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옐로섭마린
작품등록일 :
2024.08.15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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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9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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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루브리가

DUMMY

뒷북을 때려대는 일행을 진정시키고, 슬라이너를 배웅한 뒤 그냥 깨어난 김에 내가 불침번을 서기로 했다.

야영지 주변의 시야가 넓게 트여 있어서 딱히 경계할 것이 없는 터라, 오만가지 생각이 머릿속에서 왔다 갔다 했다.

죽음의 바람··· 아무래도 이름의 울림이 불길했다.


그리고, 리자드맨들이 스스로를 부르는 이름이라는 ‘피르 라긴’···

생각해 보니 엘프들, 그러니까 투어허 데 다난의 도시 팔리아스와 피니아스를 멸망시켰다던 종족의 이름이 ‘피르 볼그’라고 했었다.

뭔가 관계가 있는 건가?

이런 저런 생각에 잠을 못 자고 그냥 아침까지 계속 지새웠다.


“우선 리자드맨 영역의 경계를 따라 쭉 북상해서 칼루브리가까지 가자.”

아침이 되어, 대충 끼니를 때우고 출발하면서 강윤찬과 경로를 정했다.

밥을 먹는 동안 어젯밤의 일을 일행에게도 설명해주었더랬다.

“다른 리자드맨 부족들도 살펴보게유?”

“그래. 뭐 거리가 멀어서 제대로 살펴보지는 못하겠지만, 대충 보이는 부분까지만···”


강윤찬이 고개를 끄덕거리고는 태블릿에 예상 경로를 표시했다.

“아니면··· 드론을 한번 띄워보는 것도 방법이겠지.”

“글츄.”

“이동 중에, 알란과 나는 교대로 말을 타고 앞질러 가서 주변을 넓게 살펴보도록 할게.”


마차가 출발하고, 알란을 먼저 정찰 보낸 후 이도현에게 물었다.

“혹시 고리아스에서는 그··· ‘죽음의 바람’인지 뭔지 하는 이야기 못 들었냐?”

“아뇨, 전혀 못 들었죠. 사실 고리아스나 무리아스나 칼리시아 호수의 남쪽에 위치해 있으니까··· 뭔가 북쪽에서부터 소문이 퍼지고 있다면, 아직···”

그런가···


“게다가 엘프들의 사회는 알게 모르게 제법 폐쇄적이에요. 자기들 도시 바깥의 일에는 좀 무관심한 경향이 있어요.”

“그런 것 치고는 타바른 왕자가 제법 확장적인 행보를 보이는 것 같은데?”

“예, 맞아요. 그게··· 그러니까, 기존의 엘프 사회의 모습과는 조금 이질적인 거죠. 고리아스 내에서도 말은 좀 있어요.”

“그래? 어느 정도나?”

“어··· 말씀드렸듯이, 제가 엘프 사회의 주류는 아니라서··· 그냥 그런 분위기가 있다 정도지 확실하지는 않아요. 제 엘프어도 아직 미숙하고요.”


나는 화제를 조금 바꿨다.

“그··· 유이라는 애는 좀 어때? 엘프어도 곧잘 하니?”

이도현이 살짝 고민하더니 대답했다.

“걔는··· 뭐라고 해야 하나? 전생이 엘프였던 거 같아요. 어제 말했죠? 숲에서 적응하는 거 하며, 엘프어도 금방 배우고··· 귀만 좀 길면 그냥 엘프라고 봐도 무방할 걸요?”

어··· 일본 소녀 엘프라···

나는 6개월 전 얼핏 보았던 소녀의 모습을 기억에 떠올리며 상상해보았지만··· 쉽게 이미지가 떠오르지는 않았다.


조심스럽게 정찰을 해 가며 전진하는 것이 무색하게, 정오 무렵 첫 번째 리자드맨들의 부족이 ‘있었던’ 곳에 접근할 때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마차를 멈춘 후 강윤찬이 드론을 띄웠고, 우리는 모두 태블릿의 화면을 보려고 모여들었다.


