상에서도 자잘하게 상처 나기 쉬우니까, 옅게라도 여기저기 흉이 남기 마련인데.”

“이런 부유한 인간이 흉터쯤 못 지우고 살았겠어? 그 뭐더라, 급속 세포재생 밴드? 그런 거 쓰면 어지간한 상처는 흔적도 없이 낫는데 하루도 안 걸린다더라. 흉터 지우는 레이저 치료 같은 거야 예전부터 흔하고.”


쪼그렸던 무릎을 펴고 선 킴은 디바이스를 터치한다. “킴 입니다. 강 의원 사건 사망자, 검시과 인계 허가합니다.” 킴은 수사 어시스트로 배정된 형사과 1팀으로 음성메시지를 전송한다. 용건만 간단히 보낸 킴은 욕실을 슥 둘러보며 앞선 대화를 맺는다.


“요즘 의학 기술은 트랜스휴먼 위주로 되어있어서, 내추럴한텐 안 맞는 게 많아요. 부작용 생길까 봐 의사 쪽에서 먼저 꺼리고요. 참고로, 경험담입니다.”


모건은 어깨를 으쓱하곤 더 말을 얹지 않는다. 어차피 이 사건 피해자가 내추럴이든 아니든, 나아가 이 사건이 꼬이든 해결되든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란 생각에서다.


‘범인은 왜 피해자를 욕실로 옮겨놨을까.’


킴이 둘러본 욕실에 물기는 없다. 지금은 10시 17분이다. 시신이 발견된 8시 55분으로부터도 한 시간이 넘게 지났으니, 물기가 있었대도 이미 말라버렸겠지만.


욕조에 물은 채워져 있지 않고, 피해자의 옷에도 물에 젖은 축축함은 남아있지 않다. 흐트러진 물건도, 급히 정리한 낌새도 보이지 않는다. 살해 현장은 이곳이 아닐 것이다.


“얼마나 더 걸릴 것 같아?”


욕실을 나와 주방으로 향하는 킴을 뒤따르며 모건이 묻는다. 어서 정부 보안등급 2레벨의 정보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다.


“음, 글쎄요. 일단 로봇들 작동 동선대로 한번은 따라가 보고 나갈 생각인데요.”


피해자는 집안일에 사람을 고용하지 않았다. 피해자가 사용하던 가정용 AI의 작동 데이터를 보면, 대부분의 가사를 로봇에 의존했던 걸로 보인다. 킴은 직접 그 동선을 따라가며, 피해자의 평소 생활을 유추해 단서를 얻을 생각이다.


“그 잘나신 AI가 준 데이터, 그거 들여다보는 거랑 차이도 없잖아. 대충 보고, 나가서 얘기 좀 하지?”

“그 데이터가 너무 간소해서요. 뭐라더라? 5년 전에 사생활 보호법이 강화됐다나?”


개인이 이용하는 상업용 AI는 수사본부에 사건 당시의 작동 정보를 제공하지만, 이는 객관적 정보에 한한다. 사생활 보호법이 개정되고부터는 ‘사용자의 평소 생활 습관이나 성향이 이렇기 때문에’와 같은 학습 정보는 제공되지 않는다.


“아, 그거.”


일부러 시간을 끄는 거냐고 따지려던 모건은 킴의 이야기를 단번에 알아듣고 이를 간다.


“뒤 구린 새끼들이 지들 구린 거 숨기려고 만든, 그 거지 같은 법안.”


법안 통과 당시, 반발하는 수사부에게 국회는 이렇게 말했다. ‘AI의 원리를 충분히 이해한다면, 작동 정보만으로 충분한 단서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를 직접적으로 과도하게 제공받는 게 타당하다는 주장은, 수사본부의 무능함과 사생활 침해에 대한 몰이해를 증명할 뿐입니다.’


“뭐, 떳떳하더라도···사생활 침해를 달가워하는 사람은 없잖아요.”

