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erior Strugg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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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개
작품등록일 :
2013.01.31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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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10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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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2.13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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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외전 1. Superior Progress : 대접전

DUMMY

소렌의 실력이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그 이후부터다. 단숨에 프로스트 그리즐리를 물리쳤다는 무명(武名). 그리고 그 직후 이어진 밸리언 요새 공방전에서 소렌은 세운 숱한 공을 세웠다. 이는 적의 귀에까지 들어가고, 급기야 밸리언 요새를 함락하기 위해 출정한 기사의 성미를 건드리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강한 인간이 있단 말이지?”


데스 오크(Death Orc)라는 악명을 떨치는 오크 기사, 자이럼은 잘 다듬은 송곳니를 드러내며 으르렁댔다. 한편, 지휘관의 생각을 읽어낸 흑마법사는 당황한 기색을 드러내며 그를 만류하려 애썼다.


“고정하십시오. 나이트 자이럼께서 패하시면 우리 군의 사기가 떨어질 뿐입니다. 혹여 이긴다 해도 요새를 함락시키는 것과는 상관없는 일이 아닙니까?”


만약 소렌이 오크에게 패하더라도 변하는 것은 없다. 상대는 소렌이라는 걸출한 장교를 잃겠지만 밸리언 요새라는 천험의 요새는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자이럼 역시 그런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그러나 자이럼의 본능은 지금 밸리언의 구심점이 되어가는 소녀를 죽여야 한다고 외치고 있었다.


“그럼 좋은 작전을 생각해내라 검은 인간. 그 인간이 있으면 모든 작전이 통하지 않는다. 우리가 기습하는 걸 들킨 것도 모두 그 인간 때문이 아닌가?”


“그거야....”


흑마법사는 침통한 심정으로 고개를 떨구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밸리언을 공략하려 했지만,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다. 억울할 정도로 소렌은 흑마법사의 생각을 꿰뚫어보고 있었다.

그렇게 벌써 한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아무리 몬스터가 인간보다 강건한 육체를 가지고 있다지만, 혹한 속에서 한 달이나 방치되는데도 몸이 멀쩡할 리 없다. 자이럼은 바깥에서 꺼지기 직전인 모닥불에 몸을 녹이는 몬스터들을 힐끗 바라보았다가 말했다.


“더 좋은 작전이 없으면 오크 방식대로 한다. 그 인간이 죽으면 네 작전도 통한다.”


“하, 하지만 황제 폐하께서 이런 사사로운 결투를 허락하실 지는....”


“감히!”


자이럼이 불같이 화를 내며 흑마법사의 가슴팍을 후려쳤다. 통나무같은 팔뚝이 흑마법사의 몸통을 단숨에 꿰뚫고, 흑마법사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절명했다.

싸늘히 식어가는 시신을 바깥으로 내던지자 그 시신이 꺼질 것 같은 모닥불을 푹 덮어버리며 불이 꺼졌다. 그러나 몬스터들은 오히려 신이 나서 자이럼이 준 먹이를 탐닉하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번뜩이는 눈으로 바라보던 자이럼이 빠드득 이를 갈며 으르렁댔다.


“한낱 인간 주제에 감히 폐하를 들먹이다니.”


밸리언 공략의 가장 큰 걸림돌인 소렌을 제거하는 것은 단지 밸리언을 얻기 위함이 아니었다. 지금 이 순간 밸리언은 부차적인 목표가 되었다. 한낱 요새를 점령하는 것보다 엠펠로니아의 진짜 적이 될 싹을 자르는 것이야말로 기사가 해 야할 일이다. 자이럼은 그렇게 생각하며 막사 한가운데 꽂혀 있는 참마도를 어깨에 짊어졌다.



“폰테일 님!”


조용히 명상에 잠겨 있는 소렌의 방에 떠들썩한 소리가 울려펴졌다. 소렌은 천천히 눈을 뜨고 추위로 발갛게 달아오른 장교의 얼굴을 올려다 보았다.


“오, 오크입니다.!”


“적습입니까?”


“아닙니다! 적은 단 하나. 데스 오크가 소렌님을 찾고 있습니다. 무, 무슨 결투를 하자고.....”


소렌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곧 그녀의 검을 챙겨 들고 그 장교와 함께 방을 나섰다. 이내 북풍이 몰아치는 외성으로 나가니, 그곳에는 병사들이며 장교들까지 구름처럼 모여 있었다.


“왔습니까?”


