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며
열 평 남짓한 카페가 꽉 찼다.
숨 막힐 듯한 정적이 흘렀다.
난 진정 좀 하라는 의미로 캐모마일차를 내갔다.
차만 마시는 건 심심할 테니 쿠키도 몇 개 담아갔다.
“이게 바로 그 차로군요.”
“아니요. 이건······.”
내가 차에 관해 설명하려고 할 때.
누군가가 끼어들었다.
“맛도 좋고 몸에도 좋은 차입니다. 가온 길드장님은 처음 드시나 보군요.”
“하하. 나는 처음이지만 아들은 몇 번 마셔봤지.”
“몇 번. 그렇군요.”
뭔데.
뭔데 분위기가 이래?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은 후 여유롭게 차를 마시는 김검사.
그런 김검사를 어색한 웃음을 지은 채 노려보는 가온 길드장 유진철.
난 눈을 굴리며 분위기를 살폈다.
내 가게였지만, 남의 집에 온 듯 불편했다.
“음? 전에 마신 것과는 조금 다르군요.”
“일반 카페에서 그런 걸 팔기는 좀 그래서요.”
“뭐 아는 것처럼 굴더니, 하나도 모르는구만.”
아니, 왜 제 카페에 와서 이러십니까.
난 알 수 없는 신경전을 펼치는 두 길드장을 초조하게 지켜봤다.
싸울 거면 부디 멀리 나가서 싸워주길 바랐다.
여기는 많은 이들의 생업과 꿈이 담긴 곳이었다.
“저어, 두 분께서 어쩐 일로 오신 건지 알 수 있을까요?”
난 용기 내어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좌중의 시선이 일제히 내게 모여들었다.
대부분 랭커라 그런지 시선만으로 위축되는 느낌이었다.
“우리는 감사 인사를 전하기 위해 왔을 뿐이네. 저쪽은 왜 온 건지 모르겠지만.”
“저는 좋은 제안을 하러 찾아왔습니다.”
“제안? 어디서 새치기를······!”
“새치기라뇨? 감사 인사를 전하기 위해 오셨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건······!”
“그러면 감사 인사만 하고 가 보시죠. 저희는 비즈니스가 남아 있어서.”
그렇지 않습니까?
김검사가 그런 얼굴로 나를 돌아봤다.
“그으······ 제안은 거절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거절했다지 않나! 자네 설마 힘만 믿고 은인을 겁박하려는 건 아니겠지? 그건 내가, 우리 가온이 용서하지 못하네!”
갑자기 급발진하며 나서는 가온 길드장.
솥뚜껑 같은 손으로 테이블을 내리쳤다.
“흐억, 내 테이블.”
“겁박하는 건 제가 아니라 가온 길드장님이신 것 같군요.”
“이건 그, 미안하네.”
곰 같은 덩치와 어울리지 않게 축 처진 어깨.
아버지의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자식들이 나섰다.
“죄송합니다, 은인. 아버지께서 성격이 불같으셔서······. 감사 인사를 전하러 온 건데, 일이 이렇게 되고 말았네요.”
“감사의 선물과 함께 아버지께서 실수한 데에 대한 사과의 선물도 함께 드리겠습니다.”
“아니, 뭐 그렇게까지.”
이 사람들 내 스킬에 대해 단단히 착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이거 어떻게 넘어가지?
내 스킬은 저들이 굽실거릴 만큼 대단한 게 아니었다.
운 좋게 보스룸에 문이 생겨 위험에 처한 사람을 구했을 뿐이고.
운 좋게 공략하기 좋은 자리에 문이 열렸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런 착각을 하다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우선 감사의 의미로 준비한 선물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그래, 저 선물만 받고 돌려보내자.
가온 길드장의 딸, 유하연이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스마트 패드였다.
사용감이 있는 걸 보니 저걸 선물로 준다는 의미는 아닌 듯했다.
“보라 길드의 비리를 밝혔습니다.”
“······네?”
예상치 못한 말에 귀를 의심했다.
난 유하연이 보여주는 패드 속 속보를 확인했다.
[보라 길드, 던전 관리법 위반 혐의 수천 건 적발.]
[길드 범죄와 연결된 재·정계 인사는 누구?]
[비각성자를 상대로 이뤄진 계획범죄.]
“이게 무슨······.”
난 유하연의 손에서 패드를 뺏어 들었다.
반사적인 행동이었다.
그 안에 나온 내용이 내 생각 이상이라.
다른 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버지의 죽음이 삼촌······ 그 자식이 계획한 거다, 이거야?’
아버지의 동업자.
그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카페를 대형 프랜차이즈로 키웠다.
