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리건곤정협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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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夜月香
작품등록일 :
2016.05.31 21:37
최근연재일 :
2016.06.01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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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6.01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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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서문발호(西門跋扈) 2

DUMMY

아무것도 모르고 찻잔을 들어 천천히 들이키려던 바로그때, 자혜공주와 광진 두 사람의 귓속에 은밀한 전음의 소리가 조그맣게 들렸다.


‘ 차가 목으로 넘어 가는 순간 어지러움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독입니다. 그러나 염려 마시고 그 즉시 서문대인에게 몸이 불편함을 알리고 자리를 뜨십시오. 이곳을 벗어나 동쪽으로 다섯 마장쯤 가면 여진객잔(餘鎭客棧)이 있습니다. 재빨리 그 곳으로 달려가 이층 끝 방에 드십시오. 시간을 지체하면 기산 연운봉 아래에서의 경험을 또 한번 하게 될 겁니다. ’


멈칫, 찻잔을 든 손에 잔잔하게 경련이 일었다.


‘ 기산 연운봉? 그분이다. 다시 뵙고 싶었던 그분이 이곳 가까이에 계셔 위급을 알려주고 있다. ’


두근거리는 가슴을 손으로 쓸어내리며 살며시 실내를 둘러보아도 이 자리에는 처음부터 함께 자리한 사람들 뿐, 전음을 보내기 위해 입술 한번 가볍게 달싹거리는 사람은 누구도 없다. 그렇다고 바깥 주변에 어떤 기척이 느껴지는 것도 아니었다. 어디서 들려오는 소리인줄 몰라 두리번거리는 사이 서문인걸의 목소리가 또 한번 귀를 울렸다.


“ 자자··· 모두들 차가 식기 전에 어서 드십시오! ”


서문인걸의 재촉에, 찻잔을 손에 들고 멈칫거리던 자혜공주가 전음의 소리를 믿고 단숨에 들이마셨다. 조금이라도 빨리 이곳을 나가 그 사람을 만나보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그렇게 차를 마시고 잠시 시간이 흐른 후,


“ 으윽, 어지럽다. 가슴이 답답해 견딜 수가 없구나. ”


자혜공주가 고통을 호소하자 광진이 놀란 표정으로 벌떡 일어났다. 그러나 광진 자신도 넘어질 듯 몸이 휘청거렸다.


“ 이런, 마마께서 너무 신경을 쓰신 듯합니다. 서문대인, 마마의 몸이 불편 하시니 어서 궁으로 모셔야겠습니다. 그럼 이만! ”


겨우 몸을 가눈 광진이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며 다급히 공주를 들쳐 업고 휙 몸을 돌려 달려 나가는 뒷모습을 말없이 바라보는 서문인걸의 입가에는 득의의 미소가 떠올랐다. 그러는 사이,


“ 어어··· 나도 몸이 좋지 않구나. 이 사람도 몸이 불편해 대인의 고견을 더 듣지 못하고 자리를 떠야겠습니다. 구야, 부축하라. ”


모두가 갑자기 비틀거리며 문을 나서는 뒷모습만 바라보던 서문인걸은 그들이 시야에서 멀리 사라지자 의뭉스러운 웃음을 터뜨렸다.


“ 흐흐흐흐, 그래도 구공자가 무공이 가장 높아 오래 견디는구나! 화령아, 얼마 지나지 않아 저들은 이 아비를 찾아와 살려 달라 사정을 하게 될 것이다! ”

“ 예? 무슨 말씀이신지? ”

“ 이 아비가 저들에게 술수를 좀 부려놓았단 말이다! 이번에는 실패를 하지 않겠지. ”


이번에는?

그렇다면 이 같은 독을 이미 한번 사용해 보았다는 암시가 아닌가. 정녕 모를 말을 뱉는 서문인걸이었다.


* * * * * * * * * * * * * * * * * *


연환서숙을 벗어나 동쪽을 향해 한참을 달리던 유운이 구를 돌아보았다.


