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맹 말단은 마신이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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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연우
작품등록일 :
2024.09.06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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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9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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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9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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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검선의 제자 천무휘(1)

DUMMY

3



폐허가 된 서가장에도 연무장을 겸한 공터는 있었다.

그곳이 장례식장으로 차려져 있어서 그렇지.

사람도 없기에 준비한 의자들을 치우자, 널찍한 공간이 만들어졌다.


<전 아직도 이해되질 않습니다, 서진님.>

<왜?>

<왜 죽지 못해서 안달입니까? 무공을 익힌, 그것도 최상급 무공을 익힌 걸로 판단되는 청년 고수와 일대일 비무를 한다는 건 그야말로 자살 행위입니다.>

<안다. 그래도 내 부모를 욕보이는데 가만히 있어선 안 되지.>

<자존심입니까? 그러다 병신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미 병신 취급을 받은 지 오래다.>


서진이 자조적으로 웃자, 천무휘가 어이가 없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지금 웃음이 나오나?”

“그럼 울까? 내 부모도 모자라, 죄 없는 서가장의 식솔까지 다 잘 죽었다고 모욕을 주는데. 가만히 앉아서 질질 짜겠냐고!”

“······!”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던 천무휘는 내공을 이용해 주독(酒毒)을 날려버렸다. 정신이 한결 맑아졌다.


“···너 또한 내게 모욕감을 줬으니, 피차일반이다.”

“그게 상갓집 와서 깽판 놓은 것에 대한 핑계더냐?”

“······!”

“어차피 사과받을 생각은 없었다. 표리부동(表裏不同)한 계집애 같은 자에게.”

“······지금 그 말 후회하게 해주지.”

“후회는 이미 질리도록 했다.”

“······!”


<네가 말했지? 날 도울 수 있다고. 어디 한 번 전략을 짜보거라.>

<알겠습니다.>


AI는 긴말하지 않고 바로 받아들였다.


<지금 상대방에게서 신경전달물질의 불균형이 발견됩니다. 표정을 분석 결과 깊은 상실감과 우울감이 관찰되며, 일상의 즐거움과 동기부여가 사라진 상황으로 보여집니다. 어떻게 보면 죄책감을 넘어 자괴감에 빠진 상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서진님의 말에 큰 영향을 받은 듯합니다.>

<내가 말발로 조진 건가?>

<아닙니다. 상대방이 서진님께 닥친 불행에 자신의 과거를 투영하였기 때문입니다.>


“······.”


<한 마디로 상대방인 천무휘의 공감 능력이 지극히 뛰어나다는 뜻입니다.>


그 말인즉슨.


<······착해빠졌다는 소리군.>

<이런 상대라면, 죄책감과 각인처럼 새겨진 정신적 외상을 이용해 뒤흔드는 전략으로 가면 되겠습니다. 물론 절대 이길 수 없겠지만 말이죠.>


그 확언에 서진도 깊이 공감했다.

천무휘는 강호에서 이름난 고수였다.

무려 무림맹주인 검선의 수많은 제자들 중 두각을 나타낼 정도로.

그런 전도유망한 후기지수를 상대로 도발하고 말았으니, 남은 건 쥐어 터지는 것뿐이란 소리다.

AI의 전략을 대번에 이해한 서진은 기수식을 취했다.

물론 너무 엉성하기 짝이 없어서, 상대로 하여금 실소를 불러일으켰다.


“젠장, 정말 무공 한 자락도 익히지 않은 허접한 태가 나는군!”

“······!”


그래, 안다.

나도 안다.

동네 무관 밖에 다녀본 적이 없던 자신이었다.

그마저도 무관 아이들의 집단 따돌림과 폭력에 얼마 못 가 그만둬야 했지만.

적어도 주먹을 내지르는 법은 배웠다.

태산도 무너트린다는.


“붕권(崩拳)!”


휙.

가장 기초적인 권법을 펼친 주먹엔 힘이 제대로 담겨 있을 리가 만무했다.

내딛는 진각이며, 뻗는 팔이며.

전사경조차 싣지 못하는 몸을 쓰는 법이며.

힘이 제대로 실리지 않은 주먹은 못 봐줄 정도였다.

인상을 딱딱하게 굳힌 천무휘는 피하지도 않았다.


“······.”


퍽.

그저 가만히 맞았을 뿐이다.


“크윽!”


한데 왜 자신의 손이 강철 벽을 친 것처럼 깨질 듯이 아픈 거지?


“······이게 지금 네가 낼 수 있는 최선이냐?”

