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의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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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트왈라
작품등록일 :
2008.11.30 21:34
최근연재일 :
2008.11.30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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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1.24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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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번째 이야기 : 컬트 클럽 3

DUMMY

어두운 밤의 샌프란시스코의 외진 골목에… 라고는 했지만 역시 클럽이 들어설 정도로 주위가 북적거리는 거리였다. 단지 주류층 사람들이 아닌 크리피(Creepy)들이 모이는 거리인 것이다. 피셔맨즈 와프의 그 유명한 하드락 까페도 바로 두블럭 건너가면 나오는 곳이다. 물론 그런 관광 명소에서 살짝 어긋난 이런 구석진 곳으로 오게 되면 그 것과 분위기는 비슷하지만 싸구려 티가 살짝 풍기는 지저분한 골목이 나오는 거다.


그 곳에 첫걸음을 들여 놓았을 때 정말 익숙하지 않은 엄청난 광경에 숨이 탁 막혀올 것만 같았다. 데이브가 내 재킷 속에 직접 도청 마이크를 달고 이 거리에 내려놓았을 때 처음 본 사람들은 모히칸 스타일의 빨간 머리의 마약쟁이들이 코와 눈썹에서 메탈을 빛내며 이 거리에 막 발을 들여 놓은 나를 바라보는 미친 시선이었다. 허공을 바라보는 건지 날 바라보는 건지 구분이 되지 않았지만 그의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의 모습이 내가 보는 세상과는 다른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눈이 풀린게 하이(High)한 상태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런 인간들 외에도 초저녁인데도 구석에서 토하고 앉아있는 기타를 등에 맨 폐인도 보였다. 이 공간은 정말이지 참을 수 없을만치 찌질한 포스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들 사이에 있어도 그들이 전혀 날 의식하지 않는다는 것도 우스운 일이었다. 다른 곳 같았으면 나에 대한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을텐데 이곳에서 만큼은 나도 특이한 사람이 아니었다.


일단 그린 경감이 말해둔 클럽을 찾기 위해서 두리번거리자 과연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나처럼 얼굴 허옇게 화장한 사람들이 찾아들어가는 클럽이 눈에 띄었다. 주위처럼 음악이 흘러나오는 클럽도 아니고, 마치 할로윈처럼 시커먼 장식에 박쥐 모양의 애교스러운 간판이 눈에 띄는 클럽이었으나 정작 입구에는 커다란 덩치가 서서 입장인을 가로 막고 있었다.


호기심에 기웃거리던 관광객들은 입구의 덩치의 커다란 손만 보고도 분위기를 알아차리고 멀찌감치 피하곤 했지만 마치 그 것을 당연히 여기는 듯한 어두운 부류들은 덩치의 제지를 전혀 받지 않고 잘도 들어가고 있었다. 내 앞에서 먼저 들어간 두 여자는 마치 마녀와 같은 인상이었다. 검은 입술에 새하얀 피부, 그리고 분홍색 브릿지가 살짝 들어간 검은 머리와 금발 머리에 귀와 입술에 섬뜩할 정도의 피어스를 한 사람들이었고, 딱 보기에도 크리피같아 보였다.


이곳이 클럽 고딕 레이어. 마녀와 악마 그리고 죽음을 주제로 모이는 암울이(Creepy)들의 소굴이다.


내가 맡은 임무는 이 안에 잠입하여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아보는 것이다. 그린 경감의 말에 따르면 우리가 찾는 여자가 처음 발견 된 곳이 이 골목이라고 하였고, 이 골목에서 가장 악명 높은 클럽이 바로 여기 고딕 레이어라는 곳이라는 거였다. 그리고 이 클럽에 대해서는 나도 조사를 해 놓은 게 있었다. 최근 모이는 콜드 케이스들이 대부분 여성들의 실종 사건에 대한 것인데 그 여성 중 대부분이 우울증 및 낮은 자존감을 가지고 있던 수동적인 여성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리고 그 여성들이 실종되기 약 한달 전부터는 나름 새로운 변신을 시도했었고, 그 것이 바로 클럽 고딕 레이어. 즉 위치즘의 길을 걸었다는 것이다.


