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의 순정에 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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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결
작품등록일 :
2016.03.31 08:14
최근연재일 :
2016.04.03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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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4.02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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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수수께끼의 선비(2)

DUMMY

“오늘은 또 무슨 일로다가 이리 예까지 발걸음을 하신 겁니까? 보아하니 깊이 생각을 한 모양입니다.”


경이 마당에 들어서기 무섭게 이율이 모습을 드러내며 마중을 나왔다.


“대체, 내 주변에 나를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은 이리도 내 속마음을 꿰뚫어 보는 것인지.”


“말해 보십시오. 답에 관한 거라면 깊이 관여해 줄 수 있으니.”


“역시, 이곳으로 오기 잘 한 것 같습니다.”


“일단, 안으로 들어섭시다. 내 오늘은 전에 마셨던 차보다 좀 더 특별한 맛으로 선보일 테니.”


“기대 되는 군요.”


이율은 한 쪽 손을 들어 올리며 방으로 안내했다. 함께 걸어가는 동안에도 두 사람의 대화는 계속 이어졌다.


“저는 오히려 박 선비께서 내게 물어 올 문제에 대해 기대가 됩니다.”


“하하하. 분명, 이율 선생은 정확한 답이 무엇인지 알 고 있을 것이라고 한치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한데, 저도 인간인지라. 만에 하나 틀릴 수 있다는 전제하에 장담은 못 하니. 그 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일단, 들어나 보시고 알려주십시오.”


두 사람은 함께 나란히 방 안을 들어섰다. 고즈넉한 분위기의 방 안에 들어서니 그전 보다 많은 서책들이 빼곡히 놓여있었다. 문득, 샐 수 없이 수많은 서책들을 보고 있으니 한 여인이 자동적으로 떠올랐다. 그 여인이 낸 문제로 인해 골머리를 앓고 또 이곳에 발길을 두게 되었다. 그러나 오히려 애증은커녕 애정이 더 쏟아졌다. 이내 그는 살짝 고개를 아래로 떨구며 가벼운 헛웃음을 내보였다가 곧 평정심을 되찾은 듯 고개를 들어 올렸다.


여태껏 감성에 메말라 있는 줄 알았는데. 자신도 이렇듯 영락없는 사내였다는 생각에 웃음을 내비쳤다. 그때, 이율 선생이 차를 내왔다. 그의 앞에 따뜻한 차가 놓였다. 한 쪽 손에 찻잔을 잡고 한 모금 마셨다. 그의 얼굴에 선명한 미소가 드리워졌다. 앞에 앉은 이율 선생이 말한 대로 기가 찬 맛있었다.


“정말이지 차 우려내는 솜씨 하나 또한 일치월장하는군요. 언제 한 번 제게도 선생의 그 비법을 전수해 주실 수 있습니까?”


“그정도 쯤이야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그래. 박 선비의 머리를 썩히게 만든 그 문제가 어떤 것인지 얘기해 주시지요.”


“모두의 인생에서 가장 소중 한 것은 무엇인가? 이것이 문제의 요지입니다.”


“그렇군요.”


이율은 몇 번 고개를 끄덕이며 손에 들려진 차를 한 모금 들이켜고는 바닥에 내려놓았다. 잠깐 동안 두 사람은 침묵을 유지했다. 두 사람은 각자 문제의 답을 유추해 나갔다.


“한데, 답과는 무관하지만 질문 하나를 해도 되겠습니까?”


“무엇입니까? 그 질문이라는 것이?"


“이 문제를 낸 사람이 누구인지 궁금하여 물었습니다.”


“어떤 여인입니다. 무슨 속인지 알 수가 없는 양파 같은 여인이지요. 이름을 가르쳐 달라고 했더니 수수께끼를 내지 뭡니까? 이 번엔 꼭 알려주었으면 좋으련만."


“이번이라면 이 문제를 내기 앞서 또 다른 수수께끼 문제를 낸 모양이군요.”


“네. 그렇습니다. 한데, 이 번 문제의 답은 도통 생각이 나질 않더군요.”


“제게 오신 걸 잘 하신 것 같습니다.”


“하면, 그 말은......?”


“제 눈엔 답이 훤히 보입니다.”


“역시 대단하십니다. 그렇다면 답이 무엇입니까?”


“박 선비께서 생각하는 그것입니다.”


“......?제가 아는 그것이라니요?”