“음··· 무슨 남태평양 원시 부족의 마을 같군요.”

이도현이 촌평했다.

그래, 얼핏 보면 그랬다.

늪지대와 땅의 경계에 다닥다닥 붙어서 지어진, 나무로 얼기설기 지은 움막들.

마치, 금방이라도 누군가가 움막의 문을 열고 나올 것 같았지만···


“움직이는 것이 전혀 없네유···”

그렇다.

정말 말 그대로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는 죽은 마을이었다.

“여기에 500명 정도의 리자드맨들이···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요?”

나도··· 전혀 짐작이 되지 않았다.


두 번째 리자드맨 마을에는 들르지 않기로 했다.

대신, 속도를 좀 내서 오늘 해지기 전까지 칼루브리가에 도착하는 것을 목표로 달렸다.


칼루브리가는 칼리시아의 북쪽 끝, 백색 산맥을 바라보는 지역에 자리 잡고 있는 부족이었다.

전에 설명했듯이 백색 산맥에는 와이번들이 떼로 서식하는 관계로 켈트인들이 함부로 접근하지 못했으므로, 실질적으로 칼리시아의 켈트인들 중 가장 북쪽 끝에 있는 부족이라고 볼 수 있었다.


칼루브리가라는 이름은 켈트 말로 ‘언덕 요새’라는 의미가 되는데, 그 이름대로 옛 선주민(이제는 팔리아스의 엘프들이라고 알게 된)들이 지어 놓은 견고한 동명의 요새를 중심으로 마을을 이루어 살고 있었다.

다만 펜드래건 성채에 비하면 규모도 훨씬 작고, 나무 목책으로 지어진 놈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캄베툼의 브란웬 족장이 나름 심혈을 기울여 흉내 낸 요새 따위와는 비할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하다고 한다.

뭐, 난 캄베툼에는 가 보지 못해서 비교는 못해봤지만···


브란웬 족장의 양아치스러운 성정으로 보면 이 칼루브리가 요새도 탐을 낼 법 하나, 안타깝게도 이 근방은 ‘와이번 관찰’ 외의 취미 생활이 불가할 정도로 황량한 곳이었다.

땅이 워낙 척박하고 칼리시아 호수로부터도 많이 떨어져서 농사는 엄두도 못 내고, 다만 요새를 중심으로 군데군데 흩어져 있는 약간의 목초지를 떠돌며 양과 염소를 키우는 목축 생활을 하는 것이 칼루브리가 부족의 생업이었다.

불행 중 다행이랄까, 백색 산맥의 와이번들은 산맥 안쪽으로부터 남하하는 몬스터들을 주로 사냥하기 때문에 이 조그만 부족은 큰 걱정 없이 유유자적 살아가고 있었다.


빠르게 마차를 달린 끝에 석양 무렵에 칼루브리가 부족의 영역에 진입했고, 한 목동 가족의 천막을 만났을 때에야 비로소 약간 안도의 심정이 되었다.

슬라이너의 경고와 주민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리자드맨 부락의 모습에 괜스레 마음이 불안했달까···

목동 가족의 가장과 이야기를 나눈 결과, 아직 칼루브리가 부족에는 특별한 일이 없었다고 했다.


계속 마차를 달려 완전히 어두워졌을 즈음, 넓은 평야 한가운데 지어진 ‘언덕 위의 요새’에 도달했다.

부족의 일부는 항상 이곳 요새 근처에 머물렀기에, 요새 주변에 십여 개의 천막이 성 아랫마을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마차를 몰고 요새 내부로 바로 진입하자, 머리가 하얗게 센 당당한 체구의 노파를 선두로 다섯 명의 여자들로 구성된 무리가 우리를 반겼다.


“어서들 오게나. 브리간티아의 제이킹! 가을에 만난 이후로 처음이군.”

하··· 내 이름은 뭐··· 그렇다.

“잘 지내셨습니까, 루드? 우리 앞에 전령은 도착했나요?”


