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의 순정에 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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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결
작품등록일 :
2016.03.31 08:14
최근연재일 :
2016.04.03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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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3.31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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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흩날리는 벚꽃 잎이 떨어지는 어느 멋진 봄날.

DUMMY

저잣거리 한 복 판에 서 있던 경과 앞으로 걸어오고 있던 초희의 두 눈이 마주쳤다. 경은 제 여인을 알아보듯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팔 한 쪽을 흔들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초희는 보고도 못 본 체하며 그대로 반사적으로 옆길로 빠졌다. 경은 놓칠세라 서둘러 초희의 뒤를 쫓아갔다. 경의 쭉쭉 뻗은 긴 다리는 초희를 단번에 앞질렀다. 초희는 경이 자신의 앞을 막아서자 당황한 듯 한 표정을 지었다. 경은 살짝 입꼬리를 한 쪽으로 올리며 초희의 앞에 한 발짝 다가섰다. 두 사람의 몸은 빈틈이 없을 만큼 바짝 붙어 있었다.


빨리 이 시간이 지나가기를... 초희는 속으로 주문을 외우듯 몇 번을 되풀이했다. 그녀가 초조해하며 서 있는 그 사이, 그는 표정을 가다듬으며 섭섭함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물어 왔다.


“어째서 나를 보고 샛길로 빠진 거요?”


초희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는 대충 둘러댔다.


“아, 전... 본 적이......”


그녀의 얼굴엔 우는 것인지 웃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미소가 지어졌다.


“없다? 날 보고 믿으라고 하는 말이오? 내 이 두 눈으로 선비와 마주쳤는데. 어찌 올곧은 선비의 입에서 거짓이 나온단 말인가? 쯧쯧.”


경은 혀끝을 차며 다그치듯 나무랐다. 무슨 사내가 이리도 이치를 따지는지. 초희의 얼굴

에 미소가 싹 가셨다.


“네. 봤습니다. 하나, 저도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니 그만 좀 하십시오. 어쩌다 보니...... 저도 모르게 몸이 그리 반응을 한 것뿐입니다.”


“그 말 진심이오?"


경은 전혀 못 믿겠다는 듯 표정을 지으며 물어 왔다.


“진심을 알고 싶으면 그 사람의 눈을 보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제 말이 거짓인지 진심인지 제 두 눈을 보시면 알지 않습니까? 보십시오. 제가 거짓을 말하는지 진실을 말하는지.”


경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초희의 큰 눈을 바라보았다. 그는 초희의 모습이 사랑스럽고 귀엽다는 듯 피하지 않고 눈빛을 보냈다.


두 사람 사이에 미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때, 그들의 곁을 보부상들이 줄지어 지나갔다. 두 사람은 자동적으로 한 발 뒤로 빼며 서로 등지며 서있었다. 혹여, 사람들에게 오해를 사지 않을까 염려하며 경은 경대로 헛기침을 했고, 초희는 초희대로 허공을 응시했다. 그러나 그들의 바람과는 달리 사람들의 눈초리가 심상치가 않았다. 보부상들은 힐끔거리며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며 지나갔다. 그렇게 얼마나 지나지 않아 보부상들의 모습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두 사람은 다시 등을 돌리며 동시에 같은 말을 내뱉었다.


“이게 다. 선비......”


“먼저 말씀하시오.”


“선비님 잘 못입니다.”


초희의 입에서 자신을 탓하는 말이 나오자 경은 어이없어하며 되물었다.


“입을 삐뚤어져도 말은 바로 해야 옳지 않소? 애초에 선비가 내 눈을 피하지 않고 서 있었다면 이런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겠지.”


그에 질세라 초희 역시 따지듯 되물었다.


“하나, 제가 오라고 강요하지는 않았습니다. 제게 오신 건 선비님이십니다. 그냥 가게 놔두지 뭣 하러 예까지 오셔서 이런 불상사를 만드시는 겁니까?"


경은 당돌하게 말하는 초희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하, 나는 말이오. 우리가 안면이 있는 사이라서 온 것 일뿐. 다른 뜻이 있어서 온 게 아니니. 괜한 오해 하지시오.”


“그럼, 이젠 웬만큼 안면도 트였으니 저 먼저 가 보겠습니다."


곧바로 초희가 뒤를 돌며 걸음을 내딛자 경은 자신도 모르게 그녀의 소맷자락을 붙잡았다. 또다시 자신의 길을 막는 경의 행동에 초희의 얼굴이 살짝 구겨졌다.


