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당파 무한회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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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오개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8.17 14:16
최근연재일 :
2024.09.19 11:37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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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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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9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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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장사 한 번 같이 해보실 생각 없어요?

DUMMY

금진소는 객청 중에서도 가장 크고 좋은 곳으로 안내받았다.

얼핏 보기엔 도문답게 수수하고 정갈한 방이었으나, 금진소의 눈은 그곳에 놓인 장식품들의 가치를 놓치지 않았다.

벽에 걸린 족자도, 장식품으로 놓인 도자기도, 무엇 하나 귀하지 않은 것이 없다. 이것들 중 몇 개만 제값을 주고 팔 수 있다면, 평범한 양민들은 반년은 일하지 않고 놀고먹을 수 있을 터였다.


“무당은 무당이라······.”


겉으로 보기에도 화려하고 번쩍거리는 금은보화에 무슨 가치가 있으랴.

누구의 눈에나 좋아 보이는 것은 쓸모없다. 황금은 상인이 아닌 그 누구라도 팔 수 있다.

아무도 발견하지 못한 보물을 찾아내어 비싼 값에 팔아치우는 것. 그것이야말로 금진소가 생각하는 상인의 직분이었다.


터벅. 터벅.


저 멀리에서 가벼운 발소리가 들려왔다. 금진소는 방안을 둘러보던 시선을 거두고 문쪽을 응시했다.

닫혀있던 문이 벌컥 열리며 그도 잘 아는 얼굴이 불쑥 들어왔다.


“찾으셨다고요, 금 대인?”

“소도장.”


만난 것은 단 하루, 딱 한 번 뿐이었지만, 금진소는 눈앞의 이 소년이 평범한 아이가 아님을 확신하고 있었다.

무인으로서의 재능이 어떤지는 모른다. 그의 딸을 구해준 은인이라지만, 그 현장을 직접 본 것도 아니니 이 아이의 실력을 확인할 길은 없었다.

얼마 전 뜬금없이 무한에 있는 금와상단의 지부를 닦달해 쇠로 된 그물을 잔뜩 구해갔다는, 그리고 그걸 이용해 동호의 수적들을 모조리 소탕했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그 역시 어디까지나 소문일 뿐.

금진소는 사건의 전모를 명명백백히 밝혀내기 전까진 판단을 보류해 둘 생각이었다.

조약돌을 옥석이라고 착각해 덤탱이를 쓰는 일은 없어야 할 테니까.


“제가 바쁘신 분을 괜히 부른 것은 아닐까 걱정되는군요.”

“에이. 겨우 삼대제자 나부랭이가 바빠봤자죠. 설마 금와상단 상단주님보다 바쁘려고요.”


무하는 천연덕스레 대답하며 금진소의 맞은편에 앉았다.

손에 쥐고 있던 극현검을 검집째로 탁자 위에 올려놓자, 금진소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검에 닿았다.

금진소는 무인은 아니지만, 쇠를 유통하여 이만큼의 부를 쌓아 올린 사내였다.

검을 보는 눈만큼은 어지간한 무인보다 정확했다.


“좋은 검이군요.”

“네에. 어쩌다 보니 이런 검이 생겼네요. 전에 만났을 때도 이거 허리에 차고 있었는데.”

“그땐 도장을 살피기에 바빠 검까지 볼 겨를이 없었지요.”


금진소는 무하의 앞에 찻잔을 놓고 직접 차를 따라주었다.

무하는 향을 즐기는 둥 마는 둥 대충 찻잔을 비운 뒤, 금진소를 빤히 쳐다보았다.


“저는 무슨 일로 부르신 거예요? 곧 장문인께서 오실 텐데.”

“일단 제가 따로 도장에게 보고해야 할 일이 있지 않습니까.”


금진소는 품에서 작은 종잇조각을 꺼내 흔들었다. 일전에 무하가 그에게 건넸던 것이다.