“모두의 인생에서라고 하면 각자의 삶을 뜻하지 않습니까? 사람의 인생은 전부 다릅니다. 어떤 이는 가족을 중요시 여기고, 또 어떤 이는 명예를 또 어떤 이는 금전적인 부분을 중요시 여길 테고 또 어떤 이는 건강을 중요시 여길 테지요. 이처럼 딱히, 한 가지 답이 정해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니 이런 답이 나왔습니다.”


“선생께서는 가히, 함부로 견줄 만 한 사람이 없을 만큼 학식이 뛰어 나다라는 걸 다시 한 번 일깨워 주시는군요.”


“경은 제 손에 들려 있는 찻잔을 천천히 바닥에 내려놓았다.


“우연히 맞춘 것뿐이니 너무 높이 뛰어주지 마십시오.”


“참으로 대단하십니다.”

*

서사 안. 연신 그림을 그리는 일에 열중하던 초희는 손에 쥔 붓을 들어 올리며 무언가 생각이 난 사람 마냥 하던 일을 멈추었다. 잠깐 동안 허공을 주시하던 그녀는 눈을 크게 떴다.


아, 그러고 보니 스승님께서 부탁하신 말씀이 그제야 생각이 나다니. 서사 안에서 글을 쓰며 그림을 그려 넣고 있던 초희는 잠깐 밖을 다녀오겠다고 주인에게 일러두며 서둘러 나갈 채비를 했다. 그녀는 할 수 없이 남장을 한 모습을 한 채 스승인 이율에게로 향했다.


어차피 이율이야 그녀의 남장한 모습을 익히 잘 알고 있는 터라 별로 문제 될 게 없었다. 그녀는 가던 길에 스승이 좋아하는 약과도 잊지 않았다. 약과라면 사족을 못 쓰는 스승인 탓에 가끔씩 그곳을 들릴 때면 양손 한가득 사가는 것을 잊지 않고 챙겨 갔다.


전에 한 번 보고 또 얼마 만에 가는 것인지. 그녀의 발걸음은 유독 가벼웠다. 하루를 바쁘게 보내고 있는 탓에 부탁받은 일을 까먹고 있었다니. 그리고 어쩌면 거절을 해야 할 것 같았다. 아무래도 하루에 두 가지 일을 하는 건 그녀에게 벅찼다. 자신보다 나은 사람이야 얼마든지 있으니. 자신보다 더 적합한 사람을 찾아보라고 얘기할 참이었다. 그렇게 얼마쯤 허둥지둥 걷다 보니 스승의 집 앞으로 당도했다. 초희는 헛기침을 연발하며 스승을 불렀다.


이내, 밖으로 나온 이율은 초희의 모습에 곧장 곁으로 다가섰다.


“스승님이 그리워서 한달음에 달려왔습니다.”


“입에 침이나 바르고 그 소리를 해라.”


“이 거 받으십시오. 스승님께서 좋아하시는 약과 잔뜩 가져왔으니 원 없이 드실 수 있으실겁니다.”


“날 생각해주는 건 오직 너뿐이구나. 하하하. 그래. 저번에 내가 부탁한 일은 생각해 보았느냐?”


“아무래도, 힘들 것 같습니다. ”


“그래서 네가 이리 내물을 가지고 온 것인가 보구나.”


“들어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아니다. 어차피 아는 선비께서 기꺼이 들어 주신다고 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다행이네요. 전, 또... 한데, 그분이 어떤 분인지 궁금하네요.”


“아, 그래. 안 그래도 지금 이곳에 있으니 내 너에게 소개시켜 줘야겠구나.”

초희는 기대에 찬 눈빛을 하며 방 문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스승 이율의 목소리가 방문을 넘어 안까지 들어갔다.


“괜찮다면 잠시 밖으로 나와 보시오.”


굳게 닫힌 방문이 열리고 갓을 쓴 선비가 두 사람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대. 풍채를 보아하니 그녀가 알고 있던 선비와 어딘가 엇비슷해 보였다. 살짝 고개를 숙이며 다가오던 선비는 발 걸음을 멈추며 고개를 들었다. 줄곧 선비를 향해 있던 눈이 크게 떠졌다.


“어?”


닮은 사람이 아니라 그가 맞았다. 이율은 초희와 경을 번갈아 가며 서로에게 물어 왔다.


“아는 사이냐?”


“이 아이와 아는 사이이십니까?”


“네.”


