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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서히渗
그림/삽화
서서히渗
작품등록일 :
2024.08.21 23:53
최근연재일 :
2024.09.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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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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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쪽

08 소란이 알고있는 것

DUMMY

수궁사였다.

동굴에서 수궁사를 보았을 때 기능위는 잘못 본 줄 알았다. 황가에서 태어나면 남아는 특수한 옥으로 만든 팔찌를 차고 여아는 수궁사를 찍어 순수하고 고결한 혈통임을 알렸다. 그리고 황가의 아이들은 열 살 이전에 혼약을 맺기에 부마로 정해진 남아는 가벼운 한철로 만든 팔찌를 차고 비로 정해진 여아는 공주와 같은 매화 모양의 수궁사가 아닌 일반 점 모양의 수궁사를 찍어 황실의 일가임을 알렸다.


소란의 팔에 찍힌 건 점 모양의 수궁사였다.


소란의 현재 나이 18살이었다. 13년 전의 그 사건으로 해를 당한 집안이라면 소란의 나이는 당시 다섯 살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의 신분을 모르고 자랐을 가능성이 높기는 했다.

그때 기능위의 머릿속에 별장으로 올 때 마차에서 소란이 했던 행동과 말이 떠올랐다. 그것이 그녀의 기억이라면 가족은 다 죽었을 것이다. 허나 지금껏 수궁사를 감추고 살았다. 그건 그녀의 신분을 알고 있는 그것을 가리는 방법을 알려 준 누군가 있다는 의미였다.



“소란이 너희 집에 들어간 게 몇 살이었냐?”


“아홉 살···..이었습니다.”


“어떻게 들어가게 됐지?”


“일꾼을 구하고 있었는데 강 아저씨가 소란과 같이 일하게 해달라고 저희 집에 왔습니다”


“강..아저씨? 그자가 누구냐?”



심서언이 기이하다는 표정으로 소왕야를 보았다.


“소란의···.아버지 입니다만.”



심서언의 표정에 기능위는 속으로 아차했다. 별장으로 오던 마차 안에서 소란이 보인 행동으로 기능위는 소란의 친부모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소란과 같이 있던 자가 당연히 부모가 아니라고 단정 지어 말해버린 것이다. 기능위는 급히 화제를 돌렸다.


“그는 지금 어디있느냐?”


“죽었습니다. 병으로 이년 전에요”


“그래서 소란을 강제로 보낼 수 있었던 거구나?”



심서언의 고개가 다시 아래로 떨궈졌다. 그러나 그녀를 바라보는 기능위의 눈빛은 검처럼 날카롭기 그지 없었다.



“소란이 별장에 있는 건 어떻게 알았지?”


“왕부를 지켜봤습니다. 조금만 기다리면 소란이 나올 거라고 했어요. 그때 처리하라고 회주님이 말해줬습니다. 아무 표식이 없는 마차가 왕부에서 나오길래 마차 바퀴에 돌을 던져서 덜컹거리게 만들었어요. 어릴 때부터 소란은 마차를 타면 무서워했으니까요. 그걸로 소란이 탄 마차인지 확인 할 수 있었습니다.”



심서언은 겁이나서 사실대로 말해 주는 것 뿐이었지만 그녀가 한 말에서 기능위는 아주 중요한 사실을 알아낼 수 있었다. 심서언이 말한 회주라는 자가 그녀와 아주 가까운 사이라는 것이다. 심서언의 복수를 도와줄 정도로 말이다. 게다가 회주가 기능위가 생각한 그들 중에 한명이라면 그녀의 자금책을 드디어 찾은 것이다. 그녀는 지금 자신의 세력을 움직여서라도 소란을 노렸다. 그것도 연이어서 말이다.


‘곧 시행할 생각이군.’


그녀가 더 이상 못참고 계획을 실행하면 기능위도 움직일 수 있었다. 드디어 때가 왔다는 생각에 흥분된 마음을 억누른 채 기능위는 혹시 몰라 심서언에게 우회해서 질문했다.


“넌 어떻게 살았느냐?”


“절에 갔다가 돌아오니 가족이 죽어 있었습니다. 도망치다가 회주님의 마차가 있는 것을 보고 무조건 살려달라고 빌었더니 구해주셨습니다.”


