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이 울리는 스마트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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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4.08.16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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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3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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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2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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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PC방. 매뉴얼(5)

DUMMY

머리가 빙글빙글 도는 기분이 들었다.

어지러운 와중에 느끼는 감정은 감탄이었다.

동생을 위해 헌신하다니. 대단하다.


그리고 한편으론 동정심이 잇따랐다.

불쌍한 여자··· 그냥 내 자리를 내주고 알바 그만둘까··· 하는 생각이 마구 샘솟았다.


“알바를 그만둔다고요? 저 때문에 그렇게까지 안 하셔도 되는데···”


어라? 내가 말을 했던가?

신기하게도 입 밖으로 말을 내뱉지 않았는데 여자의 대답이 들렸다.


의아한 표정으로 여자를 바라보자, 왜 그러냐는 듯한 표정으로 마주 본다.


좋은 게 좋은 거겠지. 말하지도 않고 소통할 수 있으면 편하고 좋지 뭐.


뭐, 아무튼 나처럼 몸 건강한 사람은 다른 일도 많다.

꼭 PC방 알바여야 하는 이유는 없지.


내 자리를 주자!


“어머나, 그렇게까지 해준다니 고마워요. 그럼 지금 당장 저 문으로 나가면 돼요!”


그렇게 말한 여자는 이상하게도 출입문이 아니라 카운터 안쪽 주방에 딸린 창문을 가리켰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싶어 창문과 여자를 번갈아 쳐다봤다.

그러자 여자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Why not?”


아아. 왜 안 되냐고? 뜬금없이 웬 영어인가 싶었지만, 금세 이해했다.

그런데 사람이 5층에서 떨어져도 괜찮은 건가?


“괜찮아요.”


응, 괜찮은가 보다. 저 여자가 저렇게 말한다면 맞겠지.

저 여자는 모르는 게 없는 전설 속에 내려오던 척척박사임이 틀림없다. 내가 모르는 것조차 이렇게 간단하게 대답해 주지 않는가!


그녀의 말에 당연히 수긍하며 천천히 주방에 딸린 창문으로 걸음을 옮겼다.


띠링!


그 순간 스마트폰에서 알림이 울려 걸음을 우뚝 멈춰 세웠다.

갈 때 가더라도 폰 잠깐 보는 건 괜찮잖아?


알림의 정체는 데스코드였다.


[남개: 당장 펜 들고 허벅지 찔러.]


뭐야? 허벅지를 왜 찔러?

녀석은 뜬금없이 자해하라는 채팅을 보냈다.


[남개: 퇴근할 때 지켜야 하는 너희 PC방 루틴이잖아. 찔러!]


잔뜩 성난 칼 든 고구마 이모티콘을 날리며 자해를 종용하는 남개였다.

근데 이모티콘 귀엽네.


근데 얘는 뭔 개소리를 이렇게··· 음?

으음··· 듣고 보니 내가 퇴근 전엔 항상 허벅지를 찔렀던 것 같다.


사장님이 시켰든가 아니면 매니저 형이 하라고 했었나 그럴 거다.


누가 시켰든 어떤가. 어차피 해야 하는 일이다.

아까까지 PC방 알바 괴담에 줄을 긋던 펜을 들었다.


그리곤 망설이지 않고 주먹에 펜을 쥐고 곧바로 허벅지에 찔렀다.

군대에서 배웠던 신경작용제 해독제 키트 사용법처럼 망설임 없이 세게!


-푹!


“아아악!”


강렬한 통증을 동반한 짜릿함이 머리를 스쳤다. 그와 동시에 몽롱했던 정신에 번개라도 친 듯 생각을 둔하게 만들던 구름이 걷혔다.


멀쩡해진 머리를 부여잡으며 처음으로 한 생각은 바로.


이 시팔. 미친년이.

멀뚱히 나를 쳐다보고 있는 여자에 대한 욕이었다.


뭔진 몰라도 저년이 무슨 짓을 했고, 남개가 내게 도움을 준 건 알겠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지만 사람 정신까지 지배하는 마법사 같은 년에게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저기요.”

“음? 안 가는 건가요?”


가긴 뭘 가. 썅년아!

가라 그러면 내가 옳다구나 좋다고 뛰어내리겠냐?


나는 대답 대신 펜이 박힌 채 피가 줄줄 흐르는 허벅지를 가리켰다.

