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키산맥에서 온 폭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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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프21
그림/삽화
E-soul
작품등록일 :
2024.08.26 11:19
최근연재일 :
2024.09.17 00:00
연재수 :
2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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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8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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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68
글자수 :
119,535

작성
24.09.02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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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쪽

008. 작게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작품에 등장하는 배경, 인물, 지명, 사회 등은 현실과 무관하며 '로키산맥에서 온 폭군'을 위한 세계관 설정, 창작에 의한 것임을 밝힙니다.]




DUMMY

008. 작게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에일리가 가져온 것은 특정 문서나 서류가 아닌, 아버지가 아들에게 남긴.... 그냥 한 장의 편지였다.


버석한 질감과 옅게 바랜 색이 꽤 오래전 작성된 편지다.


제임스는 미간을 찌푸린 채, 조용히 편지를 읽어내렸다.


엉덩방아를 찧고 바닥에 엉거주춤 누워있던 에일리는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서류에 눈을 고정하고 있는 제임스의 모습을 힐끔 바라봤다.


서류 전달 임무 때문에 제임스란 이름은 머리에 인이 박혔지만, 실물을 제대로 보는 건 지금이 처음이다.


새벽녘에 갑작스러운 상황과 어둠 때문에 제대로 살필 여력이 없었고, 날이 밝은 쯤엔 수신 거부를 해 버리고 그대로 돌아가버렸기 때문에 그저 희미한 인상만 남았다.


기억에 남는 거라곤 키와 덩치가 움찔할 정도로 컸다는 정도다.


어둠속에서 봤을 땐, 혼란과 두려움 때문에 레슬러 같은 거구 느낌을 받았는데, 밝은 곳에서보니 느낌이 조금 달랐다.


키가 크고 어깨가 벌어진 것은 변함이 없지만, WWE의 레슬러처럼 둔탁한 체형은 아니다.


어깨까지 늘어진 머리칼과 수염 때문에 생김새를 깊이 들여다보는 건 어려웠지만, 인상이 그리 나빠 보이진 않는다.


말투가 워낙 단조롭고 단단하고 단호해서 차갑고 날카로운 인상을 가졌거나 굉장히 우락부락한 인상을 가지지 않았을까 생각했는데, 차분한 느낌은 있지만, 냉혹한 느낌은 그다지 느껴지지 않았다.


이런 상황이 아닌 편안한 자리에서 만났다면 불편함보단 안정감이 느껴질 그런 분위기다.


자기중심적 사고로 주변 전체를 무시해 버리는 그런 성격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


‘내 입장을 차분하게 설명하고 부탁한다면···.’


문제는 자신의 처지를 어떤 식으로 어필해야 저 무뚝뚝한 남자가 관심을 둘지 하는 점이다.


에일리 입장에선 꽤 억울한 일이지만, 첫 만남부터 멍청한 여자로 단단히 찍힌 상태라, 이대론 쓸모없는 짐짝 취급을 받을 우려가 있었다.


‘아니, 우려가 아니라 그럴 가능성이 높지.’


짐짝 취급을 벗어나려면 어떻게든 자신의 쓸모를 증명해야 하는데 여기서부터 막막했다.


법전이고 뭐고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이곳에서 어떻게 어필을 해야 생존 포인트를 높일 수 있을지 난감하기만 했다.


‘거짓말을 모면하려고 서류를 먼저 확인한 것까지 들킨 상황이니···.’


고객과의 약속을 어기고 변호사의 직업윤리를 포기하면서 관계를 정립하기도 전에 모든 걸 망쳐버렸다.


그땐 어떻게든 살고 보자는 마음이 우선이었지만, 일이 이렇게 되니 남는 건 후회뿐이다.


‘미치겠네.’


로키산맥 실종자 명단에 오르지 않기 위해 교양 과목까지 끌어와 이리저리 잔머리를 굴리는데, 제임스의 목소리가 툭 날아들었다.


“내 얼굴에 뭐라도 묻은 건가?”


“네?”


“빤히 바라봐서.”


에일리는 뜨끔한 표정으로 ‘아니요. 그냥.’ 하면서 고개를 돌렸다.


서류를 들여다보고 있어서 자신의 시선을 모를 줄 알았는데, 관자놀이에도 눈이 달린 모양이다.


제임스는 날파리처럼 깔짝대는 에일리는 툭 쳐 내고 다시 편지에 시선을 뒀다.



*


네가 이 편지를 받았다는 것은, 아마도 내가 죽었다는 말이겠지.

.

.

.

너는 아무것도 원치 않으니, 모두가 행복해 지기 위해 떠난다고 했다.

.

.

.

아비의 재산은 1원짜리 한 장 탐나지 않는다던 네 모습이 지금도 눈앞에 아른거린다.


너를 잡고 싶었지만.

내심, 결국 돌아올 수밖에 없으리라 생각한 내 자만심과 고집이 이런 결과를 만들었구나.

.

.

.

