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키산맥에서 온 폭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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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프21
그림/삽화
E-soul
작품등록일 :
2024.08.26 11:19
최근연재일 :
2024.09.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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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1 0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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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7. 잊힌 옛 이름

[작품에 등장하는 배경, 인물, 지명, 사회 등은 현실과 무관하며 '로키산맥에서 온 폭군'을 위한 세계관 설정, 창작에 의한 것임을 밝힙니다.]




DUMMY

007. 잊힌 옛 이름











챙겨갈 만한 장비가 있나 차량 내부를 뒤져보는데, 7인치 크기의 알루미늄 케이스가 눈에 들어왔다.


내부를 확인하자, 우레탄 폼으로 보호된 미니 랩톱 한 대와 납작한 스티커 형태의 GPS 수신기가 눈에 들어왔다.


전원을 켜자, 접속된 위성 정보와 라인 형태의 세계지도가 나타났다.


“꽤 비싼 물건을 사용하네.”


군용은 아니지만, 민간 위성에 등록해 임의로 사용할 정도면 장비값에 더불어 운용 비용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전직 CIA 출신이라더니, 여기저기 이어진 끈이 꽤 많았던 모양이군.”


서치 포인트라고 적힌 메뉴를 클릭하자, 숫자가 적힌 아이콘이 주르륵 나타났다. 단말기와 연결된 GPS 수신기 목록이다.


그중 활성화된 아이콘을 클릭하자 지도 화면이 돌아가며 북미 대륙으로 이동했고 잠시 뒤, 캐나다 로키산맥 일대가 출력됐다.


산맥 외곽 지역으로 보이는 위치에 붉은 점 하나가 깜빡이며 A-7이라는 표기가 나타났다.


고민할 필요도 없이 에일리 위치다.


“여행 가방에 부착해 놨군.”


존과 닉, 머저리들은 정리를 해 버렸으니, GPS 수신기가 붙어 있다고 해도 이젠 의미가 없다.


문제는 다른 놈들이다.


“지구를 한 바퀴 돌아서 이곳까지 왔다고 했으니.”


에일리가 이곳에 도착하기 전에 존 일당이 먼저 자리를 잡고 있었던 것을 보면, 최소로 잡아도 서류가 움직인 시점부터 청부가 시작됐다고 봐야 했다.


말인즉. 에일리 가방에 붙어 있는 GPS 수신기가 존의 것만 있으리란 법이 없다는 뜻이다.


이동하는 동한, 숙박하는 동안.


별의별 잡놈들이 여행 가방에 집적거렸을 테니, 못해도 서너 개는 더 붙어 있을 것이다.


상식적인 반응이라면 당장이라도 가방을 내다 버리는 게 맞지만, 제임스 입장에선 오히려 나쁘지 않았다.


“미끼 상품으로 나쁘지 않겠어.”


서류를 좇는 놈들이 얼마나 되는진 모르겠지만, 적당한 곳에서 적당히 기다리고 있으면 알아서 데드존에 기어들어 온다는 의미다.


그런데 이건 이것대로 꽤 이상했다.


그동안 기회가 많았을 텐데, 왜 서류를 건드리지 않은 걸까.


통신 내용에 의하면 서류를 파기하거나 회수하는 게 목적이라고 했다.


에일리 정도면 툭 건드리기만 해도 죽어 나자빠졌을 것이다. 놈들도 나름 전문가라고 행세하는 놈들이니, 굳이 죽이거나 납치하는 방법이 아니더라도 서류를 손에 넣으려 했다면 얼마든지 가능했다.


그런데 지금까지 상황을 보면 에일리를 중간에 건드리지 않고 이곳까지 안전하게 모셔 오다시피 했다.


흘러가는 상황을 볼 때, 에일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목적지까지 안내인 역할을 한 것 같다.


"구미호도 아닌데 꼬리를 잔뜩 달고 나타났네."


존이 관리소까지 점령하고도 곧바로 행동에 나서지 않은 것이나, 새벽녘에 보인 태도 등을 종합해 본다면 최초 의뢰는 감시, 보고하는 정도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게 아니었다면 진즉에 자신을 찾아와 총질부터 했을 거다.


갑자기 청부 금액이 천만 달러로 올라갔다는 닉의 말을 생각하면.


“서류의 존재는 최근에 드러났을 가능성이 크군.”


에일리가 자신을 만나기 위해 움직이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전달할 서류가 있다는 게 알려진 것이 최근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애초에 목적은 나를 감시하는 정도였지만, 서류가 추가되면서 일이 급박하게 흘러간 건가?"


그런데 또 이상한 것이 있다.


존이 보인 태도를 보면, 자신을 알고 있으면서도 정작 뭐 하는 놈인지는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존에게 전달된 의뢰 내용에 대상의 정보가 누락되었거나, 그도 아니면 의뢰를 한 놈도 자신이 뭐 하던 놈인지 몰랐을 수도 있다.


