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키산맥에서 온 폭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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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프21
그림/삽화
E-soul
작품등록일 :
2024.08.26 11:19
최근연재일 :
2024.09.17 00:00
연재수 :
2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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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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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19,535

작성
24.09.04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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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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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011. 반문하지 말라고!

[작품에 등장하는 배경, 인물, 지명, 사회 등은 현실과 무관하며 '로키산맥에서 온 폭군'을 위한 세계관 설정, 창작에 의한 것임을 밝힙니다.]




DUMMY

011. 반문하지 말라고!











IT 기업 콜센터에나 있을 법한 ‘웹 서칭 부서’ 검색 요원 알랭은 의자에 반쯤 누워 지루한 표정으로 마우스를 딸깍거렸다.


“지겹다. 지겹다. 지겹다. 다 때려치고 싶다.”


CIA에 입사가 결정되었을 때 가졌던 기대감과 포부는 1년도 채 넘지 않아 연기처럼 사라졌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여기에 있는가···.”


알랭의 중얼거림에 맞은편 책상에 앉아 잡지를 뒤적거리고 있던 미키가 한마디 거들었다.


“힘들어도 사표는 다음 주에 쓰는 걸 추천합니다.”


“다음 주?”


“월급은 받고 그만둬야죠.”


“아아. 그래. 월급은 받고···.”


매달 같은 소리 주고받는 것도 지겹다는 듯, 알랭은 거의 책상 밑으로 기어들어 가다시피 늘어졌다.


“미키. 너는 이 일이 괜찮냐?”


“이일이요?”


“그래. 울리지도 않는 전화기 앞에서 일과를 보내는 거.”


“월급만 밀리지 않는다면, 선인장을 상사로 모시하고 해도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아···. 그래. 월급은 밀리지 말아야지.”


알랭이 허무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뭐, 솔직히 나도 왜 여기서 이러고 있나 싶긴 한데. 전화가 울리는 것보단 지금처럼 울리지 않는 게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미키의 말에 알랭이 키득키득 웃었다.


“뭐, 듣고 보니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네. 시끄럽게 울어대는 전화기를 상대하는 것보단, 지금처럼 잡지나 읽는 게 신상에 이롭긴 하지.”


알랭은 스멀스멀 의자를 타고 올라와 다시 모니터를 들여다봤다. 그리고 마우스를 딸깍거렸다.


“알랭.”


“어.”


“이런 거 물어보는 건 좀 이상하려나요?”


“이런 거? 그게 뭔데?”


“이 부서에 저보다 1년 먼저 들어오지 않았습니까.”


“그랬지. 그리고 1년 더 지났고.”


“예전부터 궁금했는데, 뭘 그렇게 검색하는 겁니까?”


“각자 업무에 대해선 묻지도 답하지도 않는다. 몰라?”


“알죠. 아는데, 솔직히 이 부서가 왜 존재하는지를 모르겠단 말입니다. 막말로 내 업무를 좀 봐요. 울리지 않는 전화기 앞에서 하루 종일 시간만 좀먹고 있지 않습니까.”


“월급만 밀리지 않으면 상관없다면서.”


“그거야 당연한 일이죠. 그냥, 월급을 받는 만큼 나도 뭔가를 했으면 한다 이거죠. 이러려고 CIA에 들어온 것도 아니고.”


“큭큭큭.”


“왜 웃습니까?”


“그건 나도 마찬가지라서. 나도 여기 앉아서 하루 종일 모니터만 들여다볼 줄은 몰랐거든.”


“묻지도 답하지도 않는다. 이건 나도 아는데. 우리가 기계는 아니지 않습니까. 어쩌다 보면 자리를 비울 수도 있고.”


“하고 싶은 말이 뭐야?”


“그냥, 뭐 그렇다는 거죠.”


미키는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뻔히 알지 않냐는 듯 툴툴거렸다.


“뭐, 듣고 보니 일리 있는 말 같기도 하고.”


알랭의 말에 미키가 파티션 너머로 얼굴을 내밀었다.


“오, 우리도 공조 가나요?”


“거창하게 공조씩이야. 그래서 네 임무는 뭔데?”


“전화 오면 받는 거죠. 코드 넘버 입력하고 내용 확인한 다음에 상부에 보고하고.”


“뭐, 비슷하네.”


알랭은 마우스를 딸깍거리며 말을 이었다.


“나는 검색 중에 특정 단어가 노출되면 확인하는 거.”


“특정 단어요? 몇 개나요?”


“두 개.”


