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만에 귀환했더니 조카딸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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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천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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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2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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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랄 큐브

DUMMY


밤이 깊을 때까지 노강우의 수련은 계속되었다.

심법을 익혔으니 다음은 권법과 보법이다. 나중에는 각법도 가르칠 생각이었다.


그렇게 기초를 가르치고 잠시 쉬던 중이었다.

노강우와 이야기를 하던 중 자연스럽게 송아영에 대한 얘기를 하게 됐다.

먼저 말을 꺼낸 쪽은 당연히 노강우였다.


“결국 자퇴하겠다는 건 못 말렸어요. 그 녀석도 나름대로 생각이 있긴 하더라고요.”

“무슨 생각?”

“일단 헌터 직업학교에 갈 거래요.”


헌터 직업학교.

쌍둥이가 진학할 예정인 아카데미와는 조금 다른 곳이다. 아카데미가 4년제 대학교라면 헌터 직업학교는 2년제 전문대학교 같은 느낌이랄까. 6개월 단위로 희망자를 모집해 헌터로서 익혀야 할 기초를 속성으로 가르치는 교육기관이었다.


“학교를 수료한 후에는 협회 치안부 쪽으로 지원할 생각이라고 하더라고요.”

“협회 치안부라. 목표가 명확하네? 이유가 있나?”

“그건······.”


어째서인지 노강우는 말하기를 망설였다.

굳이 캐묻고 싶은 생각은 없었기에 됐다고 하려는 순간이었다.


“아영이네 아버지가 빌런한테 당해서 돌아가셨어요.”


생각보다 훨씬 사적인 얘기가 튀어나왔다.


“빌런이 뭔지는 아시죠?”

“대충은.”


송일권에게 들은 바 있었다.


빌런은 개인의 사리사욕을 위해 능력을 사용하는 범죄자다. 작게는 금품갈취나 도둑질부터 크게는 엽기적인 살인행각까지 이어져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고 있었다.


“그 일 때문에 아영이는 몬스터를 잡는 것보다 빌런 쪽을 담당하고 싶대요. 자기처럼 빌런한테 가족을 잃는 사람이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면서.”

“좋은 목표네.”


옛날로 생각하면 범죄자에게 가족을 잃은 아이가 커서 형사가 되고 싶다는 얘기였다. 동기도 확실하고 목표도 확실하니 헌터가 되고 싶다는 것도 납득이 됐다.


“그런데 왜 아까는 그 말을 안 했대? 차분히 설명했으면 잘 설득할 수 있었을 것 같은데.”


솔직히 아까는 사춘기가 왔나 싶었다. 워낙 태도가 전투적이어서 마치 가출을 선언하는 아이 같았달까.


그에 노강우가 손을 세차게 내저으며 말했다.


“그건 그냥 말주변이 없어서 그런 거예요. 얼핏 봤을 땐 똑 부러진 애처럼 보이지만 알고 보면 그 녀석만큼 말주변 없는 사람도 드물거든요.”


오래 알고 지낸 동갑내기 친구여서일까.

열심히 변호하는 노강우다.


정룡은 그런 노강우를 보며 짓궂게 웃었다.


“너 그 애 좋아하는구나?”

“네, 네? 아니, 그런 거······.”


말끝을 흐리는 모습.

정룡이 눈을 끔뻑였다. 부정을 하려면 끝까지 해야지?


“이 자식 봐라?”

“···형, 아저씨 같아요.”

“······.”


왜들 이러실까. 나 아저씨 맞다니까.

정룡은 괜히 혀를 차며 입술을 삐죽였다.


“아, 아무튼. 형이 걔도 좀 도와주면 안 돼요? 개인사까지 말해드렸잖아요.”

“···어째 술술 얘기한다 싶더니 이 자식이?”


프라이버시를 지켜줄 만도 한데 대뜸 치고 들어온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그 모습이 미워 보이진 않았다. 이 나이 대 사내놈이 좋아하는 여자애를 위해서 뭔들 못할까.


정룡은 이내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 못 도와줄 것도 없지.”


노강우처럼 본격적으로 무공을 가르치진 못하겠지만 몸 쓰는 법 알려주는 것 정도는 어렵지 않은 일이다. 각성 능력에 따라서는 쓸 만한 기술을 가르쳐줄 수도 있었고.


“정말요?”

“단, 그쪽에서 먼저 도와달라고 했을 때 애기야.”

“예? 그건······.”


곤란해하는 노강우였으나 정룡은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도와달라고도 안 했는데 내가 먼저 가르쳐주겠다고 하는 것도 모양새가 우습잖아. 막말로 얼굴 알게 된지 며칠이나 됐다고? 오히려 그쪽에서 괜히 참견한다고 귀찮아 할 것 같은데.”

“······.”

“그럼 이야기는 여기까지. 다시 자세 잡아라. 오늘 안에 기본 형은 외워야지.”

“···네에.”


노강우는 시무룩 기가 죽은 목소리로 답했지만 금세 다시 집중상태로 들어갔다.


‘녀석, 의식 전환이 빠르네.’