“아마도?”

“어린애 주먹만도 못하군. 그런데 뭐?”


빠악!

순간 서진은 별이 번쩍이는 걸 느끼자마자,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복수? 지나가는 개가 웃겠군.”


후두둑.

코에서 피가 다량 쏟아져 내리자, 서진은 손을 들어 핏물을 막았다. 머릿속이 윙윙거리며 뒤흔들렸지만, AI의 자발 맞은 목소리는 이어졌다.


<코속 점막 혈관이 터져서, 긴급 지혈을 실시합니다.>


“······!”


정말 피가 멎기 시작하자, 깜짝 놀랐는데.

이어진 말엔 더욱 놀라웠다.


<서진님이 가진 정보와 관찰을 토대로 상대방이 날린 일권을 분석했습니다. 가장 기초적인 무공 중 하나로 보여지는 충경(衝勁)은 단순한 물리적인 힘이 아니라, 몸 전체의 에너지를 한 지점으로 집중시켜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기술을 말합니다. 위력은 277kg이고, 속도는 12m/s입니다. 원래는 코뼈는 물론 안면 골절까지 시키고도 남을 위력이지만, 거의 힘을 뺀 데다. 내공을 아예 쓰지 않았기에 코피가 터지는 정도에 그쳤습니다.>

<이, 이렇게나 아픈데?>

<서진님이 하신 말처럼 계집애같이 봐준 것이죠. 마음이 약한 이 점을 이용해 계집애 같은 주먹이라고 놀리는 건 추천해 드리지 않습니다. 더 세게 얻어터질 확률이 크니, 앞으론 말을 조심하는 걸 추천드립니다.>

<제길, 그건 나도 아는 사실이고!>


“이제야 정신이 드느냐?”


서진은 자신을 한심하다는 듯이 내려다보는 천무휘에 이를 악물었다.


<이거 어떡하지? 뭐라도 해야 할 거 아냐?>

<꼭 뭐라도 해야겠다면 천무휘의 정신적인 외상을 자극해 무너트리는 공격을 알려드리겠습니다.>

<그게 뭔데?>

< 1. 야 이 기생오라비 같은 자식아, 이것도 주먹이라고 달고 다니냐? 널 맛있게 만들어 준 부모가 지하에서 울겠다, 이 계집애 같은 자식아!>

< 2. 파리가 잠시 앉았다 간 줄 알았다. 이 애비애미 없는 후레자식아. 밥은 제대로 먹고 다니냐?>

< 3. 내가 사흘 내내 아무것도 먹지 않아서 힘을 못 써서 그랬다. 밥 먹고 다시 싸우자. 그리고 독을 준비하셔서 밥에 독을 탄 뒤에 짓밟는 방법을 추천드립니다.>


······이거 완전 쓰레기네.

서진은 AI의 추천 방법을 모두 기각시켰다.


<날 암살할 작정이 아니라면, 다른 방법을 말해라.>


그러자 AI는 비로써 제대로 된 방법을 들고 왔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상대방의 방심과 죄책감, 뛰어난 공감 능력을 이용하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말도 안 되는 헛소리는 됐고.>

<충경을 이용하는 겁니다.>

<뭐?>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했지만, 마음이 혹하는 제안이었다.

정말 AI의 말대로라면, 무공을 따라 할 수 있다는 뜻 아닌가.


<그런 것도 정말 따라 할 수 있나?>

<몸 전체의 에너지를 한 지점으로 집중시켜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기술의 매커니즘을 그대로 복사하여서 재현하면 됩니다. 보기보다 간단한 기초적인 무공이고, 내공을 쓰지 않는다는 전제라면 비슷한 위력을 낼 수도 있습니다. 물론 단련되지 않은 육체는 망가지겠지만요.>


“······!”


생각지도 못한 유능한 AI에 서진은 생각할 것도 없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천무휘의 한심해하는 시선이 따라왔다.


“그냥 그대로 주저앉아 있는 게 나을 텐데?”

“······.”


<코피가 터진 사람이 지는 게 국룰이긴 하지만, 상대방의 코피를 터트리면 비슷한 효과를 누릴 수 있겠죠. 재현하시겠습니까?>

<국룰? 나라의 법? 어쨌든 뭐든 해봐.>


서진은 코피를 닦으며 일부러 도발했다.


“···내가 너 같은 줄 아나?”

“뭐?”

“왜 이제 내 주먹에 제대로 아플까 봐 두려운 것이냐?”