유한겸이 추위로 굳은 얼굴에 억지로 웃음기를 띄우며 소렌을 맞이했다. 소렌이 성벽 아래에 보이는 검은 그림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결투를 원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렇더군요. 받아들이실 겁니다.”


“예.”


소렌의 대답에 유한겸의 옆에서 오들오들 떨고있던 장교가 계급장에 붙은 눈이 떨어질 정도로 요란하게 고함을 내질렀다. 소렌보다 훨씬 높은 퍼스트 트라이앵글 계급의 장교였다.


“그게 대체 무슨 소리냐? 당장 저 오크에게 총공세를 퍼부어야 한다. 폰테일 당신이 병사들을 이끌고...”


“이대로 병력을 몰아치면 저쪽에서도 몬스터들이 나올 겁니다. 요새의 이점을 버리고 백병전을 벌일 필요야 없지요.”


유한겸이 공손히 포권을 취하며 조언했다. 소렌 못지 않은 활약을 보였기에 요새방위를 총괄하는 장교도 대놓고 그를 무시할 순 없었다. 그러는 차에 소렌이 날래게 성벽에서 뛰어내려 바닥에 착지했다.


“저, 저!”


“심려 놓으십시오.”


장교가 거품을 물어가며 덜덜 떨리는 손가락으로 소렌을 가리키고, 유한겸이 그런 장교를 진정시키려 애썼다. 한편 소렌은 몸을 감싸고 있는 외투를 벗어던지며 오크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소렌의 허리며 모두 다섯 자루의 검이 매여 있었다. 요새를 지키며 스톰브링거의 성취를 보아 검이 하나 는 것이다.


“작은 인간이군.”


오크가 송곳니를 꿈틀대며 씩 웃었다. 그러나 소렌이 보여준 모습은 그의 마음에 꼭 들었다. 가타부타 말하지 않고 요새에서 내려온 것이나, 작은 체구에 들어찬 미증유의 기세까지. 지금 여기서 죽여야 한다는 것이 아까울 정도였댜.


“나는 자이럼. 엠필로니아의 기사다.”


말은 물론이고 일격으로 오거의 목도 부술 수 있는 참마도가 묵직한 바람소리를 내며 소렌을 겨누었다. 소렌은 그녀보다 훨씬 큼직한 참마도 앞에서 서서 조용히 두 자루 검을 빼들며 말했다.


“소렌 폰테일.”


그 순간 자이럼의 미간이 꿈틀댔다. 자이럼의 기억에 있는 이름이었다. 그가 밸리언 공략을 명받았을 때, 분명 그 이름을 들은 적 있었다.


“드래곤 슬레이어와 이름이 같다. 너는 그 아들이냐?”


“딸이다.”


소렌이 싸늘하게 대꾸하자 자이럼은 호탕하게 웃으며 참마도를 옆으로 휘둘러 내리 트렸다. 기묘한 인연이었다. 언젠가 그녀가 마주할 비극을 상상하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이럴 의도는 아니었지만 자신이 죽음을 내려 주는 것이 오히려 자비가 된 셈이었다.


“크하! 미안하다. 나는 인간 얼굴 잘 모른다. 사과는 칼로 한다.”


“얼마든지.”


대화는 끝났다. 자이럼이 마치 소렌의 운명을 암시하는 것 같은 음울한 휘파람을 불기 시작했다. 그것은 저승에 가버린 전우들에게서 힘을 빌려오는 그 특유의 의식이었다. 이내 휘파람이 멎고, 자이럼이 먼저 움직였다. 거대한 참마도가 순식간에 십자를 그리며 바람을 갈랐다. 묵직한 모양새에 어울리지 않는 신속함이었다.

그러나 소렌은 어렵지 않게 그것을 피하고 또한 부드럽게 흘려냈다. 참마도의 움직임이 소렌의 검에 얽혀 이상한 방향으로 움직였다. 자이럼이 순간 난색을 표했다. 그리 강하지 않은 힘이 너무나도 절묘하게 파고든 탓이다.

눈 깜빡할 새에 네 개의 검광이 번쩍이며 거의 동시에 자이럼의 육중한 몸통을 꿰뚫었다. 그러나 거기서 멈추지 않고 소렌은 다섯 번째 검을 뽑아들어 허공에 띄웠다.


“끝이다.”