“ 괜찮으냐? ”

“ 예, 주군. 그 정도의 독으로는 저를 어찌할 수 없습니다. 저도 천궁의 제자가 아닙니까? ”

“ 그러냐? 내가 말을 하지 않았는데도 차에 독이 들었다는 사실을 어찌 알았느냐? ”

“ 주군의 그 눈빛으로 알았습니다. ”

“ 맞아, 천궁의 가족이었지! 과연 내 아우답다. ”


유운은 흐뭇한 시선으로 구를 바라보며 걸음을 재촉해 여진객잔을 향해 달렸다.

이윽고 객잔에 도착해 두말 않고 이층 구석진 방의 문을 열고 들어서니 자혜공주와 광진이 흐늘거리는 몸을 겨우 가누며 침상에 걸터앉아 있었다. 그들을 일별한 유운이 신속히 공주의 곁으로 다가서며 일의 전말을 설명할 여유도 없다는 표정으로 바삐 움직였다.


“ 공주님, 자세한 말씀은 나중에 나누도록 하고 우선 좌정을 하십시오. 구는 광진호위의 상태를 살피도록 하라. ”


그리고는 자혜공주를 억지로 좌정시킨 후 맥을 짚어 몸의 상태를 살피던 유운이 잠시 머리를 갸웃거렸다.


‘ 기산에서의 그 신경독(神經毒)이다. 서문어른이 어찌 그때 철궁패장 맹우량이 전개한 것과 동일한 신경독인 망아미혼독(忘我迷魂毒)을 사용했단 말인가? 알 수없는 일이구나! ’


하지만 그 생각에 골몰하다가는 자혜공주의 중독이 깊어져 뇌리를 지배당할지도 모를 다급한 상황이기에 해독이 우선이었다. 두말없이 손을 공주의 등에 손을 밀착시켜 진기를 불어넣은 지 한 시진 가까이 지나자 자혜공주의 몸에서 비릿한 냄새가 풍겨 나오며 몸속에 쓰며든 망아미혼독의 독기는 말끔히 사라졌다.


“ 휴우... ”


길게 숨을 몰아쉰 자혜공주가 몸을 추슬렀다. 그리고는 잠시 후, 온전히 기력을 되찾았는지 유운에게 고마움을 표하기 위해 깊이 고개를 숙였다. 그 곁에는 이미 원기를 회복한 광진이 초조한 표정으로 공주를 지켜보고 있었다.


“ 혹시 어른께서 제게 전음을 보내셨습니까? ”


전음을 보낸 사람의 말을 미루어 짐작하면 그는 분명 기산(箕山)에서도 해독을 시켜준 은인이 아니던가? 자혜공주는 그 은인의 목에 걸린 옥패를 생각해 두근거리는 가슴을 겨우 달래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러나 이 중년문사는 공주 그윽이 바라보며 빙긋 웃기만 했다.


‘ 아니었는가? ’


자혜공주는 저어기 실망하는 눈빛을 보였다. 그러나 이 중년문사역시 방금 자신을 해독 켜준 고마운 분이 아닌가, 한마디 말을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 덕분에 위기를 벗어났습니다. 헌데 어떻게 잔속에 독이 들었다는 사실을 알았는지? ”


유운은 자혜공주의 물음에는 대답을 않고 구를 돌아보았다.


“ 객잔의 주인에게 부탁한 정향차(丁香茶)를 가져오너라. 자··· 모두들 자리에 앉으십시오. 정향차는 기력을 도우고 머리를 맑게 만드니, 두 분의 회복을 도울 겁니다. ”


구가 가져온 차 주전자를 받아든 유운은 정향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차를 손수 한잔씩 권했다.


“ 그곳에서 서문대인이 이처럼 차를 따르는 순간 아무도 모르게 잔속에 독을 탔지요. ”

“ 모두의 눈을 어떻게 피해···? ”

“ 손가락에 끼어 있던 반지 속에서 아지랑이처럼 흘러나온 무형무취의 독입니다. ”


그 말에 자혜공주와 광진이 깜짝 놀랐다.

내공의 힘으로 반지속의 독을 찻잔으로 흘러들게 만든 서문인걸의 절정 내공에도 놀랐지만 그보다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이 추호도 느끼지 못한 그 독의 흐름을 발견한 이 사람의 내력이 더욱 궁금해 진 것이다.