“일전에 약 주는 못 하니 차라도 마시자고 하지 않았소? 그 약조 오늘 하는 것이 어떻소?

이렇게 생각지도 못 하게 다시 만났으니 같이 갔으면 싶은데.”


“지금 서사로 가야 합니다. 그러니 다음으로 미뤘으면 합니다.”


“벌써, 다 읽은 거요?”


경의 눈이 크게 떠졌다. 사내들도 몇 날 며칠을 걸리는 양을 여인이 벌써 다 읽었다니... 참으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알면 알수록 양파 같은 매력을 품는 여인이었다. 까면 깔수록 드러나는 매력은 그의 궁금증을 유발했다.


“그것이 아니라. 얘기하면 깁니다. 그러니 이제 제 손목 좀 그만 놓아 주십시오.”


“좋소. 내까지 것 양보하리다. 하나, 같이 서사로 갑시다.”

초희의 당부에도 경은 오히려 더 꽉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경의 행동에 초희는 곁눈질을 하며 힐끔 째려보았다.


“왜 손은 놓지 않고 가십니까? 빨리 이 손 놓으십시오. 이 좁은 고을 안에 이상한 소문 돌까 무섭습니다. 혹, 사내들끼리...... 으윽.”


초희는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걱정 마시오. 내 선비 하나쯤 건사할 수 있소."


경의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에 초희는 어안이 벙벙했다. 동시에 또다시 힐끔거리며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나 점점 밝은 빛이 앞으로 드리워지자 심장이 벌렁거리며 떨려왔다.

이 사내가 대체 무슨 꿍꿍이 길래 이리 애간장을 태우게 하는지...... 불완전한 마음에 다리는 천길만길 낭떠러지에 서 있는 것 같아 위태위태했다.


어두운 골목을 벗어나자 족 쇠처럼 잡혀있던 큼지막한 손이 풀어졌다. 초희는 자유의 몸이 된 것 마냥 조용히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경의 얼굴엔 부드러운 미소가 드리워졌다.


경은 한동안 왼손이 한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고 싶었다. 그의 발걸음은 여느 때 보다 한층 가벼웠다. 반면, 초희의 발걸음은 다소 무거웠다.


한동안 침묵을 유지하며 걷던 두 사람은 서사 안으로 들어갔다. 웬일로 서사 안은 쥐 죽은 듯이 고요했다. 경은 한 쪽 구석에 서책들이 놓인 것으로 향했다. 그때, 단번에 단골인 초희를 알아본 주인은 반가운 내색을 비추며 곁으로 다가왔다.


“이리 행차를 하시는 걸로 보아 금세 다 읽으셨나 봅니다.”


“어흠. 그게 아니라. 잠깐 귀 좀 빌려주게."


초희는 나지막한 목소리를 내며 가까이 오라고 손짓을 보냈다.


“네? 그게 아니라면...?”


초희는 경의 귀에 들릴세라 속닥속닥 최대한 숨죽이며 이곳에 오기 전 있었던 사정을 얘기했다. 그 말을 들은 주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바로 앞에 놓인 서책을 집어 그녀에게 건넸다. 다시 값을 지불하고 밖으로 나가려는 그 찰나의 순간, 그녀의 시야에 어렴풋이 경의 모습이 들어왔다.


경은 한 쪽 벽에 기댄 채 서책 한 권을 잡고 훑어보고 있었다. 초희는 그 자리에 서서 경의 얼굴을 자세히 하나씩 훑어보았다. 반쯤 내려진 갓 사이로 긴 속눈썹이 드러났다. 그리고 매끄럽게 뻗은 콧날 하며 꾹 다문 입술은 다부져 보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눈... 그의 눈은... 어떻게 생겼을까? 하고 생각하는 사이. 그가 고개를 위로 치켜세웠다. 얼떨결에 경과 눈이 마주친 초희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아닌 옅은 미소가 지어졌다. 궁금했던 답을 확인하듯 그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눈을 바라보았다. 옆으로 찢어진 눈은 사람을 홀릴 만큼 매혹적이었다.


결론은 얼굴, 몸매 전체적인 모습은 흠잡을 데가 없이 완벽했다.

경은 벽에 기댄 등을 일으키며 서책을 덮고는 그녀의 앞에 다가섰다.


“이제, 볼일 끝났으면 그만 나갑시다.”


이내 들고 있던 서책을 원래의 자리에 가지런히 내려놓았다.


