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파이어 무림에 가다 - 제6장 (2)
해가 지고 주월루에 주객이 하나둘씩 자리를 채워나갈 때쯤 월영이 야현을 찾아왔다.
“현재 전진교 본단의 위치는 알려진 바가 없어요. 멸문되었는지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으며 원 말기에서 명 초를 거치며 전진교 내 무맥은 단절되었으리라 판단됩니다. 하북성에서 수년에 한 번씩 전진교 도인들의 행적이 보였지만 십수 년 전부터 행적을 드러내지 않고 있습니다. 멸문되지 않았다면 전진교 본단은 하북성 어딘가에 존재할 것으로 추정됩니다.”
월영은 전진교에 대한 정보를 알려 주었다.
“흠…….”
야현은 팔짱을 끼며 신음과 함께 눈을 반개했다.
‘술 한잔이 길어지겠군.’
전진교를 찾는 일도 그렇고, 수하로 거둔 독고결의 일도 있다.
피식 웃음이 만들어졌다.
좀 늦어지면 어떤가?
어차피 억겁의 시간을 살아가는 자신이거늘.
야현은 월영을 쳐다보았다.
‘어쩐다.’
미세하지만 월영의 눈빛과 행동에서 분명 뭔가 감추고 있다는 느낌이 와 닿았다.
“제 얼굴에 뭐라도 묻었나요?”
“아닙니다. 고맙습니다.”
야현은 담담한 미소를 보였다.
일단 독고결의 문제부터 풀기로 했다. 전진교야 일단 찾아보고 안 되면 그때 하오문을 뒤집어서라도 확실한 정보를 받으면 된다.
“그리고…….”
할 말이 더 있는 듯 월영은 말을 이어나갔다.
“서방의 장검을 사겠다는 인물이 나타났어요.”
“전적으로 맡긴다고 본인이 말하지 않았던가요?”
“구매자가 판매 당사자를 보고 싶어 합니다.”
“이유는?”
“물건에 담긴 사연을 직접 듣고 싶어 합니다. 더불어 서방 세계의 소식도…….”
월영을 바라보는 야현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굳이 본인에게 그 말을 건네는 것을 보면……, 거부할 수 없는 인물이겠군요.”
월영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가요? 본인을 보고자 하는 인물이.”
“당금 명 황제의 셋째 왕자이자 친왕(親王)이신 윤왕 전하이십니다.”
“친왕이라……, 재밌군.”
야현의 하얀 이가 드러났다.
“언제 가면 되겠습니까?”
“시간에 구애받지 말고 오라 했습니다.”
야현은 고개를 돌려 두꺼운 천으로 가려진 창문을 쳐다보았다.
화락―, 덜컹!
두꺼운 천이 젖혀지며 창문이 활짝 열렸다.
창문 너머로 낮게 뜬 달이 눈에 들어왔다.
반짝이는 별들이 가려지지 않은 구름 한 점 없는 밤하늘.
“오라면 가야지.”
야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윤왕 전하께서 어떤 인물인지 듣지도 않고 가실 생각인가요?”
“어차피 본인은 내키는 대로 사는 사람입니다. 수틀리면 안 팔면 되는 것이고.”
“그래도 조심하세요. 윤왕 전하는 그저 힘없이 떠돌아다니는 친왕이 아닙니다.”
“직접 보면 알겠지요.”
“휴우―.”
야현의 거침없는 성정이야 진작 파악하고 있던 월영이었지만 설마 친왕을 만나는 일에도 이리 움직일지 몰랐다. 더불어 말린다고 들을 위인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기에 그저 한숨을 내쉴 뿐이었다.
“총관을 시켜 길을 안내하겠습니다.”
“그럼 본인이야 좋지요.”
총관 홍암이 안내한 곳은 성도 난주 중앙에 자리한 중앙 관청, 도포안삼사였다.
도포안삼사를 지키는 수문 병사들의 수는 곱절 이상이었고, 경비 또한 여느 때보다 삼엄했다.
척!
천호장으로 보이는 장수가 칼을 들어 정문으로 다가오는 홍암과 야현을 막아섰다.
“누구냐?”
