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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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멸기록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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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1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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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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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2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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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추럴, Not 내추럴 (4)

DUMMY

강 의원의 비밀 공간에 먼저 도착한 모건이 주위를 둘러본다. 킴과 모건은 사다리를 타기 전에 플래시를 껐다. 모건은 종아리 안쪽에 탑재되어 있던 야간 투시경을 착용한 채 내려왔다. 이곳에 누군가 위협적인 존재가 있다면, 자신의 위치를 들키지 않는 것이 유리해서다.


이 꽉 막힌 공간은 전자기기가 중단된 상태론 광원이 없는 것 같다. 모건의 야간 투시경엔 열화상 카메라가 부착되어 있어,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모건은 공간을 대강 한 바퀴 돌아보며 위험 요소가 없음을 확인한다. 살아있는 생물도, 움직임을 보이는 물체도 없다.


“내려와. 아무도 없어.”


사다리 근처로 돌아온 모건이 알린다. 벙커의 천장이 시작되는 지점에서 대기하던 킴을 향한 말이다.


“확실합니까? 이렇게 어두운데, 놓친 곳이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그렇게 되물으면서도 킴은 사다리를 마저 내려온다.


“있더라도, 너한테 달려드는 것보다 나한테 두들겨 맞는 게 빠를걸.”


모건에게 안전을 보장받은 킴은 플래시를 켜고, 하강 속도를 높인다. 모건은 사다리 옆쪽 벽으로 다가간다. 개방형 주방의 벽은 서재와 맞닿은 위치였다. 주방에 있던 것과 같은 작은 금속 문이 있다. 지상에서와 마찬가지로 모건이 그 문을 힘으로 연다.


“음식 엘리베이터 맞네.”


열린 문 안쪽은 음식이 놓인 리프트다. 지상의 주방 식탁에 있던 것과 똑같은 양의 음식이 놓여 있다. 아무도 손대지 않은 모습이다. 마침내 바닥을 디딘 킴도 플래시를 비추며 음식을 확인한다.


“저건 무슨 문이야?”


모건의 물음에, 킴의 플래시가 모건을 거쳐 그 시선 방향으로 옮겨간다. 두 사람이 있는 곳에서 가장 먼 곳, 사다리 맞은편 벽에 철제문이 있다.


“아아, 시 소유 벙커로 연결되는 길일 겁니다. 원래 이쪽엔 지상으로 바로 통하는 출입구가 없었어요. 저쪽 공간의 계단으로 내려와서, 여기로 연결된 길을 지나와야 하는 구조였습니다. 우리가 내려온 통로는 여기가 사유지로 바뀐 뒤에 뚫린 겁니다.”


킴의 설명을 들으며 모건은 철제문 쪽으로 간다. 문 앞에 도착한 모건이 문을 좌우 앞뒤로 당겨도 보고 밀어도 보지만, 열리지 않는다. 단단히 잠겨 있다.


“유사시 비상구로 설치한 문이라, 평소엔 잠가둘 거예요. 시 소유 벙커도 무허가 입장은 안 되니까. 비상탈출 신호를 보내지 않는 이상, 벽이나 다름없습니다.”


모건이 쳇, 하며 돌아오는 동안 킴은 다른 벽을 살피기 시작한다. 공간의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가구는 책장이다. 몇 세기의 물건을 수집한 것인지 모를 종이책들이 빼곡히 꽂혀 있다. 책장 앞엔 1인용으로 보이는 작은 책상과 의자가 놓여있다.


“여기가 강 의원의 진짜 서재······.”


기상 도우미 로봇은 8시 20분부터 강 의원을 찾아다녔는데, 발견과 신고는 8시 55분이었다. 단층 주택의 실내 일부를 돌아보는 데 35분이나 걸린 것이다. 그중에서도 서재를 둘러본 시간이 가장 길었다. 데이터상에 서재로 표기된 장소는 이 지하 공간을 포함했을 것이다.


“그러면 청소 로봇이 있던 곳도 여긴가.”


평일 오전 9시 10분마다 작동하는 그 청소 로봇의 최종 위치 데이터는 서재였고, 일요일인 어제저녁에 데이터 수집이 끊겼다. 지상에선 보이지 않았으니, 그 자리에 남아있다면 이곳이다.


킴이 둘러본 반경에선 로봇같이 생긴 건 보이지 않는다. 그 사이, 모건은 짙은 얼룩이 진 바닥을 살피고 있다. 시커먼 그을음이다. 화약 냄새에 옅게 피 냄새가 섞여 있다.


“여긴가 본데, 총 맞은 곳.”


시신에 남은 것과 맞아떨어지는 흔적이다. 전신을 태우지도, 큰 화재를 일으키지도 못하고 꺼진 화력. 불량 플레임탄은 강 의원의 피부를 녹이며 뚫고 들어가, 심장에 꽂히는데 그친 걸로 보인다. 불길이 일종의 지혈 작용을 했는지, 출혈량은 많지 않았던 것 같다.


“스턴 글러브로 기절시킨 다음, 바닥에 가지런히 눕혀놓고 심장을 조준했다는 걸까요?”

“그랬다면 조준 실력은 문제가 안 됐겠지. 심장 위치를 안다면 말이야.”


내추럴 휴먼이라면 이미 스턴 글러브로 사망한 다음에 총을 맞았을 가능성도 있지만, 쏜 사람에게 살해할 의도가 있었단 정황은 매한가지다.


“다른 거 더 볼 거 있어? 살해 현장 찾았으면, 용의자 추리는 덴 문제 없잖아.”


이미 형사과 1팀이 수사과의 분석지원팀과 협업하여 출입자 명단을 확보하는 중이다. 형사 1팀과 과학수사연구원이 함께 꾸린 수색팀도 오는 중이다.