‘ 이 중년문사는 그 몸속에 서문인걸보다 더욱 높은 공력을 숨기고 있단 말인가? 겉으로는 도저히 그런 모습으로 보이지 않는 인물이건만··· ’


아무리 살펴보아도 짐작이 되지 않았다. 그런 공주의 모습을 미소로 바라보며 차를 따르던 유운의 옷깃사이로, 목에 걸린 옥패가 살짝 드러났다. 다분히 의도적인 유운의 행동이었다. 순간 찻잔을 받아들던 자혜공주의 눈 속에 놀란 빛이 번졌다.


“ 잠깐, 잠깐만! 목에 걸린 그 옥패를 잠시 볼 수 있을까요? ”


자혜공주의 목소리가 잔잔하게 떨렸다.


“ 하하하··· 공주님, 이것 말씀입니까? ”


손에 건네주는 옥패를 받아 뚫어지게 보고 있던 공주의 얼굴이 점점 붉어지며 눈동자는 격정을 억누를 수 없어 커다랗게 변했다.


“ 어른께서 어찌하여 이 옥패를 지니고 계시는지? ”

“ 어허···, 공주께서 소인의 목에 걸린 옥패가뭐 길래 그리도 관심을 두시는지요? ”

“ 이 옥패는 내가 어린 시절에 동냥을 하던 어느 아이에게 준 것과 꼭 같은 옥패인지라··· ”


자혜공주는 무심코 말을 내뱉다 아차 싶어 입을 닫으며 유운의 표정을 살폈다. 맞습니다


“ 동냥을 하던 아이라? 하하하··· 맞습니다. 소인이 어릴 적의 그 거지아이입니다. 공주님의 배려에 마음 깊이 감사하며, 또한 이유 없는 동정을 받아들일 수는 없다 생각하여 마차에 무작정 달려든 그 아이가 이 사람입니다. ”


조용조용 말을 이어가던 유운이 자리에서 일어나 공주의 앞으로 다가가 정중히 예를 올렸다.


“ 소인, 유운이라 합니다. ” 이

“ 예? ”


아니다. 지난세월 아무리 모진나날을 보냈다고 해도 이렇게 나이가 든 모습일 수가 없었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다시 한번 바라보는 그 순간 중년문사의 얼굴에서 하얀 연무가 번져나더니 유운은 어느새 빼어난 헌헌장부의 모습으로 변해 눈앞에 우뚝 서 있었다.


“ 어머머··· 공자의 모습이··· ”

“ 예, 이게 소인의 본모습이지요. ”


어쩔 줄 몰라 당황해하는 공주에게 미소로 답한 유운은 곁에 시립해 있는 광진을 바라보며 호탕하게 웃었다.


“ 하하하하··· 광진호위, 우리가 생면부지의 사이는 아니라고 한 말 기억 하시오? 그 옛날 광진호위에게 죽도록 얻어맞은 그 거지아이외다. ”


광진의 표정에도 놀라움이 가득했다.


“ 이런, 그때의 일을 아직도 마음에 담고 계십니까? 그보다 역시 기산에 나타난 그 백의인이 공자였구려. 그때는 구명의 인사도 제대로 드리지 못했소이다. ”


광진과 농을 곁들인 인사를 나누는 사이 자혜공주가 다가와 유운의 손을 덥석 잡았다.


“ 그랬군요. 공자가 아니었다면 소녀의 목숨은 벌써 이 세상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제야 겨우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


곁에서 지켜보던 구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앞으로 나섰다.


“ 주군과의 인연은 오래 전 부터인가 봅니다. 이렇게 만나게 되시다니, 두 분의 해후를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


구의 인사에 자혜공주가 얼굴가득 부끄러운 표정을 띠고 말했다.


“ 구공자가 주군으로 모시는 분이라 하여 평범한 인물은 아니리라 짐작은 했었으니 정말 몰랐습니다. 어찌 이토록 알아보지를 못했는지··· ”


항상 구와 함께 자리하고 있었으나 그 멍청해 보이는 모습에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사실이 겸연쩍고 미안한 마음에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른 자혜공주였다.


“ 만날 때 마다 변모를 하고 모습을 숨겼으니 알아보지 못한 게 당연하지요. 소생이 정체를 숨겨온 것 또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


자혜공주가 궁금한 듯 앞으로 몸을 내밀며 물었다.