그린 경감과는 별도로 나 자신이 모은 자료에 의하면 고딕 레이어는 일종의 사교 집단인 듯 보였다. 위카즘을 기본으로 하여 죽음을 탐하며, 무기력하게 살아가고, 독자적인 약초와 약물로 스스로를 파괴하는 한편 나름 현학적인 모임도 가진다고 하였고, 무엇보다도 한달에 한번씩 보름달이 뜨는 날이면 의식을 한다는 소문이 있었다.


즉 위험한 냄새가 물씬 풍기는 곳이었다. 그리고 그 앞에 용기를 내어서 클럽 문으로 다가갔는데 기뻐해야할지 아니면 그 반대로 생각해야할지… 입구의 덩치는 날 전혀 제지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 대신 문을 열어주었다. 결코 눈을 마주치거나 내게 말을 걸지도 않았고, 나 역시 최대한 그들과 같은 사람들로 보이기 위해 고맙다는 인사도 하지 않고 무신경한 척 그 안으로 들어갔다.


간판에 비해서 심각하게 부식된 붉은 페인트가 벗겨져 툭툭 떨어지는 문을 지나 새하얀 연기가 앞을 가리는 입구를 통해 안으로 들어오자 정말 이 세상과는 다른 별천지가 안에 펼쳐져 있었다.


할로윈? 그런 낭만적인 게 아니었다. 정말 사타니즘에 휩싸인 공간같았고, 죽음과 어둠이 짙게 깔린 무저갱처럼도 보였다. 시커먼 실루엣같은 철제 장식과 있는 듯 없는 듯 어두운 조명은 빛이 아닌 그림자를 뿜어 내었고, 간신히 전등갓을 벗어나온 조명은 천장에 반사되어 어렴풋한 빛으로 주위를 구별시켜 주었다. 그나마 의지하고 걸어다닐 수 있는 빛은 각각의 테이블 위에 올려진 검은 색 첨탑과도 같은 이미지의 촛불 덕분이었고, 그 덕분에 내부는 후덥지근 하였다.


아니 후덥지근한게 문제가 아니다. 공기층을 이루듯 안개처럼 퍼져있는 희뿌연 연기가 숨을 막히게 한다. 거의 5 미터 간격으로 벽을 이루는 검은 장식 사이사이로 철제 접시 위에서 피어오르는 아로마 향이 그 정체였고, 가까이에서 맡으면 정신이 멍해질 정도로 강한 향이었다.


정말로 정신이 멍해지려고 그 향을 바로 맡고는 한숨을 쉬며 허공을 응시하는 이모(Emo)들도 보였다.


사교 클럽처럼 시끄럽진 않지만 생각보다 많은 폐인 녀석들이 이 분위기를 즐기는 듯 보인다. 목소리를 낮게 깔면서 목소리가 들리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독설을 뿜어내는 애도 있고, 머리를 박박 민 피어싱이 무서운 여자애도 있고, 유치한 코스츔의 마치 드라큘라 백작이라도 흉내낸 듯한 사람도 보였다.


이 모습이 바로 고딕 레이어, 위카즘에 미친 놈들이 정기적으로 모여서 집회를 열고 악마와 만나기 위해서 의식을 행한다는 사교의 모습이다. 그리고 정말로 정말로 유감스럽게도 이런 클럽에 평소와 다름 없는 모습을 하고 와도 주위에서 아무런 위화감을 느끼지 못하는 나 자신이 왜인지 싫다. 이래뵈도 나는 가톨릭 신자가 아니던가?


뭐 그런 그렇다고 치고 그래도 일단은 잠입 수사니까 최대한 주위와 녹아들기 위해 노력해봐야겠다. 일단 평범하게 자리에 먼저 앉고, 메뉴를 기다리는 거야.