“회주? 무슨 회주냐?”


“금선회 회주님입니다”



심서언의 말에 순간 기능위와 아복의 시선이 마주쳤다. 기능위가 심서언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의 눈빛이 보물을 발견하기 전의 아이 마냥 기대감에 반짝였다.


“혹시 황실 대신 소금과 금광을 관리하고 있는 금선회···맞느냐?”


“예.”


“몇 번째 회주냐?”


“대···.회주님이십니다.”


기능위의 눈빛이 다시 한번 번득였다. 이번엔 확신에 찬 눈빛이었다.


“그자가 왜 안양에 갔느냐?”


“천락산 밑의 금광에 들렀다가 지나는 길이었다 합니다.”



기능위와 아복의 의미심장한 눈빛이 다시 한번 교환되었다. 황실 소유의 금광 중 천락산은 없다. 대회주는 심서언의 가문 때문에 내려간 것이라고 봐야했다. 기능위는 진짜로 심서언을 살려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회주와의 연결고리는 뭘까.


“대회주와 가까운 사이냐?”


“제······부군입니다.”


“정실이냐?”



심서언의 어깨가 더 위축되었다. 아무것도 내세울게 없긴해도 나름 교육을 받았는데 정실도 아닌 첩이라는 자신의 처지가 부끄러웠을 것이다. 한 제국에서는 첩을 인정하지 않았다. 황가가 일부일처제이니 대놓고 첩을 들일 수가 없어 시녀의 신분으로 살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한제국에서 첩의 삶은 비참하기 이를데 없었다. 나름 귀하게 큰 어린 아가씨가 한순간 시녀가 된 것이다. 거기다 금선회 대회주의 나이 65세였다. 게다가 심가를 몰살시키는데 관여를 해놓고 그 집안의 어린 딸을 첩으로 삼은 것이다. 기능위는 그녀에게 진실을 알리지 않는게 좋겠다 생각했다.



“흐흠 소란이 널 죽이지 말아달라 부탁했으니 죽이지는 않겠다. 허나 넌 절대로 몰라야 할 비밀을 알게 됐으니 지금 널 놔줄 수는 없다. 당분간 마련 해준 거처에 있다가 때가 되면 돈을 줄 테니 떠나서 새 삶을 살거라.”


기능위가 말하는 동안 옷자락을 힘껏 움켜쥐던 심서언은 말이 다 끝났을 때는 체념이 섞인 슬픈 눈빛으로 기능위를 보았다. 그녀도 어느 정도 예측은 하고 있을 것이다. 3개월간 지내면서 대회주의 성격은 파악하고 남았을 테니까. 게다가 소란을 죽이겠다고 계략을 꾸미고 흉포한 사내를 다룰 정도로 그녀는 악독해져 있었다. 아마도 그곳의 환경과 그녀가 처한 상황이 그녀를 이렇게 만들었을 것이다. 소란은 심서언에 대해서 정말로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돈은 주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냥 떠나겠습니다.”


“그건 안되겠다. 소란이 널 그냥 보내면 슬퍼할 것 같아서 말이다.”



다시 숙여진 심서언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소란을 보내지 않고 제가 갔다면 저희 가족은 무사했을까요?”


“대신 네가 죽었겠지.”


심서언이 기능위를 쳐다봤다. 눈물로 가득한 눈빛에 의문이 서려 있었다. 기능위는 심서언의 처지가 매우 딱하여 순순히 말해주었다. 숨겨진 진실의 일부를.


“누군가 너에게 날 감시하라고 시켰을거다. 넌 들키게 될 거고 은령대에 의해 쥐도 새도 모르게 죽임을 당했을거야. 앞의 두 부인도 그렇게 죽었거든.”


“왜···.왜요? 도대체 왜 그런···..”


“그 누군가가 너의 집도 몰살시켰다. 그걸 알면 널 정말로 살려 줄 수 없다. 그래도 알고싶으냐?”


심서언은 복잡하고도 혼란스러운지 뭐라고 말을 하려는 지 입술을 달싹이다가 꽉 다물고 조금 움직이다가 다시 다물고를 반복했다. 그 모습을 보던 기능위는 아복을 향해 말했다. 그녀가 말할 때까지 기다려 줄 시간이 없었다.