“네에."


“헌데, 보아하니 방금 전 나를 빤히 쳐다보던 것 같던데."


그의 몸은 그녀의 곁으로 바짝 다가섰다. 다시 그의 목소리가 거칠게 내뿜는 숨소리와 동시에 들려왔다.


"왜, 그런 것이오?”


그걸 어떻게 알아차린 거지? 저 선비...... 갓 위에도 눈이 달린 것인가? 초희의 얼굴에 다소 민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녀는 그 어떤 변명조차 할 수 없자 그대로 도망치듯 그곳을 빠져나갔다. 경은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살짝 눈썹을 치켜세우고는 서사 안을 나갔다. 그가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자 어느새 초희는 등을 보인 채 멀찌감치 앞서 걸어가고 있었다. 경은 곧장 초희의 곁에 다가서며 소맷자락을 잡은 채 발길을 잡았다.


“아니, 먼저 나갔으면 상대방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 줘야 하는 게 예의 아니오?”


“그러게 왜 늦게 나오시는 겁니까?”


두 눈 부릅뜨고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초희의 말에 경은 허무함을 느꼈다.


“무슨 말을 못 하게 만드는 재주라도 있는 것이오? 다음엔 좀 기다려 주시오. 같은 일행인데 기다려 주는 게 서로에게 하는 배려가 아니오. 내 둘러대지 않고 솔직하게 말하면 선비의 행동에 약간 섭섭하였소.”


“......그랬다면... 사과하겠습니다.”


초희는 겸연쩍은 표정을 드러내며 시선을 아래로 떨어뜨렸다. 그 모습에 경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는 제 앞에 서 있는 여인의 얼굴을 사심에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작고 가냘픈 몸은 저절로 보호본능을 일으켰다. 경은 속으로 생각했다.


이 여인을 지켜주고 싶다고. 어떤 일이 있어도 평생을 다 바쳐 지켜주고 싶었다. 아니, 제 목숨을 다해 지켜줄 것이다.


그때,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더니 흩날리는 벚꽃 잎 하나가 초희의 갓 위로 떨어졌다. 경은 검지와 엄지 사이로 벚꽃 잎을 들어 보이며 곧바로 공중에 날려버렸다. 다시 그가 허리를 숙이며 나직하게 물어 왔다.


“특별히 할 일 없으면 저잣거리 구경이나 하지 않겠소?"


“괜찮습니다. 그러니 저 먼저 이만 가보겠습니다.”


경은 다시 한 번 소맷자락을 잡으며 발목을 잡았다.


“왜 이리 서둘러 가는 것이오? 그러지 말고 오늘은 나와 함께 보내는 것이 어떻겠소?”


“......네?”


“가끔은 바깥세상도 어떻게 돌아가는지 살펴보고 따뜻한 햇볕도 째고 그래야 몸 건강에도 좋은 법이오. 그러지 말고 밖으로 나온 김에 저잣거리 구경이나 합시다.”


그렇다고 두 사내들끼리 구경이라니. 당치도 않는 말씀이십니다. 초희는 속으로 꿀꺽 삼켰다.


“네. 그리하지요. 하...하하.”


그녀는 딱 봐도 어색한 구석이 있는 떨떠름한 웃음을 내비쳤다. 그때, 덥석 경의 한 쪽 팔 하나가 초희의 가느다란 어깨 위로 올려졌다. 그녀는 놀란 토끼처럼 곁눈질로 경의 팔을 힐끔거렸다.


“이제 제법 안면도 트였겠다 또, 벗이 아니오. 그러니 이 정도쯤이야 당연하지 않소.”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선비라면 벗에게도 격식을 차리는 법인데. 대체 이 사내는 왜 이리 오두방정을 떠는 것인지. 초희는 허탈함을 느끼며 푹 고개를 숙였다. 차라리... 이실직고 고백하는 길이 속 편할 듯싶었다. 사실을 숨기고 있자니 제발 저려서 더는 이대로 살 수 없을 것 같았다.


어딘지 모르게 이 사내는 보통 선비들 보다 뭔가 독특한 분위기를 풍기며 행동했다. 그녀가 잘 알고 있는 누군가와 확실히 대조적인 모습을 보였다. 강유가 모범답안 같은 선비의 풍채를 지녔다면 제 옆에 있는 사내는 확연히 달랐다. 사내다운 모습은 있었지만 사람을 상대하는 방식이 남달랐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이 사내가 싫지는 않았다. 오히려 고마움을 느끼는 초희였다. 한 사내로 인해 그녀의 답답하던 삶에 불씨가 지폈다. 평소 그녀라면 방안에 틀어박혀 서책 읽는 일에 집중하고 있었을 것이다. 좀처럼 바깥은 나오지 않았다. 오직 글방에 가거나 서사에 들리는 외에는 줄곧 집 안에서만 생활했다.