“ 공자님, 무슨 특별한 이유라도? ”

“ 예, 공주님. 오늘의 일도 그와 연관이 있습니다. 자자···, 차가 식기 전에 우선 한잔씩 드시고 천천히 말씀을 나누도록 하지요. ”


모두들에게 차를 한잔씩 권하며 유운이 빙그레 웃음 띤 얼굴로 광진을 돌아보았다.


“ 광진호위, 그날 어린 저를 어찌 그리도 무자비하게 두들겨 팰 수가 있었소이까? ”


이제는 서로가 농담을 주고받으며 마치 십년기기가 만난 듯 부드러움 속에 마음의 여유들을 가지고 서로를 대했다.


“ 푸하하하···, 그때는 어느 당돌한 어린 아이가 무작정 달려들었지요. 당시 소관에게는 공주마마를 지켜야 하는 지극한 임무가 있었습니다. ”


광진은 옛일을 돌아보며 그저 즐거움이 넘쳐난다는 듯 호방하게 웃으며 대답을 했다.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던 자혜공주의 입에서 부끄러움 가득한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 소녀, 공자님의 어릴 때 그 당당함을 오늘까지 한 번도 잊어본 적이 없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소녀의 앞에 서면 공주라는 신분 때문에 굽실거리기만 했지요. 그런데 공자께서는 조금도 주눅 들지 않고 그 맑은 눈동자로 소녀를 쳐다보며 당당히 호통을 쳤어요. ”


“ 하하하하··· 덕분에 광진호위에게 흠씬 두들겨 맞았습니다. 공주님의 은혜가 없었다면 소생 역시 황궁의 시위들에게 끌려가 목숨을 부지할 수 없었겠지요. 어린 시절의 철없는 호기였습니다. ”


유운과 자혜공주, 두 사람 모두의 눈 속에 그날의 광경이 아른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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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第 11 章 혼란의 시작 1 16.06.01 6,041 46 16쪽
47 자혜궁 연정 2 16.06.01 6,001 43 14쪽
46 第 10 章 자혜궁 연정 1 16.06.01 6,046 45 12쪽
45 치밀한 계략 5 16.06.01 5,817 41 12쪽
44 치밀한 계략 4 +1 16.06.01 5,950 43 14쪽
43 치밀한 계략 3 16.06.01 5,948 44 13쪽
42 치밀한 계략 2 16.06.01 6,069 44 11쪽
41 第 9 章 치밀한 계략 1 16.06.01 6,256 44 14쪽
40 의도된 정사(情事) 5 16.06.01 6,335 43 13쪽
39 의도된 정사(情事) 4 16.06.01 6,429 39 17쪽
38 의도된 정사(情事) 3 16.06.01 6,427 46 13쪽
37 의도된 정사(情事) 2 16.06.01 6,554 50 10쪽
36 (2券) 第 8 章 의도된 정사(情事) 1 16.06.01 6,882 46 12쪽
35 보이지 않는 손 5 16.06.01 6,367 47 12쪽
34 보이지 않는 손 4 16.06.01 6,780 49 11쪽
33 第 7 章 보이지 않는 손 3 16.06.01 7,267 52 11쪽
32 보이지 않는 손 2 +1 16.06.01 6,792 58 14쪽
31 第 7 章 보이지 않는 손 1 16.06.01 7,042 51 11쪽
30 싱그러운 육체 2 16.06.01 7,846 49 19쪽
29 第 6 章 싱그러운 육체 1 16.06.01 8,039 52 14쪽
28 서문발호(西門跋扈) 5 +2 16.06.01 7,706 51 12쪽
27 서문발호(西門跋扈) 4 +1 16.06.01 7,739 54 10쪽
26 서문발호(西門跋扈) 3 16.06.01 7,520 57 14쪽
» 서문발호(西門跋扈) 2 16.06.01 7,593 54 12쪽
24 第 5 章 서문발호(西門跋扈) 1 +1 16.06.01 7,996 52 14쪽
23 음모의 단초 4 16.06.01 8,171 53 16쪽
22 음모의 단초 3 16.06.01 8,045 59 13쪽
21 음모의 단초 2 16.06.01 8,343 57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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