마치, 입을 맞춘 사람들처럼 경과 초희의 입에서 동시에 같은 대답이 흘러나왔다.


“제 아무리 세상이 좁다 한들. 세상 천지에 이런 인연이 또 있다니. 하하하.”


“그러게 말입니다. 공교롭게도 제게 수수께끼를 낸 여인이 이율 선생과 가까운 사람이라는 게 신기할 따름입니다.”


뜻밖의 장소에서 생각지도 못 하게 만나게 되다니 색다르게 느껴지는 경이었다.


“박 선비께서 말한 양파 가은 여인이 초희였다니. 하하하.”


“네? 양파... 같은... 여인 이라니요?”


초희의 시선이 경에게로 머물렀다.


“음. 박 선비께서 너를 그리 부르더구나. 한데, 초희야 어째서 선비께 그런 수수께끼를 낸 것이냐?”


“제 이름을 대답하기 앞서 낸 것뿐. 별 뜻은 없었습니다. 선비님이라면 잘 맞추실 거라고 생각해서 낸 것입니다. 한데, 답은 맞추셨습니까? 아무래도 이곳에 온 걸 보아하니.......”


초희는 말끝을 흘리며 경과 스승의 얼굴을 동시에 바라보았다.


“역시, 낭자께선 눈치 하난 빠릅니다. 아, 선생 그리고 저번에 말한 그 선비 또 한 이 여인입니다. 아니지. 초희... 낭자가 그 선비입니다.”


“네? 아, 하하하.”


“하나, 제가 여인이라는 사실을 선비님께서 처음부터 알고 있으셨더라구요.”


“본래의 모습을 숨긴 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모를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큰 오산이지.”


“하면, 남장을 해봤자 소용없다는 말씀이신 거예요?”


이율은 입을 꾹 다문 채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

한편, 이랑은 포목점 안에서 연신 여러 비단 천을 제 몸에 두르며 새로 맞출 옷의 맵시를 뽐냈다. 어떤 색을 몸에 둘려도 잘 어울렸지만 어째 죄다 비슷한 게 딱히 그녀의 마음에 쏙 들어오는 것이 없었다. 이랑은 고개를 돌리며 여주인에게 시선을 주었다.


“한데, 새로 들어온 비단 천은 없는 겐가?”


“당연히 있지요.”


잠시 후, 여주인은 돌돌 말린 비단 천을 여러 개 내놓으며 넓게 펼쳤다. 일단, 치마로 정할 천하 나가 이랑의 눈에 들어왔다. 짙은 연분홍빛이 은은하게 띠는 것이 화려하면서도 단아함을 내비쳤다. 그리고 저고리로는 옅은 색을 띠는 노란 천으로 골랐다.


“앞에 달 고름에는 이 색이 어떨까 싶은데요.”


여주인은 푸른색을 띠는 천을 가리켰다.


“나쁘지 않아 보이는 게 괜찮은 것 같기도 하고. 그럼 이걸로 한 벌 맞춰보게.”


“예에.”


여주인은 바닥에 펼쳐진 비단 천들을 돌돌 감기 시작했다. 그때, 포목점 안으로 강유의 여동생인 영유가 몸종과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먼저 아는 체하지 않고 서로를 향해 힐끔거릴 뿐이었다. 이랑은 나름 여러 이유를 들먹거렸다 이유인즉, 영유보다 한 살 이라도 많기도 하고 자타 공인 미색을 겸비한 자신이기에 먼저 아는 척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녀의 콧대 높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반면, 영유는 이랑의 저 거만한 태도가 언제까지 계속되는지 두고 본다는 심보로 곱게 바라보지 않고 있었다. 두 사람의 신경전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영유는 천천히 비단 천을 바라보며 발길을 옮겼다. 순간, 그녀의 눈에 고운 빛깔을 풍기는 은은한 푸르스름한 비단 천에 손을 뻗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녀의 손과 동시에 또 다른 손이 비단 천위로 닿았다.


“미안하지만 너보다는 나한테 더 잘 어울릴 거라고 생각하지 않느냐?”


영유는 이랑의 태도에 어이가 없어서 눈을 홀겼다.


“어울리는지 아는지는 입어 봐야 아는 것이니. 함부로 입을 놀리시는 겁니까?”