초희가 이런저런 잡생각을 하는 사이, 경은 발길을 멈추며 파란 천으로 덮어진 가판대로 시선을 옮겼다. 그는 그 위에 높여진 향낭을 만지 작 거렸다. 덩달아 초희 역시 여러 종류의 알록달록한 색상의 향낭에 사로잡힌 듯 시선을 고정시켰다. 향낭(香囊)은 향을 넣어서 차는 주머니이며 향낭은 용도에 따라 배합 정도가 달랐다. 보통 장식용으로 노리개처럼 몸에 지니고 다녔다. 보통 사향낭은 평상시에도 몸에 지니는 것이 상례로써 별 장신구 없이 귀주머니, 어깨 주머니, 두루주머니의 형태로 만든 갑사 향낭들이다. 이 안에 향을 썰어 넣거나 분말을 싸서 넣고 다녔다.


경은 눈에 띄는 두 개를 골라 값을 지불하고는 초희의 채색 끈에 향낭을 달아주었다. 그리고는 다른 하나는 제 끈에다가 달았다.


“우리가 벗이 된 증표이니 사양 마시오. 이미 값을 지불했으니 물을 수도 없소.”


“허나, 그래도... 저만 받으면 불공평하지 않습니까?”


경의 얼굴이 초희의 얼굴 앞으로 가까이 다가왔다. 그의 눈빛이 일순간 반짝거렸다.


“정, 허 선비의 마음이 그러하다면. 지난번 하였던 약조를 지키는 게 어떻겠소?”


웬일로 그녀는 방긋 웃으며 그가 원하는 대답을 내놓았다.


“좋습니다. 그렇게 하지요.”


“정말이오?”


기대하지 않았던 그녀의 입에서 긍정적인 말이 나오자 경의 얼굴은 금세 활짝 핀 꽃처럼 웃음꽃이 드리웠다.


“혹, 중간에 딴마음 먹는 건 아닌지 모르겠소?”


경은 힐끔거리며 살짝 떠보았다.


“그럴 일 추호도 없으니 먼저 앞장서시지요.”


그의 얼굴에 어느새 웃음꽃이 한 다발 걸려있었다. 초희가 발을 내디딜 때마다 두루마기 채색 끈에 달려 있던 향낭이 들썩거렸다. 그리고 독특한 향기가 그녀의 코끝으로 올라왔다. 뜻하지 않게 뜻밖의 선물을 받은 초희의 얼굴에 여인의 옅은 미소가 지어졌다.

어느새 한참을 걷던 중. 경은 한 주막 앞에 발길을 멈췄다.


“출출하던 참이었는데. 차는 좀 이따가 우리 집에 가서 마셔도 충분하니. 요깃거리부터 축입시다.”


그럼 그렇지. 흠. 역시 꿍꿍이가 있었다. 자신을 속였다고 생각한 초희는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팔짱을 낀 채 곁눈질로 힐끔거렸다.


“왜 그리 싫은 표정을 내보이는 것이오?”


초희는 대답 대신 눈빛을 보냈다.


정녕, 몰라서 하는 소리입니까?


“그러지 말고 한 술 뜨러 갑시다.”


경은 굳은 채로 서있는 초희의 몸을 억지로 끌고 가다시피 하며 빈자리에 앉혔다. 두 사람이 마룻바닥에 엉덩이를 붙이기 무섭게 주모가 그들 앞에 다가섰다.


“무얼 드릴 깝쇼?”


“국밥 두 그릇 주시오.”


“금방 말아 올라 갖다 드리겠습니다.”


그리고는 손바닥 하나를 내밀었다. 경은 머쓱한 듯 표정을 내보이며 물어 왔다.


“왜 그러시오?"


“미리 계산하셔야 합니다.”


“어째서 그러는 것인가?”


“요즘 하도 밥 먹고 몰래 튀는 잡것들이 활기를 치는 바람에 저도 먹고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밖에 할 수 없는 제 입장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맞은편에 앉아 듣고 있던 초희는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한데, 여기 물은 안 갖다 주시오?”