“잠시동안 네 처소에 있게해라. 어차피 넌 나와 같이 있으니까 빈집이잖아”


“예······알겠습니다.”


“별장으로 들어올 때 내가 좋아하는 간식 몇 개 사오고···..진정되면 소란···.생일이 언젠지 물어봐라”


“예”



간단하게 지시하고 돌아서는 기능위의 귓가에 심서언의 목소리가 들렸다.


“10월 17일입니다. 란이의 생일······그리고 미안하다고···전해주십시오”


“알았다.”



기능위는 동굴 밖으로 나가 처소로 돌아왔다. 소란은 아주 곤하게 자고 있었다. 그녀가 깰까 조심스럽게 상처를 살폈다. 반시진 정도 밖에 안 지났는데 멍은 사라지고 없었다. 확실히 군대에서 사용하던 금창약이 성능이 좋았다. 소란의 옆에 누워 그녀의 얼굴을 한참을 바라보았다. 조금만 늦었어도 이 얼굴을 볼 수 없게 됐을 수도 있다 생각하니 가슴이 서늘해졌다. 소란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더니 천천히 눈을 떴다. 느리게 움직이던 눈썹이 잠깐 멈추었다가 천천히 감았다가 다시 떴다.


“소..왕야?”


“미안하다고 전해달라더군.”


전해 달라한 자가 누군지 바로 알아들은 소란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감사······”


“인사는 됐고 더 자. 아직 꿈 깰 때가 안 됐어. 오상궁과 하인들에게는 새로운 놀이를 구상 중이니 방해하지 말라고 할거야.”


소란은 아주 작게 고개를 끄덕인 뒤 다시 눈을 감았다. 폭풍 같은 한 시진이었다.


조용했다. 너무도 조용해서 소란은 눈을 뜬 뒤에도 그냥 멍하니 있었다. 납치를 당하고 팔려 질 뻔했으나 구해지고 자신은 지금 속옷만 입은 채 온몸에 약이 발라져 있어 별로 아프지 않았다. 심서언은 살려줬다고 했다. 그리고 소왕야는 지금 없다. 신경써야할 사람도 상황도 아무것도 없다. 그렇다고 또 자기에는 너무 오래 잤다. 벌써 해가 중천에 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진이 빠진 사람 마냥 하염없이 멍하니 있던 소란은 문이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기능위가 음식을 들고 들어오고 있었다. 소란은 들어오는 기능위를 빤히 보았다. 본래라면 벌떡 일어나고도 남았을 텐데 그녀는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런 소란의 모습을 본 기능위는 잠시 멈칫 하더니 들고 있던 밥과 반찬이 놓여있는 쟁반을 탁자 위에 올려놓고 침대로 다가와 소란의 몸을 일으켜 안았다.


“이제 괜찮다. 괜찮아······”



아무 생각 없던 소란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입에서는 오열이 터져나왔다.


“흐흑!!”


소란은 양 손으로 기능위의 옷을 있는 힘껏 잡았다. 그리고 고개를 그의 품에 깊숙이 뭍었다. 울음소리가 새어나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런 소란의 의도를 알았는지 기능위가 소란을 더욱 강하게 안았다.


끔찍한 인생을 살 뻔했고 그렇게 만들 뻔한 자가 죽었다. 기능위가 구하러 올 것이다. 버티면 될 것이다. 버티면 된다고 생각하고 이를 악물었다. 하녀이니까, 언제든 버려도 되는 하녀이니까 신경 쓰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은 없었다. 그리고 그가 올 것이라는 믿음대로 그는 자신을 구했다.

이제 확실히 깨달았다. 자신이 있을 곳은 그의 옆이라는 사실을.


***


기능위가 밥 위에 올려 준 생선 살을 보며 소란은 문득 떠올라 말했다.



“그 거울 어딨어요?”


접시 위에 놓여있는 생선 살을 발라주던 기능위는 소란의 말에 어깨를 으쓱했다.


“버렸어요?”


“몰라.”


다시 평소대로(?) 돌아와 버린 기능위를 보며 소란은 입술을 내밀었다. 그리고 평소대로 모른 척 했다.



“······새로운 놀이나 생각할까요?”



소란의 질문에 잠시 고민하던 기능위는 슬쩍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소란은 밥을 한 숟가락 듬뿍 떠서 입안에 넣고 씹다가 얼굴을 찡그렸다.


