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파이어무림에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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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수
작품등록일 :
2012.11.19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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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10 0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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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4.19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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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파이어 무림에 가다 - 제4장 (2)

DUMMY


스으윽-

어두운 밀실.

등불에 의지한 빛 아래 조막만 한 접힌 종이가 펼쳐졌다.



의뢰.

야현 스물여섯, 현재 난주 주월루에 기거.

필사(必死) 후 시신 인도 요망.

의뢰비, 금 오백 냥. 선착수금 일백 냥.



화르륵.

값싼 누런 종이는 등불에 타 사라졌다.

“오랜 만이군. 철각방에서의 의뢰가…….”

살수는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


이튿날.

사람 귀를 자극하는 모깃소리가 야현의 눈앞에서 앵앵거리고 있었다.

야현이 엄지손가락을 눈앞으로 내밀자 모기가 내려앉았다. 모기는 야현의 피를 빨 법도 하건대 조용히 앉아 있었다. 흔히 보이는 모기였지만 일반적인 모기와 다른 점이 있었다.

바로 모기의 눈.

모기의 눈동자는 야현의 붉은 동공처럼 붉었다.

“실례하겠습니다요, 손님.”

삶에 찌들고 주눅이 든 목소리가 들린 후 방문이 조심스럽게 열렸다.

드르르륵.

방문이 열리며 은은한 햇살이 들어왔다.

야현 앞에서 장난치듯 날아다니던 모기가 햇살을 피해 야현의 소매로 숨어 들어갔다.

허드렛일을 하는 추레한 장년의 하인이 조심스럽게 방 안으로 들어왔다.

“청소를 해도 되겠습니까요?”

하인은 구부정한 허리로 굽실거렸다.

“그러세요.”

하인은 행여나 야현의 심기를 거스를까 눈치를 보며 방 청소를 시작했다.

‘…….’

그를 바라보던 야현의 붉은 동공이 반짝였다.

세파에 찌든 고단한 주름과 행동은 영락없는 하인의 모습이었다. 다른 이들은 몰라도 야현은 하인에게서 피 냄새를 맡았다.

지워지지 않을 천형처럼 벤 은은한 피 냄새를. 그리고 내면에 담긴 어둠의 속성까지.

야현은 장년 하인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붉은 동공이 더욱 붉어졌다.

‘호오-’

야현의 눈동자에 감탄이 담겼다.

세파에 찌든 장년의 얼굴 뒤로 청년으로 보이는 앳된 얼굴이 보인 것이다. 생생하게 표정이 만들어지는, 얇은 가죽으로 만든 면구가 감탄이 나올 정도로 너무 정교했던 것이다.

‘흠…….’

살수를 바라보던 야현은 순간 변덕이 생겼다.

야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양반다리를 한 채 하인의 모습을 한 살수를 빤히 쳐다보았다.

‘제법 쓸 만할 거 같은데…….’

열심히 청소하던 살수는 순간 멈칫거리며 주눅이 든 표정으로 야현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소, 소인이 무슨 시, 실수라도…….”

눈도 잘 마주치지 못한 것이 모르고 봤으면 깜빡 속아 넘어갈 정도였다.

‘더욱 마음에 들어’

“아닙니다. 제가 불편할 듯하니 자리를 피해 드리지요.”

야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살수를 지나쳐 방을 나갔다.

살수를 지나칠 때였다.

팔락!

야현의 소매가 팔락이며 품으로 숨었던 모기가 하인의 모습을 한 살수의 목으로 날아가 조용히 앉았다. 사람의 피를 빨아야 정상이건만 붉은 눈의 모기는 날갯소리라도 낼까 봐 조심하는 듯 조용히 앉아 있었다.

방문을 나간 야현은 사 층으로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곳에 홍암과 월영이 서 있었다.

월영은 야현을 향해 미약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야현은 그 의미를 알기에 조용히 미소를 지어 화답했다.


***


사흘이라는 날이 무정히 흐르고…….

해가 지고 홍루 거리에 사람들이 들어찰 시각.

야현은 가벼운 옷차림으로 주월루를 나섰다. 서서히 술기운이 오르고 있는 홍루 거리를 바라보는 야현의 시각에 다른 시야가 겹쳐졌다.

그 시야에서는 홍루 거리를 걷고 있는 자신의 등이 보이고 있었다. 또 다른 시야가 움직이며 한 초로의 노인의 얼굴로 변장한 살수의 얼굴을 비췄다.

‘이번에는 노인인가?’