“네? 달랑 두 개요?”


미키는 그게 뭐냐는 듯 어이없는 표정이 됐다.


“그런 표정 짓지 마라. 내가 하루 종일 방금 네 표정으로 시간을 좀 먹고 있으니까.”


“단어가 뭔데요?”


“제임스(James) 그리고 폭군(tyrant).”


“.....?”


미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전붑니까?”


“어. 전부야.”


“흔해 빠진 단어라서 검색량이 어마어마할 것 같은데. 그거 살펴볼 수는 있는 겁니까?”


“어, 살펴볼 수 있어. 검색 대상이 다크웹 한정이거든.”


“아···.”


“그런데 2년이나 뒤졌는데도 아직 결과가 없다.”


“두 단어를 2년이나 검색했다고요?”


“어. 앞으로 3년은 더 해야 한다는데···. 이게 뭐 하는 짓인지 진짜 모르겠다. 이유라도 설명을 해 줬으면···. 어?”


알랭이 말을 하다 말고 의문부호를 띄우자 미키가 파티션 너머로 다시 얼굴을 내밀었다.


“....?”


“떴다.”


“네?”


“제임스! 떴다고!”


알랭은 눕잡(lie down to work)을 끝내고 자세를 바로 세웠다. 그리고 빠른 속도로 링크를 파고들었다.


“청부? 천만 달러?”


연관 정보를 찾아낸 알랭은 재빨리 전화기를 들고 단축 버튼 1을 눌렀다.


“웹 서칭 부서 알랭입니다. 네. 네. 담당 검색어는 제임스, 폭군입니다. 연관 검색어는 청부, 천만 달러, 서류 등입니다. 네. 네.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알랭은 키보드를 붙잡고 미친 듯이 타이핑을 해댔다. 그렇게 한 시간쯤 지났을 때, 다시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찾았습니다. 오리 사냥터(a duck hunting ground)라고 사냥용 총을 파는 사이트입니다. 접속 아이디가 없어서 내부 정보를 확인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합니다. 네? 잠시만.”


알랭은 펜을 들고 뭔가를 받아 적기 시작했다.


“접속 후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알랭은 메모지에 적은 아이디와 패스워드로 오리 사냥터에 로그인했다.


“와우! 좋았어.”


숨김 메뉴로 들어가 다크웹 주소를 확인하고 컴퓨터를 바꿔 접속했다.


내용을 확인한 알랭은 다시 전화기를 들었다.


“청부자는 블라인드 상태라 확인할 수 없습니다만, 내용은 확인했습니다. 대상은 제임스 한, 에일리 러쉬. 청부 내용은 대상은 제거, 서류는 파기입니다. 메일로요? 잠시만요. 아, 캡처를 막아놨네요. 폰으로 찍어서 보내드리겠습니다.”


상대방이 알려준 메일 주소로 촬영 화면을 발송하자, 곧바로 추가 지시가 내려왔다.


“네. 청부 내용에 변동 사항이 있으면 바로 보고드리겠습니다. 아, 청부를 받은 자들의 목록도 필요하시다고요? 네.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알랭은 손바닥을 파파팍 비비더니 다시 키보드를 두들기기 시작했다.


부서가 생기고 거의 2년 만에 일다운 일을 하게 된 알랭은 언제 좀비처럼 누워있었냐는 듯 해킹 실력을 뽐내기 시작했다.


미키가 알랭의 그런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는데, 그간 한 번도 울린 적 없던 전화기가 요란스럽게 벨소리를 토했다.


미키는 들고 있던 잡지를 던져버리고 급히 전화를 받았다.



*


쇠구슬에 광대가 길게 찢어진 딕슨은 얼굴을 반쯤 감싸고 바락바락 소리를 질렀다.


“빌어먹을! 뻑! 뻑!”


다섯은 즉사, 둘은 팔다리가 박살 나서 조만간 숨이 끊어질 분위기다. 경사면 뒤쪽에도 멍청이 셋이 더 누워있을 것이니, 눈 깜짝 할 새 아홉을 잃은 셈이다.


그나마 멀쩡한 녀석은 달랑 둘. 내비게이터 역할을 하던 놈과 식량을 짊어지고 따라오느라 목숨을 건진 신입 하나뿐이다.


타이슨 역시 부글거리는 표정으로 부하들을 수습했다.


열 명을 데리고 왔는데, 달랑 셋만 남았다.


“제기랄!”


타이슨은 분을 참지 못하고 연신 바닥을 내리찍었다.


