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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몸 아카데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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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7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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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2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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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21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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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멈춰야 할 때 (3)

DUMMY

‘왜 나를···.’


나는 짐짓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돌려봤더니, 스카우터들이 이쪽을 빤히 바라보고 있던 탓이었다.

그것도 한두 명도 아닌 여럿이서.

이름 모를 아저씨들이 무표정한 얼굴로 저러고 있으니 괜히 소름이 확 돋는다.


혹시라도 착각한 건가 싶어 그들의 시선을 따라가 봤지만, 아무래도 내가 맞는 모양이었다.

그 끝엔 나를 제외하고 아무도 없었거든.


아니, 이 양반들은 선수들은 안 보고 왜 코치를 보고 있는 거야?

부답스럽게시리.

아무리 생각해도 그 이유를 알 수가 없다.

그래도 이러한 내 마음의 소리가 들린 건지 하나둘 시선을 거둔다.


후우, 이제야 숨통이 좀 트이네.

여전히 왜 그런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나는 고개를 흔들어 상념을 털어냈다.


‘아직 경기 중이다.’


심지어 원아웃 주자 2루로 득점권.

초반부터 확실하게 분위기를 가져오기 위해선 신건우를 홈에 불러올 필요가 있었다.


“포볼!”


그 사이 스트레이트 볼넷이 나오며 비어있던 1루가 채워졌다.

다시금 느끼는 거지만 아직 김서진의 제구가 좋지 못하다.

실점하자마자 흔들리는 게 보기보다 멘탈이 약한 것 같기도 하고.

어렸을 때부터 관심을 많이 받던 선수라 이 정도 압박감은 아무렇지 않아 할 줄 알았는데 말이지.


‘아니면 감정 컨트롤이 잘 안되는 건가?’


아무래도 이게 정답인 듯했다.


팍, 팍!


볼넷을 주고 난 이후에, 김서진이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마운드의 흙은 다소 신경질적으로 파냈다.

아마 직전의 볼넷도 실점했다는 사실에 분노하다 제구가 흔들린 것일 터였다.


그래도 지금까지 쌓아온 경험치가 어디 간 건 아닌 모양이다.

녀석이 심호흡을 하고는 5번 타자인 윤효빈에게 몸쪽 꽉 찬 패스트볼을 던졌다.

볼 끝에 테일링이 걸리며 살짝 빠지는 공.

워낙 구위가 좋은 탓에 윤효빈이 반사적으로 배트를 휘둘렀다.


빠각!


배트가 부러지고 타구가 힘없이 구른다.

이를 건져낸 3루수가 자신의 베이스를 밟고 1루로 송구.

병살타가 완성되며, 김서진은 1실점만으로 위기에서 빠져나오는 데에 성공했다.

그럼에도 한양고 더그아웃으로 들어가는 내내 그의 인상은 도통 펴질 줄을 몰랐다.


썩 좋은 행동은 아니었다.

팀의 에이스가 저런 식으로 부정적인 감정을 표출하면 자칫 팀원들이 눈치를 보게 될 수도 있거든.

달리 말해 벤치 분위기가 경직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저런 감정 컨트롤이랑 투구폼 몇 군데만 고치면 지금보다 더 좋아질 거 같은데 말이야.’


당연한 얘기지만 상대 팀 선수들에게서도 빛이 보인다.

그렇다 보니 김서진 같이 재능 있는 선수를 볼 때면 괜히 가르쳐주고 싶은 욕구가 생기곤 한다.

단지 그럴 기회나 여유가 없어 그러지 않는 것일 뿐.


‘지금은 경지고 애들 봐주기도 바쁘니.’


이럴 때면 새삼 내가 코치 생활에 익숙해지긴 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것도 어떻게 보면 직업병이라 볼 수 있지 않을까?

어쨌거나.


“잘했어, 잘했어. 그래도 보통 빠른 공이 아닌데 반응이 나오네. 다음 타석 때 하나 칠 수 있겠다.”

“감사합니다.”


나는 윤효빈의 등을 두들겨주며 함께 더그아웃으로 돌아왔다.

비록 병살로 이닝이 마무리됐지만, 다른 누구도 아닌 김서진을 상대로 선취점을 뽑은 덕분일까. 벤치 분위기는 썩 나쁘지 않았다.


“호연아 한양고 애들 삼자범퇴로 후딱 잡고 들어오자.”