앞장선 노파는 칼루브리가의 족장으로 이름은 루드, 켈트어로 붉다는 듯을 가진 여걸이었는데, 지금은 붉은 머리가 전부 하얗게 세어서 그 이름이 좀 무색하긴 했다.


“전령? 무슨 큰 바람이라도 불었는가? 아직 도착하지 않았네.”

“그렇군요···”

전령들은 몇 개의 마을들을 돌기로 되어있었기 때문에, 아직 이곳에는 도달하지 못한 모양이다.


나는 마차를 세우고 동료들과 함께 내려서 루드 족장에게 가져온 소금을 선물로 내놓았다.

목축을 하는 이들은 그들이 키우는 가축들에게도 염분을 공급해줘야 했기 때문에 소금을 제법 요긴하게 여겼다.


“큰 바람 정도의 일은 아니고요. 요번 동지 축제에 우리 펜드래건 영주님의 성인식을 겸해서 크게 잔치를 벌일 계획이랍니다.”

“오~ 브리간티아가 크게 잔치를? 과연···”

“다들 오셔서 맘껏 즐기시고 자리를 빛내주시라고 브리간티아 주변의 부족들을 모두 초청하기로 했죠.”

루드 부족장의 눈이 번뜩였다.


“브리간티아가··· 이제 예전의 브리간티아가 아닌 모양이로군. 동지 축제에 주변 부족들을 초청한다···라.”

그래, 바로 이런 반응을 바라고 우리가 여기 온 것이다.


사실 브리간티아나 칼루브리가나 인구 수는 거의 비슷한 수준의 부족으로, 칼리시아의 부족들 중에서는 소규모에 속한다.

당연히 축제에 다른 부족들을 초청하기보다는 초청받아서 가는 입장이었는데, 이제 브리간티아가 중심이 되어서 축제를 연다고 하니 루드 부족장이 놀라는 것이다.


“암튼 들어오게나. 자네들은 언제나 손님으로 환영하네.”

루드 부족장에게 같이 온 일행들을 소개하고, 부족장과 함께 나온 여자들과도 켈트식으로 인사한 후, 칼루브리가 요새의 내실로 함께 들어갔다.

“좀 어수선하지만, 이해하게나.”


부족장의 말처럼 요새의 건물 내부는··· 몹시 어수선했다.

꼬맹이들, 젖먹이로부터 7~8세의 녀석들까지, 한국으로 치면 아직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의 아이들이 우글우글했으니까.

아기들이 우는 소리, 꼬맹이들이 떠들고 싸우는 소리, 거기에 보모(?) 역할을 하는 여자들의 호령 소리까지···


켈트인들은 이런 식으로 부족 내의 아이들을 공동 육아하는 풍습이 있기는 했다.

부족 내의 남자···뿐만 아니고 일부 호전적인 여자들까지 사냥이나 전투를 나가면, 뒤에 남은 여자들이 아이들을 함께 맡아서 키우거나, 심지어 전투 훈련을 시키는 경우도 있으니까.


다만, 이 칼루브리가 부족은 이 제도를 좀 더 상시적으로 운영하는 편이었다.

부족원들이 유목으로 대부분 떠돌아다니는 터라, 아예 부족의 중심지인 이곳 요새에 아이들을 맡겨서 공동 육아를 하는 것이다.

거칠고 위험한 황야보다는 아무래도 안전한 데다가, 나름 부족 내의 육아 전문가(?)들이 모여서 아이들을 돌보는 터라, 유아 생존율을 제법 높이는 효과가 있었다.


루드 부족장은 여자들을 시켜 아이들을 별실로 데려가게 한 후, 우리에게 저녁을 권했다.

여느 켈트족과 마찬가지로 메인홀에서 바로 손님을 대접했는데, 양고기와 치즈 등, 유목 부족의 특징적인 식사였다.

식사를 하는 동안은 일상적인 이야기가 오갔다.


“지난번에 거래한 밀과 소금은 괜찮더군. 좀 더 거래할 수는 있는가?”

“가능합니다. 대신 저희도 지금은 물량이 부족하니까, 봄이 되어야 하겠죠.”

