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만에 귀환했더니 조카딸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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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천千
작품등록일 :
2024.09.02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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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6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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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무인

DUMMY


정룡은 결국 밥을 세 공기나 먹어치우고 나서야 만족스럽다는 듯 식사를 끝냈다. 가라앉은 분위기 속에서 오직 그만이 세상 행복한 표정이었다.


김지호가 신기하다는 듯 말했다.


“저 형 걸신 들렸나봐. 난 체할 것 같은데.”

“조용히 해. 다 들려.”


쌍둥이 형제의 대화에 정룡은 입맛을 다셨다. 이것도 나름 눈치 보느라 한 공기 덜 먹은 거였는데 억울했다.


“히히. 아빠는 대지. 대지래요.”

“하랑아, 대지가 아니라 돼지.”


4살 하랑이와 10살 유리가 순진무구하게 주고받은 대화였다. 이쯤 되니 아무리 낯짝 두꺼운 정룡이라도 민망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크흠. 분위기가 이러면 어른들이라도 태연한 척 해야지, 안 그러면 애들이 불안해하지 않겠어요?”


그리 말하며 괜히 밥 잘 먹고 있는 하랑이와 유리의 머리를 쓰다듬는 정룡이었다. 그에 하랑이는 마냥 좋다고 생글거렸고, 눈치 빠른 한유리는 한심하다는 눈으로 자신의 새로운 삼촌을 올려다보았다. 어린애답지 않게 신랄한 표정이었다.


그 눈길에 찔끔한 정룡이었으나 어쨌든 변명은 성공적이었다. 가장 웃어른인 최영자가 납득하고 고개를 주억였으니 말이다.


“그것도 그렇구나. 내가 중심을 잡아야 하는데······.”

“아이, 엄마. 뭘 자책하고 그래요? 저 오빠 괜히 애들 핑계 대는 거잖아요. 아무 생각 없이 먹기만 해댔는데 무슨.”


정룡이 씩 웃으며 하선율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정답이다, 치료술사.”

“···오빠는 그게 웃겨? 완전 아저씨 같아.”

“···나 아저씨 맞는데.”


엄밀히 따지면 17살에 무림에 떨어져 20년을 굴렀으니 37살 아재가 맞다.

정룡은 괜히 눈꼬리를 긁적이다가 물을 한 모금 마시며 말했다.


“지금 너무 걱정들만 하는데, 전 헌터가 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봅니다.”

“···오빠?”


눈총을 주는 선율.

하지만 정룡은 손을 들어 선율의 말을 막았다.


“······.”


선율은 가만히 입을 다물었다. 조금 전까지 장난만 치던 정룡의 표정이 지금은 사뭇 진지했기 때문이다.


“애들이라고 생각이 없는 게 아니잖아요. 송아영이 저 친구, 강우랑 동갑이라고 했죠? 그럼 열여덟, 아니 곧 열아홉인데 그 정도면 알 거 다 압니다. 요 쌍둥이도 마찬가지고요.”


갑작스레 지목받은 쌍둥이 형제가 움찔 몸을 떨었다.

정룡이 두 사람에게 질문했다.


“너희는 헌터 아카데미에 간다고 했지? 이름 들어보니 뭐 헌터 육성하는 곳 같은데.”

“아, 네. 맞아요.”

“지금 12월인데, 벌써 진학 할 고등학교는 정해졌을 시기 아니야?”


형 쪽인 김지훈이 차분하게 설명했다.


“일반 고등학교는 다 정해졌죠. 그런데 헌터 아카데미는 지금 신청해도 늦지 않았어요. 각성 시기가 워낙 제각각이다 보니 그런 부분에선 널널하거든요. 편입 오는 학생들도 많고요.”

“흐음. 그건 알겠고, 그럼 헌터 아카데미에 가겠다고 결정한 이유는?”


그에 대답한 건 동생인 김지호였다.

김지호가 눈을 부릅뜨며 다소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야 강해지면 좋고, 헌터는 돈도 많이 버니까요!”


너무 두루뭉술한 대답이었다.

이래서야 걱정 많은 어른들을 설득하기는 무리다. 강해지기 전에 죽거나 돈 벌기 전에 죽으면 어떡한단 말인가?


김지훈도 그를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내저으며 자신의 동생을 진정시켰다.


“지호야, 내가 말할게.”

