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머리 러시아군 대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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핏콩
작품등록일 :
2024.08.25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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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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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투

DUMMY

선견기병지대의 지휘관인 미셴코 장군은 우리의 공을 직접 치하하고 싶다며 만날 것을 권했다.


베틀리츠는 덜덜 떨었지만, 나는 이미 여러 명의 별들을 익히 마주한 터라 별다른 감흥이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사단 이상의 부대라면 모르되, 수백 명의 러시아 기병만 데리고 한반도로 침투한 미셴코였으니, 이제껏 직접 얼굴을 마주할 일이 없었던게 이상한 일.


역시나 미셴코는 나를 반기면서 외쳤다.


“정주에서의 싸움은 훌륭했네. 리네비치 사령관의 말씀이 영 거짓말은 아니었군.”


미셴코 역시 중국 원정에 참전했던 숙장.


건너건너 내 소문을 전해듣긴 했을테지만, 그래도 리네비치가 다이렉트로 내 얘기까지 했나?


‘북경에서는 전투에 끼긴 했어도 직접 싸우진 않았는데.’


만주군 임시 사령관이 나를 미셴코 밑으로 배치시키면서 따로 언질까지 건네줄 정도라면······.


‘아버지가 힘을 써주셨을 수도 있겠군.’


우리 바실레프스키 아버지는 바르샤바 군관구에 배속되어있다가 현재는 하얼빈 방어 사령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하얼빈이면 전선에서도 꽤 멀리 떨어진 후방이니 별로 매력적인 자리는 아니지만, 그래도 리네비치와의 연결을 유지하기엔 나쁘지 않았겠지.


이래서 평소에 기름칠이 중요한 것이다.


그때는 괜히 러시아군에 수수료 떼먹히는 일 없도록 하기 위해서 팍팍 집어준건데 이럴 때 칭찬이라도 한마디 듣지 않는가.


나는 미셴코의 칭찬을 연거푸 들은 후,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부대는 퇴각할 예정입니까?”


“그래. 아무래도 상부의 명령이 있었으니, 압록강이 완전히 녹기 전에 후퇴해야한다는게 내 판단이야.”


“하지만 각하, 앞으로의 전투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라도 일부는 남겨서 정찰 활동을 계속 수행하게 하는 편이 낫지 않겠습니까?”


일본군 후방에서 계속 정찰이나 소규모 전투 등을 수행하면서 뒤통수를 괴롭히는 것만으로도 일본군의 피해를 누적시킬 수 있지 않을까 싶었지만.


미셴코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이렇게 말했다.


“나도 그리 생각하네. 그러나 자네 생각만큼 쉬운 이야기가 아닐세. 주민들이 생각보다 협조해주지 않더군.”


나는 주위의 박살난 가옥들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저녁을 차려먹겠다며 민가에서 소 닭을 마구 징발해 나오는 카자크들을 바라보았다.


- 지금쯤 조선인들은 러시아군이 제발 철수해달라고 빌지 않고 있지 않을까?


안 돼.

난 계속 여기 있을거야.


어차피 일본군 와도 똑같을걸.


“······부끄럽지만 저는 북경에서도 대민 작전을 원활히 수행해본 경험이 있습니다. 각하께서 명령을 내려주신다면 최선을 다해 받들 자신이 있습니다.”


“대민 작전이라, 확실히 북경의 영웅에게는 주특기겠군.”


내 말에 미셴코는 귀가 솔깃한 듯이 보였다.


“예. 게다가 이곳은 제 고향입니다. 지금같은······ 상황에서는 더욱 강점이 있을 것으로 사료됩니다.”


미셴코는 숙고하더니 나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고작해야 1개 소대로는 불가능하겠지. 자네 중대장에게 따로 지시를 내리도록 하겠네.”


이미 우리 중대장에게 슬쩍 얘기를 흘려놓긴 했지만, 미셴코가 이렇게 전향적인 입장을 밝혀주니 다행이다.


중대장은 직접 미셴코에게 건의하기 꺼려지는 눈치였거든.


소위 따위가 직접 전략에 의견을 밝히는 것도 마찬가지지만, 나야 비벼볼만한 줄과 전공이 있잖아.