이게 주사도 아니고 주삿바늘의 몇십 배나 되는 굵기의 일반 펜인데 상처가 얕을 리 없었다.


정말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이 이런 거구나 실감을 하며 여자를 노려봤다.


하지만 노려본다고 해서 방법이 나오지는 않았다.

에휴. 방법이 없다면 입이나 털자.


“저기요. 아! 아오, 아파라. 이거 보이세요?”

“그러게요. 갑자기 허벅지를 왜 찔러요? 아프겠다.”


동정이라곤 단 1그램도 담겨있지 않은 목소리에 분노가 치밀었다.


진정하자. 상대는 이상한 최면 거는 미친년이다.


눈앞에서 손가락을 오므리며 자체 최면을 걸었다.

자··· 지금부터 우리 PC방은 악덕 사장의 지휘 아래 운영되는 블랙 기업이다.

블랙 기업이다··· 블랙 기업···


얼굴 한 번 본적 없는 사장님은 최저시급도 안 주는 미친 악덕 사장이다···

매니저 형은 여자 알바생에게 찝쩍대기만 하고 남자한테만 일을 시키는 또라이다···

다른 알바생들은 폐급만 있어서 뒷타임 알바생에게 짬만 던지는 놈들뿐이다···


침고로 남개의 말에서 깊은 영감을 받았다.


퇴근 루틴으로 허벅지를 찌르게 하는 직장? 이건 뭐 블랙 기업 수준이 아니라 경찰을 불러야 할 것 같긴 하지만 말이다.


“이건 저희 PC방의 루틴 중 하나에요.”

“루틴?”

“하아··· 잘 들으세요. 듣자 하니 돈이 필요한 것 같은데, 여긴 안 돼요.”


-찌익.


미친 척을 하기 위해 피가 말라가는 허벅지 상처에서 펜을 뽑았다.

펜을 박았다 뺀 허벅지에서 강렬한 통증이 느껴졌다.

쓰읍··· 더럽게 아프네. 이거 바로 병원 안 가봐도 되는 건가?


“후···”


안타까운 척, 통증에 의한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러자 여자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물었다.


“왜, 왜요? 여기가 그렇게 별로예요?”

“네. 돈이 필요하면 다른데 알아봐요. 이거 상처 보이죠? 이거 저희가 퇴근 전에 꼭 해야 하는 일이에요.”

“볼펜으로 허벅지를 찔러요···? 왜요? 그런 게 무슨 루틴이에요?”


그녀의 물음에 어이없다는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에 나도 잘 모른다는 제스처로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어휴, 저 같은 말단이 뭘 알겠어요. 그냥 사장 그 미친 새끼가 시키니까 하는 거지. 그거 알아요? 여기 최저 시급도 안 주는 거?”

“네에? 예전에 공고에서 봤을땐 최저는 맞춰 주는 걸로···”


더 말을 이어가지 못하게 손가락을 탁 튕기며 치고 들어갔다.


“그래요! 그거! 저도 처음엔 최저는 주는 줄 알았죠. 그런데 임금 협의 어쩌구 하면서 처음 수습 기간 1년 동안은 못 준다고 하지 뭡니까? 사회 초년생이 뭘 알겠어요. 그냥 ‘네. 알겠습니다.’ 한 거죠.”

“그, 그러면 지금은요? 지금도 못 받고 있어요?”

“에이~ 당연하죠. 제가 이번 달에 받는 돈이 아마···”


카운터 서랍에 있던 계산기를 꺼내 대충 탁탁 두드렸다.

지금 최저시급이 이 정도니까··· 대충 주에 몇시간 일한다고 치고···


-타다닥! 탁! 탁!


그녀는 신들린 손가락 무빙으로 계산기를 두드리는 모습을 홀린 듯 바라보고 있었다.


-탁!


마무리로 나누기 2를 입력하고 = 버튼을 누르면 끝.

왜 굳이 나누기를 하냐 하면··· 돈이 적어 보여야 하니까.


그녀에게 계산이 끝난 화면을 보여주고 재빠르게 수거해 다시 카운터 서랍에 넣었다.


숫자를 정확히 확인하지는 못했겠지만 대충 엄청 적다는 것 정도는 봤으리라.


“자! 봤죠! 이번 달에 내 수입을! 이거면 대학 등록금은 턱도 없고 분유 몇 통 사면 라면도 못 사는 금액이에요!”

“그러네요···”


잠시 멍하게 나를 보던 여자가 정신을 차렸는지 반박을 시작했다.