“어, 응.”


생긴 건 똑 닮았지만 말하는 분위기나 성향에서 차이가 보이는 쌍둥이 형제였다.


동생인 김지호는 매사에 적극적이며 열정적인 성격이었고, 형인 김지훈은 비교적 차분하지만 만사가 귀찮은 듯 언제나 나른한 표정이었다.


그래도 할 땐 한다는 듯 김지훈이 설명을 이어나갔다.


“저희도 처음부터 헌터가 되려는 건 아니었어요. 각성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아무래도 헌터는 사망률이 높은 직업이니까요. 엄마랑 선율이 누나··· 그리고 보육원 사람들을 걱정시키고 싶지도 않았고요.”

“그런데 지금은 왜?”

“도덕산 게이트 사태. 그게 계기였어요.”


이틀 전 도덕산에 나타났던 몬스터 게이트.

그리고 광현중학교에 침입했던 몬스터들.


쌍둥이 형제는 그 날을 선명히 기억했다. 당시 두 사람은 친구를 구하기 위해 몬스터와 맞서 싸웠고, 정룡이 아니었으면 죽을 수도 있었다.


“그 후로 둘이서 생각을 좀 했어요. 돌발 게이트 같은 게 나타나는 세상인데, 차라리 헌터 아카데미에 가서 제대로 강해지는 게 좋지 않을까 하고요. 물론 지호가 말한 것처럼 헌터가 돈을 잘 버는 직업이라는 이유도 있지만요.”

“저희가 강해져서 보육원을 지킬게요! 그리고 돈도 많이 벌어서 호강시켜드릴게요!”


쌍둥이 형제가 헌터 아카데미에 가려는 이유였다.


“오빠들 멋있다, 그치?”

“우응, 군데 하랑이 아빠가 더 머찐데.”


한유리와 하랑이는 순수하게 대화를 나눴다.

하지만 최영자와 선율은 그럴 수가 없었다. 쌍둥이의 마음이야 물론 고맙고 감동적이었으나 걱정스러운 마음은 여전했던 것이다.


“그래도 헌터는 너무 위험한데······.”


오늘 큐브에 들어가 본 선율이기에 더욱 걱정할 수밖에 없었다. 오늘만 해도 갑작스럽게 변종 몬스터가 나타나지 않았던가. 송일권이나 정룡 없이 평범한 E~D급 헌터들과 들어갔으면 십중팔구 죽었을 것이다.


하지만 정룡은 고개를 저었다.


“그러니까 제대로 배우겠다는 거잖아. 그리고 오늘 큐브에 다녀온 우리가 그런 말을 하는 것도 좀 아니지 않아? 나이 많다고 몬스터들이 피해가는 것도 아니고.”


종종 어른들이 착각하는 게 있는데, 위험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다. 어른이라고 위험한 일을 해도 되고, 어리다고 못하리란 법은 없다. 물론 능력이 전제되어야하지만 말이다.


“자, 잠깐만. 그게 무슨 소리니? 율이 네가 큐브에 들어갔다고?”


최영자가 깜짝 놀라서 물었다. 그녀로서는 처음 듣는 얘기였기 때문이다.

정룡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선율을 돌아봤다. 당황한 표정이 된 선율이 최영자를 진정시키고 있었다.


“호, 혼자 들어간 건 아니야. 안전하게 다녀왔어.”


이제 보니 선율이라고 남 말 할 처지가 아니었다. 최영자에게 말하지 않고 몰래 다녀왔던 것이다.


정룡은 작게 한숨을 내쉬곤 최영자를 안심시켰다.


“어머니, 저랑 같이 다녀온 거니까 걱정 마세요. 등급도 제일 낮은 큐브였고, 일권이도 같이 갔었어요. 그 녀석 C등급 헌터인 거 아시죠?”

“어어, 맞아. 그러니까 걱정 안 해도 돼, 엄마.”

“아이고······.”


최영자는 혼이 쏙 빠진 표정이었다. 나이 60이 넘은 그녀로서는 심장이 철렁일만한 얘기였던 탓이다. 어쩌다 세상이 이렇게 됐는지 변화의 흐름을 따라가기가 벅찼다.


정룡은 손에 내공을 두르고 최영자의 등을 두드려주었다. 슬쩍 명문혈(命门穴)에 기를 불어넣자 하얘졌던 최영자의 표정이 점차 편안해졌다.


