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머리 러시아군 대원수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대체역사, 판타지

새글

핏콩
작품등록일 :
2024.08.25 21:27
최근연재일 :
2024.09.23 20:00
연재수 :
29 회
조회수 :
188,092
추천수 :
10,278
글자수 :
155,970

작성
24.09.21 22:00
조회
4,607
추천
295
글자
12쪽

출진

DUMMY

나는 친구인 베틀리츠의 소대에도 마찬가지 제안을 베풀었다.


“우에엥 루슬에몽 도와줘!”라고 외치며 나를 찾은 베틀리츠는 조마조마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렇게 우리 집은 돈 없다고 눈빛 안 보내도 돼, 인마. 내가 다 책임질테니까.


“정말이야?”


“그렇다니까, 세르게이 베틀리츠 소위. 너희 소대까지 내가 확실히 책임진다. 친구 좋다는게 뭐냐?”


“루슬란······.”


베틀리츠가 자기를 이렇게 생각해줄줄은 몰랐다는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어어, 그렇게 보지 마. 공짜는 아니니까.


어차피 내 손에 쥔 1개 소대 병력으로는 아무것도 못해먹어.


그건 베틀리츠네 소대를 장악해도 마찬가지지만, 얼마가 됐든 사람부터 모으고 생각해야지.


“일단은 돈으로 후려쳐서 마음을 사놨으니 소대원들이 우리만 내버려놓고 후퇴할 일은 없을거야.”


“······설마 그런 일이 있으려고?”


“이젠 없겠지.”


나는 베틀리츠의 어깨를 툭툭 치면서 말했다.


나는 살짝 얼이 빠진 듯한 친구 놈에게서 고개를 돌려 최재형을 향해 말했다.


“삼촌, 저 때문에 괜히 안치헤에서 이 먼 요양까지 출장까지 다 나오시고. 감사합니다.”


내 인사치레에 최재형은 손을 내저으면서 말했다.


“아니다. 어차피 사령부는 여기 요양에 있으니, 사업차 한번은 들러야할 곳이야. 그건 그렇고, 약속한 물건은 다 챙겨왔는데 확인해보겠느냐?”


수상쩍은 물건이라도 거래하는 것 같은 최재형의 말에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괜찮습니다. 삼촌께서 어련히 알아서 챙기셨으려고요.”


그나저나 최재형도 상당히 놀라지 않았을까. 갑자기 개인적으로 장비를 챙겨달라고 했으니 말이다.


최재형도 우리 동네 카자크들의 사정은 들어서 알고 있는지, 커피를 들면서 말했다.


“설마 카자크 기병 부대에 배치될줄은 몰랐다. 참모부 같은 곳에 들어갈줄 알았는데 말이다.”


“두고 보십시오. 제 생각에는 야전에서 뛰는 쪽이 나을 것 같습니다.”


나는 모든 사정을 구구절절히 털어놓을 생각은 없었기에 그렇게만 말했지만, 최재형은 여전히 마음을 놓지 못하는 것 같았다.


단순히 어릴 때부터 후원해온 아이에 대한 걱정은 아니고, 이건······.


“네 목숨은 너 혼자만의 것이 아니다. 연해주의 한인들이 모두 너에게 희망을 걸고 있어.”


- 희망까지야.


아니, 맞는 말이지.


2년 전만 해도 페테르부르크에서 불어닥친 황화론 바람에 하마터면 한인들도 피를 볼 뻔하지 않았나.


그나마 한인들의 충성심과 비행기 개발로 어물쩍 한인들이 타겟을 벗어나긴 했지만, 그 상징인 나의 안위에는 각별히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


“그래도 네가 직접 전선으로 나간다니. 휘하의 병력도 적고 너무 위험하지 않으냐?”


최재형의 말이 맞긴 하다. 베틀리츠네 소대까지 합쳐서 2개 소대래봤자 참호에 던져넣으면 1분도 안되는 시간 안에 녹아내릴 병력이니까.


“지금은 그렇죠.”


“지금은······?”


“일단 지켜봐주십시오. 혈혈단신으로 북경에 가서도 이만한 부와 영향력을 일궈낸 제가 아닙니까.”