“누구 앞에서 눈을 그리 치켜뜨는 것이냐? 한데, 여전히 네 오라비는 그 아이의 집으로 매일 발 도장을 찍고 있다지. 참 딱하기도 하여라. 친 누이는 너인데 오히려 그 아이를 많이 챙기시고 아끼시니 말이야. 그리고, 많이 이뻐하니 말이다. 그래서 이토록 너의 피부가 많이 상했나 보구나.”


이랑은 입꼬리를 살짝 들어 올리며 비꼬듯 한 미소를 내비쳤다. 그 말을 듣고 가만히 있을 영유가 결코 아니었다. 그녀의 성격이 어떤지 데리고 온 몸종은 그 내막을 필시 잘 알고 있는 탓에 얼굴빛이 많이 안 좋았다. 제 주인이 무슨 일을 또 벌일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평소와는 다르게 행동을 했다. 아니, 그 자리에 그대로 꼿꼿하게 서서 한숨만 내쉴 뿐이었다.


아무래도 보는 눈이 많은 탓에 그럴 수도 있겠다고 싶었다. 사대부의 여인이 이런 일로 자신의 또 다른 모습을 박으로 표출한다면 그 보다 민망한 순간이 있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랑은 제 앞에 있는 영유에게서 별다른 반응이 없자 재미가 없는지 또 한 번 조롱하는 눈빛과 함께 말을 내뱉었다.


“호박에 줄긋는다고 수박이 될 리가 없질 않느냐? 원체 타고난 것이 다른데. 이 비단 천은 초희에게 잘 어울릴 것 같은데. 안 그러냐? 사월아?”


“네에? 아아, 네에.”


곁에 있던 사월은 이게 대체 무슨 날벼락인지. 머리를 숙인 채 곁에 있던 영유의 표정을 살폈다. 대체, 어쩌자고 기분 상하는 말을 해대는지. 이랑의 입에서 나온 '초희'라는 이름이 영유의 귀에 거슬렸다. 영유는 제 앞에 있는 이랑을 향해 따가운 눈초리로 노려 보다가 이내 두 눈을 부릅뜨며 앞으로 다가갔다.


“네가, 감히 그리 노려보면 어쩔 것이냐? 자꾸 그리 노려보면 오히려 제 눈만 아플 텐데. 안 그러냐? 호호호.”


이랑은 영유의 살기 어린 눈빛과 마주치자 본능적으로 한 발 뒤로 물러섰다. 영유는 계속해서 가까이 다가가며 이랑의 숨통을 조여오듯이 벽 쪽까지 몰아붙였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자 이랑은 시선을 피하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영유는 그런 이랑의 턱을 잡고 자신의 얼굴과 마주하게끔 제 자리로 돌려놓았다.


“내가 충고 하나 할까 하는데?”


영유는 여전히 턱을 잡고 있는 손을 놓아주지 않았다. 어찌나 세게 잡았는지 숨통이 조여오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이랑은 조여진 입 때문에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다소, 냉기 가득한 영유의 음성이 이랑의 귓전에만 닿았다.


“제 아무리 아름다운 꽃이라도 세월 앞에서는 시들기 마련이지. 그 잘난 얼굴로 언제까지 믿고 이리 기고만장할지 이 두 눈으로 지켜보겠어. 그리고 언감생심 우리 오라비를 탐한다는 소문이 심상치 않게 들리던데. 당치도 않지. 다시는 그 입 함부로 놀려댔다가는 이것보다 더 한 것도 할 수 있으니 그리 알고. 당장 여기서 나가!"


영유의 행동에 살벌함을 느낀 이랑은 허겁지겁 포목점 안을 빠져나갔다. 이랑의 몸종인 사월은 영유를 향해 가볍게 인사를 한 뒤 뒤에 바짝 다가서며 잔뜩 울상이 된 얼굴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곁에 있던 영유의 몸종이 그녀의 곁으로 다가왔다.


“어쩌자고 그러셨어요. 저렇게 행동하는 게 한두 번도 아니니. 그냥 참으시지.”


“곁에서 쭉 지켜보고도 그 말이 나오느냐? 너라면 참을 수 있겠니? 난 그리 못 한다. 당하고만 살고 싶지도 도망가는 것도 죽어도 난 못 해. 당한 만큼 되갚아 주는 게 내 삶의 방식이자 신념이니까.”


“이곳에 아씨하고 이랑 아씨하고 단둘뿐이기 망정이지. 다른 아씨들까지 있었다면......”


“이게 웬 떡이냐 하고 달려들어서 입방아에 오르내리겠지.”