“선취점도 뽑았는데 이번 이닝 깔끔하게 막고 분위기 잡아야지.”

“경지고 파이팅!”

“파이팅, 파이팅!”


바빠 공수교대를 하는 와중에도 쉴 새 없이 목소리를 키우는 모습.

흐뭇하게 그런 선수들을 지켜보고 있는데, 일순간 보이면 안 되는 빨간빛이 내 시야에 스쳤다.


“뭐야.”


적지 않게 놀란 탓에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말이 튀어나왔다.

서둘러 눈동자를 굴려 봤지만 그 빛은 두 번 다시 보이지 않았다.

하필 선수들도 이리저리 엉켜 있을 때라 누구에게서부터 보였는지도 알 수 없는 상황.


“성우야 왜 그래?”


그런 나를 의아하게 본 윤철이 형이 물었다.


“아니에요. 아무것도···.”


차마 빛에 대해 말할 순 없어 대충 말끝을 흐리며 얼버무렸다.

워낙 찰나라 내가 잘못 봤을 가능성도 있지만···.

하필 빛의 색이 빨간색이라 신경이 안 쓰일 수가 없었다.



***



어느덧 5회 초.

연속 볼넷으로 무사 1, 2루를 만든 김서진이 마운드에서 호흡을 가다듬었다.

신성훈은 벤치에 앉아 그 모습을 바라보다 작전 지시를 내렸다.

이를 받은 윤호빈이 곧장 번트 자세를 취했다.

김서진의 공이 빠르다 보니 성공할 가능성이 높지 않긴 했지만, 그래도 안타 칠 확률보다는 낫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었다.


토옹!


결과는 다행히 성공.

아웃카운트 하나를 내어주며 무사히 주자들을 한 베이스씩 진루시키는 데 성공했다.

당연히 신성훈은 거기서 만족할 생각이 없었다.


현재 스코어는 2대0.

생각 이상으로 봉호연이 호투를 해주고 있는 덕분에 잘 막고 있기는 하나, 언제 갑자기 뒤집혀도 이상하지 않은 점수다.

때문에, 신성훈은 확실하게 1점 더 도망가기 위해 스퀴즈 번트 싸인을 보냈다.


이를 눈치챘는지, 한양고 벤치 또한 바빠졌다.

지시를 받은 한양고의 포수가 내야수들에게 복잡해 보이는 싸인을 전달했다.

그러기 무섭게 슬금슬금 앞으로 다가오는 상대의 1루수와 3루수.


‘절대로 1점은 주지 않겠다는 거네.’


분명 번트를 대는 순간, 저 둘은 물론이고 투수까지 부리나케 앞으로 뛰어올 것이다.

번트 타구를 잡기 위해서.

하지만 뛰어오는 건 저쪽만이 아니었다.

김서진이 와인드업에 들어간 순간, 3루에 있던 신건우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홈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투수의 손에서 공이 떠난 것도 그때였다.

하필 타자의 머리 부근으로 날아가는 공.


“으악!”


타석에 있던 최호승이 화들짝 놀라며 중심을 잃었다.

그러면서도 어떻게든 배트를 들어 공을 맞힌 덕분에 일단은 인플레이 상황이 이어졌다.


“홈, 홈, 홈!”

“뛰어, 뛰어, 뛰어!”


서로 다른 목적을 갖고 홈플레이트를 향해 질주하는 선수들.

3루수가 맨손으로 공을 잡은 뒤 포수에게 토스했다.

그리곤 재빨리 태그···.


“세입, 세입!”


주자의 발이 빨랐다.

어느새 신건우는 흙먼지를 풍기며 자리에서 일어난 후였다.


“하 젠장.”


꿩 대신 닭이라고, 욕지거리를 뱉은 포수가 번트를 대고 뒤로 넘어져 바닥을 구르던 최호승에게 글러브를 가져다 댔다.


“아웃!”


이로써 3대0.


“그렇지! 나이스 번트!”

“좋았어! 남은 주자도 들여보내 보자!”

“1점씩 계속 도망가!”


계속해서 한양고를 따돌리며 앞서간 덕분에 경지고의 분위기가 매섭게 타올랐다.


‘후, 다행이네.’


신성훈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박수와 함께 신건우와 최호승을 맞이했다.


‘생각 이상으로 선수들이 잘해주고 있어.’


