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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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멸기록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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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1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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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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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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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추럴, Not 내추럴 (5)

DUMMY

22세기를 살아가는 현재, 기계로 대체할 수 있는 단순노동을 위해 인간을 부리는 셸터 시티 시민은 없다. 불법적인 방식을 써야 할 이유는 더더욱 없다.


“고작 청소 때문에 인간을 노예로 부렸을 거라니, 지금이 무슨 19세기인 줄 알아?”

“내추럴은 주기적으로 보건소에서 건강검진을 받습니다. 강 의원이 가짜 내추럴이라면, 인종 정보를 사칭할 진짜 검체가 필요했을 겁니다. 동일 인물을 평생 곁에 둬야 했겠죠. 검진 때마다 유전자 정보가 바뀌면 바로 들통날 테니까.”


모건은 터무니없다고 주장하지만, 킴은 추리의 근거를 내놓는다. 살인범만 찾아내면 끝날 거로 여긴 사건이 복잡해질 조짐이다. 신원 사칭, 감금 학대. 사건이 확장될수록 수사는 길어질 것이다.


“강 소율이 누군지 몰라? 자기가 내추럴인 걸로 유세하고 다니던 유명 인사야. 평생 안 들키고 해온 대리 검진? 헛다리도 좀 가능성 있는 쪽으로 짚어야지, 공상이 너무 심하잖아.”


수사가 길어지길 원치 않는 모건이 다시금 반박한다.


“보건소 방문이 어렵다고 하면, 자택으로 출장도 와줍니다. 보건소 직원이 협조했을 수도 있죠. 아니면, 진짜 내추럴과 똑같은 얼굴로 성형한 걸 수도 있고요.”


킴이 근거를 덧붙일수록 추리는 그럴싸해진다. 모건은 더 이상 반박할 말이 생각나지 않는다.


“그러면, 이 족쇄에 묶여 있던 사람은 어디 간 건데?”


억압과 고통 속에 있던 누군가의 일생이 엮인 사건일지도 모른다. 모건은 머리가 지끈거려 이마를 짚었다가, 과열된 금속 손의 온도에 금방 팔을 내린다.


“글쎄요. 강 의원을 죽이고 도망친 걸까요? 음, 어쩌면 범인이 강 의원을 죽이고 그 사람을 구출한 걸지도 모르고요. 아, 아니다. 구출이 목적이었으면···”

“경찰에 신고했겠지.”

“그러면, 납치?”


사망자의 범죄 증명, 살인 및 납치범 체포, 실종자 탐색 및 구출. 수사의 향방이 여러 갈래로 뻗어 나간다.


“미치겠네.”


모건의 머릿속이 어지럽게 엉킨다. 모건은 속이 메슥거린다.


“다른 파트너 구해. 난 못해.”

“네? 갑자기 왜요?”


거리에 CCTV가 깔려 있고, 매시간 순찰 드론이 날아다니는 셸터 시티다. 추려진 용의자는 공무 시설로 소환해 심문할 테니, 따로 경호가 필요 없다. 그러니 모건은 이 사건 현장 한 번이면 동행이 끝날 줄 알았다.


끽해야 반나절 정도면 될 테니까, 킴에게서 괜찮은 정보를 얻어내기만 한다면 손해가 아니다 싶었다. 장기적인 사건이 될 거란 계산은 없었다.


“이건 오늘 하루로 끝날 수사가 아니잖아.”

“우리 계약에 기간 얘기가 있었던가요? 아니, 그리고 수사에 며칠이 걸릴지 어떻게 압니까?”

“지금 얘기할까, 그럼? 난 장기적으로 동행할 만큼 한가하지가 않아.”


모건에겐 타인의 일에 깊게 관여할 여유가 없다. 인류애를 상실한 건 아니지만, 연고도 호감도 없는 정치인을 죽인 범인 따위 궁금하지 않았다. 모건이 촉탁 수사관 경호라는 이 이상한 파트너직을 수락한 건, 오래 걸릴 일이 아니라고 판단해서다.


“네 추리대로면, 하루 이틀 조사로 끝날 수가 없잖아. 너도 확신이 있으니까 그렇게 말한 거 아냐?”