존도 바보가 아닌 이상, 나름대로 대상에 대한 정보를 취합은 했을 것이다. 하지만, 제대로 된 정보를 얻지 못한 것을 보면···.


전직 CIA 출신이지만, 시크릿 파일에 접근할 수 있을 만큼 보안 레벨이 높은 놈은 아니었다는 뜻이다.


그래서 더 머리가 복잡해졌다.


자신에 대해 정확히 아는 눈치였다면, 의뢰인 풀(pool)이 단번에 좁아진다.


자신의 정보는 최소 국장급 또는 그 이상의 존재만 열람할 수 있다. 그 열람도 자신의 존재를 인지해야만 가능한 일이니, 최근에 자리를 맡은 자들은 더더욱 자신을 알 방법이 없다.


거기다 열람 기한이 제한된 기밀 서류는 대통령이라도 들여다볼 수 없으니, 일단 윗대가리들은 제외다.


자신의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인원을 빼고 의뢰자를 추측한다면, 의심 대상은 거의 무한대에 가까워진다.


“골치 아프네.”


자신을 아는 누군가가 이 의뢰를 받았다면, 싸우기보단 협상을 청했거나, 그도 아니면 역으로 정보를 팔아먹고 사건이 진정될 때까지 곧바로 잠수를 탔을 것이다.


좋은 일도 아니고 이런 일로 자신과 엮였다간 끝이 좋지 못할 걸 뻔히 알고 있을 테니까.


하지만, 똥인지 된장인지 굳이 찍어 먹어봐야 아는 개, 돼지, 닭대가리들 눈엔 ‘천만 달러’란 액수 말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것이다. 스캐빈저 놈들은 돈 냄새에 마비되는 순간 정신을 못 차리는 족속이니까.


서류봉투와 관련자 제거에 천만 달러.


대상은 여자 하나와 산속에서 도끼질이나 하는 촌놈 하나.


동네 양아치에게 의뢰를 해도 대번에 고개를 끄덕일 만큼, 누가 봐도 먹음직스러운 대상이다.


도심 한복판도 아니고 여긴, 사람이 떼로 죽어 나가도 흔적 하나 찾기 어려운 거친 산맥이다.


거기다 입산객들이 들어오지 않는 구역이니, 경찰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고 보유한 화력을 마음껏 쏟아부어도 아무 문제가 없다.


이것저것 눈치 볼 일이 없으니, 기분 전환이라도 하겠다며 미친놈처럼 날뛸 가능성이 컸다.


“은퇴해서 잘 지내고 있었는데, 누가 이런 골치 아픈 서류를 보낸 거야? 그리고 보내려면 제대로 된 메신저를 골랐어야지. 저렇게 개념 없는 여자를 보내면 어쩌자는 건지.”


로키산맥이 뉴욕 중심가도 아니고 오피스룩에 하이힐을 신고 들어오다니. 그냥 한숨만 나왔다.


어떤 놈이 이런 일을 벌였는지 모르겠지만, 평안한 일상에 큼지막한 똥을 던져놨으니, 이에 대한 대가는 넘치도록 치러야 할 것이다.


가방에 단말기를 챙겨 넣고 에일리가 있는 곳으로 이동을 시작했다.


어쩌다 이런 일이 생겼는지 알려면 결국, 서류를 확인해 보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자신이 있는 이곳까지 어떻게 찾아왔는지도 확인해 봐야겠다.


평범한 변호사 따위가 지구를 한 바퀴 넘게 돌아 자신의 은거지를 찾아냈다는 것부터가 말이 되질 않는다.


귀찮은 일에 휘말릴까 싶어 수취인불명으로 대충 넘기려 했는데 다 부질없는 짓이 됐다.



*



헉헉대며 진을 쫓아 움직인 에일리는 작은 계곡에 도착했다.


"뭐야. 다 온 거야?"


이곳이 목적지였는지 진은 적당한 곳에 배를 깔고 누워 물끄러미 에일리를 바라봤다.


“제임스는? 네 주인은?”


에일리는 주변을 둘러보며 제임스를 찾았다. 하지만, 물소리만 시끄러울 뿐 어디에도 제임스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여기 맞아?”


에일리는 배 깔고 누운 진을 보며 손짓발짓까지 동원해 소통을 시도했다. 하지만, 진은 뭐라는지 모르겠다는 듯 길게 하품을 하고 그대로 눈을 감아버렸다.


“지금 잠이나 잘 때가 아니잖아. 헤이, 진? 네 주인 어디 있냐고.”


몇 번이고 진을 불렀지만, 진은 가슴팍에 코까지 묻고 에일리를 외면했다.