나는 최재형의 불안을 불식시키기 위해 말을 이었다.


“정 그러시다면 지원이나 팍팍 해주시죠. 한인 부자들 사이에서 모금 운동이 진행 중이라고 들었습니다만.”


- 돈 맡겨놨냐.


맡겨놓은거나 다름없지. 이번 전쟁 터진다는 정보로 한인들이 만진 돈이 얼마인데?


거기다 러시아 정부에 잘 보이려면 어차피 얼마간 돈을 내놔야할텐데, 기왕 러시아군에게 쓸 돈이라면 조선인의 마스코트인 나를 지원하는게 낫지 않을까?


“뭐가 더 필요한게 있느냐?”


카자크 병사들의 개인 장비류나 무기 말고도 필요한게 있나 싶어 최재형이 물었다.


“기관총을 좀 구할 수 있겠습니까?”


“기관총?”


박춘명의 기억에 따르면 러일전쟁은 기관총이 보여주는 압도적인 화력이 거의 처음으로 부각된 전쟁.


반면 무기가 근대화된 만큼 전술의 근대화가 따라잡진 못했다고 하던가.


내가 비록 기병이라 할지라도 맥심 기관총이 보여줄 압도적인 화력을 상비하지 않을 수는 없다.


“내가 군사에는 문외한이긴 하다만······ 기병이 기관총을 사용한단 말이냐?”


“다 방법이 있습니다. 구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한번 알아보마. 아마 서너 정 정도는 구할 수 있을거다. 그정도면 충분하겠지?”


최재형이 군납하는 물품은 주로 피복류와 식량, 그리고 일부 총기류 등이지만, 기관총을 구하려면 구하지 못할건 없다.


‘사실 내 돈으로 구해도 되긴 하지만.’


문제는 그럼 총탄까지 내가 알아서 구해야한다는건데, 그러면 주머니가 순식간에 거덜나버릴걸.


‘이건 한인들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지.’


십시일반, 나눠서 부담하면 얼마 안들거 아냐?


괜히 다른데 돈 쓰는 것보다 내 총탄값 대주는게 한인들 입장에도 훨씬 나을거고.


“알았다. 최대한 빨리 구해서 보내주도록 하마.”


“번번이 감사합니다.”


전쟁 열심히 하는 모습으로 보답하겠습니다.


일 이야기를 끝마친 우리는 잠시 별것아닌 근황 토크를 나누었다.


주로 최재형의 자식들에 관한 이야기나 나의 학교생활에 관한 이야기가 대부분.


그때 최재형이 미간을 좁히더니 물었다.


“네 대부에게서 온 소식은 없느냐?”


내 대부라면 니콜라이 비류코프를 말하는 것이었다.


“일본군이 제물포에 들어오고 공사관에 의탁하셨다는 이야기만 들었습니다.”


그가 일하던 러시아어 학교는 무기한 휴교에 들어갔고, 공사관과 함께 상해로 철수했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그것 말고는?”


“없는데요. 혹시 무슨 말씀 들으신거 있어요?”


“아직 그 사람이 너에게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나 보구나.”


“뭐 때문에 그러시는데요?”


“······아니다. 지금 할 이야기는 아닌 것 같구나. 잊어다오.”


최재형은 입술을 달싹이더니 고개를 저었다. 표정이 왜 안좋지.


- 사람을 가장 답답하게 하는 것은 말을 하려다 마는 것이고!


나야 그러려니 했지만, 오히려 답답해 죽으려고 하는 쪽은 박춘명.


명백히 숨기는 태도니 영 수상해보이긴 했지만, 됐어.


진짜 중요한 일이면 꺼려지든 말든 얘기를 꺼냈겠지.


비류코프도 상해에 잘 도착한 것 같고, 최재형이 말해주지 않으면 나중에 그에게 물어보면 될 일이다.


지금은 전쟁에 집중할 때였다.



* * *



처음에는 도나우로프 연대장과 마찬가지로 떨떠름하기 그지없던 중대장이었지만, 눈빛이 총명해진 소대원들을 본 그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말했다.