“전하께서 찾으신 분이옵니다.”
장수가 야현을 한 차례 훑어본 후 고개를 끄덕였다.
“따라오시오.”
미리 기별을 받았는지 장수는 야현을 관청 별관으로 안내했다.
장수를 따라가는 야현의 눈동자는 반짝였다.
삼엄한 경비를 펼치고 있는 군졸들과 장수들이 내뿜은 거친 기세 때문이 아니었다. 그 기세 속에 숨을 죽이고 있는 옅은 살기 때문이었다.
‘들은 대로 그저 힘없는 친왕은 아닌 모양이군.’
어지간한 이라면 날카롭고 거친 기세에 저도 모르게 어깨가 움츠릴 정도이건만 야현은 여유로운 표정으로 장수의 뒤를 따랐다.
별관에 들어서자 소박한 정원에 있는 자그만 연못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 옆으로 연못을 내려다볼 수 있는 높이로 지어진 정자가 보였고, 그곳에 이십 대 후반으로 보이는 평복 차림의 사내와 관복을 입은 오륙십 대 정도 된 듯한 세 명의 장년인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야현이라는 자를 데리고 왔습니다.”
장수가 정자 앞으로 다가가 군례를 취하며 보고했다.
야현은 정자 위 상석에 자리한 사내를 올려다보았다. 서글서글한 눈매에 한없이 유(柔)한 인상이었다. 하지만 부드러운 눈빛을 띤 눈동자 안에 번뜩이는 기광을 야현은 보았다.
야현이 윤왕을 직시하며 살필 때, 윤왕 역시 야현의 눈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동류(同類).’
야현의 입가에 미소가 슬쩍 지어졌다.
“무례하다.”
걸걸한 호통이 터져 나왔다.
“됐습니다, 도지휘사.”
윤왕은 감숙성 군대를 총괄하는 도지휘사를 말리면서도 여전히 야현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있었다.
“그대가 야현이라는 자인가?”
부드러운 질의에.
“윤왕 전하이십니까?”
담담한 반문.
“허어! 저, 저런…… 무례한 자가…….”
“정녕 목이 달아나야 정신을 차릴 놈이로구나!”
함께 자리하고 있던 감숙성 행정 통치자 포정사와 형옥을 총괄하는 사법 기관의 장(長)인 안찰사마저 노기를 터트렸다.
“하하하하하!”
그들의 노기와 다르게 윤왕은 대소를 터트렸다.
“그대는 재미난 이로구나.”
“저, 전하.”
“……전하!”
“윤왕 전하!”
세 명의 관리는 윤왕의 웃음에 당황했다.
“본인은 재미가 없습니다.”
야현의 눈살이 살짝 찌푸려졌다. 자신을 억압해 들어오는 짙은 살기 때문이었다.
“정녕 말로는 안 될 놈이로구나! 저놈의 무릎을 꿇려라!”
도지휘사의 노성 가득한 명에 별관으로 안내했던 장수가 단칼을 빼 야현의 목을 겨눴다.
“꿇어라.”
나직한 엄포.
야현은 목에 칼이 들어왔음에도 표정 변화 없이 윤왕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 시선에 윤왕은 이 상황을 어떻게 풀 것이냐 묻는 듯 빙그레 미소를 지어 보였다.
피식!
야현의 실소.
후욱― 쾅!
그 미소가 채 피기도 전에 야현의 신형이 사라졌다.
이어 잔상을 파악할 새도 없이 묵직한 소리와 함께 장수의 몸이 바닥으로 내려꽂혔다.
“컥!”
그리고 터져 나온 장수의 거친 신음.
야현은 언제 움직였냐는 듯 어느새 제자리로 돌아와 장수의 가슴을 발로 밟고 서 있었다.
스으으으으―
한순간 지독한 살기가 정자 주위를 가득 채웠다.
“푸하하하하하하!”
그런 살기와 어울리지 않는 윤왕의 대소.
“그만.”
이어진 윤왕의 짧은 명에 살기는 사라졌다.
“정무에 피곤할 터이니 이만들 가보세요. 그리고 올라오세요.”