보면 볼수록 싹이 괜찮은 녀석이었다.


*


그로부터 며칠 후 주말.


여느 때처럼 새벽 수련을 마친 후 노강우를 가르치며 반죽음 상태로 만들었을 즘이었다. 미약하게 울먹이는 소리가 들렸다.


‘하랑이 일어났네.’


옆에 자신이 없어서 훌쩍이는 것이다. 아직도 하랑이는 혹시나 그가 없어지는 건 아닐까 걱정하곤 했다. 고작 열흘 정도로는 내재된 트라우마를 지울 수 없었다.


그래도 차도가 없지는 않았다. 막 돌아왔을 때는 잠시만 떨어지려 해도 대성통곡을 해댔으니 그에 비하면 지금은 양반이다. 오히려 상태가 빨리 좋아진 거라고 봐야겠지.


“강우야, 나 먼저 간다. 알아서 들어가라.”

“네, 네에······.”


바닥에 대자로 뻗은 노강우가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답했다. 정룡과의 수련은 언제나 반죽음 상태로 마무리되었다.


그렇게 노강우를 뒤로하고 얼른 방으로 달려갔는데.

예상치 못한 광경이 보였다.


“옳지, 괜찮아. 아빠 밑에 있어.”

“흐윽. 아빠 안 가써?”

“하랑이가 여기 있는데 아빠가 어딜 가.”


언제나 무표정해 보였던 송아영이 부드럽게 웃는 얼굴로 하랑이를 달래고 있었다. 머리를 말리다 말고 달려온 걸까. 갈색 단발머리에 다 털어내지 못한 물기가 보였다.


그때 정룡을 발견한 하랑이가 앗 하는 소리를 내며 달려왔다.


“아빠!”

“우리 하랑이, 왜 또 울었어요?”

“하랑이 일어났는데 아빠가 옆에 없어가지구······.”

“으구, 그런 걸로 울면 나중에 혼자 살 땐 어떻게 하려고?”

“하랑이는 혼자 안 살 껀데? 아빠랑 엄마랑 그리구 언냐 오빠들이랑 가치 살 껀데?”


그리 말한 하랑이가 송아영의 옷소매를 잡았다.


“그치, 언니야?”

“으, 으응. 그러엄.”


어색하게 웃으며 답하는 송아영.

정룡이 신기하다는 듯 그녀를 바라보는데, 순간 표정이 싹 바뀌었다. 평소의 냉막한 인상으로.


‘나 싫어하나?’


그리 생각하는 순간 송아영이 돌연 고개를 꾸벅 숙였다.


“아, 안녕하세···요!”


엄청난 삑사리.


정룡은 그제야 송아영의 표정을 이해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이제 보니 그를 싫어하는 게 아니라 낯을 가리고 있는 거였다.


“그래, 안녕. 하랑이 달래줘서 고마워.”

“···아뇨. 그냥, 당연한 거라서.”


송아영은 목소리가 뒤집어졌던 게 부끄러운지 시선을 피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방에서 나가지는 않았다. 작게 손을 꼼지락거리는 게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모양.


“왜?”

“그, 그게······.”


먼저 말을 걸어보니 이내 대답이 돌아왔다.


“강우, 가르친다고 들었는데요. 헌터로 각성시켜주셨다고······.”

“각성을 시켜줘?”


딱히 노강우에게 각성 능력이 생긴 건 아닌데.

그래도 마냥 틀린 말은 아니었다.


“뭐, 비슷하긴 하네. 강우가 말해줬어?”


각성 능력이 생긴 건 아니지만 헌터의 기준은 ‘마력’을 지니고 있느냐였으니 일부분 맞는 말이었다.


그가 긍정하자 송아여이 돌연 머리가 땅에 닿을 것처럼 허리를 접었다.


“저, 저도 가르쳐주시면 안 될까요?”


강우 녀석, 뭐라고 말을 한 건지.

그를 올려다보는 송아영의 눈빛이 무척 간절했다.


*


그 날부터 정룡은 노강우에 이어 송아영도 함께 가르치게 되었다.


사실 노강우의 부탁을 받았을 때부터 이렇게 되리라 예상은 했다. 애초에 하랑이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보육원 내에 전투원이 많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지라 나쁠 건 없었다.


‘이렇게 된 거 애들을 다 가르쳐 볼까?’


어차피 힐러인 하선율에게도 기초적인 호신술 정도는 가르칠 생각이었다. 결국 능력자를 다 가르치는 꼴인데 쌍둥이 형제라고 빼놓을 수 있을까. 아카데미에 간다하니 그 전까지 몸이라도 좀 만들어 줄까 싶었다.


‘능력을 보면 무공 하나 정도는 가르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물론 노강우의 경우처럼 본격적으로 가르치는 건 무리다. 심법을 이용해서 혈맥에 내공을 순환시키는 순간 몸이 상할 테니까.


하지만 능력의 종류에 따라 무공의 일부분을 흉내 낼 수 있도록 만드는 건 가능할 것 같았다.