그렇게 생각하고 비어있는 자리에 먼저 앉으려고 하자 갑자기 어두운 안개 속에서 한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여성이 다가와서는 나를 불렀다.


“거기 아가씨, 앉지 말아주세요. 거기에 앉으면 우리 애가 힘들어 한다오.”


목소리나 몸매, 그리고 얼굴로 봤을 때 대략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성이었다. 그리고 옷차림이나 말투로 봐서는 이 곳과 절대로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냥 평범한 아줌마…. 하지만 나름 여기에 끼어보려고 얼굴에 장난 쳐 놓은 것이 보였다. 이마에 찍힌 낙인 같은 타투(tattoo)와 코 끝에 매달아 놓은 커다란 피어스가 그 여자가 마치 억지로 이 곳에 끌려들어온 노예인 듯 보이게 해주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인상 좋은 아줌마를 넘기기 힘든 모습이었다.


“네?”


무슨 소린가 싶어서 잠시 앉는 것을 그만두고 자리를 살펴보자 세상에나… 유리로 된 칸막이 안에 고요히 잠든 것처럼 누워있는 남자 아이가 보였다. 주위에 꽃으로 장식된 것이 마치…


“댁의 아드님이신가요? 멋진데요. 꼭 장례식장의 시신같아요.”


이런 곳의 사람들에게는 이 게 칭찬이겠거니 하고 자연스럽게 말하려고 노력했는데 그 말에 아줌마는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입은 웃고 있지만 눈도 웃고 있지만 눈썹만큼은 울고 있었다. 세상에나… 그렇다면…


“죽은지 한 반년 됐어요.”


그 소리를 듣는 순간 입속으로는 벌써 ‘끼앗!’하고 놀랐지만 정작 얼굴 밖으로는 ‘아 그래요’라는 무심한 표정을 내보였다.


“그렇군요. 그런데 왜 여기에 놓은 거죠? 안식을 줘야하지 않아요?”

“그래야겠지만 그러지 못하는 게 어미의 마음이라오. 처음보는 얼굴인데, 전 멜린다예요.”

“전… 소피라고 해요.”


가명을 써야하나? 하고 생각했다가 그다지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서 그냥 내 이름을 말하기로 했다. 지금 내 몸에 장착되어 있는 도청장치를 의식하고나니 괜히 상대를 기망했다가는 법원에서 증거물로 쓸 때 불리할 것같은 느낌이 들었던 게 사실이다.


“처음이라서 아직 잘 모르겠지만 여긴 좋은 곳이예요. 희망이 없이 살아도 여기에서는 다 받아들여주지요. 다른 이런 고딕클럽은 기껏해봐야 약에 취해서 시름을 잊게 해주는 아편굴이지만 여긴 특별해요.”

“그런가요?”

“여기엔 정말로 있거든요.”

“네?”

“기적을 일으키는 의식에 참가하는 마녀 말이예요.”

“마녀라고요?”


마녀라는 단어가 날 잠시 불편하게 했지만 여기에서는 절대로 특별할 거 없는 단어였다. 조금만 눈을 돌려도 시커먼 드레스를 입은 얼굴 허연 긴생머리 여자는 얼마든지 보였다. 그리고 그 중에는 진짜 마녀라도 된 듯 마술을 펼쳐 보이는 애들도 있었다. 트릭이 아닌 진짜 마술... 식물의 줄기나 희귀한 동물들의 신체를 이용하여 만든 부적, 물약, 그리고 영혼과의 대화같은 것.


“보는 것처럼 여기 모인 애들은 대부분 철없이 의지할 곳이 없어서 막연한 환상으로 모이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여기에는 진짜 마녀가 있어요. 기적을 일으키고 신을 불러내는 그런 마녀가….”

“…… 그런데 그런 이야기를 왜 제게 하시는 거예요?”


내 잠입이 금새 탄로날 정도로 어색했나? 하긴 전혀 뭔가 꾸미고 그런 걸 하지 않았으니 잔뜩 오버한 이 아이들과 비교하면 자연스러 탄로나게 되겠지.