윤왕은 함께 술잔을 기울이던 세 관리에게 축객령을 내리며 야현을 정자 위로 불러들였다. 그런데 야현을 향한 윤왕의 말투가 달라졌다. 하대에서 반공대로 바뀐 것이다.
“……전하.”
“과인은 괜찮으니 그만들 가보세요.”
세 관리는 윤왕의 거듭된 축객령에 마지못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정자 위로 올라오는 야현에게 노골적인 시선으로 경고를 주며 자리를 떴다.
그 시선에 야현은 피식 웃음을 삼키며 윤왕 맞은편에 앉았다.
야현은 탁자 위에 깔린 호화로운 음식과 술잔을 훑어본 후 고개를 돌려 정자 아래 시립하고 있는 시녀를 손짓으로 불렀다.
시녀는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며 윤왕의 눈치를 살폈다. 윤왕이 고개를 끄덕여 허락하자 야현 옆으로 다가섰다.
“이 잔들은 치우고 잔 하나를 새로 내와 주세요.”
윤왕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야현이 하는 행동을 지켜보았다.
세 관리가 사용했던 잔과 저들이 모두 치워지고 새 잔 하나와 저가 야현 앞에 놓였다.
쪼르르
야현은 잔에 술을 따라 한 잔 마셨다.
빙그레 지어지는 흡족한 미소.
“입에 맞으신가?”
“좋은 술은 사람의 기분을 좋게 만들기도 하죠. 안 그렇습니까?”
야현은 술잔을 내렸다.
“그야 그렇지요. 그나저나 그대는 참으로 과인의 호기심을 불러오는구려.”
쪼르르.
대답 대신 야현은 잔에 술을 채운 후 윤왕을 쳐다보았다.
“전하도 본인의 호기심을 자극합니다.”
“그렇소?”
윤왕은 과장되게 눈을 뜨며 반문했다.
야현은 술잔을 기울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래, 과인의 어떤 점이 그대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이오?”
“부드러운 미소, 친절함, 풍류를 즐기는 한량과도 같은 유유자적…….”
야현의 말에 윤왕은 재미있다는 듯 미소가 진해져 갔다.
“그러나…….”
야현은 그런 윤왕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입꼬리를 살짝 말아 올리며 목소리를 낮췄다.
“태양처럼 이글거리는 야망을 담은 눈동자. 셋째 왕자의 야망이라……, 후후.”
윤왕의 미소가 사라졌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고, 그 누구도 자신의 야망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야현을 바라보는 윤왕의 눈이 매서워졌다.
“하하하하!”
그러나 언제 그랬냐는 듯 윤왕은 웃음을 터트렸다.
“그대는 목숨이 두 개라도 되는 모양이지?”
웃으면서 묻는 목소리에는 은은한 살기가 담겨 있었다.
“이 땅에서 내 목숨을 가져갈 이가 몇이나 될까 본인도 궁금해지는군요.”
“그대는 광오하군.”
“그만한 힘이 있으니까.”
“정말 그리 믿는가.”
“시답잖은 이야기를 나눌 생각이라면 본인은 일어나겠습니다.”
윤왕은 그런 야현을 잠시 쳐다보다 홀로 잔을 들었다.
한 잔.
두 잔.
그리고 석 잔.
마지막 잔을 내려놓으며 윤왕이 말했다.
“어떻게 알았나? 누구에게도 내비친 적이 없는 내 야망을…….”
어느새 윤왕의 얼굴은 온화하고 부드럽던 인상은 오간 데 없이 야차처럼 변해 있었다.
- 작가의말
이것으로 반권 연재가 끝났습니다.
다음 편 부터는 북큐브에서 유료 연재로 시작됩니다.
4월 29일, 월요일 현재까지 올라온 내용이 편집되어 북큐브에 무료로 올라가며 화요일 부터 연재가 이어집니다.
연재 주기는 월, 화, 목, 금 일주일에 네 편, 즉 일주일에 2쳅터가 연재됩니다.
우여곡절, 연중과 리메를 통한 연재 속에서도 많은 사랑과 관심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후 북큐브에서 다시 뵙기를 바라며...
항상 독자님들에게 즐거운 글이 되기를 바랍니다.
박정수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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