“아뇨. 이 정도 정황만 가지고 확신하면 안 되죠. 지금까지 제 추리는 어디까지나, 강 의원이 가짜 내추럴일 경우를 전제로 한 가설일 뿐입니다. 휴, 파트너 의견 물어보려다가 파트너 잃을 뻔했네요. 그래도 제 추론이 말이 되긴 했나 봐요?”


킴이 덤덤하게 서술하는 문장, 평가를 기대하는 듯한 끝마디가 모건에겐 마치 놀리는 것처럼 느껴진다.


“의견? 무슨 의견?”


모건은 치미는 화를 참으며 간신히 반문한다.


“저한테 편견이 있는 거 같다고 했잖아요.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게, 수사 파트너의 의견을 듣고 싶어서 얘기한 겁니다. 반대로 강 의원이 진짜 내추럴이 맞다면, 이 정황들은 뭘 가리키는 걸까요?”


SLPD와의 용역 계약상, 모건의 일은 수사를 진행할 동안 킴을 경호하는 것뿐이다. 모건은 수사관이 아니며, 수사에 의견을 낼 권리도 의무도 없다.


“하, 진짜 지랄도······. 적당히 해.”

“에? 어느 게 지랄이었고, 어디서 선을 넘은 거죠, 제가?”


킴은 모건이 화가 난 이유를 곧바로 짚어내지 못한다. 킴과 모건에겐 서로가 어떤 사람인지 이해할 충분한 시간도 없었고, 그럴만한 대화도 오간 적 없다.


“너 내가 우스워?”

“우습게 본 사람한테 하나하나 상황 설명해 가면서 의견 묻는 사람도 있습니까?”

“있네, 여기. 탐정 놀이 중인 너.”


모건의 비난 앞에 킴의 표정도 굳는다. 킴이 모건에게 구체적인 현장 설명과 자신의 추리를 드러내기 시작한 건, 모건이 다음 동선을 먼저 물었을 때부터였다.


“놀이라고요?”


킴은 있는 그대로를 보는 모건의 직관을 더 듣고 싶었을 뿐이다. 단순히 취향이었을 수 있다, 그때그때의 기분이었을 수 있다, 사람이란 그럴 수 있는 존재고, 아직 명확한 증거는 나온 게 없다. 그런 맥락의 의견을 들어 두려는 의도였다.


“놀이가 마음에 안 들면, 창작 활동이라고 해줘?”


단서를 허투루 넘기거나 편협하게만 보는 걸 피하려던 건데, 모건이 왜 화가 났는지 킴은 아직 알지 못한다.


“아니, 아니요. 그런 말이 아니라요. 그렇게 느낀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창작 활동은 또 뭡니까?”


킴은 어리둥절하고, 모건은 그런 킴이 가증스럽다.


“잡아떼면 그만인 거 같아?”


모건이 그대로 킴의 멱살을 잡아 벽으로 밀친다. 밝은 곳에서도 쫓을 수 없던 모건의 움직임이다. 한층 느려졌대서, 어슴푸레한 이곳에서 피할 수 있을 리 없다. 킴의 어깨와 등이 벽에 거세게 충돌한다.


“데이터로 다 수집되는 현장, 굳이 일일이 들여다보겠다고 돌아다니면서 네 뇌피셜로 찌끄린 소설? 그딴 걸 내가 왜 들어주고 있어야 하는데?”


멱살을 잡은 모건의 손에, 인질극에서 베인 자리가 눌린다. 제복의 스탠드 카라로 가려진 상처 부위가 욱신거린다.


콜록대는 기침 두어 번에 누르는 힘이 풀리지만, 손을 놓은 건 아니다. 킴은 모건이 낀 검정 장갑으로 한 겹 중화되었음에도 금속 손의 체온이 뜨겁다는 걸 느낀다.


“사건 해결에 관심이 생긴 줄 알았습니다. 무능한 수사관을 만난 사건은 엉뚱한 결론이 난다, 저한테 그렇게 말한 지도 삼십 분밖에 안 됐고요.”


킴은 차라리 모건이 수사에 무관심한 태도로 일관했다면, 헷갈릴 일이 없었을까 싶다. 애초에 모건이 인질극을 벌인 것도, 여기까지 동행한 것도, 필요한 정보가 있어서라는 걸 인지하고 있으니까.


