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맹 말단은 마신이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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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연우
작품등록일 :
2024.09.06 13:51
최근연재일 :
2024.09.19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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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6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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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마신(魔神) 등록 완료

DUMMY

*



“······.”


지금까지 그랬듯 인생은 순탄하게 이어지는 법이 없었다.

알 수 없는 불안감의 정체.

새카맣게 타고 뼈대만 남은 전각들을 보는 서진의 눈동자는 그 어느 때보다 깊게 가라앉아 있었다.

하남 제일 거부의 집이라 불리던 아니, 불렸었던 폐허를 보면서 서진은 천천히 걸었다.

관병들이 진을 쳐서 모든 이들의 접근을 막고 있었지만.

넋 나간 서진을 막는 이는 없었다.

관병들 치고 서진에게 술을 얻어먹지 않은 이가 없기도 했지만, 돈을 벌고 재물을 불리는 기교는 초절정에 이른 전설적인 대부호, 시대의 거상이라 불렸던 서가장(西家莊)의 유일한 생존자였기 때문이었다.


터벅, 터벅.

관병들이 내어준 길을 따라 본가로 향하는 발걸음이 천근만근처럼 느껴졌다.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 아니, 언젠간 인과응보가 찾아올 줄은 짐작했지만, 그게 오늘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


자신이 보고 있는 현실이 믿기지 않아, 주위를 두리번거렸는데.

간밤에 본 선이 고운 잘난 사내가 중인들의 틈바구니에서 조소를 흘리고 있었다.


‘천무휘?’


천무휘는 혀를 끌끌 차더니, 신형을 돌려 떠나갔다.

서진은 그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다시 걸음을 옮겼다.

모조리 불타 없어진 폐허를 보면서, 장원의 주위에 해자(垓字)를 판 넓은 못 덕분에 주변 민가에 피해가 없음을 그나마 다행으로 여기는 자신이 미친 것 같았다.

그 많던 고용인들 중 살아남은 이는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형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새카맣게 탄 시신들을 보자, 두려움과 후회가 물밑 듯이 밀려왔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냐?”


공허한 울림과 같은 혼잣말에 답해줄 이는 한 명도 없었다. 그저 걷고 또 걸어 부모님이 머물던 안가로 향할 뿐이었다.

궁전 같았던 안가도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형태를 유지하고 있긴 했지만, 화마(火魔)를 피해 가진 못하였다.

앙상하게 뼈대만 남은 대들보를 지나쳐 아버지의 집무실로 향했다.

혹시라도 있을 부모님의 새카맣게 탄 시신을 마주할까 봐 손발이 절로 떨려왔다.


‘······제발 아니기를.’


남들이 아무리 욕한다고 한들 서진에겐 그를 낳아주고 키워주신 분들이다. 그래서 제발 부모님만큼은 무사하길 바라고 또 바랐다.

안가에 두 분이 머무는 침실의 문을 열 땐, 온몸이 바람결의 사시나무처럼 떨려왔다.


제발, 제발, 제발, 제발, 제발, 제발, 제발, 제발, 제발, 제발, 제발, 제발, 제발, 제발, 제발, 제발, 제발, 제발, 제발, 제발, 제발, 제발, 제발, 제발, 제발, 제발, 제발, 제발, 제발, 제발, 제발, 제발, 제발, 제발, 제발, 제발, 제발, 제발, 제발, 제발, 제발······.


수도 없이 되뇌며 침실의 침상 위를 바라보는데.

새카맣게 탄 앙상한 침상만 놓여있을 뿐.

어디에도 두 분의 시신은 없었다.


“······후우우.”


십 년 감수한 표정으로 긴 숨을 토해내었다.

이에 용기를 얻어 안가를 샅샅이 뒤졌지만, 두 분의 시신은 없었다.


‘그럼! 아버지가 어떤 분이신데.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비밀 호(壕)를 땅속에 만들어 놓으신 독한 분이다. 분명 그곳으로 대피하셨을 거다!’


교토삼굴(狡兎三窟)이라고.

교활한 토끼는 세 개의 숨을 굴을 파 놓는 법이었다.


우당탕탕!

서둘러 집무실로 달려가, 아버지의 책상을 밀치고, 새카맣게 탄 융단을 잡아 뜯었다.

그러자 비밀의 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여기가 직계 가족인 부모님과 자신만이 아는 대피소였다.


끼릭, 끼릭!

그 옆에 숨겨진 기관 장치를 조작하자.


쿠웅.

비밀의 석실을 숨겨놓은 문이 드드드― 열리기 시작했다.

서진은 기다릴 새도 없이 열린 문틈 사이로 신형을 비집어 넣었다.

그리곤 안쪽 기관 장치를 조작해 비밀 석실의 문을 도로 닫았다.

혹시라도 있을 만약의 경우를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혹 흉수라도 숨어있다면, 이곳을 무너트려서 빠져나가지 못하게 할 작정이었다.

깜깜해진 석실 내부였지만.

