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키산맥에서 온 폭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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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프21
그림/삽화
E-soul
작품등록일 :
2024.08.26 11:19
최근연재일 :
2024.09.17 00:00
연재수 :
2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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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19,535

작성
24.08.30 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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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004. 존, 존은 어디있나.

[작품에 등장하는 배경, 인물, 지명, 사회 등은 현실과 무관하며 '로키산맥에서 온 폭군'을 위한 세계관 설정, 창작에 의한 것임을 밝힙니다.]




DUMMY

004. 존, 존은 어디있나.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자신이 잠이 든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던 건지 모르겠다.


아니, 솔직해지자.


언제, 어떻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묵직하게 날아든 몇 마디 말이 뭘 의미하는지 정도는 얼마든지 조합해 낼 수 있었다.


하지만, 제 눈으로 확인한 것도 아니고 이곳까지 오면서 존이 보여줬던 ‘친절함, 배려’를 생각한다면 도저히 목소리의 말은 믿기 어려웠다.


그런데, 저 목소리의 말이 사실이라면···.


친절한 존은 친절을 가장했고, 쉽사리 보기 힘들었던 배려는 그저 자신의 경계심을 누그러트리려는 사악한 속삭임이었다면···.


혼란, 당혹감, 의구심!


안 그래도 주름진 뇌가 뒤죽박죽 녹아 엉키는 느낌이다.


‘아니야. 존이 그럴 이유가 없잖아.’


다른 건 제쳐두더라도, 존은 길 가다 우연히 만난 동행자가 아니라, 관리소의 정식 직원이다.


거기다 자신과 함께 산으로 들어가는 걸 목격한 관리소 직원만 해도 다섯이 넘는데 자신을 잠들게 하고 폭행하고 죽이려 했다고?


이건 대 놓고 자신이 범인이라고 떠드는 짓이다.


이곳까지 오면서 존과 감정적으로 대립을 하거나, 그를 의도적으로 무시한 적도 없다. 그저 그의 친절에 감사했을 뿐.


존이 자신을 공격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이건, 현실성 없는 이야기다.


존이 자신을 공격하려 했다는 것보다, 정체불명의 적이 야영지에 침입하고 존을 폭행하고 자신을 혼란에 빠트리고 있다고 보는 게 더 현실적이고 현재 진행형에 가깝다.


‘에일리. 정신 바짝 차려. 아차 하는 순간 죽는 거야.’


슬그머니 손을 움직여 주변을 더듬었다.


작은 돌멩이 하나라도 좋으니,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뭔가를 손에 넣어야 했다.


최악의 상황이 찾아오더라도 그냥 멍하니 앉아 있다가 강간이나 당하고 무기력하게 죽고 싶지 않았다.


심정은 절박했지만, 주변을 더듬는 손짓은 느릿하고 은밀하게 움직였다.


그때.


스륵- 몸을 일으키는 소리가 났다.


그저 옷깃이 스치는 소리였지만, 에일리는 코끼리 전용 마취탄이라도 맞은 것처럼 그대로 굳어 버렸다. 그저 몸만 굳은 게 아니라 숨소리까지 굳었다.


목소리가 가깝게 들린다고 생각했는데, 그저 자신 뒤에 있는 게 아니라 가까이 붙어 앉아 있었던 것 같다.


몸이 파르르 떨리면서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다···. 보고 있었던 거야?’


자신의 은밀한 더듬질이 적나라하게 오픈됐다는 생각이 들자 덜컥 공포감이 밀려들었다.

두려움에 아랫입술이 말려들어 가고 볼살이 부들부들 떨렸다.


흐느낌이 나올 것 같아서 입술을 꽉 깨물자, 일그러진 입술 사이로 엇박자 띄운 숨소리가 비실비실 새어 나왔다.


“흐음.”


뒤를 점령한 자가 의미불명의 낮은 소리를 냈다. 짧고 낮은 단발의 소리가 마치 최후의 통첩처럼 들렸다.