카페에, 사업에 대해 알지 못했던 어린 난 평소 삼촌이라 부르고 따르던 그에게 카페의 모든 지분을 넘겼다.
대신 먹고살 만큼의 돈을 받아 아버지가 돌아가셨음에도 사는 데 어려움은 없었다.
물론 그 돈은 보라 길드에 사기당해 잃었지만.
카페는 아니었다.
내 손으로 아버지의 카페가 성장할 수 있게 넘긴 것이었다.
다른 사람의 손에서지만, 아버지의 카페가 커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게 좋았다.
내가 지분을 넘긴 게 헛된 게 아니라는, 내 결정이 옳았다는 증거인 것 같아 기뻤다.
그런데 이게 뭘까.
‘아버지의 죽음도, 카페를 가져간 것도, 이후 보라 길드가 내게 접근한 것도 다 그 인간의 계획이었다는 거지?’
내가 다시 지분을 내놓으라고 깽판이라도 칠 줄 알았던 걸까.
지분이 아니면 회사 내에 자리라도 내 달라고 할 줄 알았던 걸까.
왜 멀쩡히 살던 사람을 악의 길드의 노예로 만들어 버리지?
사기 계약으로 보라 길드에 잡혀 있던 나날이 스쳐 갔다.
반항도 하고, 빈틈도 노려 엿도 먹여보고.
온갖 고생 끝에 벗어나는 데 성공했다.
그러면 뭐 하나.
그렇다고 일어난 일이 사라지는 건 아닌데.
“이거, 다 사실입니까?”
“네. 뒷조사한 건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은인께서 어떤 것을 좋아하실지 알아보다가······.”
“뒷조사······. 하. 네. 그건 넘어가겠습니다. 넘어갈 건데.”
뒷조사했든 말든 상관없다.
오히려 고맙다.
저들이 조사하지 않았다면 난 평생 저들의 수작을 모르고 살았을 테니까.
“죄송합니다. 대신 그만큼 확실하게 처리하겠다고 약속드리겠습니다. 동생을 구해준 데에 대한 보답도 따로 하고요.”
“사과는 됐습니다. 그보다, 감사의 선물. 뒷조사가 전부인 건 아니겠죠.”
“아닙니다. 이건 인사하러 오는 데 빈손으로 올 수 없기에 드리는 선물입니다. 가온의 이름으로 관련자들이 처벌받을 수 있게 힘쓰겠습니다.”
“검사 길드도 돕겠습니다.”
4대 길드 둘이 도와주겠다는데, 그 인간 죽빵 한번 갈겨 볼까?
뒤처리는 끝장나게 해줄 텐데.
‘아니. 순간의 분노를 푸는 것으로 사용하기에는 아까운 인연이지.’
내 스킬을 대단한 것처럼 여기는 저들이 부담스러웠지만.
이참에 그냥 즐기기로 했다.
내게 유리한 쪽으로 착각해 주겠다는데, 굳이 거절할 필요가 있겠는가.
“도움은 감사히 받겠습니다. 그리고 선물, 이게 전부가 아니라고 하셨죠?”
난 유하연을 지긋이 바라봤다.
“네.”
“그러면 그 선물은 제가 고를 수 있겠습니까?”
“물론이죠.”
어떤 걸 요구하든 다 들어주겠다는 얼굴.
난 망설임 없이 원하는 바를 늘어놓았다.
***
“가셨던 일은 어떻게 됐습니까?”
길드로 돌아온 김검사가 갑갑한 넥타이를 풀며 의자에 앉았다.
고개를 젖힌 그가 답했다.
“마음이 급했던 것 같더군요.”
“네?”
“가온이 던전 공략하자마자 올 건 알았지만, 그렇게 철저히 준비했을 줄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원래라면 김검사도 이한을 공략하기 위해 최대한 준비하고 갔을 것이다.
한 번 실패했으니 더 철저히 준비했겠지.
그러나 가온의 던전 공략 소식에 여유를 부릴 수가 없었다.
그쪽에서도 던전 카페를 노리고 있을 게 분명한데.
선수를 치는 것을 보고 있을 수 있겠는가.
그에 별다른 조사도 하지 못하고 이한을 찾아가게 됐고.
가온 길드가 준비해 온 온갖 선물에 그의 선물은 빛바래고 말았다.
어떤 선물을 제시하든 이길 수 있으리라 여겼는데.
설마 그런 걸 내밀 줄이야.
그나마 다행인 건 그 선물에 한 숟가락 얹었다는 것인데.
“누구의 계획일까. 온실 속 아가씨의 계획은 아닐 테고. 역시 부길드장, 그쪽일까?”
김검사가 느릿하게 중얼거리며 가온의 계획을 되짚었다.
