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이 울리는 스마트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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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4.08.16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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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1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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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PC방. 매뉴얼(4)

DUMMY

종종 새벽엔 잠을 자러 들어오는 손님들이 있다. PC방에 와서 왜 잠을 자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간혹 숙박업소에 가는 것보다 나을 때도 있었다.


아침 일찍 어딘가 가야 할 때, 숙박업소는 너무 비싸지 않은가.

고작 서너시간 기다리는데 숙박은 사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PC방은 새벽에 들어와서 잠시 눈만 붙이다 갈 수 있으니 가격 면에서 부담이 적다.


당장 나도 스무살 즈음에 개강총회에서 술을 진탕 먹고 막차가 끊기는 바람에 첫차를 타기까지 PC방에서 시간을 때운 적이 있다.

물론 돈은 냈다. 시간 충전해 놓고 게임은 안 하고 의자 젖히고 잤다.


그 외에도 해외여행 갈 때 공항 근처 피시방에서 아침 비행기를 타기 위해 PC방에서 기다린 적도 있고.


아무튼 그런 손님들이 간혹 이런 불만을 제기할 때가 있다. 주변 자리가 너무 시끄럽다며 조치를 취해달라고 말이다.


솔직히 게임을 하러 오는 PC방에서 조용히 해달라는 게 가당키나 한 말인가 싶었지만, 그래도 손님의 말이니 키보드에 손을 올렸다.


[미스터리PC방: 잠시만요. 해결해 드릴게


열심히 키보드를 두드리다 우뚝 멈췄다.


나란 놈은 학습 능력이 없는 건가?


시발, 우리 PC방에 96번 PC 없잖아!


매뉴얼 5번 항목에 떡하니 적혀있는 문구.

[5. 새벽 시간대 울리는 96번 PC 메시지는 오류입니다. 우리 PC방에는 96번 PC가 없습니다. 무시하세요.]


황급히 메시지를 지웠다. 어우, 무시하라는데 대답할 뻔.


캬! 한 건 했다. 미친놈!


역시 인간은 학습의 동물이라 생각하며 어깨춤을 신나게 털었다.


“자~ 다음은 뭐냐! 별 거 아니네. 이 정도야 껌이지··· 아.”


그러다 문득 한 가지 사실을 깨닫고 말았다.

무섭고도 잔인한 현실을 말이다.


곧바로 춤을 멈추고 PC방 매뉴얼 판과 펜을 하나 꺼냈다.


“이거 보니까 하나씩 다 일어날 모양이네.”


이왕 이렇게 됐으니 남은 게 뭐가 있나 세어나 볼까.


펜을 들고 지금까지 일어난 일들에 줄을 그었다. 그러자 남은 항목이 보였다.


[1. 오후 10시 이후 모든 PC 예약석을 걸어두고 카운터에서 반드시 신분증 확인 후 예약석 풀어주세요.


3. 95번 PC쪽 비상문은 안전 계단 없는 탈출용 비상문입니다. 수시로 잠금장치 확인하고 안전사고 유의해 주세요.


4. 새벽에 면접 보러 왔다고 하는 사람의 질문에 웃으면서 돌려보내세요. 정색하지 마세요. 조치 후 주방에 들어가 문을 잠그고 5분간 기다리세요.


8. 이 모든 항목이 일어나는 상황엔 즉시 탈출하여 1층 비상벨을 울리세요. 도와줄 사람이 올 겁니다.


9. 만약 탈출하지 못했다면 마음대로 하세요.]


확실하게 발생한 사건을 제외하면 남은 항목은 총 5개.

이 중 애매한 것들에도 직선으로 줄을 그었다.


1번은 사실상 매일 하고 있던 항목이니 특별할 건 없다.

이것도 제외.


8번, 9번처럼 일이 터지고 나면 어떻게 하라는 지시문도 제외.


그럼 남은 건 3번, 4번인데···


95번 PC가 있는 방향을 슬쩍 훑었다. 아무래도 끝자리이고 구석진 자리인지라 1인 손님들이 애용하는 자리이다.

옆에는 작게 문이 하나 있는데, 밖에는 원래 비상용 계단이 있었다고 들었다.


지금은 무슨 땅 문제로 철거했다고 들었다.

사실상 매일 잠겨 있는 문이라 관심도 가지지 않았다. 애초에 자물쇠 여러 개로 잠겨 있고, 보이지 않게 짐과 커튼으로 가려두어서 관심도 안 갔고.


아무튼 지금은 95번 자리에 손님이 없으니 이상한 컴플레인이 들어올 일도 없을 듯했다.


이것도 패스.


실질적으로 남은 항목은 4번이다.

예상에 불과하지만 모든 일들이 일어나면 남개 녀석도 뭔가 반응을 해주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후 자잘한 업무를 처리하며 시간을 보냈다.

손님이 계속 들락거리는 통에 괴담에 대한 건 기억 저편으로 넘겼을 무렵이었다.


딸랑하고 출입문이 열렸다.


지저분한 장발에 왜소한 몸을 가진 사람이 들어왔다. 신발은 다 헤져 찢어져 있었고, 옷은 이게 누더기인가 싶을 정도로 때가 덕지덕지 붙어 더러움의 극치였다.