“어머니, 복잡하게 생각할 거 없어요. 힘이 있어야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법이잖아요? 애들 결정도 그런 방향인 겁니다.”


그렇게 말하는 정룡이었으나 사실 내심은 조금 달랐다. 헌터가 되겠다는 게 이렇게까지 심각해 할 일인가 싶었던 것이다. 17살이 되자마자 무림에 떨어져 칼밥을 먹고 살아왔던 그는 일반적인 사람과 사고방식이 조금 달랐다.


오히려 정룡은 쌍둥이 형제를 지지해주고 싶었다.


이쪽 세계는 제대로 된 교육기관과 더불어 최소한의 안전체계가 잡혀 있다. 제대로 도와줄 사람만 있다면 당연히 능력을 놀리는 것보단 개발하는 쪽이 나았다.


그리고 도와줄 사람이라 한다면.


“저한테 맡기세요. 애들 죽는 일 없도록 도와줄 테니까.”


바로 여기 있었다.

전직 무림제일인이.


‘뭐, 꼭 내가 아니어도 되지. 일권이 녀석도 있고.’


협상 재료는 충분했다.

송일권에게 딱 맞는 무공이 있었으니까.


*


식사를 마친 후.

정룡은 마루에 앉아 운기조식에 들어갔다.


옆에서 그를 지켜보던 하랑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한유리에게 물었다.


“언니야, 울 아빠 모하는 고야?”

“저건 명상이라는 거야.”

“명상이가 몬데?”

“이렇게 눈을 감고 아무 생각도 안 하는 거. 하랑이도 언니랑 해볼래?”

“웅!”


어정쩡하게 양반다리를 하고 눈을 감는 하랑이.

반면 유리는 금세 다시 눈을 뜨고 미리 준비해두었던 숙제를 하기 시작했다.


‘애가 똘똘하네.’


정룡은 기감으로 두 사람의 행동을 파악하고 피식 웃음을 머금었다.


본래 심법 수련은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조용한 공간에서 행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기의 흐름을 방해하는 접촉이 있으면 내상을 입을 수도 있기 때문.

하지만 정룡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말이었다. 이미 경지에 이른 그의 부동심은 어지간한 방해로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한 시간이 지났을 쯤.


“잠들었네.”


눈을 뜨자 배를 드러낸 채 자고 있는 하랑이가 보였다. 유리도 자고 있긴 마찬가지. 야무지긴 해도 아직 애는 애였다.


그렇게 두 사람을 안아 침실로 옮기고 돌아오자.


“용이 형.”

“어, 왔냐?”

“늦어서 죄송해요.”


노강우가 면목 없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정룡은 대충 손을 내저었다. 왜 늦었는지 정도야 짐작하고 있었다. 송아영을 설득하러 갔었으니 뭔가 대화를 나눴겠지.


“늦은 건 괜찮다. 그보다 내가 하라고 한 건?”

“다 외웠어요.”


노강우가 긴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겐 숙제가 하나 있었다. 오늘 아침 정룡이 무공을 가르쳐주겠다며 외우라 시킨 것이었다.


“읊어봐. 기경팔맥부터.”


정룡의 말에 노강우가 기경팔맥의 명칭을 하나씩 읊기 시작했다.


“임맥, 독맥, 충맥, 대맥, 음교맥, 양교맥, 음유맥, 양유맥.”

“정확한 위치는?”

“임맥은 회음부에서 승장까지, 독맥은 회음부에서 척추를 따라 목을 지나고······.”

“다음, 십이경맥.”

“수태음폐경, 수양명대장경, 족양명위경, 족태음비경······.”

“내가 가리키는 혈도 이름을 말해봐. 오른쪽 어깨부터.”

“거골혈, 곡천혈, 구미혈······.”


정룡이 가리키는 신체부위에 따라 혈도를 말하는 노강우. 온갖 부위의 혈도 맞추기가 이어졌다. 쉴 틈을 주지 않았음에도 노강우의 답에는 막힘이 없었다.


적잖은 시간이 흐른 후.


정룡이 만족스럽게 미소 지었다.


“열심히 외웠네. 공부를 좀 잘하나?”


노강우가 어색하게 웃었다.


“그냥 평범해요. 사실 하루 종일 이거 외우느라 머리 터지는 줄 알았어요.”