싫든 좋든, 내가 죽고 나면 상속에 대한 문제가 불거질 것이다.


하지만.


예측건대, 정당한 상속 분마저도 내팽개칠 것이 눈에 선하구나.

하지만, 욕심 많은 네 형제들은 이 조차 의심의 눈으로 볼 것이 분명하다.

.

.

.

내 죽음 이후에 편지가 전해지도록 한 것은, 네가 이마저도 거절할까, 걱정됐기 때문이다.


얼마 되지 않는 돈이지만, 네 앞으로 양도를 해 놓을 생각이다.


부족한 아비가, 속죄의 마음으로 남긴 것이니. 부디 거부하지 말고 받아주길 바란다.


네가 어떤 삶을 살든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있든 변치 않는 건. 네가 내 아들이라는 것이다.

.

.

.

내 아들 태산의 삶에 작게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2010년 9월 한국호 씀.


추신> 기회가 된다면, 한 번씩 집을 둘러봐 줬으면 좋겠구나. 그래도 가족아니더냐.


*


“흠.”


2010년 9월이면 자신이 집을 나오고 몇 달 뒤다.

말인즉 이 편지가 작성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14년 전이라는 뜻이다.


“쓸데없는 짓을···.”


어떻게 말을 걸까, 자신을 어떻게 어필해야 할지 고민하며 기회만 노리고 있던 에일리가 슬쩍 입을 열었다.


“내용은 확인이 끝나···.”


“삶에 작게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면, 애초에 이런 짓을 하지 말았어야죠.”


상속에서 제외될 것을 예상하고 미리 준비한 돈이라고 했지만, 편지에도 밝혔다시피 큰돈은 아니라고 했으니 많아 봐야 백억 또는 수십억 정도일 것이다.


그래서 더 이해가 되질 않았다. 보아하니 신탁 형태로 돈을 묻어 둔 것 같은데, 이 정도 액수 때문에 천만 달러의 현상금이 걸리고 스캐빈져가 떼로 몰려왔다고?


제임스는 편지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겨우 이 정도로 이런 사달이 날 리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편지는 그렇게 안부를 묻는 정도가 적혀 있을 뿐, 재산과 관련된 내용은 어디에도 찾을 수가 없다.


“저기···.”


편지를 반복해 들여다보는 제임스를 보며 에일리는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뭐지?”


“이게···. 하나 더 들어 있어서.”


에일리는 수표 크기의 종이를 내밀었다.

봉투 내부에 편지만 있는 게 아니라, 이것도 함께 들어 있었는데 마음이 급하다 보니 미처 살피지 못했다가 뒤늦게 확인을 한 것이다.


다행히 이 종이에 적힌 내용은 한글이 아닌 영어로 작성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에일리도 내용을 파악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었다.


“TS investment company?”


제임스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리자, 에일리는 이때다 싶은 표정으로 TS에 대한 정보를 주르륵 읊었다.


“자본금 칠천만 달러로 시작한 투자법인입니다. 2010년 12월에 설립이 됐는데 법인소유주가 누구인지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에일리는 법인소유주가 알려지지 않았다고 말했지만, 이젠 모를 수가 없다.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눈앞의 이 남자. 제임스 한이 TS의 주인이 분명했다.


“다른 투자사와 달리 꽤 특이한 방식의 투자를 해서 일반엔 거의 알려지지 않은 회사입니다.”


“특이한 투자?”


에일리는 자세를 반듯하게 하고, 제임스의 비서라도 된 양 빠르게 정보를 전달했다.


“설립 첫해에 전기차, 배터리, 반도체, 코인에 투자하고 그 뒤론 아예 움직임이 없던 회사입니다. 아,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투자 변동이 전무한 회사니까요.”


‘15년 전에 전기차, 배터리, 반도체, 코인에 투자했다고?’


집을 나가기 전, 아버지 서재에서 나눴던 짧은 대화 하나가 떠 올랐다.


돈이 있다면, 어디에 투자하고 싶냐는 아버지의 질문에 회사 이름을 말하며 전기차, 배터리, 반도체, 코인에 투자하겠다고 했다.


그때 아버지가 했던 말이 ‘투자에 대한 책임은 온전히 자신의 것이다’였다.


편지엔 얼마 안 되는 돈이라고 적혀 있어서 수십억 또는 백억 정도를 생각했는데. 당시 환율로 칠천만 달러면 거의 천억에 가까운 돈이다.


“노인네가 미쳤나···.”


당시 금융위기로 인해 그룹 사정이 좋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떠나는 아들 앞으로 천억을 투척해 버린 것이다.


다른 형제들이 이 사실을 알았다면, 당장에 난리가 났을 일이다.


'작게나마 도움이 되길 바란다면, 그냥 유가증권이나 무기명채권 정도나 던져 줄 것이지.'


은퇴하고 느긋하게 힐링 라이프를 즐기던 아들 머리에 똥을 뿌린 걸 넘어, 아예 폭탄을 떨궈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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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08. 작게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7 24.09.02 8,779 186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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