“당신은 다른 애들과는 틀려보이는 걸. 다른 애들은 과장되게 화장을 했지만 당신은 평상시에도 같은 모습인 것같아요. 화장이 먹은 정도를 보면 알아요. 무엇보다 당신은 초록 머리 마녀와 꼭 닮았어요.”


초록머리 마녀라니… 이 사람… 엄마를 본적이 있는 사람인가?


“초록 머리 마녀라고요?”

“이 도시의 악당을 때려잡는 정의로운 마녀 이야기예요.”


세상에나. 이런 곳에서 엄마 이야기를 듣게 될 줄이야. 그 것에 대해서 조금 더 듣고 싶어지는 마음은 어떻게 누를 수가 없었다.


“저기…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제게 그 이야기를 해주시겠어요?”

“아들의 관 위에 앉지 않아주신다면요.”


그렇게 말하자 의자 대신 놓인 유리관을 다시 들여다 보게 되었다. 어떻게 죽은 자신의 아들을 이렇게 공개된 공간에 떡하니 올려 놓을 수 있을까? 적어도 제정신인 여자로 보이지 않았다.


일단 그녀의 요청대로 그 옆자리에 앉아 있자 곧 이 공간에서 유일하게 새하얀 옷을 입고 있는 꼬마아이가 걸어오더니 메뉴를 우리에게 밀어내었다. 정말로 귀여운 꼬마 아이인데다가 순백의 드레스를 입고 있어서 이 곳과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그 얼굴을 보는 순간 기분이 팍 상해버렸다. 얼굴에 살색 마스크를 씌워놔서 마치 코와 입이 없는 것처럼 보이게 연출을 했기 때문이었다.


“에스프레소하고 그 쪽은 어떻게 하실 거예요?”

“전 팟...”


주문을 하는 거라서 최대한 쿨하게 보이려고 쓰디쓴 에스프레소를 주문해봤는데 순진한 아줌마 같은 눈빛을 한 사람이 느닷없이 팟(대마초)을 달라고 하자 그 꼬맹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돌아갔다. 확실히 이 클럽 경찰이 들이 닥쳤다가는 완전히 줄줄이 사탕처럼 걸려들어갈 게 한 두가지가 아니었다. 일단 소방법부터 걸고 넘어져서 미성년자 고용에 시체 유기에 마약이라니…청소년 유해 구역이 따로없다.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저 티없이 맑아보이는 여자 아이가 고개숙여 인사하고 돌아가는 순간 깨달았다. 이 아이 목에 족쇄가 채어져 있다. 정말로 고문을 당하는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이곳의 분위기는 이런 모양인 듯 보였다. 걸어가는 보폭도 그다지 넓지 않은 것으로 봐서는 발목에도 족쇄가 채어져 있을 가능성이 있어보였다.


일단 자리에 앉아서 서로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상대는 나와 초록머리 마녀를 닮았다고 말했고, 나는 이 클럽에 어울리지 않을 것같은 사람이 어색한 고딕 행세를 하며 버티고 있는 이유가 궁금했다. 서로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은 당연했고, 왜인지 이 공간 안에서 유일하게 친해질 수 있는 친구처럼 느껴진 것도 있었다.


“그럼, 언제부터 여기에 오시게 됐어요?”


물론 가장 궁금한 것은 초록머리 마녀에 대한 것이었다. 세상 사람들이 엄마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지, 그 것이 너무나도 알고 싶었다. 죽어버렸다고 해서 그저 이 세상에 없었던 것이 되어버리는 것은 그녀의 딸인 나로써는 원하지 않는 일이다. 그렇게 엄마를 천년이고 만년이고 영원히 기억해주는 사람이 있기를 바라는 게 나의 속마음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것을 덜컥 들이대지 않는 이유는 내 속마음을 들키지 않으려는 나 혼자만의 자존심이었다. 오히려 수사 과정에 더 가까운, 쉽게 드러내어서는 안되는 질문부터 해서 상대의 의심부터 살법한 질문을 먼저 들이대게 되었다.