곧 천장에 박힌 값을 따질 수 없는 야명주들에 의해 서서히 밝아지기 시작했다.


쿵쾅쿵쾅.

서진은 요동치는 심장 어림을 손으로 부여잡으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에 착 가라앉은 내부 공기는 불안감을 가중시켰다.


‘제발, 아냐. 아닐 거야. 아니어야 해. 여길 모르시는 분들이 아니잖아.’


서진은 손까지 벌벌 떨며 긴 통로를 지났다.

이 동굴은 화마의 위험에서 사람을 충분히 지켜주고도 남았다. 집무실에서 진천뢰 수백 개가 터진다고 해도 절대 무너지지 않을 정도로 튼튼하다고 아버지 서중영이 호언장담했었다.

이곳에 당연히 대피하셨을 것이다.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바닥에 검은 핏자국이 드문드문 이어지고 있었다.


“······!”


그걸 발견한 서진은 억장이 무너졌다.

적막한 통로의 끝.

내실로 이어진 드문 핏자국의 주인들이 있었다.

퀴퀴한 지하실 공기에 섞인 역한 피 냄새가 코를 찌른다.


털썩.

싸늘하게 식은 시신들을 보자마자, 서진은 주저앉았다. 손을 들어 입을 틀어막았다. 그렇지 않으면 헛구역질이 나올 것 같았다.

아니, 이미 하고 있었다.


“······우웨엑.”


머리가 핑 돈 서진은 속에 있는 모든 걸 게워 내기 시작하였다.

억장이 무너지는 현실에 필사적으로 부정해 보지만.

잔인한 현실은 그에게 종용했다.

저기 시신들이 바로 네가 찾던 부모님이라고.


“아니야!”


그의 아버지 서중영은 호락호락 당했을 분이 아니었다. 분명 자신의 죽음을 위장하고도 남을 위인이었다. 해서 벌떡 일어났는데. 석실의 구석 탁자에 놓인 납작한 무언가 보였다.


“서, 서신!”


그럼 그렇지!

서진은 황급히 달려가 피 묻은 서신을 펼쳐보았다.

서진은 이 알 수 없는 상황 속에 남은 유일한 단서를 읽어 내려갔다. 급히 휘갈겨 쓴 글씨체에 당시의 급박함이 절로 전해졌다.


<아들아. 네가 이글을 보았을 땐, 우린 이미 산 사람이 아닐 것이다. 긴말을 할 수 없음을 용서해다오. 단 한 가지만 명심하거라, 복수는 꿈도 꾸지 말아다오. 이제부턴 지금까지와 달라져야 산다. 네게 남겨줄 수 있는 유산은 오직 마신뿐이다. 그것은······(중략).>


“···마, 마신이라니?”


서진은 홀린 듯이 읽다가, 석실의 미묘하게 색이 다른 벽면을 바라봤다. 그곳에 아버지가 말한 유산이 있다고 한다.

아마도 두 분은 시신을 위장하고 저기에 숨어있는 게 분명하다!


“···돈벌레라고 불리셨던 분인데, 이렇게 돌아가실 리가 없지. 흐흐!”


드드드드.

그곳에 놓인 야명주를 서둘러 밀자, 가(假) 벽면이 옆으로 밀려났다.


“······!”


서진은 벽만 안 작은 암실의 탁자 위에 놓인 새끼손가락의 한마디만 한 흑립방체(黑立方体, 흑색의 정육면체)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 괴(塊, 덩어리)가 마신이라고?”


아니, 네모난 단(丹)처럼 보였는데, 그 표면은 유리처럼 검게 번들거리고 있었고, 복잡한 기하학적인 황금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그 문양의 흑립방체는 머나먼 상고시대(上古時代)의 물건이라 하였다.


“이딴 게 억만금을 주고도 구할 수 없는 거라니.”


서진은 떨리는 손으로 흑립방체를 집었다.

서신 속의 서중영은 말했었다.

이걸 삼켜서 영원히 감추라고.


“······대체 누구로부터 감추라는 겁니까?”


지독하게 메말라가는 목소리.

서진은 자신의 아버지가 갑자기 노망이 나서 그런 건 아닐 거라 여겼다. 월영 루주에게도 말했듯이 집요하다 못해 광적인 수집욕이 있었던 아버지 서중영은 신기하다 싶은 물건은 모조리 들여왔었는데, 이것 또한, 집안 대대로 무역하다가 어디서 가져온 게 분명하였다.

이중 밀실 안엔 출처가 불분명한 연대마저 미상인 흑립방체외엔 아무것도 없었다.


“······흐, 흐흐.”


그제야 현실이 서서히 인식되기 시작하였다.

어디에도 두 분은 안 계신다.

저 뒤에 있는 시신들 뿐.

지금껏 함께 해왔던 식솔은 물론이고, 부모님마저 잃었다는 충격에 온몸이 떨린다.

저 뒤에 있는 시신들이 두 분이 아니길 애타게 빌고 또 빌었건만.