“읍!”


“왜 그래?”


말을 하고 싶은데 입안에 넣은 밥 때문에 말을 못하게 된 소란은 고통 때문에 얼굴을 찌푸린 채 양 손으로 볼을 가리켰다. 씹을 때마다 볼이 아프다는 신호를 바로 알아챈 기능위는 물을 건냈다.



“조금씩 천천히 마시면서 씹어”



물 조금 마시고 씹고 물 조금 마시고 씹어서 간신히 밥을 다 넘긴 소란은 이번에는 밥을 조금만 퍼서 먹으려 던 순간 문 밖에서 오상궁의 목소리가 들렸다.


“소왕야 소 왕비 마마 잠시 뵐 수 있을까요?”


소란이 먹기 전 움직임을 멈추고 기능위를 보았다. 기 능위는 밥 먹으라고 손짓을 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을 조금만 열어 고개만 쏙 내미니 오상궁이 서 있었다. 기능위는 오상궁을 보자마자 손가락을 입술 중앙에 대고 말했다.


“쉿 지금 부인 지금 중요한 일 하고 있다. 방해하면 안돼!”


기능위의 말에 오상궁이 부드럽게 미소지었다.


“놀이를 새로 만드는 중이니 방해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방해해서 송구합니다. 소왕야 혹시 3년 전에 툰카족과 싸우신 기억이 있습니까?”


“툰..카족?”


“예”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기능위는 바로 말했다.


“아니. 처음 들어”


“알겠습니다.”


오상궁이 물러가고 기능위는 방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자신을 뻔히 보고 있는 소란을 보고 앞에 앉으며 말했다.


“왜 봐?”


“저 납치한 자들이 툰카족이에요?”


“응. 오상궁이 알아서 조사할 거야. 걱정하지 마.”



기능위의 말에 소란은 고개를 끄덕인 뒤 천천히 밥을 먹었다. 밥을 다 먹고 기능위는 소란의 몸에 또 다시 약을 발라주었다. 그러다가 그의 손이 수궁사가 찍힌 부분에서 멈췄다. 소란은 기능위의 행동에 눈치를 보며 말했다.


“제···제가 바를께요.”


이에 기능위는 소란의 팔을 다시 잡으며 아무것도 모른 척 물어봤다.


“이거···뭐야? 어디 아픈거야?”


“아니에요. 아픈 건 아니고 어릴 때 피부병을 앓았는데 그 자국이 남은 거라고 강 숙부가 그랬어요. 흉해서 분으로 가렸었어요”


소란이 부끄러운 듯 자꾸 팔을 빼려 하자 기능위는 소란의 팔을 단단히 붙잡고 수궁사를 만졌다.


“하나도 안 흉한데? 뭐 부인이 가리고 싶다니까···.분 어딨어? 이것도 내가 발라줄게.”


“저 서랍장 맨 처음에 있어요.”


황실 종친과 약혼했으나 13년 전의 그 날 죽은 것으로 처리된 여아는 두명이었다. 한 명은 자신의 약혼녀였고 다른 한명은···..그의 약혼녀였다. 불행하게도 두 여아의 나이는 같았다. 만약 소란이 그의 약혼녀라면······해결할 방법은 단 한가지 뿐이었다. 합방이었다. 소란은 자신의 부인이기에 설사 그의 약혼녀라는 게 밝혀져도 절대 놔줄 생각은 없었다. 소란이 알려 준 곳에서 분을 꺼낸 기능위는 분을 팔 위에 발랐다. 그런데 통에 분이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다 썼네?”


“다시 만들면 돼요”


“아···.그렇구나”


“예”


수도에서는 수궁사를 가릴 수 있는 분을 만들 수 있는 약재 중 가장 중요한 한가지가 황궁 약재고 에만 있다. 일반 약방에서는 팔 수 없는 금지 약재가 되어 있었다. 아주 어릴 때 미리 혼인을 맺기에 권력이 남용되는 걸 방지하고 신변 보호를 위해 15살까지 아이의 신분은 비밀이었다. 그 세월이 길어 수궁사를 감추고 시집을 보내는 부모가 생길 수도 있어 수궁사를 가려 주는 분은 함부로 만들 수 없었고 오로지 황실에서 만들어 건내주었다. 여아와 혼약을 맺은 황자가 사고나 병으로 죽었을 때에만 말이다. 그런데 그 분을 안양에서 만들었다는 것은 강 숙부라는 자가 의술에도 해박한 지식이 있다는 의미였다. 기능위는 분이 들어있는 통의 뚜껑을 닫으며 말했다. 아무렇지도 않게.