성공하고 싶었는데, 자신을 콜걸 취급하고 무시하는 놈들에게 보란 듯이 증명하고 싶었는데, 결국, 이렇게 끝나는구나 싶자, 주르륵 눈물이 났다.


저벅. 자그륵. 저벅. 자그륵.


바닥이 두터운 신발을 신었는지, 걸음을 뗄 때마다 둔탁한 소리와 자잘한 돌가루 짓이기는 소리가 났다.


에일리는 더는 못 참겠다는 듯 어깨를 움츠려 잡고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어차피 죽일 거라면, 고통 없이 단번에 보내주기를 바랐다.


옷이 찢기고 몸이 더럽혀지고 온갖 희롱질을 당한 끝에 오래간만에 잘 놀았으니, 만찬으로 허벅지살만 먹어 치우겠다는. 삼류 저질 영화에서나 등장할 법한 지저분한 엔딩.


짧은 상상만으로도 충분히 끔찍했다.


‘빌어먹을 개자식! 단번에! 그냥 단번에 죽여!’


저벅. 자그륵. 저벅. 자그륵···.


특유의 발걸음 소리가 조금씩, 조금씩···.


‘멀어져?’


눈을 질끈 감고 어깨를 움츠려 잡고 있던 에일리는 게슴츠레 눈을 떴다. 그리고 슬그머니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다가 재빨리 입을 틀어막았다.


“흡!”


어둠 속에 둥둥 떠 있는 노랗고 붉은 불빛과 눈이 딱 마주친 것이다.


“으르르르르···.”


낮고 길게 흘러나오는 짐승 특유의 울림. 사그라드는 모닥불에 아른거리듯 놈의 형체가 드러났다.


‘느...늑대?’


으르렁거리는 경고음 사이로 날카로운 이빨과 진득한 침이 뚝뚝 떨어졌다.


에일리는 경악한 표정으로 입을 더 강하게 틀어막았다. 조금이라도 소리를 냈다간, 그대로 달려들어 목을 물어뜯을 분위기다.


어디였더라.


디스커버리 아니면 내셔널지오그래픽?


모르겠다. 어디서 봤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맹수와 마주치면 절대 눈을 떼지 말라는, 눈을 떼고 고개를 돌리는 순간 공격을 당하게 될 거라는 그 비슷한 내용이 있었던 것 같다.


에일리는 눈을 부릅뜨고 눈앞의 맹수와 눈싸움을 시작했다.


눈알이 빠질 것 같고 동공을 바늘로 콕콕 찔리는 느낌이 났지만, 에일리는 물려 죽기 싫다는 신념 아래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눈싸움을 이어갔다.


눈물이 줄줄 났지만, 눈을 감는 순간 죽는다고 생각하니, 이 정도 쓰라림쯤 아무것도 아니라 생각했다.


그때.


저벅. 자그륵. 저벅. 자그륵···.


다시 발소리가 들렸다. 이번엔 멀어지는 게 아니라 가까워지고 있다.


저벅. 자그륵. 저벅. 자그륵.


에일리 뒤편에 도착한 놈은 우뚝 멈춰서더니 에일리에게 뭔가를 툭 던졌다.


“흡!”


입을 틀어막고 있어서 다행히 큰 소리가 나진 않았지만, 눈앞의 맹수를 자극하기엔 충분한 크기. 극도의 긴장감에 전신 근육이 돌덩이처럼 딱딱해졌다.


이런 에일리의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발소리의 주인은 무심한 톤으로 말을 건넸다.


“계속 그렇게 멍청하게 있을 건가?”


‘젠장! 눈이 멀기라도 한 거야? 늑대! 눈앞에 늑대가 있다고!’


“한심하군.”


‘뭐 어쩌라고! 그럼 벌떡 일어나서 늑대와 싸우기라도 해?’


어차피 죽을 것, 마음의 소리를 입 밖에 내버리고 싶었지만, 아직 삶에 대한 애착이 남은 모양이다. 에일리는 입을 꾹 틀어막은 채 묵묵부답으로 저항했다.


“앞섶도 가리고 속옷도 챙겨 입어. 레이스가 조금 찢어 지긴 했지만, 다행히 오물은 묻지 않은 것 같으니 괜찮을 거다.”


