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맹 말단은 마신이어라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퓨전

새글

손연우
작품등록일 :
2024.09.06 13:51
최근연재일 :
2024.09.19 13:27
연재수 :
15 회
조회수 :
4,348
추천수 :
162
글자수 :
80,958

작성
24.09.06 14:35
조회
722
추천
18
글자
11쪽

서장, 변고가 생기다

DUMMY










군자보구 십년불만(君子報仇 十年不晩).

강호에서 군자의 복수는 십 년이 걸려도 늦지 않는다고 했는데.


“······네, 네가 서중영 그 돈벌레의 하나뿐인 외동아들이라고?”

“······.”


방금 전까지 먼저 호형호제하자며, 세상에 다시없을 호인처럼 굴던 잘난 협객의 표정은 심각하게 굳어져 있었다.

대개 통성명 이후 호구 조사를 통해 아버지의 이름을 알고 나면, 똥 씹은 표정을 지었지만.

간혹 눈앞의 잘난 협객처럼 새파래진 얼굴로 입술마저 부들거리는 이들이 있었다.

마치 못 볼 꼴을 봤다는 표정은 너무나도 익숙하였다.


“······표정을 보아하니, 우리 가문이 천 형에게도 해를 끼친 것 같구려. 내 아버지요 아니면, 혹 할아버지요?”


벌떡!

씁쓸한 물음에도 상대방은 가타부타 말없이 일어났다.

그리고는.


“우웨에에엑!”


손가락을 자기 목구멍에 집어넣어 자신이 먹었던 걸 모조리 게워 내기 시작했다.


“꺅!”

“어, 어떻게 해!”


옆에 있던 기녀들은 기겁을 하며 물러났고.

천 형이라 불린 잘난 협객은 술상 위에 모조리 구토하자마자, 술병을 들어 그걸 하남 제일 부호(富豪, 부자) 서중영의 외동아들, 서진(西辰)의 머리 위에 부었다.


“······.”


콸콸!

쏟아지는 술을 흠뻑 뒤집어쓴 서진에 기녀들은 어떻게 해! 하며 발을 동동 굴렀지만, 젊은 협객 천무휘의 무섭도록 차가운 눈빛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십 년 전, 네놈의 아비로 인해 우리 가문은 풍비박산이 났다. 우리 가문의 거래처들을 더러운 돈으로 매수해 가문의 사업권을 모조리 빼앗아 갔지. 하루아침에 멀쩡했던 모든 게 무너졌다, 바로 네놈의 아비 때문에!”

“······그랬구려.”


분홍색 독주를 흠뻑 뒤집어쓴 서진에 기녀가 다급히 무명천으로 얼굴을 닦아주려 했다.


챙!

천무휘는 검을 뽑아 서진의 목에 대었다.


“꺄아아악!”


당장에라도 목을 베어버릴 듯한 천무휘의 무시무시한 기세에 기녀들이 기겁하였지만.

서진은 고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때 본인의 나이는 겨우 열 살이었소만.”

“안다. 아니까. 지금 네놈의 목이 붙어있는 거다.”


천무휘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세상에 다시 없을 인내심을 발휘하였다. 그리곤 씹어뱉듯이 천천히 한 자씩 말했다.


“인면수심 같은 네놈 아비 때문에 목을 매신 내 아버지와 어머니를 생각한다면, 당장에라도 복수를 하고 싶지만!”

“복수는 시간이 지나 냉정해진 상태에서 실행해야 하는 법이오.”

“닥치거라! 세상에 다시 없을 망나니로 알려진 네놈의 목을 자르면, 골칫거리가 사라졌다고 좋아할까 봐. 그러지 않는 거니까.”

“······.”


그렇게 말하면 내가 많이 섭섭하지! 라고 말할까 싶었지만, 농할 분위기는 아니었다. 물론 천무휘는 장차 강호의 동량지재(棟梁之材, 대들보)가 될, 천하제일검 검선(劍仙)의 수많은 제자 중 하나였기에, 서진을 죽이진 않을 것이다.


“···그럼, 화풀이라도 하시겠소? 내 얼마든지 받아 주리리다.”

“······.”


서진이 불콰하게 취한 얼굴로 들어오라는 듯이 양손을 벌리자.


철컥.

천무휘는 검을 거뒀다. 서진의 말대로 하기엔, 드높은 자존심과 저 밤하늘의 별처럼 빛나는 명성이 허락지 않았다.

무공도 익히지 못하는 돈만 많은 반푼이에게 손을 대는 건 그에게 모욕이었다.


“······지 애비 같은 놈.”


대신 가슴에 비수를 꽂고는 한 줄기의 바람처럼 사라졌다.

홀로 남겨진 서진은 술잔을 들었다.


“아깐 세상에 다시 없을 지음(知音, 벗)이라고 하더니. 봤느냐? 잘난 사내의 마음 얻기가 이렇게나 어렵다.”

