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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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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4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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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7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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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 스톤(1)

DUMMY




어둠이 내려앉은 보울라우의 저녁.


낮 보다는 밤이라고 부르는 게 더 어울리는 시간이었지만, 보울라우 숲 연합군 감시초소의 야전 통제실에서는 소란스러운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마르텡 대위. 그 말 책임질 수 있나요?”


“저와 함께 기지의 통신 기록도 확인하시지 않았습니까. 만약 제 말이 거짓이라면 당장 책임지고 옷을 벗겠습니다. 우리의 해명에는 단 한 치의 거짓도 없습니다.”


감시초소의 지휘관, 마르텡 대위가 식은땀을 흘리며 1선 전투지원대의 상등무관, 실비아에게 금일 일련의 사건들에 대해 설명했다.


철책에서 5km 이상 떨어진 곳에 제국군 순찰대가 무엇을 발굴하기 위해 조심스럽게 땅을 헤집고 있다는 보고를 올리기 위해 기지의 무전기를 켰지만, 무전을 받은 건 기존의 보고대상인 작전대대장이 아닌 파이어니어의 각성자, 사이오 켄지였다는 것.


그리고, 제국이 고대 문명에 대한 정보가 담겨있는 ‘데이타 스톤’이라는 석판을 발굴하려 하고 있으니 무슨 수를 쓰더라도 적들의 행동을 저지하라는 것.


마르텡은 당연히 직속 관계도 아닌 자가 무리한 명령을 내리니 그 즉시 거절했지만, 켄지가 파이어니어 대원들의 권리인 ‘강제 동원권’을 운운하며 작전대대장에게 올릴 보고들을 전부 가로채기하려 하자 어쩔 수 없이 초소에 최소인원만 남긴 채 무리한 작전을 실행했다는 것.


허술함이 느껴지는 그의 해명에 실비아가 기가 찬다는 듯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때마침 우리가 지원을 와줘서 망정이지, 잘못했으면 사망자가 나오는 걸 넘어서 대위 포함 십수 명의 장병들이 몰살당할 뻔했다고요. 의심스러운 무전 하나 때문에 그랬다니 그걸 저보고 믿으라는 건가요?”


“...저희 또한 의심스러워서 몰래 비밀 회신 선을 가동하려 했지만, 켄지 대원이 귀신같이 알아차리고는 대대장님 이름까지 대가며 협박의 강도를 높였습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지요. 우리의 머릿속을 들여다보나 싶었습니다.”


“흠···.”


실비아가 침음을 삼켰다.


“한번 믿어보지요.”


“음?”


옆에서 들린 익숙한 목소리에 실비아가 고개를 돌렸다.


장비 손질을 마치고 언제부터인가 그녀의 곁에 서 있던, 부대의 막내 김수종이 건넨 말이었다.


“거짓이었다면 마르텡 대위를 포함한 초소의 장병들이 굳이 목숨을 걸고 제국과 전투를 벌이지는 않았을 겁니다. 해명 자체는 이해가 잘 가지 않지만, 적어도 악의를 가지고 우리를 속이는 거 같지는 않습니다.”


“... 그래?”


사실, 실비아 역시 마르텡의 해명에서 ‘거짓’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어지간히 거짓말에 능숙한 사람이 아닌 이상, 자신의 감정까지 완전히 숨기기는 아주 힘든 일이었으니까.


마르텡의 성정은 거짓말쟁이로 보기 어려웠고.


하지만, 그녀가 아는 파이어니어 또한 이런 일을 벌일 사람들이 아니었다.


비록 몇몇 훌륭한 대원들을 제외하면 특유의 선민의식을 바탕으로 종종 띠꺼운 말을 내뱉기는 했지만, 그만큼 공적인 일은 철저하게 구분하는 인간들이었으니까.


‘그렇다면···.’


직접 확인해봐야겠군.


실비아가 마르텡에게 손을 내밀었다.


“무전기 이리 줘봐요. 파이어니어에 직접 연락해보겠어요.”


“그··· 그러셔도 됩니까? 아무래도 파이어니어는 특유의 이름값 때문에 보고도 정해진 특정 시간에만 가능하다고···.”


“그거 다 헛소리니까 무전기나 줘요. 그리고 우리가 무슨 행정센터 공무원도 아니고, 딱딱 정해진 근무시간이 정해져 있는 줄 알아요?”


“그··· 그건···”


“빨리! 나 더 화나게 하지 말고!!”


실비아의 고함에 마르텡이 허겁지겁 무전기를 그녀에게 건넸다.


띡! 띡!


띠리릭!


능숙한 손놀림으로 무전기에 통신 좌표를 설정한 실비아가 수신자에게 응답을 요구했다.


“여기는 보울라우. 통신 요청이 들리나? 들린다면 즉시 응답 바란다.”


[...]