지난가을에 우리가 왔을 때는 양꼬치 재료로 양고기를 넉넉히 사가기도 했었다.

그 대가로 밀과 소금을 팔았는데, 그게 마음에 들었나 보다.


“브리간티아가 농지도 배로 늘렸다는 이야기를 들었지. 펜드래건 꼬맹이가 잘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대들 도래인들이 그리 만든 것인지 궁금하구먼···”

“둘 다라고 생각해 주시죠.”

루드 부족장은 무슨 이유에선지 펜드래건 영주에게 유독 호의적이었고, 두 부족 간의 사이도 괜찮은 편이었다.

해서, 식사를 마친 후 나는 좀 더 나아가서 카니브리 부족의 브리간티아 축출 움직임과 이번 행상에서 공격받은 일까지 조목조목 고자질(?)했다.


“망할 브란 늙은이와 그 개망나니 아들이 할 법한 짓거리구만··· 하지만, 쉽게만 볼 수는 없겠지. 카니브리는 강성하고, 그 밑에 빌붙어 사는 멍청한 부족장들도 많으니까.”

“그래서, 어떻든 대화로 풀어보려 합니다만.”

“이 주변의 소부족들이야 브리간티아를 편들고 싶겠지. 하지만, 놈들이 노골적으로 압박을 가한다면 그땐 또 모르는 일이야. 부족의 존속이 달린 일이니까 말이지.”


부족장은 혀를 찼지만, 그녀 자신도 특별한 해결책을 내밀지는 못했다.

나도 당장은, 트윈문의 부족장 회의에서 편을 들어 달라는 정도의 요구 밖에 할 수 없었고···


이후, 리자드맨 슬라이너에게 들은 이야기를 꺼냈다.


“리자드맨들의 마을 두 개가 완전히 사라졌다고?”

“예, 슬라이너의 말에 따르면 그렇습니다. 한 마을은 우리가 직접 확인도 했고요.”


왠지 불안한 마음이 내내 가시지 않았던 나처럼, 루드 부족장도 이내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죽음의 바람이··· 먼 곳의 이야기로만 생각했건만···”

“제 생각엔, 부족민들의 안전을 확인하는 차원에서라도 일단 소식을 전해 이곳 칼루브리가 성채로 모두 불러모으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작가의말


참 더웠던 추석 연휴가 끝이 났습니다.

여러분은 다들 뜻 깊은 명절을 보내셨는지 모르겠네요.

무엇보다 건강하게 잘 지내셨길 바랍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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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늙은 마난 24.09.13 9 1 12쪽
43 원탁회의 24.09.12 13 1 12쪽
42 숙취 +2 24.09.11 14 1 12쪽
41 타바른 24.09.10 13 1 11쪽
40 사절 +2 24.09.09 16 1 12쪽
39 접견 24.09.08 17 1 12쪽
38 엘프 24.09.07 16 1 12쪽
37 재회 24.09.06 16 1 12쪽
36 트롤들 24.09.05 13 1 13쪽
35 추적 24.09.04 15 1 12쪽
34 귀환 24.09.03 12 1 11쪽
33 습격 24.09.02 13 1 12쪽
32 24.09.01 11 1 12쪽
31 키아란 24.08.31 13 1 12쪽
30 올리비아 24.08.30 11 1 12쪽
29 바이킹 24.08.29 9 1 14쪽
28 행상 24.08.28 14 1 12쪽
27 에릭슨 24.08.27 12 1 12쪽
26 막간극 - 온천에 간 기사, 인어를 만나다 24.08.26 15 1 15쪽
25 아발론 24.08.25 18 1 12쪽
24 계시 24.08.25 16 1 12쪽
23 캐리어 24.08.24 18 1 12쪽
22 호수의 여왕 24.08.24 15 1 10쪽
21 멀린 24.08.23 23 1 12쪽
20 만찬 24.08.23 43 1 12쪽
19 브리간티아 24.08.22 36 1 12쪽
18 발키리 24.08.22 45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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