‘.....?’


남자는 그 말만 던져놓고 다시 저벅. 자그륵. 저벅. 자그륵··· 멀어지다가. “진!” 하고 누군갈 불렀다.


그러자, 자신을 노려보며 침을 뚝뚝 떨구고 있던 맹수가 ‘낑?’하고 목소리 쪽을 바라보더니 벌떡 일어나 달려가 버렸다.


“푸허! 푸하. 하악. 흐읍. 후···.”


숨을 꾹 참고 있던 에일리는 허파에 가득 찬 이산화 탄소를 뱉어내더니 급히 숨을 몰아쉬었다.


‘뭐지? 앞섶을 가려? 속옷을 입으라고?’


에일리는 멍청이처럼 숨만 깔딱이다가 뒤늦게 몸을 살폈다.


“아니!! 이게··· 어떻게.”


블라우스 단추가 브래지어 밑까지 풀려 있는 걸 발견하고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졌다.


“서···. 설마.”


에일리는 스커트 밑으로 급히 손을 넣었다.


“.....”


없다. 아무것도.


밑을 보호하고 있어야 할 숑팬티(thong Panty)는 오간 데 없고 곱슬한 털과 매끈한 살만 손끝을 자극했다.


허겁지겁 바닥에 떨어진 팬티를 집어 들었다.

자신이 입고 있던 빅토리아 한정 꽃무늬 레이스 숑팬티가 맞다.


“이···. 이게.”


야영지를 습격한 강간 살인마에 대한 망상은 친절한 시골 총각의 강간미수 시체유기 미수사건으로 전환이 됐다.


앞을 정리하고 발끝에 팬티를 끼우려는데, 남자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레이스가 조금 찢어 지긴 했지만,


에일리는 팬티 상태를 확인했다. 남자 말대로 레이스는 뜯겨나갔다.


다행히 오물은 묻지 않은 것 같으니···.


이젠, 가늘어져 희미한 상태가 된 모닥불 쪽으로 팬티를 들어 올렸다.


“모르겠어···.”


팬티색 자체가 블랙인 것도 있고, 미약한 빛 때문에 오염 상태를 확인하는 것도 어려웠다.


찝찝한 기분을 털어낼 수가 없자, 팬티를 챙겨 입는 건 잠시 뒤로 미뤘다. 완전히 발가벗고 있는 것도 아니고 스커트가 일차 방어선을 굳건히 하고 있다.


‘여행용 캐리어를 손에 넣을 때까지만, 조금만 참자.’


에일리는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키더니, 자신의 캐리어가 실려있는 트럭 쪽을 바라봤다.


일단 목소리 주인이 야영지 습격 살인마가 아닌 것은 확실해진 것 같다.


‘아니야, 친절한 존이 이런 짓을 할 거라고 예상도 못했잖아. 확실한 증거가 손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누구도 믿어선 안 돼.’


여긴, 인적도 없고 불빛도 없고 어디서 야생 동물이 튀어나올지 모르는 정글 같은 곳이다. 도덕적인 사람이라도 상황에 따라선 언제든 괴물로 돌변할 수 있는 그런 장소였다.


기껏 팬티를 끼워 입었더니, 기다렸다는 듯 나타나 '역시, 벗기는 맛이 있어야지'하면서 변태스러운 말을 던질지 어찌 알겠는가.


벗어둔 하이힐을 발에 끼우고 트럭이 있는 쪽으로 조심조심 다가가자, 묵직한 저음의 그 남자 목소리가 낮게 흘러들었다.


“존. 존은 어디 있지?”


에일리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대화의 앞뒤 맥락은 모르겠지만, 목소리 주인이 친절한···. 아니, 변태 개자식 존에게 존의 위치를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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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012. 내가 뭘 잘못했다고... +4 24.09.05 7,558 163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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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04. 존, 존은 어디있나. +5 24.08.30 10,328 179 9쪽
3 003. 친절한 존과 함께. +9 24.08.29 10,897 20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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