“다 발랐어. 이제 누워. 아직 완쾌 되려면 하루 더 있어야해.”


“너무 많이 자서 잠 안오는데요”


“같이 누워있을까?”


소란이 환하게 웃으며 먼저 눕자 기능위가 따라 웃으며 옆에 누웠다. 편안했다. 언제부터 였는지 서로의 옆에 있는 게 당연시 되어 버렸다. 기능위는 자연스럽게 소란의 손을 잡았다.



“부인”


“예?”


“놀이···..혼자 놀아도 둘 이서 논 것처럼 보일 수 있는 놀이여야해”



지금껏 다른 사람들을 속여왔는지라 소란은 바로 수긍했다. 그리고 이해했다.


“음..부군이 없어도 전 같이 논 것처럼 보이는 놀이가 필요하다는 거군요. 어렵겠···!!”


말을 하던 소란이 말을 멈추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옆에 누워있던 기능위의 얼굴이 갑자기 위에서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상반신만 일으킨 기능위는 소란을 위에서 내려다 보았다.


“지금..뭐라고 불렀지?”


너무도 놀라 눈만 껌벅거리다가 소란은 뒤늦게 물었다. 기능위의 얼굴을 보는 순간 이틀 만에 소란의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했던 것이다.


“뭘···불러요?”


“방금···..날 뭐라고 불렀지?”


소란이 눈을 데구루루 굴렸다. 양쪽 볼도 약간 붉어진 듯 했다.


“심가에 있을때 다들 그렇게 불렀는데···..안되나요?”


“아니 괜찮아. 잘 못들어서 그런데 다시 불러줄래?”


소란의 커다란 눈이 구슬치기의 구슬 마냥 요리조리 움직였다. 그리고 눈을 한껏 내리 깔아 기능위의 눈을 피하며 모기 소리만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부···.군”


환하게 웃은 기능위가 소란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순간 소란의 눈이 동그랗게 떠지며 손으로 이마를 만졌다.


“부부간의 애정행위···몰라?”


소란의 눈이 거북이 마냥 꿈뻑거렸다.


“하아~ 멀었네”


혼자만 아는 말을 중얼거린 기능위가 다시 소란의 옆에 눕자 소란이 먼저 습관처럼 손을 잡았다. 기능위는 우선 이것 만이라도 만족해야 겠다 생각했다. 그런데.


“다른건 몰라도 아이 낳는 건 알아요.”


이게 무슨 의미인가 싶어 기능위는 다시 일어나 소란을 보았다. 얼결에 아이 같은 목소리가 아닌 자신의 본래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뭐라고?”


“아이요”


소란이 기능위의 잡은 손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당당하게 말했다.


“매일 손잡고 잤으니까 학이 아이를 물어다 줄거잖아요”


기능위의 모든 것이 정지됐다. 태어나서 처음 지어보는 표정이었을 거라 확신했다. 기능위의 그런 표정에 소란의 당당했던 표정이 살짝 풀어졌다. 기능위는 그대로 침대 위에 누웠다. 그러나 곧바로 몸을 돌려 베개에 얼굴을 뭍었다. 그의 어깨가 점차 떨리기 시작하고 억눌린 기이한 소리가 베개에서 흘러나왔다.



“큭킥픕픕픕“


심상치 않은 기능위의 표정에 소란은 점점 위축되어갔다. 그리고 기능위가 배게에 얼굴을 묻은 채 기이한 소리를 낼 때에는 자그맣게 말했다.


“···.아닌······거에요?”


“푸하하하하하하하하”


소란의 그 한마디에 폭죽이 터지듯 기능위의 입에서 커다란 웃음소리가 사방으로 터져 나갔다. 기능위의 웃음소리에 가려 창문 밖에서 나뭇가지 밟는 소리와 이크 하는 여인의 목소리도 들린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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