현실은 잔인했다.

같이 식사 한번 하자는 어머님의 말을 왜 그토록 무시했던지.


“···그게 뭐 어렵다고, 난!”


고작 밥 한 번이었는데.

그저 밥 한번 같이 먹자고 하셨을 뿐인데.

그게 싫어 밖으로만 나돌아다녔다.

결과적으론 그게 서진의 목숨을 구한 셈이 되어버렸지만.

돌이킬 수 없는 발걸음에.


“으아아아!”


쿵쿵쿵쿵!

후회의 눈물을 주르륵 쏟아내다가, 바닥을 양손으로 수도 없이 내리쳤다.


“끄흐윽, 끄허억!”


숨통에 가시 덩어리라도 박힌 듯 턱 막혀왔다. 그 타는 듯한 괴로움은 가슴을 쥐어뜯게 하였다.

한참을 짐승처럼 꺽꺽거리다가.


“으허헝!”


아이처럼 울음을 겨우 토해내서야, 숨이 쉬어진다.

왜 항상 자식들은 부모를 잃은 뒤에나 후회하게 되는 걸까.

밥 한 번은커녕,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하고 나오던 마지막 날 자신의 모습이 못 견디게 괴로웠다.

그러니 평소 원망하던 아버지 서중영의 마지막 유언을.

듣지 않을 이유 따윈 없었다.

남들에겐 철천지원수였지만, 자신에겐 세상에 자신을 있게 해준 부모님이었다.

그러니 그가 할 수 있는 마지막 효도는 유언을 지키는 것뿐.


꿀꺽.


“컥······!”


삼키는 순간 서진은 입안에서 액체처럼 사르르 녹아내리는 흑립방체에 당황하였다. 거부감에 뱉을 새도 없이 액체는 목구멍을 타고 흘러 내려갔다.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내려간 흑립방체는 곧 아랫배, 단전에 단단히 자리를 틀려고 했지만. 단전이란 게 존재하지 않는 천형(天刑)의 몸임을 알아차렸는지, 다시금 역으로 올라왔다.

뜨거운 기운이 아랫배에서부터 심장, 목, 머리까지 단숨에 치고 올라가자.


“크윽!”


펑!

머릿속에서 폭죽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뜨거운 열기가 천령개(天靈蓋., 정수리) 아래쪽에 단단히 똬리를 틀었다.

그리고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adsf*ㄱㄴad你吃饭了吗? 언어 감지 완료. 사용자 초기화 완료. 최적화된 위치에서 AI 가동을 위한 준비를 시작합니다.>


“······누, 누구냐? 누가 내 머릿속에서 말하는 것이냐?”


전음은 절대 아니었다. 귀가 아닌, 머릿속에서 울리는 소리였으니까.


<······뉴로링크 BCI(Brain Computer Interface) 기술이 집약된 임베디드 칩(Embedded Chip)이 뇌에 안착하였습니다. 임베디드 칩은 신경망과 연결되어 뇌의 전기적 활동을 실시간으로 해석하고, 데이터 스트림을 무선으로 전송합니다. 현 시간부로 사용자와 AI 시스템과 연결됩니다, 동의하시겠습니까?>


“뭐? 동의?”


<동의가 완료되었습니다. 카운트다운 시작하겠습니다.>

<5>

<4>


“대, 대체 뭘 시작하겠다는 거냐?”


<3>

<2>

<1>

<동기화 0%······ 51%······99%>


“알아들어 먹지 못할 개소리······!”


여성의 목소리가 끝나기 무섭게 시야가 하얗게 명멸이 되었고.


“······끄르르!”


서진은 벼락 맞은 사람처럼 온몸을 떨어대다 못해.


털썩!

그대로 게거품을 물고 쓰러졌다.

의식을 잃었음에도.

무언가를 받아들이듯 서진의 희번덕거리는 두 눈동자는 끊임없이 요동을 쳤고.


<100%, 마신(魔神) 사용자 등록을 완료하였습니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내일도 이 시간 즈음에 뵙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 작성자
    Lv.89 피골마존
    작성일
    24.09.07 10:52
    No. 1

    주로 삼키는 것에 관심이 많군요.
    근데, 손가락질받는 집안의 자식으로서 자각이 없군요. 돌아가시면 묻혀지나?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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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어디 한 번 당해보거라 +1 24.09.13 186 15 12쪽
8 무림맹으로 향하다 +1 24.09.12 210 10 13쪽
7 날 도와 24.09.11 253 8 12쪽
6 검선의 제자 천무휘(2) +1 24.09.10 306 9 14쪽
5 검선의 제자 천무휘(1) 24.09.09 364 11 10쪽
4 절호의 기회 +2 24.09.08 409 14 12쪽
3 무공을 익히는 걸 추천합니다 24.09.07 477 10 11쪽
» 마신(魔神) 등록 완료 +1 24.09.06 556 18 12쪽
1 서장, 변고가 생기다 +2 24.09.06 723 18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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