4이닝 무실점인 봉호연도 그렇고, 김서진의 빠른 공에도 전혀 주눅 들지 않는 타자들도 그렇고.

설마 한양고 같은 강팀을 상대로 초반부터 리드를 잡을 수 있을 줄은 몰랐다.


김서진한테 묻혀서 그렇지, 저쪽엔 나름 굵직한 선수들이 여럿 있기 때문이었다.

반면, 경지고는 지금껏 봉호연과 심준현을 제외하면 뭐 딱히 없다는 평가를 받던 팀.

괜히 시합을 하기 전부터 조 1위는 한양고가 차지할 것이라는 여론이 우세한 게 아니었다.


그리고 신성훈은 만약 이대로 오늘 경기에서 승리한다면, 최고의 수는 이태완을 1번에 배치한 것이라고 확신했다.


현재까지 그의 기록은 2볼넷 1삼진.

비록 안타는 없지만, 삼진을 당할 때도 풀카운트 승부까지 끌고 가거나 최대한 많은 파울을 쳐내는 등.

김서진을 아주 제대로 괴롭혀 주는 중이다.

이따가 다시 확인을 해봐야겠지만, 아마 오늘 경기에서 이태완에게만 30개 가까이 던졌을 것이다.


‘그 덕분에 뒤에 나오는 심준현과 신건우가 상대적으로 쉽게 김서진을 상대할 수 있었지.’


아무래도 앞선 타자와의 승부가 길어지면 힘이 빠질 수밖에 없으니.


‘박 코치는 대체 이런 애인 걸 어떻게 알아본 거야?’


신성훈이 성우를 보며 혀를 내둘렀다.

이태완이 다시 열심히 하게 만든 것도 모자라 오늘의 키플레이어가 될 수 있을 정도까지 만들어 버리다니.

그렇다 보니 그의 의식은 자연스레 ‘성우에게 얼마만큼의 보너스를 챙겨줘야 하나’하는 쪽으로 흘러갔다.

하지만 그러한 생각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5회 초가 종료되고 공수가 바뀌는 순간 바로 옆에서 청천벽력 같은 말이 들려온 탓이었다.


“윤철이 형. 호연이 지금 당장 바꿔야 할 것 같아요.”



***



“박 코치 방금 뭐라고 그랬어?”


내 말에, 윤철이 형보다 신 감독님이 먼저 반응했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야. 호연이를 바꿔야 한다니?”


적지 않게 놀라신 모습.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봉호연이 지금까지 잘 던지고 있던 탓에 있는 투수 중 누구도 팔을 푼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만일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급하게 교체가 일어난다면 단숨에 역전을 허용할 수도 있는 상황.

그러니 당연히 저렇게 반응할 수밖에.


“투구 수가 많진 않을 텐데? 아까 확인했을 때도 아직 68개밖에 안 던졌잖아.”

“투구 수 문제가 아닙니다.”


나는 마운드에 서 있는 봉호연에게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호연이, 지금 팔 상태 안 좋은데 참고 던지고 있어요.”

“그걸 어떻게 안 거야? 난 계속 보면서 이상한 건 못 느꼈는데?”


윤철이 형이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그는 일단 봉호연에게 멈추라는 신호를 보내는 모습.


당연히 모를 것이다.

솔직히 말해 투구폼만 봐선 나도 알 수 없었다.

아마 아직까진 큰 통증이 느껴지지 않아 던지는 자세에 변화가 없는 것 같은데··· 지금도 내 눈엔 똑똑히 보인다.

녀석의 어깨에서 빛나는 빨간색 빛이.


아까 살짝 보였다가 지금까지 나타나지 않더니.

5회 초가 종료되고 마운드에 올라 팔을 푸는 순간 다시 빛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렇다고 이 사실을 곧이곧대로 말할 수 없는 노릇.

나는 대충 거짓말로 둘러냈다.


“아까 중간중간 인상 쓴 채 어깨 주무르고 있더라고요. 처음에 물어봤을 땐 괜찮다고 했는데···.”

“지금 호연이 던지는 거 보니까 괜찮은 것 같지 않다?”

“네. 아마 본인에게 물어보는 게 확실할 겁니다.”

“···알았어. 확인해서 나쁠 건 없으니까.”


말을 마치자 신 감독님이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최 코치가 얼른 마운드 다녀와.”

“네!”

“그리고 배현수 어디 있어!”