“그리 잘 아시면서. 그래도 예전보다는 많이 참긴 하셨네요. 아무튼 이랑 아씨 성격도 만만치 않을 텐데 혹여, 아씨께 보복이라도 하시면 어쩌시려고.”


“아무렴 어떠냐. 어차피 한 번쯤은 부딪쳐야 했던 일. 그렇다고 해서 있던 일이 없던 일이 되지 않는 법. 우리도 그만 나가자. 오늘은 따뜻한 햇볕 아래를 좀 걸어야 겠구나.”

“그렇게 하셔요. 따뜻한 햇볕 좀 쬐고 나면 다소 흥분된 마음도 가라앉을 거에요.”


두 사람은 이내 포목점 안으로 밖을 나왔다. 뜨거운 태양이 유독 오늘만 강하게 내리쬐는 듯했다. 기분이 안 좋을 때는 여가 없이 바깥을 나오며 답답한 기분을 식혔다. 오늘 같은 날에는 모든 걸 전부 내려놓고 기대고 싶었다. 문득, 그녀의 머릿속에 생각나는 한 사람이 있었다. 한데, 집에서 얼굴 보기가 하늘에 별 따기 만큼이나 어려운 탓에 그것마저 힘들어 보였다.


아무라도 상관없었다. 누가 좀 자신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고 달래주었으면 좋겠는데. 어째서 일까? 심란한 마음탓에 눈에서 굵은 눈물이 한 방울 뚝 아래로 떨어졌다. 강철 같은 여인인 제 자신이 이렇듯 한편으로 여린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니. 영유는 허공에 대고 헛웃음을 내비쳤다. 순간, 그녀의 시야에 한 사내의 모습이 들어왔다. 길게 늘어뜨러진 머리카락 하며 특이한 차림새를 하고 있는 모습이 평범하게 보이지 않았다. 이윽고 한 쪽 눈을 가리고 있던 머리카락이 바람에 의해서 날리자 칼에 베인 듯 한 상처가 깊게 새겨져 있었다.


맞은편, 이 괴는 자신을 향해 바라보고 있는 여인을 향해 바라보다가 이내 옷에 달린 모자를 길게 눌러 쓴 채 황급히 발걸음을 옮겼다. 영유는 멀어져 가는 낯선 사내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무슨 사연이 있길래 어쩌다 눈 쪽 깊은 곳에 상처를 입은 것인지. 영유는 어딘지 모르게 재빨리 몸을 숨기는 저 사내에게서 연민을 느꼈다.

*

밖으로 나온 이랑은 연신 걷는 내내 그 어떤 말도 표정도 짓지 않았다. 그때, 맞은편에서 부채로 얼굴을 가린 채 걸어오는 천명과 옷자락이 닿고 말았다. 천명은 순간, 그녀가 며칠 전, 먼발치에서 자신을 향해 질투 어린 시선으로 바라본 여인임을 알아차렸다.


그는 인사치레를 하기 위해 그녀의 곁으로 다가섰다. 이랑의 앞을 막아서며 천명이 얼굴을 가리고 있던 부채를 접었다. 그러나 이랑의 반응은 기대했던 거에 비해 냉소적이었다. 어딘가 그녀의 심기를 건드린 것인지 표정에서 드러나는 얼굴색이 말이 아니었다.


“제게 용건이라도 있으 신 겁니까? 아니면, 어째서 길을 걷고 있는 제 앞을 막아서시는 겁니까?”


천명은 자신에게 냉대하게 대하는 이랑의 태도가 별로 탐탁지가 않았다.


“낭자, 내가 낭자께 무엇을 그리 잘 못 한 것입니까? 아니면, 천성이 그런 것입니까?”


“제 앞길을 막아선 건 선비님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무슨 연유로 제 천성에 대해 그리 논하시는 겁니까?”


천명은 연신 이랑의 얼굴을 살폈다. 이내 손에 들고 있던 부채를 펼쳐 보이며 천천히 부채질을 했다. 그는 기묘한 미소를 지으며 말문을 열었다.


“내 낭자의 얼굴빛을 보아하니 방금 전, 안 좋은 일을 겪었거나 당하셨나 봅니다. 이리 다른 사람에게 화풀이를 하는 걸 보니. 제 말이 맞지 않습니까?”


“화풀이 라니요? 저는 그저 있는 사실을 말 한 것 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어서 길을 내어주시지요.”