“여기 적혀있는 물건들은 대부분 구했습니다. 흔히 구할 수 없는 약초가 몇 가지 있어, 그것은 좀 더 시간이 걸리겠지만요.”

“정말요? 엄청 빠르시네요. 아직 몇 달 되지도 않았는데.”

“아무래도 몰래 받기를 바라실 것 같아서, 오늘 가져오지는 않았습니다. 이 근처에 있는 금와상단의 안가에 숨겨놓을 테니 편할 때 와서 가져가시지요.”

“역시 척하면 척이시네요.”


무하는 아이다운 얼굴로 헤죽 웃으며 너스레를 떨었다.

천연덕스러운 그의 태도에 금진소 역시 빙긋 웃었다. 후덕한 그의 얼굴에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가 떠올랐다.


“헌데, 도장. 금와상단의 무한지부에서 이상한 보고가 올라왔는데 말입니다. 묘한 물건을 급히 구해가셨다고.”

“아, 맞다. 그것도 감사 인사를 드렸어야 했는데 깜빡하고 있었네요. 금와상단이 아니었으면 쇠그물 같은 물건을 그렇게 빨리 구할 수는 없었을 거예요. 덕분에 동호에 있던 수적들을 싹 쓸어 담았어요.”


무하는 빙그레 웃으며, 제 손으로 주전자를 집어 찻잔 가득 차를 콸콸 따랐다.


“그래도 수적들은 얼마 안 가서 다시 생기겠지만.”

“그건 또 무슨 말씀입니까? 들리는 소문엔 동호의 수적들을 모조리 소탕하고 수채까지 전부 불태웠다고 하시던데.”

“에이. 수채가 있어서 수적이 생기나요? 수적이 있으면 수채가 생기는 거지. 도적이야 누구든 마음만 먹으면 될 수 있는 거고요. 세상이 열린 이래로 천하에 도적이 없던 때가 있었나요, 뭐.”


조금 전까지 실실 웃던 무하의 얼굴에, 일견 씁쓸해 보이는 미소가 스쳐 지나갔다.

물론 무하가 정말로 수적의 창궐이 마음 아파 그런 표정을 짓는 것은 아니었다. 이는 어디까지나 상대의 흥미를 끌기 위한 연기일 뿐.

그리고 무하의 예상대로, 그의 표정을 본 금진소의 눈에 짧은 이채가 스쳤다.


‘아이다운 건지 어른스러운 건지 종잡을 수가 없는 아이로군. 한평생을 사람을 상대하며 충분히 닳았다고 생각했는데, 겨우 열다섯 먹은 아이의 속내를 짐작할 수가 없으니 원.’


무하의 작은 머리통 속에 수백 년에 달하는 기억이 쌓여있음을 알 수 없는 금진소는, 그저 이 아이를 기이하게 여길 수밖에 없었다.


‘정말로 아무런 생각이 없거나, 반대로 내 안목 정도로는 깊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그릇이 크거나······.’


금진소가 홀로 조용히 무하를 가늠해 보는 동안, 순식간에 찻잔을 다시 비운 무하가 다시 아이다운 표정을 지으며 웃었다.

조금 전까지 씁쓸하고 공허해 보이는 표정을 짓고 있던 얼굴에, 자신만만하고 장난기 서린 미소가 떠올랐다.


“뭐, 수적이 다시 생겨도 제가 알 바는 아니죠. 저는 이미 한 번 뿌리째로 놈들을 뽑아줬어요. 그 다음에 또 생기는 놈들은 거기 근처에 사는 사람들 탓이지, 호북 반대편에 있는 우리 무당파 탓이겠어요?”

“어차피 소용 없는 일인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요란한 판을 벌였다? 무당은 책임지지 않아도 되니까?”

“네, 뭐. 수적이 또 나오면 나오는 대로 일전에 수적을 소탕해 준 무당에 대한 평가는 더 올라갈 거고. 그러다가 도와달라는 연통이라도 오면 또 제가 가서 손봐주고 오면 되고.”