홍루 거리를 벗어날 때쯤 되자 또 다른 시야가 급격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야현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눈을 감아 또 다른 시야에 집중했다. 흔들리는 시야에서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좁은 골목길과 얕은 담벼락.

야현은 눈을 뜨고 왼쪽을 쳐다보았다.

살수는 저 건물 뒤쪽을 달려나가는 중이었다.

며칠 동안 지켜본바, 살수가 더욱 마음에 들었다.

신중하면서도, 느닷없는 변수에도 과감히 살행을 펼치려는 결단력도 좋다. 데리고 다니면 제법 쓸만할 듯싶다.

‘일단 장단을 맞춰줘야겠지?’

왜냐하면 살수를 만나기 전에 마무리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이었다.

바로 철각방.

‘애써 기다려준 보람이 있으려나?’

야현은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멈췄던 걸음을 다시 걷기 시작했다. 홍루를 빠져나온 야현은 인적이 드문 길목으로 들어섰다.

“꺼억! 취한다!”

어두운 길 맞은편에서 한 중년인이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우웨에엑!”

담벼락을 짚고 토하는 중년인을 보는 야현의 눈동자에는 흥미로운 감정이 떠올랐다. 그 짧은 시간에 얼굴과 골격을 바꾼 살수의 모습 때문이었다.

‘마법일 리는 없고, 그렇다고 아티팩트는 더더욱 아니고……. 무공도 꽤나 신비한 구석이 많군.’

주월루에서 본 하인의 모습이야 한동안 그 모습이었으니 그렇다 치더라도 노인에서 장년인으로 빠르게, 그것도 완벽하리만큼 변한 얼굴과 행동은 가히 감탄을 터트리고도 남을 정도였다.

하지만 감탄은 감탄이고…….

야현은 눈동자는 다시 차갑게 가라앉았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중년인과 야현이 서로 엇갈릴 때였다.

푹!

자그만 단도가 야현의 옆구리를 파고들었다.

“……!”

살수는 충격에 휘청이는 야현의 심장에 단도를 다시 빠르게 찔러 넣었다. 야현의 몸은 살수가 있는 앞으로 서서히 허물어졌다.

“어허, 이 사람. 여기서 이렇게 뻗으면 어쩌나?”

중년의 모습을 한 살수는 주위를 빠르게 살피며 야현의 몸을 부축했다. 살수는 주위를 살피면서도 빠르게 야현의 목과 코에 손을 가져가 맥과 호흡을 살폈다.

파박!

맥과 호흡을 통해 죽음을 확인한 살수는 야현의 몸을 등에 걸쳐 메고 외곽으로 몸을 날렸다.


***


꺄아악-

을씨년스러운 빈민촌에서도 더욱 후미진 곳에 있는 공동묘지 터에 까마귀의 울음소리가 음산함을 더했다.

착!

공동묘지 터로 들어선 살수는 어깨에 메고 있던 야현을 바닥에 눕혔다.

“후우-”

살수는 다시 한 번 야현의 맥과 호흡을 확인한 후에야 깊은숨을 내쉬었다.

“처리하기는 했는데…… 젠장!”

살수는 무언가 생각이 난 듯 애꿎은 봉분을 발로 걷어찼다.

“죽이면 죽이는 거지 왜 시체를 가져다 달라고 지랄이야?”

살수는 앳된 목소리로 투덜대면서도 봉분 사이에서 제법 값이 나가는 향나무로 짠 관 하나를 꺼내 야현을 입관한 후 관 뚜껑을 닫았다.

관 안에 누운 야현은 인상을 슬쩍 찌푸렸다.

다른 뱀파이어들은 종족으로 다시 태어날 때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 관 안에서 눈을 뜬다.

하지만 야현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본능적으로 관 안에서 편안함을 느끼지 못했고, 영감쟁이라 불리는 스승, 교하 진인의 전승에 따라 인간으로의 삶을 유지하려는 강한 마음 때문에 오히려 거부감이 더욱 큰 탓이었다.

잠시 후 관이 덜거덕거리기 시작했다.

살수의 몸에 숨은 또 하나의 시야로 확인한 결과 야현이 담긴 관은 우마차에 실려 어디론가 이동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짧은 사이 살수는 다시 노인의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덜거덕거리는 소리와 노인의 흥얼거림은 자연스러웠다.

그렇게 한 식경쯤 지나 거대한 장원 앞에 도착했다. 장원 대문 처마 아래에 철각방이라 적힌 현판이 걸려 있었다.