“보다시피 저 혼자 꾸려나가는지라... 직접 가져다 드셔야 합니다.”


“아, 그렇소?”


초희는 살짝 헛기침을 연발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주위를 두리번 거렸다. 그녀의 눈에 물 잔이 보였다. 얼른, 잽싸게 몸을 움직이며 물이 가득 담긴 그릇을 양손에 들고 탁자에 올려놓았다.


“드십시오.”


“고맙소. 잘 마시리다.”


“한데, 아직도 그런 사람들이 있다니 놀랄 따름입니다. 아니, 밥을 먹었으면 당연히 값을 지불해야 맞지 않습니까? 그런데 날로 먹고 도망 가다니. 날강도가 따로 없습니다.”


“왜 그리 신경 쓰시오. 남의 일에 별로 간섭하지 않는 게 좋소. 그러다가 혹, 일이 커질 수도 있으니 그냥 조용히 우리는 국밥이나 먹고 갑시다.”


“세상 이치를 따지시는 선비인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으시군요.”


“내 말은 그 뜻이 아니라...... 나는 그저......


초희는 그의 이어질 말을 단번에 단 칼로 배었다.


“네네. 그냥 이쯤에서 그만하는 게 나을 듯싶습니다.”


두 사람의 대화가 흐지부지 끝나자 주모는 양손에 국밥을 든 채 각자의 앞에 내려놓았다. 뿌연 김이 모락모락 올라왔다. 경은 뽀얀 국물에 드러나는 하얀 쌀밥을 한 술 뜨며 입안으로 넣었다. 뜨거운 국밥에 혀가 데일듯했지만 금세 수그러들었다. 맞은편에 있던 초희는 입맛이 없는지 꽤 작되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경은 그녀의 숟가락을 빼앗아 들며 강제로 떠서 넣었다.


그때, 초희의 미간이 잔뜩 찡그러졌다. 별로 내키지 않는 듯 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국밥은 이렇게 푹 퍼서 먹어야 제맛이오.”


“저는... 뜨거운 걸 못 먹는지라.”


“아, 그랬다면 내 방금 전 한 행동에 대해 사과하리다. 나는 신경 쓰지 마시고 천천히 드시오. 난 또 입맛이 없는 줄 알고. 하하하.”


경은 멋쩍은 듯 웃었다.


“아닙니다. 그냥 제 것까지 전부 드십시오. 저는 별로 생각이 없어서... 그냥 여기 있는 물 한 잔 이면 충분합니다.”


초희는 말끝을 흘리며 제 앞에 놓인 국밥을 경의 앞으로 내밀었다. 그리고는 경의 밥 먹는 모습을 고스란히 두 눈에 담으며 생각에 잠겼다. 잘생김이 묻어나는 외모와 달리 어찌나 복스럽게도 먹는지 누가 알면 한참을 굶은 사람처럼 보여서 오해를 사지 않을까. 괜한 걱정을 하는 초희였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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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13. 돌연변이의 탄생(2) +1 16.04.03 32 0 15쪽
14 12화 돌연변이의 탄생(1) +1 16.04.02 76 0 29쪽
13 #11. 수수께끼의 선비(2) +1 16.04.02 45 0 21쪽
12 #10. 수수께끼의 선비. +1 16.04.01 57 0 21쪽
11 #9. 비와 당신...... 그리고 +1 16.04.01 39 1 21쪽
10 #8. 천명(天命) +1 16.03.31 64 0 16쪽
9 #7. 달 밝은 밤. 두 사내의 은밀한 조우. +1 16.03.31 29 0 19쪽
8 #6. 님과 함께...... 달 밤을 거닐며. +1 16.03.31 64 0 21쪽
7 #5. 화려함 속에서 살아가는 외로운 부용화 꽃 한 송이. +1 16.03.31 102 0 11쪽
» #4. 흩날리는 벚꽃 잎이 떨어지는 어느 멋진 봄날. +1 16.03.31 28 0 17쪽
5 #3. 앙칼진 새끼 고양이 +1 16.03.31 22 0 10쪽
4 #2. 한 여인과 두 사내 +1 16.03.31 92 0 21쪽
3 #1. 남장여자 & 묘(妙) 한 선비 +1 16.03.31 85 0 13쪽
2 [프롤로그] #1-2 늑대 선비. +3 16.03.31 86 0 12쪽
1 [프롤로그#1. 만월(滿月)의 밤] +3 16.03.31 198 1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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