상황이 좋아지면 좋아지는 대로, 나빠지면 나빠지는 대로, 무당파의 명성은 저절로 높아진다.

승리의 순간, 사람들의 가슴 속에 무당이라는 이름을 선명히 새겨넣은 덕분에.

무하의 계산속을 알아챈 금진소가 헛웃음을 지었다. 그 자체로는 별로 어려울 것도 없는 꾀였지만, 열다섯 먹은 어린 도사의 머릿속에서 나왔다고 생각하니 제법 발칙하게 느껴진 탓이다.


‘본래 강호인들의 협행엔 이런저런 장삿속들이 깔려있다는 건 알고 있지만······.’


무인들이 순수한 의협심만으로 위험을 무릅쓰고 사파나 악적들과 싸운다고 생각하는 이는 없다.

순진한 양민들 중에는 더러 그렇게 믿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장사치 중에선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없을 터였다.


“허허. 무당이 천하제일 도문이라는 사실은 내 익히 알고 있었지만, 도사인 소도장께서 상도(商道)에도 통달해 계실 줄은 몰랐습니다.”

“어디 상도뿐이겠어요? 무도, 다도, 주도, 전부 다 우리 무당이 최고죠.”


무하의 너스레에 금진소는 웃음을 터트렸다. 그와 함께 낄낄 웃던 무하가, 몸을 앞으로 숙이며 목소리를 낮췄다.


“그래서요, 금 대인. 혹시 그 상도에 통달한 도사놈하고 장사 한 번 같이 해보실 생각 없어요?”

“장사라고요?”

“네. 제가 생각해 둔 그림이 좀 있는데······. 마음 같아선 저 혼자 날름하고 싶은데, 이건 저 혼자 힘으론 할 수가 없는 일이라서요. 능력 있고 믿을만한 상단의 도움이 필요해요.”


무하의 얼굴엔 여전히 장난스러운 미소가 떠올라 있었지만, 눈빛만은 진지했다.

금진소 역시 살찐 얼굴 가득 띠고 있던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거두며 무하를 쳐다보았다.

지금까지야 딸이 졌던 신세를 갚기 위해 온 손님의 입장이었지만, 사업 이야기가 나오면 상황이 좀 달라지지 않겠는가.


처한 상황과 위치가 달라진다면 상대를 대하는 태도 역시 달라져야 하는 법.

무당의 제자를 대하는 양민의 태도에서, 호북에서 손에 꼽히는 대형 상단의 상단주로. 금진소를 감싼 공기가 순식간에 달라졌다.

그의 작은 눈에서, 제법 형형한 안광이 쏟아졌다.


“소도장께서 무슨 말씀을 하실지는 짐작도 가지 않습니다만, 그런 이야기를 나누기엔 때와 장소가 적절치 않은 것이 아쉽군요. 곧 무당의 장문인께서 오실 텐데, 그런 중요한 이야기를 번갯불에 콩 볶듯 해치울 수는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자세한 이야기야 나중에 차근차근하면 되죠. 핑계 하나 만들어서 절 밖으로 불러주시면 되잖아요. 금와상단으로 초대를 한다든지, 심부름꾼으로 지목을 한다든지.”

“흐음.”


금진소는 짧게 고개를 끄덕이며 무하를 빤히 응시했다.

그는 보따리 하나 짊어지고 맨손으로 시작한 상단을 호북 오대상단으로 끌어올린 사내였다.

일전에야 그의 여식이 친 사고 때문에 크게 놀라 경황이 없었으나, 지금의 그는 맨정신이다. 상인으로서의 감각과 본능이 기름칠한 바퀴처럼 팽팽 돌아가고 있었다.


“좋습니다. 멀지 않은 날에 소도장을 손님으로 초대하도록 하지요. 아무래도 소도장께선 예사 분이 아니신 듯하니,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올 것 같습니다.”