“그으···래도! 저는 괜찮아요. 일만 할 수 있으면 돼요.”

“허허··· 굳이 이 지옥을 들어오려고 하네.”


안타깝다는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자, 또 뭐가 있는가 싶어 침을 꼴딱 삼킨다.


“하··· 이것까진 말 안 하려고 했는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스마트폰의 앨범에 들어가 예전 회식 때 찍은 단체 사진을 화면에 띄워 보였다.


“잘 보세요.”


그러자 고개를 쑥 내밀고 화면을 보는 여자.


“여기를 잘 보면··· 이거! 이 산적 같은 사람이 여기 매니저거든요? 그런데 상당히 악질이에요.”


악질이라는 말에 맞춰 화면을 확대했다.

화면엔 매니저 형과 형수님이 나란히 앉아 있는 장면이 비쳤다.


물론 저때야 둘은 아무 사이 아니었지만, 얼마 안 있어 둘은 연인 사이로 발전하게 되며 초스피드로 결혼까지 하게 된다.


형, 미안해. 조금만 팔게. 형수님도요.

생존에 있어서 구라는 필연적인 것이다.


오직 혼이 담긴 구라만이 나를 구제할 수 있다.


“자, 이거 보이죠? 여기 이 사람은 오래전에 함께 근무했던 여자 알바생이에요. 보다시피 한 미모하죠?”


끄덕끄덕.

이제는 내 말을 진중한 태도로 듣는 꼴이 같잖았지만, 살기 위해서 항변을 계속했다.


내 팔자야···


“이 사람. 왜 그만둔지 알아요?”


도리도리.

고개를 젓는 그녀의 귓가에 얼굴을 가져다 댔다.


“이 사람··· 우웁!”


어우 씹! 이게 무슨 냄새야!

지저분한 머리에서 나는 꼬릿한 하수구냄새에 헛구역질을 하며 황급히 뒷걸음질을 쳤다.


뒤로 물러나 소매로 코를 막자, 향긋한 섬유유연제 향기가 코 안 가득 풍겼다.


“쓰읍··· 하아···”


변태처럼 내 옷의 향을 맡길 수차례. 정신이 퍼뜩 들었다.


“...”


소매에 파묻은 고개를 들자 여자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서늘한 눈빛이 폐부를 찌르는 기분이었다.


···조졌나?

한순간의 실수에 끝날 것 같은 상황에 식은땀이 폭발적으로 등허리를 적시기 시작했다.


음, 조진 것 같은데?

절망적인 상황과는 반대로 입은 뭐라도 말하려고 준비를 마쳤다.


“제가 미인한테 알러지가 있어서요.”


이 미친놈이 뭐라는 거야? 두려움에 머리가 돌았나보다.

미인은 얼어 죽을 미인?


하지만 내 절망감과는 반대로 그녀의 반응이 어딘가 이상했다.


내 말을 들은 그녀는 갑자기 몸을 배배 꼬며 머리를 귀 뒤로 넘기는 게 아닌가!

물론 떡진 머리 탓에 머리카락 가닥이 아닌 덩어리로 넘어가긴 했다.

어우, 더러워 진짜.


얼씨구. 얼굴도 붉어졌네.

여기까지만 봐도 그녀의 반응은 전형적으로 부끄러워하는 여자의 모습이었다.


거기에 혐오감보다는 돌파구를 찾았다는 생각에 들떴다.

마치 어둠뿐인 동굴에서 구조대의 후레쉬 빛을 본 기분이랄까.


“그쪽처럼 상당한 미인한텐 남자가 꼬이기 마련이죠. 그래서 말인데.”


잠시 내려두었던 스마트폰을 다시 들어 보이며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사람 여기 매니저에요. 근데 악명이 높아요. 예쁜 여자만 보면 찝쩍대고 찔러보고. 무슨 말인지 알죠?”

“모, 모르겠는데요!”


곧장 들려오는 대답에 소름이 끼쳤다.

예쁘다는 말 한번 들었다고 목소리도 바뀌었다.


새침데기 같은 표정으로 나를 보는 여자의 모습은 교태라도 부리는 부끄럼쟁이 숙녀가 되어 있었다.


“아··· 네. 그··· 아무튼!”


속에서 올라오는 욕지거리를 가까스로 참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이 매니저가 찝쩍대는 거, 참을 수 있어요?”

“그 정도야 뭐··· 저한테 그랬던 사람이 없어서···”


경험이 없으니 얼마나 무서운지도 모르는 거군.