<천무휘의 충경을 발현하기 위한 신경회로의 강화를 시작합니다.>


서진의 눈에 보이는 도발에 천무휘의 미간에 내천(川)자가 그려졌다.

적어도 이젠 피할 일은 없을 터.


“하! 이 미친 작자가 여전히 주둥이만 살았구나.”

“입만 살았는지는 맞아보면 알겠지!”


천무휘는 어처구니가 없는 표정으로 기수식을 취하는 서진을 바라봤다.

한데.


“어, 억······!”


갑자기 서진이 온몸을 부르르 떨더니, 팔다리를 꼬기 시작하였다.

마치 말린 오즉어(烏鰂魚, 오징어)를 거센 불길에 구우면 이와 같을까.


“······으그그그그극!”


거기다 이상한 소리까지 내기 시작하며 거품을 무는 게 아니겠는가!

천무휘마저 당황할 정도였다.


“이 자가 갑자기 왜 이래? 정말 미친 건가?”

“으아아아아아니이이익!”


서진은 그 와중에도 대답하면서 팔다리를 바람결의 사시나무처럼 이리저리 휘둘러 대더니.


“허억, 헉!”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곤 분노한 눈빛으로 다시금 일어났다.


“이렇게 온몸을 바늘로 찔러대는 고통이라면 말이라도 해주던지!”


<고통 경감을 위해 뇌와 척수에서 엔도르핀 분비를 촉진합니다.>


“뭐? 그걸 이제······! 아아아.”


서진의 표정이 쾌감에 젖어 들자.

천무휘는 뭐 이런 미친 자식이 다 있어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곧 표정을 굳힐 수밖에 없었다.

왜냐면.


스윽.

고개를 흔든 서진이 다시금 기수식을 취했기 때문이었다.


‘응?’


순간 천무휘의 눈에 이채가 흘렀다. 그 앞선 자세보다 더 무게중심이 제대로 잡혔고, 주먹에 흔들림이 사라졌었다.

무엇보다 눈빛이 형형하게 빛났다.


<운동을 하여, 그에 걸맞은 운동신경이 강화되듯. 충경에 알맞은 신경회로를 강화하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이제 머릿속에 제가 그린 장면에 따라 몸을 움직이시면 됩니다. 무의식에 각인 된 동작처럼 펼쳐질 겁니다.>


그 짧은 새에 뭔가 달라짐을 느낀 천무휘.


“무공을 익힌 적 없는 놈치고, 자세는 제법이긴 하나······.”


쿵!

서진은 가타부타 말도 없이 첫발을 내딛고, 그 충격을 비꼬아, 허리와 어깨로부터 이어지는 나선의 힘으로 전환시키는 동시에. 체중을 실어 일권을 빠르고 짧게 끊어쳤다.


쉬이익!


“원숭이 흉내는 그쯤······!”


빠악!

방심한 천무휘의 고개가 뒤로 휙! 젖히게 한 그 정권.

바로 충경이었다.


“······어!”


전력을 다해 때린 서진도.

서서히 뒤로 젖혀진 고개가 돌아온 천무휘도.

모두 충격받은 얼굴이었다.


주륵.

천무휘의 그림 같은 유려한 콧날 밑에서 흘러나오는 한 줄기의 피.


“이게 되네?”

“······!”


<충경의 재현에 성공하셨습니다. 그럼 이제······.>

<이제?>

<······명복을 빕니다.>


뭐?


작가의말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내일도 이 시간 즈음에 뵙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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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무림맹주의 그림 NEW +1 13시간 전 86 5 10쪽
14 엄청난 성장 속도 24.09.18 141 7 10쪽
13 교육을 받다(2) +1 24.09.17 152 10 14쪽
12 교육을 받다(1) +1 24.09.16 159 11 11쪽
11 세상에 고통없이 얻어지는 건 없다 24.09.15 158 8 13쪽
10 무림맹에 입맹하다 24.09.14 177 8 14쪽
9 어디 한 번 당해보거라 +1 24.09.13 186 15 12쪽
8 무림맹으로 향하다 +1 24.09.12 210 10 13쪽
7 날 도와 24.09.11 253 8 12쪽
6 검선의 제자 천무휘(2) +1 24.09.10 306 9 14쪽
» 검선의 제자 천무휘(1) 24.09.09 365 11 10쪽
4 절호의 기회 +2 24.09.08 409 14 12쪽
3 무공을 익히는 걸 추천합니다 24.09.07 477 10 11쪽
2 마신(魔神) 등록 완료 +1 24.09.06 556 18 12쪽
1 서장, 변고가 생기다 +2 24.09.06 723 18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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