“일상적인 부분이면 그렇겠지. 그 법안은 수사 기법을 후퇴시켰잖아. 무능한 수사관을 만나면, 뻔히 보이는 수작도 증명을 못 해서 엉뚱한 결론이 난다고.”


사생활 보호법이 개정되었던 5년 전, 그때 모건은 군인이었다. 맡았던 임무에서 사고가 생겼고, 그 개정안 때문에 당시 중요한 인과관계를 증명할 수 없었다. 녹취록의 공개는 반드시 대화 당사자 모두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는 조건 때문이었는데, 대화 당사자 중 사망자가 있었기에 녹취록 파일의 잠금을 해제할 수 없었던 것이다.


“어이쿠. 전 꼭 유능해야겠네요. 이 사건, 꼭 해결해야 하거든요.”


능청스럽게 대꾸하는 킴은 식탁에 차려진 음식을 보는 중이다. 식탁에는 로봇이 차려둔 식사가 있다. 투명한 잔에 담긴 오렌지 주스 한 컵. 하얀 접시에는 노릇하게 구워진 토스트 한 개, 베이컨 두 조각, 소시지 한 개가 올려져 있고, 그 위에 반숙으로 익힌 계란이 한 장 덮여 있다.


“아침 8시, 조리용 로봇은 아침 식사를 준비했고, 8시 20분까지 준비된 음식에 변화가 없음을 감지. 그러자 기상 도우미 로봇이 가동···.”


평소 피해자는 8시 20분이 되기 전에는 식사를 시작하거나 마치던 걸로 보인다. 늦잠 잤을 때를 대비해 설정했을 기상 도우미 로봇이 그때 움직였으니까.


로봇이 감지한 대로, 식탁에 차려진 아침 식사는 조리 당시로부터 두 시간이 넘은 지금까지 아무도 손대지 않은 모습이다.


“그런데 아무도 손대지 않은 음식이, 왜 조리한 양의 절반밖에 안 되는 걸까나.”


조리 로봇의 기록은 오렌지 주스 두 컵, 토스트 두 개, 베이컨 네 조각, 소시지 두 개, 계란 두 개였다. 피해자가 먹을 몫을 1인분이라고 한다면, 2인분의 식사를 준비한 것이다.


의문을 제기한 킴은 주방에 비치된 조리용 로봇과 가전제품들을 둘러본다. 벽면의 가지런히 배열된 회색 타일 사이에 금속으로 된 작은 문이 있다. 무의식적으로 문 옆의 버튼을 눌러보던 킴은, 지금 이 집의 어떤 전자기기도 작동하지 않는다는 걸 깨닫는다.


“혹시 이거 손으로 열 수 있습니까?”


킴이 그 작은 금속 문을 가리키며 부탁한다. 모건은 이제 이 수사가 빨리 끝나기를 거의 체념한 표정으로 다가온다. 틈새를 찾은 손가락이 이내 강제로 그 문을 밀어 연다.


“아무래도 음식용 엘리베이터일 것 같죠?”


눈에 보이는 건 어두컴컴한 벽과 철골이다. 리프트는 다른 층에 가 있는 것 같다.


킴은 디바이스를 두드리며 집 구조를 재차 확인하고, 모건은 고개를 들어 천장을 본다. 올라가는 계단이 있는지 실내를 다 돌아본 건 아니지만, 들어오기 전에 밖에서 본 건물 규모를 떠올려 비교해 본다. 이곳은 층고가 높은 단층 건물이다.


“위층은 없는 것 같은데.”

“그럼, 아랫집이 있나 보네요.”


여기는 과거에 도로였던 땅이다. 셸터 시티들이 독립된 도시 국가를 선언하던 초창기, 방벽(Dome)을 세우고 도로를 개편하던 SEL 시국은 불필요해진 몇몇 도로를 사유지로 판매했다. 그중 하나인 이곳의 특이 사항은 지하 공간이 있다는 것이다.


“여기 지하 도면 보내주세요. 최근 거 없으면, 사유화 전거라도요.”


킴이 형사과 1팀에 음성 메시지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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