“야!”


에일리가 소리를 지르자, 진이 얼굴을 꺼내며 낮게 으르렁거렸다. 잇몸 사이로 검은 입술이 바르르 떨리고 날카로운 이빨이 드러났다.


“워워. 아니야. 어. 그래. 미안. 조용히 할게.”


에일리는 양손을 번쩍 들고 재빨리 뒷걸음쳤다.


"하, 미치겠네...."


캐리어를 깔고 앉아 지친 발목을 주무르는데 심한 갈증이 올라왔다.


생각해 보니 갈증 때문에 잠에서 깼는데 지금껏 수분 섭취를 전혀 못 한 상태다.


쩝쩝 소리를 내며 침을 삼키던 에일리는 계곡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바로 옆에 물이 있는데, 말라붙은 혀를 녹이며 마른침이나 삼키고 앉아 있다니. 정신이 없긴 없는 모양이다.


에일리는 계곡 언저리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손으로 물을 떠 입으로 가져가다가 멈칫했다.


"이거 마셔도 되는 건가."


갈증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손을 댔지만, 지금껏 정화된 물만 마셨던 터라, 내심 꺼림칙한 마음이 들었다. 다큐멘터리에서 보았던 기생충이니 물 벌레니 하는 것들이 머리 속을 스쳐가자 손에 담긴 물이 굉장히 위험해 보였다.


"아니야, 그건 아프리카나 아마존 이야기잖아. 여긴 청정지역 로키산맥이라고."


긴가민가하면서도 결국 갈증을 이기지 못해 입을 가져다 댔다.

냉기 촤르르 흐르는 물이 목구멍을 적시자, 자신도 모르게 혓바닥이 춤을 췄다.


"으흐.... 어흐..."


처음이 어렵지, 그 다음은 별 것 아닌거라던가. 처음엔 조심스럽게 물을 들이켰지만, 나중엔 걸신들린 듯 물을 흡입했다. 그렇게 몇 차례 목을 축이고 나니 축 처졌던 몸에 생기가 돌아왔다.


"하. 살 것 같다."


진 근처로 돌아와 캐리어에 다시 주저앉았던 에일리는 깜빡하고 있었다는 듯 급히 가방을 열었다. 그리고 안쪽 깊숙한 곳에서 봉인된 봉투 하나를 꺼내 들었다.


주둥이를 찢고 서류를 꺼내려는데, 변호사의 직업윤리가 잠시 발목을 잡았다.


“아니야. 윤리고 뭐고, 일단 살고 봐야지.”


스스로를 서류라고 우긴 이상, 더 늦기 전에 진짜 서류가 되어야 했다.


제임스가 돌아오면 곧장 짐을 확인하고 서류 봉투를 찾으려 들 텐데, 그렇게 빼앗기고 나면 그 냉혈한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을 버리고 떠날 것이다.


찌이익-


봉투를 찢고 서류를 꺼냈다.


"이....이건!"


내용을 확인한 에일리는 주르륵 눈물이 났다.


뭔가 잔뜩 적혀 있긴 한데, 한 글자도 읽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영어! 세계 1위 공용어인 영어를 썼어야지!”


안타깝게도 서류에 적힌 글자는 영어가 아닌 한글로만 작성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당연한 이야기지만, 에일리는 한글을 몰랐다.


서류 내용을 암기해서 스스로 서류가 되고자 했던 에일리의 긴박한 계획은 그렇게 한 방에 날아가 버렸다.


“씨발.... 이제 어쩌지?”


교양인답게 입 밖으로 욕을 뱉지 않던 에일리지만, 상황이 궁해지니 거리낌 없이 짜증이 흘러나왔다.


암담한 표정으로 서류를 만지작거리는데, 뒤에서 큼지막한 손이 나타나 서류를 빼앗아 갔다.


“어엇!”


깜짝 놀란 에일리가 급히 몸을 일으키다가 발을 삐끗하며 벌러덩 누워 버렸다.


“윽.”


제임스는 그런 에일리를 한심하다는 듯 내려봤다.


“스스로 서류가 되려고 했는데, 안타깝게도 실패했나 보군. 아니면 시간이 없어서 미수에 그쳤거나.”


“.....”


에일리는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민망하고 창피해서 제임스을 바라볼 수가 없다.


제임스는 가볍게 혀를 차고는 문제의 그 서류에 시선을 돌렸다.


도대체 이 서류가 뭐기에 다들 그렇게 난리를 피우는지, 확인할 시간이다.


“음?”


서류의 첫 문장을 확인한 제임스는 자신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태산이 보아라.


한국을 떠난 그날 이후.

이젠 어디에도 사용하지 않게 된, 잊힌 옛 이름이 첫 줄에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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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07. 잊힌 옛 이름 +4 24.09.01 9,343 17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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