“대장. 부상자들을···.”


“부상자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네 눈엔 저게 붕대 좀 감는다고 살아날 것 같냐?”


“....”


“지금부터 놈을 쫓는다. 아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놈을 잡아 죽인다. 장비 챙겨 당장!”


타이슨의 외침에 살아남은 부하들은 빠르게 정비를 마쳤다.


“딕슨. 어쩔 거냐?”


“뭘 물어! 갈갈이 찢어서 죽여버릴 거야!”


타이슨이 부하들과 함께 이동을 시작하자, 딕슨 역시 남은 둘을 데리고 추적에 동참했다.


*


에일리를 어깨에 메고 산 밑으로 내달린 제임스는 로지폴소나무(lodgepole pine; Pinus contorta) 군락지를 지나 낮은 언덕을 올랐다. 그렇게 10분을 더 이동하자 암반 지대가 나타났다. 적당히 몸을 숨기기 좋은 곳에 에일리를 내렸다.


바닥에 내려선 에일리는 손발을 달달 떨더니, 급히 바닥에 엎드렸다. 그리고 당장이라도 토할 것처럼 욱욱거렸다.


사람 어깨에 매달려 한 참을 흔들린데다, 떨어지지 않으려 갖은 힘을 줬더니 속이 뒤집힌 것이다.


“여기서 기다려.”


“우욱. 어···. 어쩌려고요?”


“나 혼자라면 모를까. 너까지 데리고 도주는 불가능해. 꽁무니에 총구를 달고 다니면 둘 중 하나는 어떻게든 죽는다. 여기서 마무리를 짓고 가야 한다."


제임스는 둘 중 하나라고 했지만, 결국 자신이 죽는다는 뜻이다.


에일리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제임스의 옷깃을 잡았다.


“조. 조심해요. 그리고 꼭 돌아와요. 무슨 말인지 알죠?”


제임스가 죽으면 자신도 죽는다. 아니, 죽는 것보다 못한 꼴을 당할 수도 있다.


“말 탈 줄 아나?”


“마···. 말이요?”


“반문!”


“아, 미안해요. 네, 타. 탈 줄 알아요.”


“좋아. 진이 블랙을 데리고 올 거야.”


에일리는 ‘블랙이요?’라고 반문하려다 입을 꾹 다물었다.


“블랙이 오면 가방을 열어봐. 거기에 위성 전화기가 있을 거야.”


“네···. 경찰에···.”


“쯧. 멍청한 소리 하지 말고. 단축키 7번을 눌러.”


“단축키 7번.”


“상대가 코드 번호를 확인할 거야. T-28194-S-790. 외워.”


“T-28194.....”


에일리는 머리를 쥐어짜며 코드를 중얼거렸다. 하지만, 이게 단숨에 외워질 리가 없다.


제임스는 펜을 꺼내 에일리 팔목에 코드를 적어 넣었다.


“코드를 말하면 상대가 어떻게 도와줄지 물을 거야.”


“네.”


“제임스 한과 에일리 러쉬에 청부를 넣은 자에게 청부를 넣는다고 해.”


에일리는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눈을 끔뻑였다.


“청부금은 이천만 달러. 청부자 제거 또는 청부 철회가 목적.”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다.

어떤 놈이 청부를 넣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엿은 혼자서 먹는 게 아니라 나눠 먹어야 제 맛이다.


“아···!”


“통화를 마치면 블랙에 올라타. 어디로 갈지는 진이 알고 있으니까, 오케이?”


“그···.”


“오케이!”


“네! 오케이.”


“좋아. 난 지시한다. 넌?”


“따···. 따른다.”


에일리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겨우겨우 대답했다.


제임스는 에일리의 어깨를 툭툭 두들겨 주고 달려 나갔다.


*


“R마켓 콜센터입니다. 구매하신 상품 코드 번호 부탁드립니다.”


상대가 알려주는 코드 번호를 단말기에 입력하자, ‘tyrant’라는 코드명이 단말기에 출력됐다.


“네. 확인됐습니다. 어떻게 도와드릴까요?”


“네?”


“네?”


“네?”


미키는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연달아 세 차례 반문했다. 그러자, 전화기 저편에서 미친년 울부짖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뻑!!!! 왜, 자꾸 반문을 하는데! 어? 반문을 왜 하냐고!!!!! 뻑! 반문하면 죽는 거 몰라? 어? 몰라? 씨발! 왜 반문을 하고 지랄이냐고!


미키는 기겁한 표정으로 귀에서 급히 수화기를 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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