사지를 움직이는 근육이 잘려나가 자이럼은 옴짝달싹 못 하고 우뚝 서 있었다. 그런 오크를 향해 소렌은 서슴없이 검을 내리그었다. 다섯 번째 검이 떨어지기도 전에 십여 차례 네 자루의 검이 오크의 거체를 도륙했다. 오크의 몸이 만신창이가 되어간다. 요새에서 그 대결을 지켜보던 병사들이 환호하기 시작했다.


“와아아!”


“죽여! 죽여!”


거듭된 격전을 달래는 호쾌한 검술에 환호하는 이들. 그들 사이에서 오직 한 사람만이 침묵을 일관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내 유한겸이 사자후를 내질렀다.


“방심하지 마십시오!”


유한겸이 내지른 사자후가 우르릉하고 요새에 올라앉은 눈을 털어냈다. 그러나 그런 외침도 소렌에게는 닿지 않았다. 아니, 그 전에 소렌은 최후의 일격을 가하고 있었다. 다섯 번쨰 검이 코앞까지 내려왔을 때, 소렌은 네 자루 검을 집어넣으며 다섯 번째 검을 쥐었다.


“하압!”


더없이 깨끗하게 소렌의 기다란 검이 오크의 몸을 비스듬히 양단했다. 그러나 그순간 소렌은 위화감을 느꼈다. 검은 깨끗하게 들어갔건만 미묘하게 베이지 않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끈적한 스튜를 칼로 베어낸 듯한 느낌이었다.


“다 끝났나?”


자이럼이 씩 웃으며 심장에 새겨진 술식을 발동했다. 뇌운이 우는 것처럼 묵직한 소란이 일며 사방의 마나가 그에게 집중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믿을 수 없는 일이 발생했다. 소렌이 헤집어 놓은 몸통이 빠른 속도로 회복된 것이다. 가장 먼저 사지를 움직이는 근육을 회복한 자이럼은, 깊숙한 곳까지 파고든 소렌의 목줄기를 움켜쥐었다.


“큭!”


미처 몸을 빼내지 못한 소렌이 그만 자이럼의 고목의 뿌리 같은 손가락에 가느다란 목을 잡혔다. 그러는 사이 자이럼의 부상이 모조리 회복되었다. 이를 지켜본 유한겸이 이를 악물고 요새 성곽에 올라섰다. 그러나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나선 순간 사방에서 프로스트 그리즐리가 눈밭에서 몸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맙소사. 모두 활을 들어라!”


장교가 화들짝 놀라서 공세를 갖추려는 찰나, 유한겸이 침통한 얼굴로 그를 만류했다.


“그만두십시오. 저희가 나서지 않는 한 저들도 섣불리 우리를 움직이진 않을 겁니다.”


프로스트 그리즐리들은 방해를 방지하려는 병력에 불과하다. 정말로 요새를 손에 넣고자 했다면 더욱 많은 병력을 끌고 왔어야 한다. 유한겸은 주먹을 꽉 움켜쥐고 대결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 대신 힘을 모으기 시작했다. 소렌이 오크를 이긴 다음 벌어질 일에 대비해서.


“굉장한 실력이다. 하지만 그게 전부다.”


자이럼은 자랑스럽게 가슴을 두드리며 말을 이었다.


“위대하신 황제폐하께서 하사하신 이것보다는 약하다. 크하하!”


소렌은 혼미한 정신을 일깨우며 오크의 주위에 모여드는 마나의 흐름을 읽었다. 결코, 정상적인 흐름이 아니었다. 하지만 마나가 모여든 수준만큼은 소드마스터를 상회하고 있었다.


“자, 발버둥 쳐라 인간.”


자이럼의 손이 점점 소렌의 목을 조여왔다. 숨이 막혀온다. 자이럼의 흉측한 얼굴이 점점 가까워진다. 그것은 소렌이 죽는 순간 그녀를 과자처럼 씹어먹으려는 움직임이었지만, 소렌은 거기까지 생각할 여유도 없었다.

그 대신 소렌은 안간힘을 쓰며 허리에 찬 검을 뽑아들었다. 힘겹게 뽑아낸 검은 소렌의 떨림과 함께 달그락 거리며 날을 드러냈다. 이윽고 검을 모두 뽑아낸 소렌은 온 힘을 다해 그것을 자이럼의 턱 아래서부터 아마로 박아넣었다. 그리고 안면을 통째로 잘라냈다.


“컥!”


아래턱과 혀. 그리고 두개골까지 꿰뚫린 순간 자이럼의 힘이 풀렸다. 호흡이 돌아오고 마나가 다시 무거운 몸을 일깨웠다. 그러나 자이럼의 상처는 순식간에 아물어가고 있었다. 소렌은 자이럼이 정신을 잃은 순간을 놓치지 않고 단숨에 자이럼의 손을 베어냈다.