“한 반년 됐다오.”

“반년이라… 정말 실례하지만 아드님이 돌아가신 것도…”

“아들의 죽음을 계기로 여기 들어온 거예요.”

“그렇다고해서 장례식도 치러주지 않고 어째서 이런 곳에 아드님을 방치하시는 거죠?”


이 클럽에서 이해할 수 있는 일이 일어날 거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딱 보기에도 피어싱에 실패해서 고름이 차오르는 듯한 눈썹 피어스와 엄청나게 아팠을 법한 한자로 쓰여진 이마 문신이 어색해 보였다. 그녀는 급하게 이 클럽에 들어오려고 평범했던 자신의 모습을 최대한 지워보려 한 것이다.


“저는 마녀를 만난 적이 있어요. 1992년 5 월 식료품점에서 물건을 사고 나오는 데 흑인 청년들 사이에 끼이게 되었죠. 집으로 가는 골목이 원체 으슥한 곳이긴 했지만 평상시에도 아무일 없었기에 평소와 다름없이 지나가기로 했지만 사회는 변했어요. 당시 인종 갈등이 극에 달하던 시기라 길거리에서 흑인들에게 총을 맞지 않으려고 외출도 못하던 시기이긴 했지요. 그래도 그 당시 편의점 종업원인 세레나는 괜찮은 아가씨였다오. 하지만 그런 건 지금에 와서는 중요한 게 아니고, 그 당시 내가 본 게 정말 대단한 거였지.”

“뭘 보셨는데요?”


92년 5 월이라면… LA 흑인 폭동 사태가 일어났던 시기다. 어릴 적이라 기억이 잘 나진 않지만 길거리에서도 흑인들이 총을 쏘고 다녔고, 경찰들과 심각한 대립을 이루었던 완전 난장판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텔레비전에서는 몇 달동안이나 그와 관련된 뉴스를 내보내주었다.


“그 누구도 믿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걸 보고 말았죠. 이제 와서는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을 봤어요. 시커먼 옷을 입고, 마치 다람쥐처럼 날랜 초록색 머리의 여자가 나를 둘러싼 세명의 흑인들의 머리를 밟으며 내려왔어요. 한명은 머리를 밟혀서 쓰러졌고, 또 한명은 커다란 쇳덩이같은 고릴라에게 밟혀서 완전히 박살이 났지요. 너무 끔찍한 장면이라 눈을 가리려 했는데 눈을 가리기도 전에 그 초록머리 여자가 손가락으로 사람을 가리키기만 했는데 갑자기 사람이 쓰러지는 거 있죠. 그 끔찍한 광경을 보지 않기 위해 얼굴을 잠시 가렸다가 다시 주위를 바라보았을 때에는 휙~ 바람이 살짝 불면서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았어요. 목격자도 죽여버린다고 했지만 얼굴을 보지 못했고, 나도 그 여자의 얼굴을 보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두 눈을 꼭 가렸기에 살아남은 거겠죠.”

“으음…”


묘사로 봐서는 엄마가 맞는 것같다. 다람쥐처럼 날랜 몸에 초록 머리, 그리고 은빛의 사나이 게다가 순식간에 나타나서 사람을 죽여버리는 잔인함… 하지만 그런 끔찍한 경험을 말하면서도 뭔가 자랑을 하듯 말하는 그녀의 눈빛은 희망으로 빛나는 듯 싶었다.


“그런 일을 경험하지 않았다면 저도 희망을 버렸겠지요. 하지만 그 경험으로 인해서 저는 완전히 변했답니다. 이 세상에 마녀가 있다는 것을 믿게 되었고, 마법이 있다는 것을 믿게 되었어요. 그리고 그 힘이 필요하게 되었지요.”