나는 얼어있던 친구놈의 어깨를 툭 쳤다.


“야 인마, 뭐해? 장군님 가셨다.”


“어, 어. 어떻게 된거냐?”


“우리는 한국에 남는다.”


우수리 카자크 기병 중대 100명은 그렇게 한반도에 무사히 잔류.


당연히 거기에는 나와 베틀리츠의 2개 소대도 포함이었다.


한편 중대장은 나만 믿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가 그렇게까지 자신있게 얘기했으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긴 하다만.


- 정말 믿어도 되냐?


그럼.


나도 박춘명 씨를 믿고 있는데, 춘명이도 나를 믿어야지.


- 엥? 나?


그래. 직접 와보진 않았더라도 대충 이쪽 지리는 꿰고 있을거 아냐? 좀 변하긴 했더라도 말이지.


대한민국 국군이 평안도에 태극기 꽂기 시뮬레이션 한번 안 굴려봤다는건 말이 안되는데.


- 아니 맞긴 한데······.


그럼 문제 없네, 출발!



* * *



그동안 평안도를 돌아다니던 러시아군은 누가 카자크 새끼들 아니랄까봐 알뜰살뜰히도 쑥대밭으로 만들어놓았다.


우리야 뒤늦게 합류했으니 관계 없는 일이라지만, 40일 넘게 평안도를 분탕치고 다니던 기존 부대는 일본군이랑은 제대로 싸워보지도 않고 이런 짓거리를 벌인 것이다.


“앞으로 약탈을 엄히 금한다! 명령을 어기고 러시아군의 명예를 더럽히는 자는 군법으로 다스리겠다! 이는 중대장님의 허락을 받은 사항이다!”


- 네가 그런 말을 하냐?


아니, 그건 정당한 수수료와 경매 차익이라고 몇 번을 말해.


나는 청나라 조정에서 감사 인사까지 받은 몸이라니까.


이건 대청의 중신이자 애국자인 경친왕이 증명한다.


거기다 북경이랑 다르게 평안도는 뜯어먹을 것도 없다.


이 흉포한 카자크 놈들은 괜히 파괴 욕구를 충족시켜서 가옥에 불지르고 사람이나 두들겨패고 있지만, 그러다가 자기 집안이 무너질 판이면 그만둘 수밖에 없다.


그정도 이성은 남아있으니 내가 내민 당근에 눈이 돌아간 것 아니겠는가.


애초에 이럴 때를 위해서 돈도 챙겨왔으면서 대체 왜 안푼건지 모르겠다.


미셴코는 나에게 물자의 현지 조달과 주민 포섭을 위해 가져온 돈을 넘겼고, 나는 고스란히 조선에 부의 재분배를 행했다.


“여러분! 도망치지 마십시오! 저는 조선인입니다!”


“조, 조선인?”


러시아군을 보자마자 황급히 달아나기 바빴던 조선인들은 내가 내뱉은 유창한 조선어에 잠시 발걸음을 멈칫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걸음아 나 살려라 내빼는 사람은 있었지만.


“베틀리츠, 가서 잡아와.”


사람이 빨라도 말보다 빠르겠냐.


졸지에 나무하던 조선인들은 우리 손에 죄다 붙잡히는 신세가 되었다.


그나마 세숫대야 험상궂은 카자크들이 아니라 마스크 좋은 내가 나서니 대화라도 통하는거지.


“조선인이 왜 노서아군에 있는겝니까?”


“저는 조선을 노리는 왜놈의 침략에 통분하여 러시아의 힘을 빌리고자 군에 입대하였고, 다행히 러시아 황제 폐하의 은혜를 입어 어엿한 군관이 되었습니다.”


“군관?”


“나이도 어려보이는데 벌써?”


“이 사람아, 얼굴만 앳되었지 몸은 헌헌장부시로구만! 웬만한 장정만 한걸!”


나는 조선인들의 잡담에 아랑곳 않고 목소리를 더욱 돋워 소리쳤다.