예를 들면 송아영의 능력은 ‘염동력’이다. 손을 대지 않아도 물건을 다룰 수 있는 능력. 여기에 암기술로 이름 높은 ‘사천당문’의 무공을 접목시키면 재밌을 것 같았다.


쌍둥이 형제의 경우에도 떠오르는 무공이 몇 가지 있었다. 바람과 불. 알고 있는 무공이야 수백 개가 넘었으니 그 중 몇을 손보면 하나쯤은 쓸 만한 게 나올 것이다.


‘아, 일권이 녀석도 있었지. 걔는 남만에서 얻은 야수신공을······.’


정룡은 그렇게 앞으로의 일을 계획하며 도덕산을 오르고 있었다. 혹시 내공을 증진시킬 수 있는 영약이 있지는 않을까 찾아보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도덕산을 뒤져도 영약은 풀잎 하나 보이지 않았다. 고라니인지 노루인지만 몇 마리 보았을 뿐.


“에휴, 그럼 그렇지.”


사실 크게 기대 하지도 않았다. 이런 동네 앞산 따위에 영약이 있을 리 있나. 그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와보았을 뿐이었다.


‘나중에 명산 일주라도 해볼까. 그래도 영약 하나쯤은 있을 법 한데.’


가까운 명산이 어디 있더라. 관악산부터 들러 볼까?

그렇게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터덜터덜 산을 내려오려는 때였다.


지이이잉─!


돌연 일대의 기운이 요동쳤다.

정룡은 반사적으로 전투태세를 취하며 경계했다. 그의 바로 앞에서 허공이 일그러지고 있었다.


‘설마 게이트?’


이미 돌발 게이트가 한 번 나타났던 도덕산이다.

두 번이라고 안 나타날까.

이번에는 사람들이 발견하기 전에 처리해버릴 심산으로 내공을 끌어올리는데.


“···큐브?”


주황과 분홍 사이의 색을 띠고 있는 정육면체.

눈앞에 코랄 큐브(Coral Cube)가 나타났다.


정룡은 턱을 쓸면서 큐브를 응시했다.


“큐브를 발견하면 협회에 신고하라고 했었는데······.”


송일권에게 그리 들었다. 큐브를 발견하는 즉시 바로 협회에 신고하는 게 원칙이라고.

다만, 발견자가 헌터일 경우에는 직접 클리어해도 된다 하였다. 물론 큐브를 클리어할 수 있는 등급일 때에만 해당 되는 말이었다.


현재 정룡의 헌터 등급은 D급.

지난 화이트 큐브의 변종 몬스터를 잡은 공로를 인정받아 승급한 상태였다.


반면 눈앞의 큐브는 코랄색.


코랄 큐브 안에는 대체로 C~D급 몬스터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적정 공략 등급은 C급이며, 그마저도 최소 3인 이상을 기준으로 한다.


이대로 협회에 발견 신고를 하면 그가 공략하지 못한다는 뜻.


잠시 고민하던 정룡은 돌연 근처에 있던 안내 표지판을 손날로 그었다.


썩둑.


칼로 벤 것처럼 깔끔하게 잘린 표지판.

그대로 기둥을 뽑으니 마침 끝이 뾰족했다. 재질도 스테인리스강이어서 창 대용으로 쓰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정룡은 한 손에 창을 들고 큐브로 손을 뻗었다.


‘어쨌든 클리어만 하면 되는 거잖아?’


큐브 안에 있는 몬스터를 죽이면 내공을 얻을 수 있다.

몬스터를 처리해서 시민안전에 공헌도 하고, 겸사겸사 영약 대신 내공도 얻고.

이것이야말로 일석이조가 아니고 무언지.


팟.


정룡이 코랄 큐브 안으로 입장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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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만에 귀환했더니 조카딸이 생겼다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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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코랄 큐브 NEW +1 4시간 전 300 19 11쪽
16 코랄 큐브 +2 24.09.18 803 34 11쪽
» 코랄 큐브 +2 24.09.17 1,102 34 11쪽
14 첫 번째 무인 +2 24.09.16 1,361 39 13쪽
13 단련된 무인의 등 +2 24.09.15 1,545 42 10쪽
12 화이트 큐브 +2 24.09.14 1,748 45 9쪽
11 화이트 큐브 +2 24.09.13 1,923 39 12쪽
10 등급 측정 +2 24.09.12 2,189 47 12쪽
9 잘 부탁드립니다, 사부님! +1 24.09.11 2,340 47 15쪽
8 정룡의 각성 능력 +1 24.09.10 2,580 48 13쪽
7 나 각성자 맞는데? +2 24.09.08 2,780 51 11쪽
6 약속할게 +1 24.09.07 2,868 55 13쪽
5 학교의 영웅들 +1 24.09.06 2,903 49 11쪽
4 학교의 영웅들 +2 24.09.05 3,104 43 13쪽
3 우리 집 24.09.04 3,359 50 16쪽
2 조카딸이 생겼다 24.09.03 3,515 50 14쪽
1 귀환 24.09.02 3,492 46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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