그렇게 말하면서 그녀는 살짝 뒤에 있는 아들의 관으로 만들어진 의자를 돌아다보았다.


“뭐예요? 그럼 혹시 마녀가 의식을 한다는 게….”

“죽은 사람을 되살리는 술을 한달에 한번씩 하고 있어요. 보름달이 뜨는 날 밤.”


그리고 그 날은 바로 어제였지. 정신없이 이 가게에서 걸어 나가서 지하철에서 사라져버린 아가씨가 목격되었던 그 밤…


“죽은 사람을 되살리는 게 가능해요?”

“살아있는 사람이 죽는 건 당연한데 죽은 사람이 살아나는 건 절대로 당연하지 않지요? 하지만 보시면 믿을 거예요. 전 보기 전부터 믿었지만 말이죠.”


엄마는 엉뚱한 사람에게 판타지를 심어주셨나보다. 그러니 멀쩡한 아줌마를 시체 유기죄의 정범으로 만들어 버렸지.


“그 게 어떻게 가능한 거죠?”

“어제 의식을 하는 걸 봤어요. 다시 태어나고 싶은 사람을 제단에 올리고, 주문을 외우며 칼로 배를 찌르죠. 그리고 죽은 것을 확인한 후에 신비한 약초로 상처를 치료하면… 쉿… 저기 봐요. 캐럴 양이예요.”

“캐럴?”


멜린다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을 따라 시선을 돌리자 의식하지 않았던 2 층으로 통하는 계단에서 천천히 걸어내려오는 시커멓고 아름다운 드레스의 여성이 보였다. 세상에나… 저렇게 아름다운 여자는 처음이었다. 얼핏보면 여느 고딕 매니아나 다름없어 보일지 모르겠지만 저 여자는 다르다. 우아하게 계단을 내려오는 가느다란 발목이 살짝 비치는 순간부터 저 사람의 노예가 되어야 할 것처럼 느껴진다.


“세상에 저렇게 아름다울 수가….”

“그렇죠? 이 클럽의 보석이랍니다. 앨리스 캐럴 양이죠. 마녀이기도 하고요.”

“마녀?”


그 말이 가슴에 닿는 이유는 아마도 그거겠지. 여기 있는 애들이 모두 마녀처럼 입고 돌아다닌다고 하더라도 진짜 마녀로는 보이지 않는다. 그런 사이에서 마녀로 따로 불렸다는 건 아마도 엄마와 같은 이유겠지. 정말로 마술을 쓸 줄 아는…


그런 건 어찌되었든 간에 저 여자는 정말 특별하다는 느낌이 풍겨져 나왔다. 고딕 성의 공주같은 이미지랄까? 정말로 그 시대를 살고 있고, 그 시대에서 튀어나온 사람같았다. 아니 전혀 그렇지 않은 것같기도 했다. 너무나도 현대적인 모습에 너무나도 고딕한 의상이랄까? 그렇다고 해서 확 튀는 것도 아니었다. 단정하게 빗어 내린 앞머리에 검은 눈동자, 딱히 화장을 해서 마스카라를 더하거나 분칠은 한 건 아니었지만 원체 깨끗한 피부 덕분에 화장을 하지 않아도 아름다웠다. 얇은 입술은 아무런 표정을 짓지 않았으나 앞에서 에스코트하는 남성의 손을 잡는 동안에 잠시 눈을 깜빡이는 것으로 감사를 표하는 정도의 예절은 남아있었다. 그녀의 눈매도 상당히 특이했다. 마치 동양인처럼 작고 길게 찢어진 눈이 아름다웠다. 전체적으로 보자면 검고 단정한 머리카락에 검은 눈을 한 유럽인같은 느낌이었다. 즉 중국인과 영국인의 혼혈같은 느낌이었다.


“지금 무슨 생각하는지 알아요. 정말 아름다운 여자죠?”

“네… 그런데 저렇게 젊은데… 마녀라고요?”