“1선 전투지원대 소속 상등무관, 실비아 페냐가 파이어니어 행정실에 요청한다. 귀하 소속의 대원, 사이오 켄지와의 직접적인 통신을 바란다.”


[...]


“전화 받은 거 알고 있으니까 씨발 대답하라고 이 개새끼들아. 기어이 이웃 부대끼리 얼굴 붉히고 싶어?”


실비아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


“...?!”


기대했던 영어 대신, 특유의 거친 느낌이 나는 제국어로 한 여성이 응답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미친! 너 뭐야. 왜 제국 놈이 파이오니어의 무전 신호를···”


[^%^&&!! *((...!!]


치지직!!


띠리릭!


[수신확인. 파이어니어 주무관 루나 로페즈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당황이 섞여 횡설수설하던 조금 전의 제국어는 온대 간데 없다는듯이, 깔끔한 목소리의 여성이 통신을 받았다.


실비아도 아는 사람이었다.


“... 정말로 루나 너 맞아? 파이어니어의 주무관, 루나 로페즈가?”


[맞습니다. 실비아 페냐 무관. 무슨 일로 긴급 호출 신호를 보내신 것인지?]


루나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실비아에게 되물었다.


“방금 들인 목··· 아니야 됐어. 루나. 지금 당장 사이오 켄지 대원과의 통신을 연결해줄 수 있어? 우리가 꼭 알아봐야 할 게 있거든.”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한 것일까.


무전을 받던 루나의 목소리도 한층 더 진중해졌다.


[사이오 켄지 대원은 현재 카이바나 구릉에서 우트부크 부족 토벌 작전에 참여하고 있어 몇 시간 뒤에나 통신할 수 있습니다.]


... 뭐라고?


“토벌 작전에 참여해? 언제부터?”


[우트부크 부족 토벌 작전은 지금으로부터 약 보름 전에 시행된 작전입니다. 켄지 대원은 토벌 작전의 시작 때부터 참여해 활약을 보이고 계시지요. 대답이 되었습니까? 실비아 페냐 무관?]


“...”


루나의 설명은 납득이 갔다.


그렇다면.


‘금일, 데이타 스톤 탈환 명령을 내린 ‘사이오 켄지’는 대체 누구인 거지?‘


[... 실비아 페냐 무관. 현재 무슨 상황인지 설명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파이어니어 차원에서, 아니 인류의 도약 차원에서 대대적인 조사가 필요하다고 판단됩니다.]


“...”


초소의 사람들은, 무전기 너머로 들리는 루나의 목소리에 차마 집중할 수 없었다.


정보통신 기술에 있어서 리케 대륙의 다른 문명들보다 두 세기 이상의 기술력 차이가 있는 연합군의 무전이 제국인에게 탈취당했다고?


아니 애초에.


“이 빌어먹을 땅은 모든 문명권이 같은 말을 쓰잖아? 그때 들린 말이, 정말 제국군이 한 말이 맞을까?”


[실비아 무관?]


루나의 물음에도 실비아는 생각에 빠져 대답하지 못했다.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갔다.


정말로.






*****






푸스럭!


탁!


보울라우 숲의 중심에 있는 거대한 나무, 빈드라이실의 가지 위에 한 장이족 여성이 자리를 잡았다.


욱씬!

“크윽···.”


장이족 여성, 라벨라는 순간 오른쪽 귀 끝에 박아놓았던 마석에게서 울리는 통증에 눈살을 찌푸렸다.


이계인들과 제국군과의 유혈사태를 일으키기 위해 벌였던 공작 과정에서 몰래 이계인 기지의 통신망에 걸어놓았던 ‘현상 왜곡 마법’이, 미쳐 손을 쓰지 못한 채 뒤틀려버려 폭주한 마석이 라벨라 몸에 그려진 마나 회로를 훼손시켰기 때문이다.


마석 안에는 샨도칼루스가 확보한 제국군, 이계인들의 음성 정보와 음성 제공자가 가지고 있던 일부 지식까지 들어있었다.


일개 삼두정 시민인 라벨라가 감히 가치를 매길 수 없을 정도의 귀물로, 다른 지역에서 공작을 벌일때도 그 값어치를 톡톡히 했었지만···.


라벨라의 순간의 실수로, 마석에 영구적인 손상이 일어난 것이다.


뼈아픈 상황이었다.


“빌어먹을 년···. 덕분에 레아민 앞에서 표정 관리를 하느라 진땀을 뺐잖아.”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갑작스럽게 들린 일방적인 통신 요청을 틀어막으려 했지만, 그녀 혼자로서는 역부족이었다.


원래의 왜곡 대상인 느끼하게 생긴 이계인 남성과는 달리, 표독함이 그득했던 여성은 명실상부한 ‘마나사용자’라 원격에서 마법을 통해 그녀를 통제하는 거 자체가 불가능했으니까.


“젠장···. 샨도칼루스 재생제가 아니면 회로를 고칠 수도 없는데. 괜히 욕심부렸다가 이게 뭔 꼴이람!”