“······아무래도 북경의 영웅에 대한 소문이 거짓은 아니었던 것 같군.”


“과찬이십니다. 마음으로 소대원들에게 다가가려고 했더니 자연히 저렇게 되더군요.”


나와 베틀리츠는 순수한 눈망울로 그렇게 말했다.


나는 한치 양심의 거리낌이 없었다.

부대원들의 고충을 보고도 말로만 공감해주는 소대장과 자기가 발 벗고 나서서 해결해주는 소대장.


나는 명백히 후자에 가깝지 않은가.


중대장은 내 말을 딱히 의심하지도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곧 죽을지도 모르는 사지로 나가는 판에 휘하 소대장 말도 안듣는 부하들만큼 불안한 상대는 없었으니까.


큰 고비 하나 넘겼다고 생각했겠지.


“우리는 한국에 진입한 미셴코 장군의 선견기병지대에 합류한다.”


“한국이요?”


드디어 공표된 행선지에 베틀리츠가 팔꿈치로 내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작게 물었다.


“루슬란, 네 고향 아니냐?”


아냐, 인마.


내 고향은 연해주고 정확히는 박춘명 씨 고향이지.


- 한국이라.


어쩐지 박춘명의 목소리에서는 우울한 기색이 묻어나왔지만, 이 친구 기분은 별로 중요한게 아니니까 넘어가자.


쿠로파트킨이 만주군 총사령관에 임명되긴 했지만, 그는 아직 요양에 도착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그동안 임시 만주군 사령관을 맡은 사람은 의화단 전쟁 때도 공을 세웠던 리네비치 장군.


- 너랑도 인연 있는 사람 아니냐?


그렇지.

내 양아버지 바실레프스키 소장님의 직속 상관이었으니까.


현산을 이용한 우정 쿵짝짝 작전에도 한손 거든 사람이고.


- 네 아버지는 대체 몇 명이냐······.


나와는 크게 안면이 없으니 직접 줄을 대긴 힘들지만, 바실레프스키 장군을 통하면 어찌저찌 선이 닿을 것도 같은데.


어쨌든 이 리네비치 사령관은 얼마 전 파벨 이바노비치 미셴코 장군으로 하여금 선견기병지대를 거느리고 지체없이 압록강을 건너 평양 방면으로 나가는 길을 정찰하라고 명했다.


이 선견기병지대를 구성하고 있는 병력들 대부분은 바로 카자크 기병들.


미셴코가 한국으로 진입한 뒤에도 치타 연대의 카자크 기병 부대와 아이훈 카자크 기병 부대 등이 속속들이 미셴코 부대를 지원하기 위해 압록강을 넘어가고 있었고.


우리 우수리 카자크 기병 연대 역시 그러한 지원 부대 중 하나였다.


“특히 자네에게 기대가 크네, 루슬란 니콜라예비치 소위.”


중대장 역시 나의 출신에 기대한다면서 어깨를 두들겼다.


하지만 나는 한국이래봤자 발 한번 들여놔본 적이 없는데.


심지어 박춘명 씨도 평안도에는 가본 적도 없을걸? 아마.


하지만.


어디 북경은 내가 알아서 쳐들어갔나.


나는 결연한 표정으로 중대장의 기대에 부응하기로 마음먹었다.


“맡겨만 주십시오.”



* * *



나와 카자크 소대원들은 기필코 전공을 세우겠다는 각오로 충천했다.


나는 출세 때문에, 우리 소대원들은 내가 약속한 보너스 때문에.


그러나 박춘명은 단전에서 사기를 끌어올리는 나에게 별안간 찬물을 끼얹었다.


- 아마 네가 기대하는 것만큼 큰 전투는 없을거다.


“아니, 왜?”


- 러시아군은 한반도를 주 전장으로 생각하고 있진 않거든. 아니, 얘네 솔직히 만주에서도 싸울 생각은 있었는지 의심스럽다만······.


러시아군의 핵심전략은 오직 인내.


전력을 보존하고 또 보존하여 일본군에 크게 한방을 먹이는 것.