“저 여기 있습니다!”

“너 지금 바로 올라갈 수도 있으니까 최대한 빨리 팔 풀어. 묻지 말고 지금 당장!”

“어··· 예 알겠습니다!”


배현수는 1학년 포수 하나를 데리고 재빨리 불펜으로 뛰어 갔다.

그리고 그때, 윤철이 형이 더그아웃을 바라보며 양팔로 X자를 그렸다.


“이런···.”


이를 본 신 감독님이 탄식을 내뱉었다.

윤철이 형이 봉호연과 함께 마운드에서 내려오는 사이, 그는 바로 주심에게 다가가 투수 교체를 알리며 최대한 시간을 끌기 시작했다.


“너 인마. 내가 조금이라도 팔에 이상 있으면 무조건 공 던지지 말라고 했지!!”


뒤이어 윤철이 형이 봉호연을 한쪽 구석으로 데려가 혼내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지간해선 목소리를 안 키우는 형인데, 부상 문제에서 만큼은 유독 예민한지라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모양이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삽시간에 확 죽은 경지고 더그아웃의 분위기.


“박 코치야.”


신 감독님이 자신이 있는 쪽으로 오라는 듯 손짓했다.

서둘러 달려가자마자 그의 입이 열렸다.


“심판님이 아주 조금 시간 준다고 하니까. 현수 이쪽으로 오면 박 코치가 옆에서 조언 좀 해주고 와.”

“제가 말입니까? 그건 윤철이 형··· 아니, 최 코치님이 하시는 게 애한테 더 좋지 않겠습니까?”


애초에 윤철이 형이 투수 코치인데 말이야.


“알지. 나도 아는데. 저번에 박 코치가 봐주고 현수 잘 던진 적 있잖아? 어차피 이렇게 된 거 그거 믿고 한 번 가보자고. 왜, 오늘은 느낌 안 좋아?”

“···.”


바로 대답하는 대신 불펜에서 나오는 배현수를 바라봤다.

그러기를 잠시.

나는 다시 감독님을 돌아보며 미소와 함께 말했다.


“아뇨. 오늘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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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멈춰야 할 때 (4) NEW +2 13시간 전 2,863 110 13쪽
» 멈춰야 할 때 (3) +4 24.09.21 4,122 159 12쪽
26 멈춰야 할 때 (2) +6 24.09.20 4,660 159 13쪽
25 멈춰야 할 때 (1) +4 24.09.19 5,002 149 13쪽
24 마음가짐 (3) +4 24.09.18 5,098 145 12쪽
23 마음가짐 (2) +5 24.09.17 5,157 123 12쪽
22 마음가짐 (1) +5 24.09.16 5,201 130 12쪽
21 쉽게 쉽게 (3) +5 24.09.15 5,212 135 14쪽
20 쉽게 쉽게 (2) +2 24.09.14 5,226 124 12쪽
19 쉽게 쉽게 (1) +1 24.09.13 5,325 114 12쪽
18 종이 한 장 차이 (3) +7 24.09.12 5,348 107 12쪽
17 종이 한 장 차이 (2) +3 24.09.11 5,414 114 12쪽
16 종이 한 장 차이 (1) +5 24.09.10 5,467 121 13쪽
15 가능성 (3) +6 24.09.09 5,466 111 12쪽
14 가능성 (2) +1 24.09.08 5,464 113 13쪽
13 가능성 (1) +2 24.09.07 5,531 109 12쪽
12 검은색 (3) +2 24.09.06 5,626 109 13쪽
11 검은색 (2) +2 24.09.05 5,598 115 12쪽
10 검은색 (1) +4 24.09.04 5,644 110 13쪽
9 기회는 잡는 것 (3) +3 24.09.03 5,653 119 12쪽
8 기회는 잡는 것 (2) +5 24.09.02 5,733 107 14쪽
7 기회는 잡는 것 (1) +2 24.09.01 5,844 109 13쪽
6 빛 (3) +4 24.08.31 5,823 116 14쪽
5 빛 (2) +3 24.08.30 5,781 117 12쪽
4 빛 (1) +3 24.08.29 5,938 106 12쪽
3 제2의 인생 (3) +2 24.08.28 5,944 102 12쪽
2 제2의 인생 (2) +2 24.08.27 6,069 105 13쪽
1 제2의 인생 (1) +6 24.08.27 6,869 10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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