본래 손님이 들어오면 인사를 해야 했건만, 이번엔 본능적으로 입을 딱 다물었다.

가만히 있자,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를 사람이 먼저 입을 연다.


“저··· 알바 면접을 좀 보러 왔는데요.”

“...”


나는 입을 연 채로 그대로 굳어버렸다.


충격적이다.

하마터면 대답할 뻔 했지 뭔가! 이런 고운 목소리를 가진 사람이 존재하다니!

목소리를 듣는 순간 긴 생머리의 첫사랑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예뻤지··· 아름이···

보고 싶다. 아름아!


고운 목소리의 여자는 머리카락으로 다 가리고 있어서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내가 멀뚱히 쳐다보자, 그제야 뭔가 깨달았는지 카운터 바로 앞으로 다가온 여자가 머리카락을 쓱쓱 정리했다.


“아, 면접을 보러···”


여자의 목소리는 저 땅 아래로 기어들어가 잘 들리지 않았다.

머리카락이 치워져 드디어 드러난 얼굴을 보자마자 거부감이 확 들었다.


예쁘다, 못생겼다를 떠나서 외관이 너무 지저분했다.


그냥··· 제대로 보니 좀··· 깨네···


사실 여자가 입고 온 옷의 상태와 잔뜩 떡진 머리카락을 보고 대충 예상했어야 했는데 목소리가 너무 예뻐서 잊고 있었다.


괴담에 대해 인지는 하고 있었으므로 곧바로 매뉴얼 4번 항목이 떠올랐다.

새벽과 면접이라는 키워드를 잘 외워두고 있어서 다행이었다.


“면···접···”


조용히 있는데 녀석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퉁퉁 부어오른 볼에 짓눌린 입에서 면접이라는 단어가 가까스로 새어 나왔다.


왜 이러지?

···가만히 있는 게 아니었나?


뭔가 이상이 있는지 점점 부풀어만 가는 녀석의 얼굴이 보였다.

곧 터질 것 같은 모습에 잘못되었음을 인지했다.


서둘러 4번 항목을 확인하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


아뿔싸, 미친놈! 정색하지 말고 돌려보내는 거였다!

이런 멍청한 놈! 인지만 할 게 아니라 대처 방법도 기억하고 있었어야지!


지난 두 번의 이상 현상에서 무반응으로 대처해야 했어서 자연스럽게 똑같이 대처해버렸다.


어느새 잘 익은 찐빵처럼 부풀어 오른 면전에 대고 서둘러 입을 열었다.


“어, 어서 오세요!“


잘못된 이유를 인지한 순간, 표정을 풀고 만면에 미소를 띠었다.

그러자 녀석의 곧 터질 것만 같던 얼굴도 순식간에 가라앉아 원래의 때가 잔뜩 묻은 꼬질한 모습을 되찾았다.


여기서 카운터를 한방 먹이기 위해 주저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알바 면접을 보러 오셨다고요? 지금 매니저님이 안 계셔서 다음에 다시 와 주실-”

“아뇨, 꼭 오늘 면접을 봐야겠어요.”


아까까지 소심한 태도로 말하던 녀석이 돌변했다. 작았던 목소리는 순간 웅변이라도 하는 것처럼 변해 당차게 말을 끊고 들어왔다.


그 순간 나는 직감했다.

하하. 또 미친 사람이 왔네.

그래도 알바 생활이 얼만데 이 정도 대응은 충분히 가능하지.


“음··· 사실 사장님이 당분간 알바생은 뽑지 않겠다고 하셨거든요.”


알바생 비기. 불리할 땐 사장님 핑계 대기!


“괜찮아요. 저를 보시면 바로 채용하실 거예요.“


당신의 뭘 보고 채용을 합니까···

좀 씻고나 와서 그렇게 말하면 또 몰라. 저렇게 더러운 사람을 카운터에 세워놨다가 손님 끊기면 그쪽이 책임질겨?


라는 항변은 마음속에만 담아두도록 하자. 미친 사람을 이기는 방법은 없다.


똥이 무서워서 피하냐?

맞다. 무서워서 피한다. 이 정도로 이상한 사람은 직구 시속 160km짜리 몸 안쪽 깊은 볼과 같다.

피해야지.


최대한 안타까운 표정을 짓고 동정의 목소리를 장착했다.


“아아··· 그런데 지금은 알바생 자리가 꽉 찬 걸로 알고 있어요. 그래서 면접은 힘들 것 같아요.”


그러자 여자는 눈을 반짝였다. 정말 무서운 점은 여자의 눈이 상당히 탁하다는 것에 있었다.


“알바 자리가 비면 면접을 볼 수 있다는 건가요?”


과장 하나 안 보태고 오줌 지릴 뻔했다.

영화에 나오는 사이코패스 연기는 다 가짜였다.

이게 진짜 미친 광기에 젖은 사이코패스지.


어우 눈 탁한 것 좀 봐.


저 눈빛이나,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며 뭔가 각오를 다지는 모습이 상당히 무서웠다.