“···그, 그럼요. 공자님!”

“···저, 저희가 얼마나 맘고생 하는지 이제야 아시겠죠?”

“알다마다. 열이면 열, 강호의 사내들은 내 앞에서 침을 뱉고, 여인들은 뒤에서 내가 마실 술병에 가래침을 뱉지.”

“······!”

“······!”


순간 기녀들이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였다.

서진은 슬쩍 고개를 들어 눈을 가늘게 떴다.


“누가 내 술에 석화(石花, 굴)을 탔나 했더니, 곱디고운 너희들이었구나?”

“···호, 호호! 그, 그럴 리가 있겠사옵니까?”

“저, 저희가 어찌 감히! 그런 불경을 저지르겠사옵니까?”

“목소리가 떨린다, 요것들아.”

“······!”

“······!”


기녀들의 안색이 더할 나위 없이 창백해졌지만.


드르륵―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아름다운 여인이 들어오자, 화색이 돌았다.


“너희들은 그만 물러가거라. 이제부터 내가 서진 공자를 모실 테니까.”

“예, 예! 루주님!”

“그, 그럼 저흰 이만 물러가겠사옵니다!”


기녀들은 살았다는 표정으로 더러워진 술상을 다급히 물렸다.

루주라고 불린 미녀, 월영은 다소곳이 서진의 옆에 앉았다.

그리곤.


“저 아이들의 주리를 틀어 다시는 요망한 짓을 하지 못하도록 교육 단단히 해놓겠습니다, 공자.”

“아니, 왜?”

“예?”

“인기 없는 사내들에게 미녀의 석화는 포상이라고. 여기 나처럼 문턱이 닳도록 드나드는 놈들에 물어보거라. 월영루의 간판 기녀들이 술에 침을 뱉어준다고 하면, 서로 마시겠다고 달려들걸?”

“하······!”


월영 루주가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하였다.

그녀의 그 고운 화용(花容, 꽃과 같이 아름다운 얼굴)을 안주 삼아 서진은 술잔을 비웠다.


“물론 자주 마시면, 비위는 좀 상하긴 하지만.”


쪼르륵.

월영 루주가 바로 빈 술잔을 채워주며 말했다.


“······차라리 우리 기루의 기녀들 빚을 모두 탕감 해준 게 서진 공자라고 말씀하시지 그래요.”

“그 빚이 누구 때문에 생긴 건데?”

“······.”


월영 루주는 차마 그 누구를 말할 수가 없었다.

돈에 미친 벌레만도 못한 서중영 때문이었으니까.


“그 빚 때문에 자신을 낳아준 부모들이 기루에 판 아이들이야. 원망 당해도 싸지.”

“······.”


서진이 술잔을 연거푸 비워내자, 월영 루주도 말없이 옆에서 잔을 채워냈다.


“아이고, 죽겠다.”


벌러덩.

하염없이 마시던 서진이 바닥에 드러눕자.


스윽.

월영 루주가 조용히 다가와 무릎베개를 해주었다.

서진이 피식 웃었다.


“호사도 이런 호사가 없구나.”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하잖아요. 괜히 좋은 일에 방해되는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해요. 이깟 걸로 호사라고 하지 마세요.”

“서시(西施)도 울고 갈 월영루 최고의 미녀가 이리 위로해 주는데. 호사가 아니면 뭐겠어?”

“정말······.”


하고 그림처럼 웃는데, 월영도 못 말리겠다는 듯 따라 웃었다.


“달그림자가 머문 누각의 최상층에서 보는 달님은 이렇게나 운치가 있으니. 죽는 날까지 괴로워만 하기엔 너무 아깝지 않은가. 별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기도 바쁜데, 내게 주어진 길이 걷기도 힘들다고. 별이 바람에 스치울기만 해서야 되겠는가.”

“······공자, 만취하셨어요.”


서진은 불콰해진 얼굴로 히죽 웃었다.


“알아, 그래서 꼬시는 거야. 이때가 아니면, 언제 청순가련한 미녀에게 수작을 부리겠어?”

“······.”


월영 루주는 서진을 지그시 노려보았다.


“······정말 말이나 못 하면.”





짹짹.

귓가를 간질이는 이름 모를 새소리에 눈이 절로 떠진다.

서진은 고개를 들어 부스스 몸을 일으켰다.

고개를 돌리자, 옆에 빙기옥골(氷肌玉骨)의 아름다운 여인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누워있었다. 들어갈 때 들어가고, 나올 때 나온 유려한 곡선이 이렇게나 가슴을 설레게 하는데.


“······아, 하나도 기억이 안 나. 제기랄.”

“······푸훗.”


봉목(鳳目)을 살며시 뜬 월영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는다. 박속같이 하얀 치아가 어찌나 고와야지.


“억울해 미치겠군.”

“그건 제가 할 말이 아닌가요?”

“과음이 이렇게나 위험하다니. 루주에게 난 죽은 목숨이겠군.”