그저 전투에서의 승리 후 고양감에 사로잡힌 이계인들의 대화 내용을 조금이라도 더 도청하려한 것이 오히려 독으로 다가온 라벨라였다.


“그나마 ‘투명화’는 상시로 유지할 수 있어서 다행··· 저기 오는군.”


삐이익!


푸드득!!


날렵하게 라벨라의 애완 매 한 마리가 그녀의 어깨에 내려앉았다.


제국군 순찰대 기지의 장거리 정찰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지바. 제국 놈들의 상황을 보여줘.”


삐익!

주인의 명령을 들은 애완 매, 지바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의 목에 묶어두었던 ‘영상 재연기’를 가동했다.


딸깍!


드르르~~


영상이 재생되었다.


숲의 나무들을 뿌리까지 뽑아내고 마련한 제국군 순찰대 기지의 연병장에서, 한 여기사가 검을 높게 치켜들고는 부하들에게 연설을 늘여놓고 있었다.


이계인들과의 전투에서 적지 않은 수의 병력을 잃었음에도, 어딘가에서 계속 부족한 병력이 충원되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전투 이전보다 훨씬 많은 수로 보였다.


‘보울라우 숲은 남부 귀쟁이들을 정복한 뒤 손에 넣은 우리 메아트 제국의 정당한 영토이다! 더러운 이계의 원숭이들에게서 우리의 땅을 되찾아야 한다!!’


‘와!!!!’


‘제국 만세!!!’


여기사, 셀린의 연설을 들은 병사들 또한 자신의 무기를 높게 치켜들며 환호를 보냈다.


“이번 기회에 기존의 순찰대원들을 싹 물갈이하고 기사 말이면 끔뻑 죽는 다른 제국군들로 채워 넣은 건가···. 위력 정찰 수준을 넘어서 아예 ‘공성전’을 벌일 속셈인가 보군.”


라벨라는 의외라는 듯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녀가 아는 ‘제국’은 인명 경시를 기본으로 깔고 가는 족속인 건 맞았지만, 이렇게 무턱대고 이계인들의 점령지에 무턱대고 병사들을 갈아 넣는 멍청이들은 또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북쪽의 콘크라톰 협곡 전선에 무슨 변화라도 생긴 것일까.


라벨라의 의문을 해소해주겠다는 듯이, 셀린이 다시 연설을 읊기 시작했다.


‘황실로부터 직접 내려진 명령이다! 내일 우리는! 이계의 원숭이들이 알박기 한 우리의 정당한 영토를 되찾고, 놈들이 탈취해 간 데이터 스톤을 이용해 보울라우 숲과 제국 마탑을 잇는 차원문을 가동해 직접 놈들의 심장부에 타격을 가할 것이다! 모두 긍지를 가지고 따라오겠는가!!!’


‘어디든 따라가겠습니다!’


‘제군들은 목숨을 바칠 준비가 돼 있는가!’


‘목숨을 바치겠습니다!!!’


‘제군들은! 이 땅의 어버이인 황제 폐하께 충성을 맹세하는가!!!’


‘맹세합니다!!’


‘제국이여 영원하라!!!’


‘와!!!!’


‘영원하라!!!!’


“...”


영상 너머로 느껴지는 제국군의 광기에, 라벨라의 팔에 소름이 쫙 돋았다.


“데이타 스톤으로 차원문을 열겠다고? 스톤 내에 함유된 마나는 하급 마석 수준이고, 쓸대 없이 복잡한 회로를 애써 분석해내봤자 고대인들이 먹던 요리에 대한 정보밖에 없어 실용성이라고는 없는데 어찌?”


괜히 레아민과 라벨라가 샨도칼루스의 소유하에 있는 데이타 스톤들 중 하나를 ‘미끼’로 써먹은 게 아니었다.


데이타 스톤 자체는 귀한게 맞았지만, 그 안에 든 정보까지 귀한 경우는 거의 없었으니까.


더군다나 이미 해석이 완료되어 가치조차 떨어지는 물건을 확보한다고 제국 측이 저리 노발대발하다니···.


“우리가 괜한 짓을 한 건가?”


순간 불손한 생각이 든 라벨라는 금방 고개를 내저었다.


판단은 내가 아닌 장로들의 몫.


라벨라는 그저 보고 들은 것들을 모아 장로회에 보고를 올리면 되는 일이었다.


그것, 뿐이었다.


사삭! 삭!


라벨라가 품속에서 종이를 꺼내 근 며칠간 확인한 정보들을 빠르게 적어나갔다.


장로회에 보고를 올리기 위해서 말이다.


“내 일이나 하자.”


어차피, 제국군이나 이계인들이나 장이족 입장에서는 둘 다 침입자들일 뿐이었다.


어디의 진영에서 얼마나 피를 흘릴지는.


라벨라 그녀가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


앞으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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