알바 자리? 없으면 죽여서 만들면 되잖아? 라고 말하는 것 같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게···


나에게도 생존 본능이라는 것이 있었나 보다.

입이 저절로 그럴싸한 말을 뱉어내기 시작했다.


“그, 그럼. 사장님께 따로 말씀드려 놓을게요! 그때 오면 다시 얘기하시죠. 제가 권한이 없어서요. 저도 일개 알바생일 뿐이거든요.”


나는 별 볼 일 없는 알바생일 뿐이다. 면접을 볼 권한조차 없는 말단 직원이라는 걸 인지시키자 그제야 그녀도 조금 망설이는 태도를 보였다.

바로 지금이다. 쐐기를 박아야 한다.


“그럼 오늘은 돌아가시고 내일··· 음, 내일모레쯤 다시 와주세요!”


왜 굳이 이틀 뒤냐 물어볼 사람이 있을까 싶어 설명하자면, 나는 그날 출근을 하지 않는다.

미안하다. 주말 알바생.

나부터 살아야지.


“안 돼요.”


놈은 내 완강한 태도에 결국 굴복하··· 지는 않았다.


“집에 어린 동생이 있어요. 당장 내일 먹일 분유값이 필요해요···”


어라. 이러면 얘기가 좀 다른데.


녀석은 동정심 호소 공격을 시전했다.

효과는 굉장했다!


여자의 표정은 정말 간절한 사람의 그것으로 변해 있었다.

호소력 짙은 목소리와 표정을 보니 걱정이 앞섰다. 매뉴얼이고 나발이고 만약 돈이 절실하게 필요해서 일을 하기 위해 온 사람이면 어떡하지?


뭔가··· 눈앞의 여자가 되게 불쌍해 보이며 측은지심이 들었다.

차라리 내 돈이라도 줘서 동생 분유값으로 쓰라고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돈이 없어요···”


간드러지는 목소리가 귓가를 간질이며 동시에 머리가 핑 돌았다.


“뭐, 뭐야··· 왜 이래.”


순간 휘청이며 카운터를 짚는 와중에도 여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신세 한탄과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한 말을 이어 나갔다.


“아빠는 돌아가시고··· 엄마는 집을 나갔어요. 집엔 어린 동생하고 저밖에 없어요. 동생과 저는 매일 같이 라면으로 끼니를 때워요··· 저라도 돈을 벌지 않으면 큰일 날 거예요.”

“저런···”


정말 눈물 없이 듣기 힘든 슬픈 이야기였다.

다큐멘터리로 내보내면 수많은 천사의 후원이 쏟아지지 않을까 싶을 정도의 안타까운 스토리에 눈물이 절로 고였다.


어린 동생이 먹을 분유와 라면을 사기 위해···


“음?”


뭔가 이상한데.

분유랑 라면을 같이 먹을 수 있는 나이대가 존재하던가?

현실적인 생각에 정신이 살짝 돌아왔다.


“왜요?”

“동생이 몇살이죠?”


여자는 잠깐의 망설임도 없이 당당하게 대답했다.


“말씀드렸잖아요. 스무살이라고. 곧 대학에 들어가요. 등록금이 필요해서 알바를 해야 돼요. 저라도 누나로서 힘내야죠.”

“네? 아까는 분유를 먹일 어린 동생이라면서요? 동생이 많나요?”


동생이 여러 명인가 싶어 묻자, 여자는 먼지 낀 옷을 쥐고 있던 손을 풀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제가요? 언제요? 제 동생은 한명이에요! 초등학생!”


이 여자가 무슨 소리를···


딱.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자꾸 헷갈리시나 보네요?”


목소리가 들리고 시야가 울렁거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어지러움이 살짝 가시고 고개를 들자 이쪽을 진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여자가 있었다.


“이젠 이해하셨죠?”


고운 목소리에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분유를 먹는 어린 동생이 아니라 라면에 분유를 타 먹는 초등학생 같은 대학생이었던 것 같다.


응. 그랬던 것 같아.

가족에 헌신하는 이런 여자를 의심하다니. 난 정말 나쁜 놈이구나.


머리에 든 정보가 뒤죽박죽 섞이는 기분이 들었다.


라면? 분유? 대학생?

음···


뭐가 맞는 건진 모르겠지만, 의심하지 말자!

나도 참. 의심이 많아서 탈이란 말이지. 그냥 믿자!


여자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자신이 얼마나 불쌍한지에 대한 한탄이 주를 이뤘다.


“그리고 아빠가 엄마를 죽이고···”

“부모님 두 분 다 아프셔서 일을 못 하는 상황이라···”

“아버지는 택시 드라이버···”


멍한 기분에 여자의 말이 계속 들렸다.

그녀의 말에 따르자면, 한 가정에서 아버지가 세 번 죽고 엄마가 네 번 죽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다.

심지어 서로 죽이기까지!


부모가 두 명이라는 건 편견이었구나.

정말 어려운 삶을 살았겠구나···


뭔가··· 이어지는 나긋한 목소리를 몽롱한 기분에 들으니 잠이 솔솔 몰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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