충격적인 내용으로 혼을 빼놓는다.
복수심이라는, 이성을 흩트려놓을 수 있는 감정을 자극하면서.
그 후 잘못한 점을 솔직하게 말하며 마음의 거리감을 좁힌다.
상대가 직접 선물을 요구할 수 있을 정도로.
“너무 감정적인 방식이야. 가온의 부길드장은 그런 스타일이 아니지.”
그렇다는 건······.
누군가의 보조하에 유하연이 직접 움직였다.
이 소리가 되는 건가?
“까다로워지겠군. 앞으로의 가온은.”
그러니 더더욱 넘겨줄 수 없었다.
가온의 힘을 강화할 황금 문의 주인을.
“차 실장님.”
“예.”
“A등급 장인 하나 섭외해 주세요. 마도 공학 쪽에 능한.”
“알겠습니다.”
이왕 할 거면 확실히 해야겠지.
오늘은 들러리가 됐지만.
다음번에는 얌전히 지켜보지만 않을 것이다.
‘독점할 수 없다면, 첫 번째라도 되어야지.’
다른 이들이 열 번 중에 한 번 황금 문을 만날 때.
그의 길드는 서너 번 만날 수 있도록.
이한의 뇌리에 검사 길드를 각인시켜야 한다.
다른 어떤 길드보다도 더 진하게.
***
미요오오.
바닥에 대 자로 누워있던 내게 미요가 다가왔다.
내 몸 이곳저곳에 몸을 치대며 관심을 끌던 녀석이 배 위로 폴짝 올라왔다.
배가 뜨끈하고 무거웠다.
난 상념을 중단하고 배 위에서 식빵을 굽고 있는 미요를 힐끗했다.
입을 쩍 벌리며 하품하는 녀석을 보니 헛웃음이 나왔다.
“미요오?”
“좋냐?”
“미요오.”
하품하는 것을 넘어서 벌러덩 드러누워 눈을 감는 녀석.
잠이라도 잘 생각인 걸까.
저 생각 없는 모습을 보니 나 또한 여유로워지는 느낌이었다.
‘그래. 지나간 일로 고민해서 뭐 해. 복수는 두 길드가 해줄 텐데.’
내 손으로 하는 게 더 속 시원하겠지만.
확실하게 처리하려면 두 길드가 나서는 게 나을 것이다.
난 멀리서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면 된다.
아버지의 카페라는 떡을.
-어려운 일은 아니에요. 범죄로 망한 프랜차이즈를 계속 이어가려는 점주들은 없을 테니까요.
-다른 건 필요 없습니다. 아버지가 직접 운영하시던, 카페. 그것만 원합니다.
유하연에게 요구한 선물.
오래전에 아버지가 직접 운영하시던 카페.
그것을 내게 넘겨달라고 했다.
-아, 그건 직영점이라 모회사가 팔거나 망하기 전까지는 어려울 것 같아요.
-어차피 재판받으면 부당이득으로 환수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건 재판 결과가 날 때까지 지켜봐야 하는지라······.
유하연이 난색을 보이기는 했으나.
그 자리에는 젊은 나이에 4대 길드를 만든 수완 좋은 김검사가 있었다.
-꼭 그럴 필요는 없죠.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재판도 전에 아버님을 카페를 돌려받을 수 있도록.
그래.
이제는 카페만 생각하면 돼.
카페를 아끼던 아버지도 그걸 더 원하실 테니까.
‘그래도 나중에 감방 찾아가서 입에 주먹이라도 처넣어줘야지.’
그 정도는 해도 뭐라고 하시지 않을 것이다.
사람이 너무 좋아 탈이었지만, 그렇다고 마냥 당하기만 하시던 분은 아니셨으니까.
‘주먹 정도는 먹여줘도 괜찮죠, 아버지?’
배가 무거워진 것과 반대로 머리는 한결 가벼워졌다.
난 속으로 기합을 내지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요옥!”
벌떡 일어나는 바람에 굴러떨어진 미요가 성을 냈다.
몬스터다운 날렵한 몸놀림으로 부드럽게 착지해 놓고 엄살은.
“미요옥!”
“미안. 미안. 맛있는 거 줄 테니까 화 풀어. 응?”
“미요오!”
“알았어. 알았어.”
미요를 달랜 난 카페를 오픈할 준비를 했다.
갑작스러운 방문객 때문에 일반 카페는 중간에 문을 닫았지만.
내게는 던전 카페가 남아 있었다.
그리고 아버지 카페보다 더 크고, 유명하고, 행복한 카페를 만들겠다는 목표.
그것도 남아 있었다.
좋아!
오늘도 던전 카페 오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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