아무리봐도 서른살이 넘을 것같지 않다. 저렇게 젊은 마녀가 죽은 사람을 일으켜 세운다고? 그런 대마법을 사용하려면……

불가능하다. 죽은 사람을 깨우는 건 절대로 불가능하다. 엄마한테 들은적이 있다. 예전에 딱 한번, 죽은 아내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천재성을 쏟아부은 위대한 천재마법사가 있었다고…. 그리고 그는 아내를 되살린 결과 그 아내는 저주받은 괴물이 되어버렸고, 그 마법사는 아내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고 했다. 역사상 죽은 사람이 다시 일어난 것은 예수와 그 마법사의 아내 밖에 없다고도 했다.


즉…여기에서 일어나는 그 죽은 사람을 일으킨다는 소문은 헛소문이거나 트릭일 것이다.


“여기 에스프레소와 오피엄입니다.”


그 타이밍에 아까 그 쪼까난 새하얀 꼬마아이가 와서 커피와 아편을 두고 갔다. 그리고 잠시 시선을 돌린 사이에 멜린다는 일어나서 중앙 홀을 향해 걸어나갔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중앙 홀로 모두 모여들고 있었고 가운데의 제단처럼 불쑥 솟아 오른 단위로 앨리스 양이 올라서서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마치 사교의 교주라도 된 듯, 모두가 그녀를 숭배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세상 모든 것에 관심이 없다고 생각했던 그들도 그녀만큼은 흥미로운 듯 바라보았다. 아니 눈을 빛내며 바라보았다. 동경하는 모습이었다. 넋놓고 바라보는 자들도 있었고, 남자들은 잔뜩 흥분하여 바지 아랫도리가 불쑥튀어 나온 사람들도 보였다.


이 건 뭔가… 이상하다.


“경감님… 데이브… 뭔가 교주 같은 사람이 나타났어요. 어떻게 하죠?”


모두가 중앙홀로 집결되는 사이에 혼자서 자리에 앉아 뭘 해야할지 몰라서 가슴 사이에 꽂아둔 도청 마이크에 대고 말했다. 하지만 그래봐야 답을 들을 순 없었다. 이 도청기는 말그대로 도청기… 수신기가 없고 이어폰도 없기 때문이었다.


“하아. 알았어요. 계속 지켜볼게요.”


어쩔 수 없이 나도 그 사교의 무리들 사이에 끼어들었다. 어쩔 수 없이라고는 말했지만 그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했다. 내가 그들 사이에 끼어들어도 누구도 위화감을 느낄 수 없었다. 나를 포함해서…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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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9

  • 작성자
    Personacon 적안왕
    작성일
    08.11.24 00:41
    No. 1

    흐음... 아내를 살리기 위해 연구하다가 이차저차해 결국 돈이 필요하게되 연금술도 마스터한 그 괴물. 그리고 여하튼 마녀가 못죽이는 생물이된 마법사의 아내. 씁쓸.
    마녀가 사람을 안살리는 이유로 개인적으로 매우 수긍할만한 것을 찾으라면, 귀찮으니까. 누구나 동의할듯한 내용.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트왈라
    작성일
    08.11.24 00:46
    No. 2

    적안왕 님은 내력을 알고 있으니 남들보다 이해가 쉽겠어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가을귓
    작성일
    08.11.24 12:13
    No. 3

    저여자 뭐야 ㄷㄷ. 매력있어 =ㅇ=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1 키리샤
    작성일
    08.11.24 14:34
    No. 4

    감사히 읽고 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마스터jin
    작성일
    08.11.24 15:53
    No. 5

    저 내용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어디서 봤더라...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Number
    작성일
    08.11.24 22:03
    No. 6

    음 신비수사관에서 나왔던 이야기가 또나오네요ㅋㅋ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트왈라
    작성일
    08.11.24 23:45
    No. 7

    그게... 소피 마리아가 이린지스 마리아의 딸네미니까^^;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Personacon 지드
    작성일
    08.11.25 15:09
    No. 8