“왜놈들은 지금 서울에 계신 임금님을 강제로 잡아 조약을 체결하고 이 나라를 온통 들어먹으려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국에 러시아가 조선을 돕기 위해 군대를 파견한 것이니 모쪼록 동포 여러분은 겁먹지 말고 협조해주시기 바랍니다!”


나의 말에도 불구하고 이 사람들도 바보는 아닌지라 경계의 눈빛을 풀지는 않았다.


나는 러시아 은화를 꺼내서 그들에게 쥐여주고서는 말했다.


“굳이 마을로 들어가지는 않을 것입니다. 대신 닭이나 계란, 말먹일 꼴을 구해오시면 은화를 드리겠습니다.”


- 먹튀하면 어떡하냐?


그럼 까짓거 적선했다고 생각하지 뭐.


그런데 감히 그러진 못할걸.


우리 소대만 하더라도 카자크 기병이 30명은 족히 되는데 푼돈 좀 먹고 튀었다간 마을을 피바다로 만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지 않겠나?


한국어로 친절하게 묻는 장교, 러시아군이 내미는 은화, 그리고 점진적인 접근의 3박자가 겹쳐지자 현지 협력은 우리 중대장이 감탄할 정도로 쉽게 이뤄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이런 식으로 바람 같이 평안도 곳곳을 돌아다니며 열심히 선전전을 펼쳐댔다.


한번 라포가 형성되기 시작하니 러시아군은 마을로 입성해 깊은 사정을 들을 수 있었다.


“지금 평양 남쪽으로는 일본군이 쫙 깔렸답니다.”


“길에 인접한 고을의 청년들은 전부 인부로 징발되어 폐농할 지경에 이르렀고, 물자를 마구 징발해대는 통에 고을이 통째로 망하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지금 왜놈들 때문에 읍내가 텅텅 비었수다. 일본군이 민가를 수색한답시고 죄다 뒤집어놓는 통에 살 수가 없소.”


“우리 동네도 얼마 전에 정주로 간다는 일본 놈들이 조사 명목으로 한바탕 헤집고 갔었지.”


“민가를 조사할게 무어가 있어! 다 제놈들 재미보려고 하는 짓이지.”


“집에 얼마 안되는 금붙이도 다 털려버렸소.”


“자자, 그놈들은 저희가 격파했습니다만 그런 나쁜 놈들이 다시 오게 되면 실로 큰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렇겠지요? 헌데 어떡한단 말입니까. 오지 말란다고 안 올 놈들도 아니고.”


나는 그들에게 한가지 해결책을 제시해주기로 마음먹었다.


“일본군이 이 마을을 통과하는건 정주로 통하는 가장 가까운 길이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다리도 잘 닦여 있으니 반드시 이곳을 지나칠 수밖에 없지요.”


“설마 다리를 때려부수기라도 하겠단 말이오?”


“바로 그겁니다. 급한건 제놈들이니, 다른 길을 찾을 수밖에 없겠지요.”


일본군이 우회할 수도 있다는 말에 마을 사람들은 표정이 밝아졌지만, 마냥 동의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럼 우리는 어떡한단 말이오?”


“아랫마을 쪽에 징검다리가 하나 더 있다면서요? 마을 사람들이야 불편해도 그쪽으로 다녀도 되겠지만, 군대가 움직이긴 힘들겁니다. 시원하게 날려버립시다.”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전쟁, 조금의 불편을 감수하는게 아예 일본군 숨어서 산천에 숨어사는 것보다 낫지 않을까.


“일본군이 몇 사람이나 되는데 그깟 다리 하나 새로 올리지 못하겠소?”


“그것도 몇 번이고 다시 부수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요. 저희는 수시로 인근을 돌아다닐테니, 마을 입구에 있는 장승에다 끈이라도 묶어주십시오.

일본군이 많이 주둔해있으면 불가하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최대한 힘써드리죠.”


“마, 만약 일이 잘못되면 당신들은······.”


“당연히 여러분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겁니다.”


- 정말 네 말처럼 잘 될까?


몰라.

하지만 이건 ‘애국’이잖아? 나는 조선인들에게 애국할 기회를 주고 있는거다.