‘이거 참, 불편해.’

중원으로 넘어와 불편함이 있다면 한자였다.

‘시간이 나는 대로 글자를 익혀야겠어.’

그나마 철각방이라는 현판을 읽을 수 있는 것도 흑왕문이라 부른 흑견패 두목 갈곽표의 피에 담긴 단편적인 지식 때문이었다.

‘드디어 왔군.’

철각방 정문을 넘는 순간 야현의 눈동자에서는 시퍼런 살기가 감돌았다.


“형님, 물건이 도착했습니다.”

장맹기의 말에 육염명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추는?”

“거동이 불편하지만 참관시켜야지요.”

장맹기의 싸늘한 목소리에 육염명은 미소를 머금으며 집무실을 나갔다.

“누가 왔더냐?”

“어떤 촌부가 가지고 왔습니다. 혹여나 몰라 넉넉히 품삯을 챙겨 주며 입단속을 시켜 놓았습니다.

“잘했다.”

육염명은 장맹기의 어깨를 두들기며 직계와 장맹기만이 이용하는 폐쇄된 후원으로 향했다. 후원에는 륜의(輪倚, 휠체어)를 탄 육자추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아버…… 큭!”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육자추는 가슴의 상처가 주는 고통에 다시 주저앉아 격한 숨을 몰아쉬었다. 창백한 얼굴에 식은땀을 흘리는 육자추를 보는 육염명의 얼굴에는 안타까움이 비쳤다.

“괜찮다, 앉아 있거라.”

“그래도 사내의 기상이 있구나.”

장맹기는 부르기도 전에 거동도 힘든 몸을 이끌고 가장 먼저 후원으로 나온 육자추를 칭찬했다.

“사내라면 응당 이 정도 기개는 있어야지.”

육염명은 안타까움과 함께 대견한 눈으로 육자추를 보다 이내 시퍼런 살기를 담아 관을 내려다보았다.

“소제가 열겠습니다.”

장맨기가 나섰지만 육염명이 이내 팔을 뻗어 저지했다.

“아니다, 내가 하마.”

그 말에 장맹기는 뒤로 물러났고, 육염명이 관 앞으로 다가가 섰다.

콰드득!

잠시 말없이 관을 내려다보던 육염명은 관 뚜껑 일부를 부서트리며 움켜잡아 관에서 뜯어냈다. 그 안에는 심장 부근에 단도가 꽂혀 있는 야현이 누워 있었다.

“이놈이렷다?”

말을 만약 입에 넣을 수 있다면 잘근잘근 씹혀 다져졌을 법한 목소리였다.

“맞습니다, 형님.”

장맹기가 부셔진 관으로 다가와 야현의 얼굴을 살폈다. 그러고는 이내 맥과 호흡을 살펴 죽었음을 확인했다.

“칼을 가져오너라.”

육염명이 손을 내밀자 장염기가 한 자루 시퍼런 도를 뽑아 넘겼다.

“네 손으로 해야겠지만 오늘은 아비가 해 주마. 이놈을 찢어발겨 개 먹이로 던져 줄 터이니 가슴에 박힌 울분을 털어 버리거라. 알겠느냐?”

“예, 아버지.”

육염명의 말에 육자추는 살기가 번들거리는 눈으로 야현을 노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육염명은 잔혹한 얼굴로 야현을 내려다보며 칼을 높이 들어 올렸다. 그러고는 야현의 목을 향해 칼을 내려치려는 순간이었다.

번쩍!

야현의 눈이 부릅떠졌다.

“헙!”

육염명은 죽은 야현이 눈을 부릅뜨자 헛바람과 함께 몸이 잠시 굳어졌다.

“죽지 않았구나, 크흐흐흐!”

그렇지만 육염명은 이내 잔혹성이 담긴 기쁜 얼굴을 드러내며 야현의 목이 아닌 다리를 향해 칼을 내리쳤다.

캉!

야현은 마치 빙판 위를 미끄러지듯 위로 미끄러져 올라갔고, 그로 인해 육염명의 칼은 바닥을 내려 찍혔다.

야현은 셋과 조금 떨어진 곳에서 마치 무중력 상태처럼, 혹은 오뚝이처럼 자리에서 일어났다.

히죽.

그들을 향해 몸을 돌리며 지은 미소.

창백한 얼굴에 도드라지는 붉은 입술, 그 입술 사이로 드러난 새하얀 송곳니.

“아름다운 밤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야현은 양팔을 벌리며 잔잔한 목소리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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