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의 순정에 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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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결
작품등록일 :
2016.03.31 08:14
최근연재일 :
2016.04.03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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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3.31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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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화려함 속에서 살아가는 외로운 부용화 꽃 한 송이.

DUMMY

외출하기 전, 그녀는 단장하는 일 만큼은 신중에 신중을 가했다. 화장(化粧) 이란 여인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인 만큼 공을 들여야 했다. 여 몸종은 화려한 용기와 다양한 화장 도구들이 줄지어 놓아진 쟁반을 들고 그녀의 앞에 내려놓았다.


맨 먼저, 이랑은 물분(粉)을 묻힌 손에 제 얼굴 위로 펴 발랐다. 그녀의 피부가 한층 더 뽀얗게 드러났다. 이어서 분배 분을 가져다 얼굴 전체에 두드리자 좀 더 밝아졌다. 입술은 홍화(紅花)로 만든 연지로 붓을 가져다 칠했다. 붉은색으로 바뀐 입술은 생기 있어 보였다. 눈썹은 미물(眉墨)으로 칠했는데. 나뭇결이 단단한 굴참나무, 너도 밤나무로 유연(油煙)에 개어 만들었다.


이내, 경대(鏡臺)를 열어 들며 곱게 단장이 된 자신의 얼굴을 확인했다. 오늘도 여느 때처럼 화장이 잘 먹은 듯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곧장 밖으로 나와 꽃신을 신고 안채를 빠져나갔다. 이윽고 대문 밖으로 나온 그녀는 장옷을 머리 위로 쓰며 걸음을 재촉했다.


그리고 얼마쯤 지나서 그녀는 한 양반집 앞에 당도(當到) 했다. 그녀는 별다른 표정 없이 혼잣말을 내뱉었다.


“나도 참 속물이구나. 마음에도 내키지 않는데 이곳에 발을 들여놓는 걸 보면.”


붉은 바탕에 가슴 부분 쪽으로 연꽃 자수가 새겨진 흰색 끝동을 단 비단 장옷이 천천히 어깨 위로 내려오자 화려한 부용화를 닮은 여인의 얼굴이 드러났다. 이랑은 단아한 자태를 뽐내며 반 정도 갠 장옷을 한 쪽 팔에 걸친 채 대문 앞에 다가섰다.


“거기, 누구 없느냐?”


야무진 목소리가 대문 안쪽으로 울려 퍼지자 재빨리 몸종 하나가 굳게 닫힌 대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이랑은 살포시 치마를 들어 올리며 대문 안으로 들어갔다. 이내 마당에 들어서자 예상이라도 한 듯 그녀의 표정은 방금 전 대문 앞에 섰을 때 보다 한층 밝은 모습이 뚜렷하게 지어졌다. 앞으로 걸어오는 강유를 향해 이랑은 시선을 떼지 않고 고개를 살짝 숙이며 인사를 건넸다.


“예까지 오시는 걸 보니 초희를 보러 온 것이군요.”


“네.”


‘실은 선비님을 뵈러 온 것입니다......’ 그다음 이어질 말은 속으로 내뱉었다.


“그럼, 전 이만.”


강유는 갓을 쓴 머리를 살짝 아래로 늘어뜨리며 그녀의 곁을 지나갔다. 그녀에겐 공적인 말 외에는 사적인 말은 하지 않는 강유였다. 초희를 대하는 것처럼 자신에게도 똑같이 대해주길 바라는 게 그저 사치에 불과한지. 그에게서 많은 걸 바라지 않는다.


단지, 그 따뜻한 말 한 마디가 고플 뿐이다. 이렇듯 자신에게서 멀어져 가는 강유를 애틋하게 바라보던 이랑은 발길을 붙잡았다.


가능 한 잠깐이라도 좋으니 좀 더 곁에 두고 싶었다.


“한 번이라도......”


이랑은 말끝을 흘렸다. 강유는 발길을 멈춘 채 뒤를 돌았다.


“저에 대해 궁금하지 않으신가 보군요? 저희가 한두 번 본 사이도 아니고. 이렇듯 선비님께서는 언제나 제게는 별다른 말은 하지 않으시네요.”


그 뜻을 모를 일 없는 강유였다. 하나,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별다른 얘기는 하지 않는 것일 뿐. 설령, 다른 누군가 할지라도 관심 없는 사람과는 적당한 거리를 두고 싶을 뿐이었다.


단지, 그 이유가 다였다. 공적인 관계. 어차피 사람 관계는 거기서 거기였다. 혈육 외에는 깊이 관여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단, 한 사람. 그의 가슴 한편 자리 잡고 있는...... 유일한 한 사람. 초희는 그에게 있어서 특별했다.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을 만큼 남다른 존재였다.


“별로 말주변이 없어서 낭자께 이렇다 할 말을 하지 않는 것뿐이니. 굳이 마음속에 담아 두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언제 차를 대접하고 싶은데 그 정도는 제게 내어주실 수 있으시죠?”

정중하게 물어 왔지만 결국, 이랑의 말은 시간 비우라는 뜻이었다.