러일전쟁에서 러시아가 이겼으면 어떻게 됐을진 미지수지만 일본이 이기면 확실히 대한제국은 망한다는걸 보고 왔잖아.


그러니까 이것도 일종의 독립운동이 아닐까?


실제로 조선인들 입장에서도 일본군보다는 딱히 위해를 끼치지 않은 우리가 더 믿음직스럽긴 할거고.


- 퍼퍼펑!


그렇게 동네마다 돌아다니면서 교량이라는 교량은 죄다 파괴.


폭약이 모자라면 현지 장정들 힘을 빌려서라도 박살낸다.


일본군도 당연히 바보는 아니니 병력을 배치해 감시하기 시작했지만.


기량에서도 그렇고, 현지 협력이라는 측면에서도 그렇고, 히트 앤 런에서 우리 카자크 기병을 따라올 수는 없었다.


“전방 마을은 이미 일본군 1개 중대 정도가 진입해 진지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그럼 그쪽은 시간을 두고 병력이 빠지기를 기다리지. 이번엔 안주 외곽 쪽으로 돌아보자고.”


“입구의 큰 나무조각에 흰 끈이 묶여 있습니다. 일본군이 주둔해있긴 하지만, 소수로 보입니다.”


“들었냐? 싹 다 모가지 추수해온다, 튀어!”


쉽군.



* * *



얼마 후.

일본군 12사단 지휘부는 사방에서 들려오는 보고에 폭발했다.








---

러일전쟁 당시 평안도는 양군의 심각한 착취와 횡포에 시달렸습니다. 러시아군은 이르는 곳마다 방화하고 소와 닭을 약탈하였으며, 교량을 파괴하였고, 덕천군에서는 지나가는 각 참(站)마다 약탈을 벌이고 주민들을 가혹하게 대하여 흩어지게 하였고, 개천군에서는 만나는 사람들을 때려 백성들이 대부분 도주하였으며, 영원군에선 각 전(田)의 입묘(立苗)에 말을 풀어 먹였다 합니다.


일본군 또한 마찬가지라 물품과 인력을 마구 징발하여 읍과 연로의 민가는 태반이 텅 비어 행인의 왕래가 전혀 없을 정도였으며, 러시아군이 격퇴된 뒤에도 평안도를 병참기지로 삼아 오히려 관내에서 전투가 벌어질 때보다 더 고통스러운 지경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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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침투 NEW +13 2시간 전 1,414 132 12쪽
28 첫 교전 +21 24.09.22 3,851 294 12쪽
27 출진 +19 24.09.21 4,607 295 12쪽
26 장악 +27 24.09.20 4,817 296 13쪽
25 자대 +18 24.09.18 5,235 347 11쪽
24 들통 +16 24.09.17 5,384 334 11쪽
23 치욕의 날 +28 24.09.16 5,691 375 11쪽
22 혈서 +23 24.09.15 5,774 366 12쪽
21 전야 +13 24.09.14 5,825 360 12쪽
20 반응 +13 24.09.13 5,641 361 11쪽
19 이륙 +37 24.09.12 6,093 405 14쪽
18 이륙 준비 +18 24.09.11 5,924 319 12쪽
17 발전 +14 24.09.10 6,059 346 12쪽
16 착수 +15 24.09.09 6,227 360 12쪽
15 내기 +18 24.09.08 6,230 333 12쪽
14 파티 +13 24.09.08 6,708 337 14쪽
13 황족 +21 24.09.07 6,887 361 13쪽
12 귀환 +19 24.09.06 6,799 399 12쪽
11 제안 +27 24.09.05 6,946 376 10쪽
10 호의 +23 24.09.04 7,040 357 14쪽
9 경매 +25 24.09.03 7,096 370 13쪽
8 수확 +27 24.09.02 7,142 372 12쪽
7 시작 +13 24.09.01 7,256 348 11쪽
6 참전 +11 24.08.31 7,837 365 14쪽
5 귀신 +21 24.08.30 8,042 362 12쪽
4 입학 +32 24.08.29 8,271 415 12쪽
3 연줄 +21 24.08.28 8,548 407 11쪽
2 스타팅이 왜 이래 +25 24.08.27 9,633 448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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