검광이 번쩍이고 소렌이 자이럼의 피로 물든 설원 위에 털썩 떨어졌다. 그러나 쉴 틈은 없었다. 자이럼의 참마도가 소렌의 정수리로 날아들고 있었다.


“크하하하!”


바람 새는 소리로 자이럼이 미친 듯이 웃었다. 먹을 가치가 있는 검사를 만난 것이 기뻤다. 오랜만에 전력을 발휘할 상대라는 것이 자이럼의 고통마저도 앗아가고 있었다.


“발버둥쳐라!”


참마도가 격중하니 붉게 물든 눈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그러나 이미 소렌은 이미 몸을 굴려 참마도를 피한 뒤였다. 참마도가 신속하게 방향을 바꾸어 소렌에게 쇄도했다. 소렌은 이를 악물고 혼미한 정신 속에서도 몸이 기억하는 대로 검을 휘둘렀다. 참마도를 흘려내고 역공을 취한다. 그러나 이번에는 아예 검이 지나가자마자 상처가 아물어서 아무런 효과도 없었다. 마치 실체를 갖지 않는 상대와 싸우는 것 같았다.


“끅!”


연신 회피만 반복하던 소렌은 결국 무리하게 검을 휘두르다 참마도에 어깨를 얻어맞았다. 어깨가 통째로 내려앉아 물먹은 솜처럼 축 늘어졌다. 절로 비명이 나오려 했지만, 소렌은 찢어져 뭉개질 정도로 아랫입술을 꽉 물어 뜯어가며 고통에서 헤어나오려 애썼다. 정신이 번쩍 들며 참마도의 도신이 보였다. 코앞에 날아든 참마도에 간신히 검을 비집어 넣은 다음 몸을 날렸다. 가까스로 목숨을 잃는 위기가 넘어갔다.


“제법이다. 과연 드래곤 슬레이어의 딸이다.”


“아버지를.... 아는 건가?”


“알다마다. 바로 얼마 전에 봤었지. 크흐흐, 어리석은 놈이었지. 홀로 엠펠로니아에 들어온 인간은 그가 처음이었다.”


승리를 과신하고 있어서일까? 자이럼은 서슴없이 자신이 아는 사실을 늘어놓았다. 오랜만의 승부에 고양된 지금이 아니면 자이럼은 결코 그런 사실을 주절주절 늘어놓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 패배의 단초가 될 그런 사실을.


“어디.....냐?”


“뭐라고?”


소렌은 알 수 없는 활력이 솟아나는 것을 느꼈다. 평범한 검사라면 평생에 한두 번 넘을까 말까 하는 한계의 벽을 손쉽게 넘은 것이다. 스톰브링거가 모조리 분해되고 다시 조립되며 소렌의 의식을 찢어발겼다.

그러나 단 하나 결코 쓰러지지 않는 기둥이 소렌을 지탱하고 있었다. 고결한 자존심과 숱한 노력. 그리고 헤아릴 수 없는 무재(武才)가 이루어 낸 무언가였다.


“아버지를 어디서 보았나 물었다!”


소렌의 의식 한가운데 서 있는 기둥이 점점 형태를 갖추어간다. 뭉툭하고 희미한 기둥이 쉴새없이 폭풍에 얻어맞으며 단련된다. 그것은 대장장이의 망치질처럼 기둥을 두드려, 기둥은 점차 한 자루 검으로 변해갔다. 아니, 아직은 검이라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였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소렌은 그 검을 자이럼에게 겨누었다.


“무슨...”


자신 못지 않게 마나를 폭사하는 소렌. 그녀 앞에서 자이럼은 그만 주춤하며 참마도의 기세를 늦추었다. 그 순간 소렌의 검이 일직선으로 파고들었다. 소렌이 거칠게 소리를 지르며 오크의 심장을 향해 검을 밀어넣었다.


“우오오!!”


그것은 검기였다. 극도로 단련된 심신과 미약한 마나가 감응하며 만들어낸 기적이었다.

검기라는 지고한 경지에 이르며 소렌은 수많은 상념에 휩싸였다. 앞으로 어떻게 강해지고 어떤 검사지 될 것인지. 아버지에 대한 걱정. 그리고 도군이라는 소년을 향한 간절한 소망. 그런 상념을 뒤로하고 소렌의 올곧은 검이 한순간에 오크의 심장을 관통했다.