“마다 할 여부가 있겠습니까?”


강유는 꾹 마문 채 한 쪽 입꼬리를 살짝 들어 올리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 약조한 걸로 알고 조만간 기별 올리겠습니다.”


강유는 살짝 고개를 숙였다가 곧 들어 올리며 대문을 향해 발길을 옮겼다. 멀어져 가는 그의 뒷모습을 이랑은 씁쓸하게 바라보며 서 있었다. 여전히 이랑의 마음은 심란했다. 말하는 내내 눈길조차 주지 않았던 강유였다. 허우대만 멀쩡할 뿐 자신 앞에 서 있는 화려하게 피어있는 부용화를 못 알아보다니.


이 고을에서 그녀를 모르면 간첩일 정도로 빼어난 미모를 자랑했다. 수많은 사내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그녀였지만.


정작, 연모하는 사내의 마음은 딴 곳을 향해 있으니 애달 펐다.

자신과 초희를 놓고 비교를 해봐도 하나부터 열까지 그녀가 한수 위였다.

그런데? 어째서? 왜? 무엇이? 오늘도 자존심이 바닥까지 내려갔다.


이랑은 그대로 등을 돌리며 안채가 아닌 대문을 향해 발길을 옮겼다. 어차피 여기에 온 이유는 단 하나. 이제 그 목적을 이루었으니 집으로 가는 게 당연했다. 밖으로 나온 이랑은 한 쪽 팔에 걸쳐둔 장옷을 펼치며 머리 위로 걸쳤다. 활짝 핀 부용화는 다시 움츠린 꽃봉오리로 탈바꿈했다. 그러나 빼어난 미색(美色)은 가려진다고 해서 쉽게 가려지지 않았다.

감출수록 더 아름다운 법. 가릴수록 더 궁금증을 유발했다. 그래서 어쩌면 외로운지도 몰랐다. 다른 꽃들로 하여금 부러움에 사지만 그건 전부가 아니었다.


한 사내의 마음을 얻지 못 한다면 그것보다 더 추한 것은 없었다. 화려하게 피어있느니 못 했다.


이랑이 화려한 부용화 꽃이라면, 초희는 청초한 수국 꽃에 비유되었다.


이랑은 고개를 추켜 올리며 걸어갔다. 그녀가 지나갈 때마다 사람들은 힐끔거리며 쳐다보았다. 이랑은 속으로 생각했다.


‘이 세상에 살아있는 것 중에서 자신보다 우월(優越) 한 것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무슨 자신감으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만한 건지. 이 여인의 망상은 극에 달았다.


“흥, 아무렴. 그 아무리 화려한 꽃이라도 내 미모엔 감히 범접할 수 없는데. 그 누구라고 별수 있겠어? 호호호.”


연신 자신의 미모를 칭찬하며 걷던 그녀는 자신을 향해 내비치는 따가운 시선에 콧대를 하늘 높이 치켜세웠다.


“어쩜, 저리도 아름다운지. 백옥같이 하얀 피부 좀 봐.”


“어머, 저 손은 또 어떻고. 섬섬옥수(纖纖玉手)가 따로 없네.”


“그러게 말이야. 아니, 사내가 어찌 여인보다 저리 아름다울 수 있지?”


'잠깐, 내가...... 아니라...... 사내라니?"


세 명의 여인들은 이랑이 아닌 사내의 얼굴에 칭찬 일색이었다. 이랑은 자신의 곁을 지나쳐가는 여인들의 입방아에 오르는 사내의 얼굴을 확인하기 위해 잠시 가던 길을 멈춰 섰다.


제아무리 아름답다 한들 꽃도 제 앞에서는 고개를 숙이는데. 하물며 사내라고 별 수 있을까? 이랑은 옆으로 고개를 돌리며 사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순간, 그녀의 말문이 단 번에 막혔다. 그녀의 숨이 턱하고 멎는 듯했다. 그리고 얼굴을 하나씩 뜯어 보며 살폈다.

사내의 피부는 방금 전 듣던 대로 백옥같이 하얬다. 부채를 들고 있는 손은 어쩜 저리도 아름답고 가냘픈지.


그리고 사내의 눈은 여느 사내의 눈과는 비교 불과 일 정도로 반짝거렸다. 또, 얼굴의 중심 역할을 하는 코하며 분홍빛을 띠는 입술은 앵두처럼 작았다. 한 마디로. 여자도 울고 갈 미색을 고루 갖추고 있었다.


이랑은 다른 여인들처럼 사내의 아름다움에 내색을 하지 않았다. 일인자는 못 되어도 2인 자는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녀가 말하는 일인자는 단연, 꽃 선비를 두고 한 말이었다. 오늘 왜 이리 자존심 상하는 일만 연속으로 생기는 것인지. 이랑의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올라왔다.


“그럼, 여태 나를 보던 게 아니었어? 이런,”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완전 어이없어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좀처럼 가시지 않는 화를 밖으로 내비치며 발길을 멈춰 선 채 선비를 향해 매섭게 쏘아 보았다. 대각선 맞은편 쪽에 서있던 선비는 자신을 향해 질투 어린 시선을 보낸 여인의 강한 눈빛을 알아차린 듯 의미를 알 수 없는 기분 나쁜 미소를 내비쳤다. 이랑은 선비의 행동에 불쾌감을 느끼며 다시 발길을 옮겼다.