이곳에 출입한 사람의 데이터, 이곳에 남아있는 유전자 데이터, 그 모든 정보의 집약이 용의자를 추려낼 것이다. 인과관계가 뚜렷하다면, 단번에 범인이 지목될 수도 있다.


“그렇긴 한데······. 뭔가 좀, 찝찝한 게 있어서요.”


킴은 아직 여기를 속 시원히 떠날 마음이 들지 않는다. 책장 반대편 벽으로 향한 킴이 거기 놓인 것들을 살핀다. 침대가 배치되어 있고, 머리맡엔 바이탈 사인 모니터를 비롯한 각종 기계가 놓여있다.


선반과 수납장도 있는데, 선반에 놓인 건 의료용 트레이다. 빈 약병, 사용한 주사기와 흡입기 등이 있다.


양문형 수납장은 잠겨 있다. 투명 플라스틱으로 된 여닫이문 너머로, 진열된 물건들이 보인다. VR 기기로 보이는 네모난 플라스틱 고글. 몇 개의 뜯지 않은 주사기와 흡입기와 약병.


킴은 약병의 라벨에 플래시를 비추며 가까이 들여다본다. [3,4-MethyleneDioxyMethAmphetamine], [LysergicAcidDiethylamide], [Psilocybin], [Ibogaine]···제각기 기재된 이름들은 평상시 접할 일 없는 화학명이다.


‘MDMA가 뭐였지? 엑스터시였나? LAD는? 아니, 그래, 저건 LSD라고 부르던 것 같은데. 그 옆에 실로시빈, 이보게인은······.’


디바이스로 검색해 보면 각 약물의 정확한 정보를 확인할 수 있겠지만, 그건 지금 당장 급한 게 아니다. 킴은 대충 저것들이 환각 성분의 약물들이란 것만 짐작해 두고 다른 곳을 둘러본다.


“대체 뭘 찾는 건데?”

“혹시 서재에서 청소 로봇 보셨습니까? 위에서든, 여기서든.”


침대는 흐트러져 있다. 덮는 이불은 구석에 대충 뭉쳐져 있고, 삐뚤어진 매트리스엔 커버가 없다. 원래 씌우지 않았거나, 누군가 벗겨냈을 것이다.


“왜, 죽은 사람이 앞으론 집 청소를 못할까 봐 걱정돼?”

“있던 게 없어졌단 것도, 사건과 관련이 있을지 모르잖아요.”

“참 나. 어차피 곧 있으면, 딴 놈들이 알아서 구석구석 들쑤셔 줄 거 아냐? 굳이 이렇게 시간 낭비···뭐야, 이건?”


투덜거리면서도 공간의 구석이나 가구 모서리 등지를 살펴보던 모건이 뭔가를 발견하고 쪼그려 앉는다. 각이 틀어진 매트리스 아래에 약간 가려져 있던 바닥, 거기에 금속 고리가 놓여 있다.


“꼭 무슨 족쇄같이 생겼네.”


높이는 5센티미터(cm) 정도, 두께는 대략 1센티미터 정도 되어 보인다. 지름은 내경 10센티미터 내외로 짐작되고, 파손된 잠금쇠 탓에 벌어져 있다. 모건의 발견에 다가온 킴이 그것을 집어 들고 살핀다.


[AND-CMC-DMS-004]라는 코드가 새겨진 기계장치다. 첫머리의 AND는 안드로이드(Android) 탑재를 뜻한다. 다음으로 오는 CMC는 상업용(Commercial)이란 뜻으로, 민간 기업에서 생산했단 뜻이다. DMS는 가정용(Domestic)으로 개발된 기종이란 거고, 004는 출하 순서대로 매겨진 단순 넘버링이다.


“청소 로봇입니다.”


작동 데이터로 확인했던, 강 의원의 청소 로봇 모델명과 일치한다.


“이 손바닥만 한 걸로, 그 넓은 집을 어떻게 청소해?”

“정확히는, 청소 로봇 작동 데이터를 제공한 추적기인 것 같습니다. 구형 로봇에서 기계장치를 추출해서 개조한 것 같은데······.”


최근에 출시되는 기기들은 번호를 네 자리로 늘릴 것인지, 이전에 폐기된 기기의 번호를 재사용할 것인지 논의 중이다. 한두 자리 숫자로 넘버링 된 구형은 신형 모델에 뒤처져 폐기된 것이 대부분이다.


“내장된 걸 굳이 끄집어내서 겉에다 족쇄로 채워? 암만 봐도 강 의원 그 인간, 취향이 너무 괴상해.”

“만약, 취향이 아니라면요?”

“무슨 소리야. 취향 특이한 또라이가 아니고서야, 그딴 쓸데없는 짓을 왜 하겠어.”


왜 그런 구형을 쓰고 있었던 건지, 청소 로봇의 데이터는 왜 끊긴 건지, 그 로봇은 어디로 갔는지, 이 사건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지. 그런 종류였던 킴의 의문이 궤도를 이탈한다.


“쓸데가 있었다면, 필요에 의한 거였다면······.”


킴은 잠시 생각을 정리한다. 강 의원에겐 이 지하에 숨겨둔 동거인이 있었던 것 같다. 청소 로봇의 대기 위치는 서재였다. 서재는 지하 공간을 포함하는 명칭이다. 가상현실 시뮬레이션과 환각제의 복합적 사용은, 장기적이었다면 세뇌를 위한 수단이었을 수 있다.


“이런 가정은 어떻습니까? 몸속에 기계를 내장할 수 없는, 이를테면 임플란트를 이식하면 안 되는 사람에게 족쇄를 채워야 했다.”

“······잠깐만. 지금 이걸, 사람한테 채웠을 거라고?”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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