- 지금 러시아군한테 중요한건, 정확히 말하면 중요하다고 판단하고 있는건 만주나 한반도에서의 자잘한 승리가 아니야. 올인해서 크게 따는거지.


러시아군은 전략적 요충지를 넘겨주는 한이 있더라도 소부대가 각개격파당해서 전력을 깎아먹지 않는걸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리네비치가 우리 부대에게 내린 명령 또한 이런 것이었다.


‘싸울 수 있으면 싸우는데 피해가 클 것 같으면 그냥 후퇴해라.’


- 무슨 명령이 이따위인지 모르겠는데.


반면 일본군은 이미 한반도를 주요 전장으로 설정하고 꾸역꾸역 전력을 밀어넣고 있었고.


- 그래도 지금 시점에 일본군이 한반도 북부까지 대규모 병력을 전개하진 못했을텐데.


그럼 러시아군이 평양 쯤에서 일본군 병력을 차단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그 과정에서 활약할 수 있으면 금상첨화일텐데.


- 어······. 글쎄다. 그게 말처럼 쉬운 소리일까?


반신반의하던 나였지만, 겨우 안주에 설치된 미셴코 부대의 거점에 합류하고 난 뒤에는 박춘명의 말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정찰을 포기하고 후퇴했다고요?”


우리는 러시아군이 이미 평양 정찰을 포기하고 퇴각했다는 말을 전해들을 수 있었다.


당시 평양에 진입해있던 일본군은 단 1개 중대.


그러나 러시아군은 제대로 정보를 파악하지도 못한 채 일본군이 8천 명 이상 주둔하고 있다는 현지 주민들의 말만 듣고 후퇴해버렸다.


평양에 진입한 일본군의 조기 격퇴는 그렇게 무산되었다.


그러나 미셴코 역시 리네비치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한판 싸워서 사기를 올려야한다는 판단 자체는 내리고 있었다.


“한국에서의 정찰 활동을 마무리하기 위해서, 그리고 일본군에게 러시아군의 위용을 일깨워 주기 위해서라도 한번의 승리는 거두어야 하네.”


정주 전투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9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검은머리 러시아군 대원수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재시간 재변경 안내(오전 8시 10분->오후 8시) +1 24.09.16 292 0 -
공지 좋은 제목 허락해주신 명원 작가님께 감사드립니다. +9 24.09.12 2,538 0 -
29 침투 NEW +13 2시간 전 1,422 133 12쪽
28 첫 교전 +21 24.09.22 3,852 294 12쪽
» 출진 +19 24.09.21 4,608 295 12쪽
26 장악 +27 24.09.20 4,817 296 13쪽
25 자대 +18 24.09.18 5,235 347 11쪽
24 들통 +16 24.09.17 5,384 334 11쪽
23 치욕의 날 +28 24.09.16 5,692 375 11쪽
22 혈서 +23 24.09.15 5,774 366 12쪽
21 전야 +13 24.09.14 5,826 360 12쪽
20 반응 +13 24.09.13 5,641 361 11쪽
19 이륙 +37 24.09.12 6,093 405 14쪽
18 이륙 준비 +18 24.09.11 5,924 319 12쪽
17 발전 +14 24.09.10 6,059 346 12쪽
16 착수 +15 24.09.09 6,227 360 12쪽
15 내기 +18 24.09.08 6,230 333 12쪽
14 파티 +13 24.09.08 6,708 337 14쪽
13 황족 +21 24.09.07 6,888 361 13쪽
12 귀환 +19 24.09.06 6,800 399 12쪽
11 제안 +27 24.09.05 6,946 376 10쪽
10 호의 +23 24.09.04 7,040 357 14쪽
9 경매 +25 24.09.03 7,096 370 13쪽
8 수확 +27 24.09.02 7,142 372 12쪽
7 시작 +13 24.09.01 7,256 348 11쪽
6 참전 +11 24.08.31 7,837 365 14쪽
5 귀신 +21 24.08.30 8,042 362 12쪽
4 입학 +32 24.08.29 8,271 415 12쪽
3 연줄 +21 24.08.28 8,548 407 11쪽
2 스타팅이 왜 이래 +25 24.08.27 9,633 448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