“관심 없어. 죽은 인간이 내추럴이 맞니 아니니, 범인 가려내는 거랑 상관도 없는, 별 쓸데없는 얘기 지껄이는 거? 내가 왜 알아야 해? 바쁜 사람 붙들어놓고 바보 만드는 게, 유능한 수사관이야? 본질은 비껴가면서, 시간만 끌고 있잖아, 계속!”


모건의 언성이 높아진다. 사방이 막힌 지하 공간이 울린다. 킴은 모건이 화가 난 이유를 비로소 알아챈다.


“그러니까 제가, 일부러 시간을 끌고 있다?”


킴의 오른손이 왼 손목에 찬 디바이스로 향한다. 시선은 모건에게서 떼지 않은 채다.


“탐정 놀이를 하든, 무슨 놀이를 하든, 너 혼자 해. 난 그딴 여유 없으니까.”


킴은 모건을 향해 기울인 고개를 그대로 고정한 채, SLPD 디바이스를 조작한다. 플래시가 꺼진다.


“미안합니다.”


사과하는 킴의 시야는 시커먼 암흑이다. 야간투시경 너머로는 물체가 식별되지만, 그걸 쓰고 있는 모건의 정신이 맑지 않다.


“인질극을 벌여야 할 정도로 절박한 상황이었단 걸, 깜빡했습니다. 변명을 좀 하자면, 전에 하던 일이 안 끝난 상태에서 갑자기 새로운 일을 맡게 된 참이거든요. 동시에 서너 가지를 생각할 여력이 없었습니다.”


이곳은 개인 AI의 작동이 중단된 영역. 공영 AI의 데이터 수집 기기는 아직 설치되지 않은 장소. 킴이 끈 건 단지 플래시만이 아니다. SLPD 디바이스 자체를 껐으니, 지금 이곳에서의 대화는 누구에게도 수집되지 않는다.


“말해봐요. 원하는 정보가 뭡니까?”


다른 사람들이나, 작동하는 기기가 있는 상황에선 피하던 대화다. 그 화제를 먼저 꺼내 직면하는 킴의 태도에, 모건도 그가 디바이스를 완전히 껐다는 걸 인식한다.


“13구역.”


모건이 킴의 멱살을 놓으며 말한다. 힘이 풀린 손이 중력을 따라 아래로 떨어진다.


“돔 바깥 구역에, 보안등급 2레벨일 만한 정보면······. 지형 정보나 대략적인 위험 요소 표시가 다일 텐데요?”

“추측성으로 말하는 거 보니까, 네가 2레벨에 접속해서 본 정보 중엔 없었단 거네. 됐어, 그럼. 내 용건은 끝났어.”


모건은 예상했던 허무에 힘이 빠진 음성으로 돌아선다. 킴은 발소리에 귀 기울이며, 모건이 사다리 쪽으로 향하고 있음을 짐작한다.


“고작 그거 때문에 그런 일을 벌이진 않았을 거잖아요.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줄 생각은 없습니까?”


킴이 나아가면 물리적으로 붙잡을 수도 있겠지만, 모건이 뿌리치면 그만이다.


“예를 들어······.”


말이란 건, 언어란 것은 때론 인간에게 그 무엇보다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킴은 그 힘으로 모건의 걸음을 붙잡는다.


“13구역이면, 데이터센터?”


모건은 정지한 채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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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추럴, Not 내추럴 (5) 24.09.10 3 0 10쪽
10 내추럴, Not 내추럴 (4) 24.09.02 7 0 10쪽
9 내추럴, Not 내추럴 (3) 24.08.30 8 0 9쪽
8 내추럴, Not 내추럴 (2) 24.08.29 7 0 9쪽
7 내추럴, Not 내추럴 (1) 24.08.27 7 0 9쪽
6 징계위원회 (6) 24.08.24 10 0 11쪽
5 징계위원회 (5) 24.08.21 12 0 9쪽
4 징계위원회 (4) 24.08.20 14 0 9쪽
3 징계위원회 (3) 24.08.19 12 0 9쪽
2 징계위원회 (2) 24.08.16 15 0 9쪽
1 징계위원회 (1) 24.08.15 16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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