“헤헤. 그렇게 재밌진 않을 텐데요. 아마 듣자마자 골이 아프실 걸요? 제가 일을 좀 크게 벌이는 걸 좋아해서.”

“어이쿠. 이거 벌써부터 겁이 나는군요. 그럼 제가 마음의 준비라도 할 수 있게, 대략적인 단서라도 슬쩍 알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무하는 씨익 웃으며, 탁자 위에 손을 짚었다. 그의 손가락 끝이 찻주전자의 표면에서 흘러내린 물에 닿았다.

손끝으로 내력을 불어넣자, 탁자 위에 고인 물방울이 꿈틀대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치 의지를 가진 생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손바닥만 한 넓이로 퍼진 물웅덩이. 금진소는 그 조그마한 물 덩어리가, 호북의 지도 형상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금와상단은 호북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상단이죠. 호북 안에 있는 물건이라면 뭐든 사흘 안에 구해올 수 있을 만큼 연락망도 탄탄하게 구축되어 있고요. 그 실력은 제가 쇠그물을 구하면서 직접 겪어봤으니 잘 알아요.”

“그렇게까지 금칠을 해주시니 듣기가 민망합니다.”

“제가 그린 그림도 기본적으론 그것과 별로 다르지 않아요. 다만······.”


무하의 손끝에서 물웅덩이가 한 차례 더 넓게 퍼져나갔다.

호북의 지도였던 것은, 어느새 중원 전역의 지도로 변해있었다. 나무로 된 탁자 위에 젖은 자국이 남았다.


“그런 연락망을 중원 전역으로 확장하는 거죠.”

“······.”

“호북 오대상단이 아니라 중원의 제일상단이 될 수 있게 만들어 드릴게요.”


허무맹랑하게까지 들리는 무하의 말에, 금진소는 대답조차 잊고 그를 빤히 쳐다보기만 했다.

어쩐지 비웃을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무하가 한 말이 단순한 객기나 농담이 아니라, 진심을 다해 한 말이라는 것이 느껴진 탓이다.


당황하여 굳어버린 금진소를 보며 무하는 빙긋 미소 지었다.

중원 전역을 아우르는 거대하고 튼튼한 연락망과 유통망.

마교와의 전쟁을 대비하여 군자금과 물자를 마련하기 위한, 동시에 전쟁 중의 보급선을 구축하기 위한 첫 번째 준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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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사 한 번 같이 해보실 생각 없어요? NEW 16시간 전 61 2 12쪽
25 천재 아닌 괴물 24.09.18 108 2 12쪽
24 실수 (3) 24.09.17 120 2 12쪽
23 실수 (2) 24.09.14 121 2 14쪽
22 실수 24.09.13 122 2 12쪽
21 동호의 작은 영웅 24.09.12 131 2 11쪽
20 동호에서 (4) 24.09.11 141 2 14쪽
19 동호에서 (3) 24.09.10 126 3 14쪽
18 동호에서 (2) 24.09.09 150 4 13쪽
17 동호에서 24.09.08 168 3 13쪽
16 무한으로 (4) 24.09.07 164 5 14쪽
15 무한으로 (3) 24.09.06 157 6 14쪽
14 무한으로 (2) 24.09.05 161 5 14쪽
13 무한으로 24.09.04 195 5 14쪽
12 연습은 미리미리 24.09.03 194 3 13쪽
11 금와상단 (3) 24.09.02 188 4 16쪽
10 금와상단 (2) 24.09.01 184 5 13쪽
9 금와상단 24.08.31 218 4 15쪽
8 극현검(2) 24.08.30 218 6 15쪽
7 극현검 24.08.29 221 4 13쪽
6 무극동 24.08.28 235 4 15쪽
5 비무회(2) 24.08.27 228 5 14쪽
4 비무회 24.08.26 226 5 15쪽
3 사부님 24.08.25 245 7 12쪽
2 우선은 심공부터 +2 24.08.24 282 7 14쪽
1 마지막 시작 +1 24.08.23 374 6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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