    헤에 실제로 보고싶어지는 교주님이네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트왈라
    작성일
    08.11.25 15:36
    No. 9

    저 마법사 이야기는 앞으로도 몇번이고 리바이벌 될 것입니다.
    특히나 흡혈귀나 영생이나 언데드같은 이야기가 나오게 될 때마다 언급될 것입니다.
    저도 영웅 캐릭터 하나 만들어야죠.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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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의 딸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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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막간 이야기 : 스토커 下 +4 08.11.30 524 2 107쪽
47 막간 이야기 : 스토커 上 +1 08.11.30 435 2 12쪽
46 에필로그 +2 08.11.30 547 3 13쪽
45 네번째 이야기 : 컬트 클럽 完 +7 08.11.30 450 2 5쪽
44 네번째 이야기 : 컬트 클럽 9 +2 08.11.30 459 3 16쪽
43 네번째 이야기 : 컬트 클럽 8 +7 08.11.28 445 2 17쪽
42 네번째 이야기 : 컬트 클럽 7 +3 08.11.27 420 2 16쪽
41 네번째 이야기 : 컬트클럽 6 +7 08.11.26 421 2 15쪽
40 네번째 이야기 : 컬트클럽 5 +6 08.11.26 408 2 15쪽
39 네번째 이야기 : 컬트클럽 4 +7 08.11.25 538 3 15쪽
» 네번째 이야기 : 컬트 클럽 3 +9 08.11.24 572 2 22쪽
37 네번째 이야기 : 컬트 클럽 2 +7 08.11.23 396 2 15쪽
36 네번째 이야기 : 컬트 클럽 1 +5 08.11.23 441 2 10쪽
35 당신은 날 돌게 만들어 +6 08.11.22 435 2 16쪽
34 세번째 이야기 : 블랙스톰 허쉭스 뉴트론 블레이드 오브 디아볼릭 完 +6 08.11.22 539 2 24쪽
33 세번째 이야기 : 블랙스톰 허쉭스 뉴트론 블레이드 오브 디아볼릭 9 +3 08.11.21 481 2 14쪽
32 세번째 이야기 : 블랙스톰 허쉭스 뉴트론 블레이드 오브 디아볼릭 8 +6 08.11.21 478 2 17쪽
31 세번째 이야기 : 블랙스톰 허쉭스 뉴트론 블레이드 오브 디아볼릭 7 +6 08.11.20 476 2 13쪽
30 세번째 이야기 : 블랙스톰 허쉭스 뉴트론 블레이드 오브 디아볼릭 6 +7 08.11.20 452 2 11쪽
29 세번째 이야기 : 블랙스톰 허쉭스 뉴트론 블레이드 오브 디아볼릭 5 +8 08.11.19 469 2 27쪽
28 세번째 이야기 : 블랙스톰 허쉭스 뉴트론 블레이드 오브 디아볼릭 4 +6 08.11.18 434 2 14쪽
27 세번째 이야기 : 블랙스톰 허쉭스 뉴트론 블레이드 오브 디아볼릭 3 +5 08.11.17 417 2 17쪽
26 세번째 이야기 : 블랙스톰 허쉭스 뉴트론 블레이드 오브 디아볼릭 2 +8 08.11.16 414 2 12쪽
25 세번째 이야기 : 블랙스톰 허쉭스 뉴트론 블레이드 오브 디아볼릭 1 +8 08.11.16 495 2 13쪽
24 마녀의 데이트 +3 08.11.15 365 3 20쪽
23 두번째 이야기 : 문라잇 섀도 完 +4 08.11.15 494 2 21쪽
22 두번째 이야기 : 문라잇 섀도 9 +2 08.11.14 346 2 11쪽
21 두번째 이야기 : 문라잇 섀도 8 +2 08.11.14 505 2 14쪽
20 두번째 이야기 : 문라잇 섀도 7 +4 08.11.13 427 2 16쪽
19 두번째 이야기 : 문라잇 섀도 6 +3 08.11.12 520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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