“크아악!”


자이럼이 비명을 지르며 참마도를 휘둘러 가슴에 박힌 검을 분질렀다. 그와 함께 소렌이 가까스로 이끌어 낸 검기가 촛불이 꺼지듯 훅 사라졌다. 소렌도 그와 함께 그만 앞으로 고꾸라졌다. 그러나 그 위로 참마도가 날아드는 일은 없었다.


“안 돼! 이건 말도 안 돼!”


심장에 새겨진 마나 드레인이 부러졌다. 소드마스터가 아니면 절대 부술 수 없으리라 여겼거늘 눈앞에 서 있는 작은 소녀가 그 일을 해낸 것이다.


“죽인다.”


황제가 하사한 것을 잃었다는 상실감. 그리고 소렌 폰테일에게서 느낀 위협. 자이럼은 그제야 자신의 본능이 옳았음을 확신했다. 지체할 때가 아니다. 목숨을 걸고 이 소녀를 죽여야 했다. 그리고 자이럼의 거체가 움직였다. 피가 분수처럼 치솟는 와중에도 자이럼은 황제를 향한 충심과 기사의 자부심만으로 육중한 참마도에 기세를 더했다.


“죽어라!”


참마도가 날아든다. 절체절명의 순간, 소렌 역시 정신을 차리고 가까스로 몸을 굴린다. 부서진 어깨가 땅에 닿으니 다시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이 느껴져 소렌은 좀처럼 일어나지 못하고 땅에 널브러져 있었다. 그러나 비명을 지르지는 않았다. 비명 따위에 힘을 낭비하는 대신, 몸에 익은 대로 힘을 모았다. 그리고 일어섰다. 덜덜 떨리는 한쪽 팔로 세 자루의 검을 눈앞의 허공에 날렸다. 그리고 소렌의 두 다리가 움직였다.



촤악!


소렌의 검이 한차례 오크의 거체를 베어냈다. 오크의 상처는 재생되지 않는다. 그러나 자이럼도, 소렌도 멈추지 않는다. 이윽고 두 존재는 서로 일격을 주고받았다. 소렌의 두 번째 검이 참마도를 쳐냈다. 연이어 소렌이 띄워 둔 세 번째 검이 자이럼의 몸을 다시 베어낸다.

자이럼이 처절한 비명을 내지른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휘청이는 자이럼을 노려보며 소렌은 거칠게 몸을 회전해 이미 놓아버렸던 첫 번째 검을 쥐었다. 그리고 몸을 회전한 기세를 담아 그것을 자이럼의 미간에 꽂아넣었다.


“크억!”


어느 순간 자이럼의 비명이 뚝 멎었다. 그 역시 한계를 초월하고 싸우고 있었기 때문에 더 이상 짜낼 기력이 없어서이다. 그러나 자이럼은 결국 한계를 넘어서지는 못했다. 그것은 그가 약했기 때문은 결코 아니었다. 단지 소렌 폰테일이 그보다 더 검을 사랑하고 검을 한번 더 휘둘러왔으며 그 재능이 하늘에 닿아 있었기 때문이다.


“끄으.....”


자이럼이 쓰러졌다. 거대한 참마도가 둔탁한 소리를 내며 피로 진창이 된 설원 위에 쓰러진다. 프로스트 그리즐리들이 동요해서 사방을 향해 고함을 내지른다. 그러나 어찌할 바를 모른 채 두리번거릴 뿐이었다.


“지금입니다!”


시의적절하게 유한겸이 검을 뽑았다. 그와 함께 사상초유의 혈투에 정신을 놓고 있던 병사들이며 장교들이 일제히 함성을 내지르며 선혈이 낭자한 전장에 뛰어들었다. 그렇게 밸리언 요새의 운명을 결정짓는 싸움이 시작되었다.




감상이나 비평은 언제나 환영합니다.


작가의말

도군이 생고생을 할 때 소렌도 그만큼 고생을 했다는 걸 나타내기 위해 최대한 처절한 싸움을 나타내려 애썼습니다. 잘 나왔는지 모르겠네요. 한참 나중에 읽어보면 알겠지요.

같은 고생이라도 도군과 차이가 있다면, 소렌은 담 넘듯이 훌렁 한계를 넘고 혼자 다 해결했다는 점이지요. 의도하기는 했지만 통념상의 주인공은 이쪽같습니다. 처음부터 소렌을 주인공으로 쓴 게 더 재미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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