“위험한 걸 아시는 분이 밤새 그렇게 절 괴롭히셨나요?”


상반신을 일으킨 월영이 곱게 눈을 흘겼다.


“일단 알고라도 죽자고. 내가 또 뭘 잘못한 거지?”

“잘못한 거 없어요. 세상 누구보다 다정하셨으니까.”

“여심 방화죄까지, 내 죽을죄를 지었군.”

“그걸 아는 사람이 그래요?”

“그러니까······.”


미소 지은 월영은 일어나 궁장을 입기 시작했다.

그 눈부신 나신에 아쉬움을 느낄 만도 했지만.

서진은 사심 없는 눈빛으로 창밖을 바라봤다.

눈부신 아침 햇살이 머리를 지끈거리게 했다.


“···정말 많이도 마셨나 보군.”

“온몸으로 마셨죠. 기다리세요, 꿀물을 대령해 올게요.”

“독을 타도, 내 이해하지.”

“기대하세요, 고통 없이 보내드릴 무형지독으로 타 드릴 테니.”

“그럼 사인은 복상사(腹上死)로 기록되겠군. 서진, 수많은 사내들의 질시와 부러움을 안고 월영루에서 잠들다 라고, 묘비에 새겨주게.”

“그럼 이건 마지막 입맞춤이겠고요.”


서진의 실없는 농에 월영 루주는 다가와 그의 이마에 입을 맞추더니, 밖으로 나가려 했다.


“잠깐.”

“네?”


덥석.

손목을 잡는 서진에 월영 루주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서진은 월영 루주의 손에 무언가를 쥐여주었다.

월영 루주가 손을 열어 확인하자.


“이, 이건······!”


눈물 모양의 투명한 광석 아니, 보석이 화려하게 빛나고 있었다. 아침 햇살에 화려하게 반짝이는 그건 지금껏 한 번도 보지 못한 것이었다.


“머나먼 서역에서 들여온 금강석(金剛石)이라는 건데, 길들일 수 없는 무적의 미인을 꼬실 때 쓰라더군.”

“······그, 금강석이요? 이건 어디서 나셨어요?”


월영은 그 가치를 대번에 알아보았다. 드물게 목소리까지 떨리는 그녀에 서진은 씁쓸히 웃었다.


“알잖아, 내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온 세상의 만물을 수집하는 데 광적으로 집착하시는 거. 무역업을 통해 온 세상에서 각양각색의 물건들을 들여오는데. 아버지의 비밀 금고엔 엄청난 것들이 잠들어 있다고.”

“한 마디로 훔친 거네요?”

“아니지, 잠깐 빌려온 거지.”

“······.”

“맡아둘 데가 없어서 잠시 맡기는 거니. 잘 간직하라고.”


두 눈이 휘둥그레진 월영은 한참을 아침햇살에 비춰보더니, 결심한 듯이 말했다.


“···무상무형지독(無上無形之毒)으로 타드릴게요. 그래야 찾아갈 수 없을 테니까.”

“내 무덤을 팠군, 젠장.”


그렇게 두 사람이 실없는 농을 주고받을 때.

밖에서 은밀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루주님.”

“내가 분명히 방해하지 말라고 했을 텐데.”

“변고가 생겼습니다.”

“변고?”


지금까지와 완전히 다른 표정이 된 월영 루주의 안색이 시시각각으로 변했다.

전음으로 무언가 전달 받는 중이었다.

월영이 서진을 바라보았다.


“······서진 공자, 아무래도 집으로 가보셔야겠어요.”

“······!”


더할 나위 없이 침중한 표정이 된 그녀에 서진은 까닭 모를 불안감을 느꼈다.


작가의말

안녕하세요, 손연우입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다음 편으로..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무림맹 말단은 마신이어라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5 무림맹주의 그림 NEW +1 13시간 전 85 5 10쪽
14 엄청난 성장 속도 24.09.18 141 7 10쪽
13 교육을 받다(2) +1 24.09.17 152 10 14쪽
12 교육을 받다(1) +1 24.09.16 158 11 11쪽
11 세상에 고통없이 얻어지는 건 없다 24.09.15 158 8 13쪽
10 무림맹에 입맹하다 24.09.14 177 8 14쪽
9 어디 한 번 당해보거라 +1 24.09.13 185 15 12쪽
8 무림맹으로 향하다 +1 24.09.12 210 10 13쪽
7 날 도와 24.09.11 252 8 12쪽
6 검선의 제자 천무휘(2) +1 24.09.10 304 9 14쪽
5 검선의 제자 천무휘(1) 24.09.09 363 11 10쪽
4 절호의 기회 +2 24.09.08 409 14 12쪽
3 무공을 익히는 걸 추천합니다 24.09.07 477 10 11쪽
2 마신(魔神) 등록 완료 +1 24.09.06 555 18 12쪽
» 서장, 변고가 생기다 +2 24.09.06 723 18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