“흠. 제가 말실수를 했다면 너그러운 인품을 가지신 아리따운 분께서 먼저 이해를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이랑은 자신 앞에 있는 사내의 모습을 천천히 훑어보았다. 뭔가, 사람으로 하여금 경계심을 불러일으켰다. 어딘가 모르게 알 수 없는 속내를 풍기는 것이 가까이하기엔 다소 거리를 두는 편이 좋을 듯싶었다. 저 가식적인 미소하며 부자연스러운 입 역시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지요.”


천명은 곧 부채질을 멈추며 제 얼굴 앞에 눈만 빼꼼히 내놓으며 가까이 했다. 그가 곁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독특한 향이 이랑의 시선을 끌었다. 처음 맡아 본 향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께름칙했다. 더는 이 사내와는 우연히라도 부딪히고 싶지 않았다. 이랑은 서둘러 발걸음을 재촉했다.


알 수 없는 누군가에서 낯선 사내를 멀리하라는 신호를 느꼈다. 꽤나 먼 거리에서 신호를 보낸 건 젊은 땡중이었다. 넓은 삿갓을 푹 눌러 쓴 젊은 땡중 자공휘는 사실 협객(俠客)이었다. 그는 익명으로부터 사주를 받고 천명을 없애라는 지시를 따를 뿐 그에게 따로 원한 같은 건 두지 않았다. 하나, 여태껏 그 자의 만행을 들은 후 부터는, 범상치 않는 인물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동시에 쉽지 않겠다고 판단을 하며 한동안 땡중으로 위장을 하고 지켜보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천명의 곁으로 누군가 다가오는 걸 본능적으로 알아차린 광휘는 재빨리 지붕 위로 날아 올라갔다. 그때. 온통 검은색으로 뒤덮인 옷을 입은 사내가 옷에 달린 모자를 쓴 채 고개를 높이 추켜 올렸다.


“하늘은 무엇 하러 감상하느냐? 보아하니 내일 비 같은 건 내리지 않을 것 같아 보이는데. 혹, 비라도 내릴성 싶으냐?”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잠시 하늘빛이 어떤지 바라본 것입니다.”

하늘을 주시하고 있던 이괴는 이내 고개를 아래로 떨구었다.


“싱거운 녀석. 쯧.”


천명은 혀끝을 차며 부채를 곧바로 접었다. 그는 도포자락을 펄럭이며 평소 걸음보다 빠르게 걸었다. 그리고 지붕 위에 있던 자공휘는 날렵한 몸을 유유자적 움직이며 재빨리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이괴의 직감적(直感的) 감각은 어린시절부터 뛰어났다. 그런 그의 능력을 단 한 사람. 천명이 단번에 알아차리며 자신의 수하로 삼았다. 물론, 위기에 처한 자신을 구해준 것에 대한 보답도 있었다. 자신을 헤하려는 사람들로 부터 죽어가는 목숨을 천명은 구해주며 살려주었다. 그로 인해 세상의 빛을 보고 살 수 있게 되었다. 이괴에게 천명은 더할나위 없이 고마운 존재이며 평생의 은인이었다. 멀어져 가는 두 사람을 바라보는 자공휘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막중한 임무가 그에게 맡겨진 만큼 신중 할 필요가 있었다. 일단, 때를 기다릴 필요가 있었다. 섣불리 했다가는 거사는 커녕 오히려 제 몸을 조여 올지도 몰랐다. 천명이라는 놈의 옆에 수상쩍은 사내에 관해서는 들어본 적이 없던터라. 일단, 좀 더 지켜보는 봐야 했다. 그는 길 옆에 세워둔 말을 올라타며 그 길로 한양으로 향했다. 아직 세상은 밝은 빛으로 선명하게 드리웠다. 이대로 쭉 쉬지않고 빠른 속도로 내달린다면 날이 저물기 전에 도착 할 수 있지 몰랐다. 그는 힘껏 말의 고삐를 부여잡고 속력을 올렸다.

다그 닥 다그 닥. 말 발굽 소리가 이곳저곳에 울려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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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7. 달 밝은 밤. 두 사내의 은밀한 조우. +1 16.03.31 30 0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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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5. 화려함 속에서 살아가는 외로운 부용화 꽃 한 송이. +1 16.03.31 103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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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프롤로그#1. 만월(滿月)의 밤] +3 16.03.31 198 1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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