이윽고 집으로 돌아온 이랑은 투덜대며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자마자 자리에 앉아서도 푸념을 늘어놓았다.


“뭐야, 뭐야, 뭐야~. 아니, 무슨 사내가 미색이 그리 출중해? 사내란 사내다운 멋이 있어야지. 곱상하게 생겨서 그걸 어디다가 써? 여색만 즐길 게 뻔하지. 어휴, 자존심 상해. 그래, 이럴 때일수록 혀만 놀려댄다고 달라질 건 없지. 오늘부터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해.”


여인보다 아름다운 사내라니. 그것만큼 자존심 상하는 일이 어디 있을까? 그녀는 문지방을 향해 큰 목소리로 제 몸종을 다급히 불렀다. 이번엔 또 무슨 일로 저리 부르는 것일까? 궁금해하며 몸종이 방안에 들어섰다.


“녹두, 콩, 팥, 살구씨를 챙겨서 가지고 당장 내 앞에 갖다 놓거라.”


“네, 아씨.”


피부를 가꾸기 위해서 주로, 씨앗류 등으로 가루를 많이 이용했다. 씨앗에는 영양분과 지방분이 있어서 피부를 맑고 깨끗하게 하며 지방분은 반짝이는 피부를 만드는데 탁월했다.

이랑은 제 옆에 높아진 경대(鏡臺)를 가져다가 뚜껑을 열고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는 양옆으로 고개를 돌리며 한 쪽 손으로 얼굴을 만졌다. 이리 봐도 저리 봐도 모난데 하나 없이 아름다운 얼굴이었다.


한데, 이보다 더 빼어난 미색을 겸비한 사내라니. 당치도 않았다. 대체, 무엇으로 가꾸기에 피부가 고운 것인지. 무슨 비법이 있는 게 분명했다. 그렇다고 물어볼 수도 없었다. 그녀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아니, 자신보다 아름다운 여인도 있을 수 없는 법인데 하물며 제아무리 아름다운 사내라 할지라도 자신보다 높이 살 수는 없었다. 아직은 그 누가 뭐라고 해도 이곳 고을의 미인은 그녀가 유일무이(唯一無二) 했다.


오월에 피어나는 양귀비꽃마저도 무색하게 만들 정도로 화려한 꽃인 자신이거늘. 감히, 누구 앞에 미모를 겸비하는 건지.


그녀는 허공을 향해 콧방귀를 뀌었다. 이윽고 몸종은 가루가 든 용기를 들고 그녀 앞에 내려놓았다. 그녀는 곱게 빻은 가루로 기름을 넣고 배합한 후, 얼굴 전체에 펴 발랐다. 이대로 쭉 일각(一角)쯤 지나서 미지근한 물로 씻어 내며 미안수(美顔水)로 얼굴 위에 '톡톡' 두드렸다. 금세 얼굴은 촉촉한 감촉이 느껴졌다.


“내일은 ‘장희빈 미안법’으로 가꾸어야겠다. 네가 보기에 내 얼굴 어떠하냐?”


“어휴, 물어서 무엇하겠어요. 늘 곱고 아름다우신데요.”


“그렇지? 너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지?”


이랑은 몸종의 대답에 흡족해하며 밝게 웃었다. 옆에 있던 몸종은 그녀의 모습에 어색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러나 이랑은 기분에 들떠있어서 단, 일말도 눈치채지 못 했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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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12화 돌연변이의 탄생(1) +1 16.04.02 76 0 29쪽
13 #11. 수수께끼의 선비(2) +1 16.04.02 45 0 21쪽
12 #10. 수수께끼의 선비. +1 16.04.01 57 0 21쪽
11 #9. 비와 당신...... 그리고 +1 16.04.01 39 1 21쪽
10 #8. 천명(天命) +1 16.03.31 64 0 16쪽
9 #7. 달 밝은 밤. 두 사내의 은밀한 조우. +1 16.03.31 29 0 19쪽
8 #6. 님과 함께...... 달 밤을 거닐며. +1 16.03.31 64 0 21쪽
» #5. 화려함 속에서 살아가는 외로운 부용화 꽃 한 송이. +1 16.03.31 103 0 11쪽
6 #4. 흩날리는 벚꽃 잎이 떨어지는 어느 멋진 봄날. +1 16.03.31 28 0 17쪽
5 #3. 앙칼진 새끼 고양이 +1 16.03.31 22 0 10쪽
4 #2. 한 여인과 두 사내 +1 16.03.31 92 0 21쪽
3 #1. 남장여자 & 묘(妙) 한 선비 +1 16.03.31 85 0 13쪽
2 [프롤로그] #1-2 늑대 선비. +3 16.03.31 86 0 12쪽
1 [프롤로그#1. 만월(滿月)의 밤] +3 16.03.31 198 1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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