오케이. 충격요법으로 간다.


일단 1타.


“이 사람 얼굴 안 보여요? 면도 안 해서 드러운 수염 좀 봐. 아주 그냥 추남이죠? 이런 사람이 코털 정리 하나도 안 한 채로 그 쪽한테 다가가서 머리라도 쓰다듬어봐요. 코딱지 있죠? 으, 왕건이 코딱지가 그쪽 얼굴에 튈걸요. 더럽다 더러워.”


여자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진다. 이 정도로는 아직 턱도 없다.

2타 들어간다.


“추남이 무서운 게 뭔지 알아요? 정도를 몰라요. 찝쩍대다가 안 먹혀서 몸이라도 더듬으면 어쩔 거예요?”


입이 조금 벌어진다. 먹이고 있다는 증거였다.

여기서 3타.


“단둘이 밥 먹자고 그러고. 둘이 술이라도 먹다가 쉬었다 가자면서 모텔촌을 서성이고. 그러면 버틸 수 있어요?”


아 미친. 상상했다.

매니저 형이 그런 사람은 아니지만, 만약 진짜로 저런 행동을 취한다면···

아니다. 그 전에 형수님한테 두들겨 맞고 쫓겨나겠지.


고개를 저으며 마무리 4타!


“매니저가 뭡니까? 사장 대신에 가게를 관리하는 사람이에요. 말 안 듣는다는 핑계로 직권 남용해서 자르기라도 하면 어쩝니까? 뭘 어째. 일 그만둬야지. 에이! 나였으면 그냥 다른 일 찾아봤다. 널린 게 PC방이고 일자린데. 나처럼 시간 낭비 하지 말라고 주는 충고에요.”


후··· 너는 이런 거 하지 마라.


안타까운 표정을 지은 채 되레 성을 내며 집어치우라는 듯 얘기하자 여자의 표정이 완벽하게 찌푸려졌다.


끔찍한 얘기를 들은 여자는 가만히 곱씹어보더니 이내 새파랗게 질린 얼굴이 되었다.


아마 저 여자에게 이 PC방은 악마 소굴보다 더한 곳으로 변모되었을 것이다.


악덕 사장에, 여자에 미친 매니저에.

허벅지를 제 손으로 찔러 피가 철철 난 미친 알바생까지.


여자는 울먹거리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으으··· 그냥 갈래요··· 다른 일 찾아볼게요···”


음··· 공격이 좀 세게 들어갔나?

내가 가만히 바라만 보고 있자 여자는 출입구를 힐끔힐끔 쳐다봤다.

당장이라도 도망갈 기세인 여자에게 말했다.


“아뇨. 일해보실래요? 혹시 모르죠. 괜찮을 수도.”


악마가 순진한 소녀를 꼬드기는 뉘앙스로 은근히 설득했다. 여자는 정신을 차렸는지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아, 아뇨! 아아! 집에 가스 불 켜놓고 나왔네! 다, 다음에 다시 올게요!”


어딜 도망가?


“아이고! 그럼 빨리 가셔야지! 그런데 이름하고 전화번호나 좀 적고 가세요.”

“그, 그건 왜요?”

“아마추어처럼 왜 이러실까? 그걸 알아야 연락을 드리죠!”

“됐어요! 괜찮아요!”


뒷걸음질을 치며 출입구 쪽으로 향하는 그녀에게 한 걸음 다가갔다.


“에이, 그러지 말고. 집 주소라도 알려줄래요? 나중에 찾아가게.”

“이러지 마세요!”


딸랑.

여자는 몸을 돌려 문을 박살 낼 기세로 열고 나갔다.


어지간히 무서웠나 본데?


“...”


자, 이러면 이제 누가 나쁜 놈이지?

나네?


뭔가 뼈를 주고 살을 취한 기분이었다. 괜히 신고당하는 건 아니겠지···?

여자가 나간 문을 조용히 닫고 돌아와 카운터에 앉았다.


꿉꿉했던 주변 향기가 말끔해져 있음에 의아한 순간, 허벅지에 눈길이 갔다.


“어라?”


볼펜을 찔렀던 부분을 더듬었다.

통증은커녕, 찢어진 바지 사이로 흘렀던 핏자국은 온데간데 흔적도 없이 사라진 상태였다.


어째서인지 구멍 뚫린 바지도 어느새 원래의 상태로 돌아왔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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