오죽하면 수업 시간은 물론 점심시간조차 혈도 위치만 주구장창 외웠더랬다. 다행히 그 고생이 헛되진 않았는지 생각을 하기도 전에 정답이 술술 나왔다.


정룡은 피식 웃으며 노강우의 등에 손을 올렸다.


“지금부터 입 열지 말고 기가 어떻게 순환하는지 느껴봐. 구결을 불러줄 테니 전부 외우고.”


고개를 끄덕인 노강우가 눈을 감았다.

정룡은 명문혈을 통해 한 줄기 내력을 불어넣었다. 그리고 심법 구결에 따라 기를 순환시키며 말했다.


“이 심법의 이름은 수미천왕신공(須彌天王神功)이다. 무림에서 권법으로 이름 높았던 황보세가라는 무가의 절기지. 너한테 딱 맞는 걸로 고른 거야.”


황보(皇甫) 씨들은 타고난 힘과 근골을 기반으로 펼치는 강맹한 권법으로 이름이 드높았다. 그들은 무공도 대단했지만 진정 놀라운 것은 신력을 타고난 몸뚱이었다. 무공 자체가 태생적으로 근골이 받쳐주지 않으면 익히지 못하는 종류였다.


노강우는 지그시 눈을 감고 몸 안을 돌아다니는 기의 흐름을 느끼려 애썼다.


원래대로라면 기를 느끼는 데에만 족히 한 달은 걸렸을 것이다. 무림에서도 일주일 안에 기를 느끼면 빠른 축에 속했으니까.


하지만 지금 노강우를 가르치는 사람은 무림의 절대자로 군림했던 정룡이다. 내공이 사라졌을지언정 그는 무신이라 불린 자였다. 신기에 가까운 내공운용과 섬세한 혈도 자극이 잠들어 있던 노강우의 감각을 일깨웠다.


‘헉!’


노강우는 속으로 탄성을 토했다. 하마터면 입이 벌어질 뻔했다. 생전 느껴본 적 없는 기묘한 기운이 몸 안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내공이 부족해서 오래 해주지는 못한다. 가능한 반복해서 돌려줄 테니까 그동안 최대한 느껴봐. 구결도 외울 때까지 불러주마.”


한겨울 바람이 싸늘하게 불고 있었음에도 두 사람의 수련은 멈추지 않았다. 어느덧 외부의 자극을 받은 노강우의 몸에서 허연 김이 피어올랐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몸의 온도가 올라간 탓이었다.


정룡은 그의 몸이 상하지 않도록 기운을 북돋우며 내공이 다 떨어질 때까지 기를 인도해주었다.


그렇게 반복적으로 구결을 읊어주며 진기도인을 열댓 번 정도 했을 때였다.


“···짜식, 재능 있네.”


정룡이 씩 웃으며 노강우의 등에서 손을 떼어냈다.


어느덧 노강우는 홀로 심법을 운용하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하단전에 한 줄기 내력이 똬리를 틀었다.


이 세계에 정룡 외의 첫 번째 무인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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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만에 귀환했더니 조카딸이 생겼다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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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코랄 큐브 NEW +2 14시간 전 482 27 11쪽
15 코랄 큐브 +2 24.09.17 932 32 11쪽
» 첫 번째 무인 +2 24.09.16 1,223 38 13쪽
13 단련된 무인의 등 +2 24.09.15 1,419 40 10쪽
12 화이트 큐브 +2 24.09.14 1,621 44 9쪽
11 화이트 큐브 +2 24.09.13 1,783 38 12쪽
10 등급 측정 +2 24.09.12 2,051 46 12쪽
9 잘 부탁드립니다, 사부님! +1 24.09.11 2,205 46 15쪽
8 정룡의 각성 능력 +1 24.09.10 2,432 46 13쪽
7 나 각성자 맞는데? +2 24.09.08 2,633 49 11쪽
6 약속할게 +1 24.09.07 2,722 53 13쪽
5 학교의 영웅들 +1 24.09.06 2,753 47 11쪽
4 학교의 영웅들 +2 24.09.05 2,955 41 13쪽
3 우리 집 24.09.04 3,200 48 16쪽
2 조카딸이 생겼다 24.09.03 3,345 48 14쪽
1 귀환 24.09.02 3,308 44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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