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의 순정에 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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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결
작품등록일 :
2016.03.31 08:14
최근연재일 :
2016.04.03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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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3.31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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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달 밝은 밤. 두 사내의 은밀한 조우.

DUMMY

연거푸 한숨을 내쉬며 마당 안을 기웃거리고 있던 강유는 이번에도 초희가 술시(戌 時)가 되어서도 집으로 돌아오지 않자 걱정스러운 마음에 석식(夕食)도 거르고 있었다. 전에 없던 행동을 하는 초희에게 무슨 심경 변화가 생긴 게 분명했다. 아니고서야 이렇듯 통금시간까지 가까워지는 동안 오지 않는 걸 보면 필시 뭔가 있었다. 그는 여전히 싱숭생숭한 마음에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 했다.


“어째서 아직도 깜깜 무소식인지.”


그는 밝은 달을 바라보며 혼잣말을 내뱉었다. 강유는 발길을 옮기며 대문 문을 반쯤 열어젖혔다. 겨우 사람 한 명 지나갈 공간만큼 문을 열며 밖으로 나갔다. 이내 양옆으로 갈라진 길을 벌 갈아 내다보며 초희의 그림자를 확인했다. 그러나 달빛에 비치는 사람의 그림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돌아오는 즉시, 무슨 헛바람이 불러서 전에 없던 행동을 일삼는 것인지 묻고 싶었다.


대체, 그녀를 이토록 늦게 귀가 시키는 이가 누구인지. 그는 다시 한 번 먹먹한 가슴을 쓸어내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또 조용히 소리 없는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다시, 반 시진이 지나갔다. 해시(亥 時)에 가까워질 무렵. 멀리 떨어지지 않는 곳에서 사람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한데, 한 명이 아닌 두 사람의 발자국 소리에 강유는 서둘러 그곳을 피해 담장 옆으로 몸을 숨겼다.


그는 곧바로 정면을 중시하던 몸을 옆으로 돌렸다. 이내 그의 미간이 잔뜩 구겨졌다. 그는 대문 앞에 서 있는 두 사람을 향해 눈에 힘을 주며 지켜보았다.


“집까지 바래 다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럼, 조심히 살펴 가십시오.”


초희가 등을 돌리며 발길을 옮기자 경은 그녀의 손을 잡아 자신의 곁으로 끌어당겼다. 힘없이 쓰러지듯 균형을 잃은 그녀의 몸은 휘청거리며 그의 가슴 안으로 들어갔다. 얼떨결에 본의 아니게 두 사람은 서로를 껴안고 말았다.


초희는 혹, 누구라도 이 관경을 목격한다면 어떤 불상사가 일어 날 줄 몰라 하며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반면, 그녀의 불안한 마음과는 달리 경은 가능한 한 시간이 허락한다면 조금만 더 그녀의 두근거리는 심장과 데일 것 같이 활활 타오르는 뜨거운 체온을 느끼고 싶었다. 생애 처음으로 아찔한 순간을 경험하는 두 사람이었다. 이미, 자신의 심장은 한 여인에게만 뛴다는 사실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그 여인은 바로...... 자신의 품에 안겨 있는 여인이였다.


달 밝은 밤. 두 사람의 은밀한 살갗이 닿는 첫 역사가 이루어졌다. 비록, 사내의 모습으로 자신의 앞에 있었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그녀를 향한 마음속 내면의 깊이였다. 단언하건대, 그 어떤 사내보다 더 그녀를 원하고 있었다.


“우리가 앞으로 어떤 인연을 만들어 가게 될지 모르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나에게 있어서 선비는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이오.”


초희는 눈을 멀뚱멀뚱 뜬 채 또 한 번 경의 입에서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을 들었다. 이윽

고 경은 초희의 몸을 감싸고 있던 팔을 천천히 풀었다.

초희는 몇 걸음 내디디며 대문 앞으로 향했다. 순간, 굳게 닫혀 있어야 할 대문이 반쯤 열려진 것을 알게 되자 곁눈질을 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누가 왔다가 간 것일까? 아니면, 대문을 제대로 닫지 않았나?’


그녀는 이내 안으로 발을 들여놓으며 조심스레 대문을 닫았다. 초희가 무사히 집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하자 경은 그대로 발길을 옮겼다.


“도둑고양이 같이 몰래 숨어서 훔쳐보는 꼴이라니.”


강유는 나직하게 혼잣말을 내뱉었다. 그리고 이런 자신의 모습이 처량했다. 처음부터 마지막 순간까지 쭉 지켜보는 내내 초희에게 회의심(懷疑心)이 들었다. 오랫동안 봐온 자신에게는 마음을 내어 주지 않고 저 사내에게는 쉽게 마음을 주는 것인지. 내일 날이 밝아 오는 대로 이것에 대해서도 물어보고 싶었다. 쉽게 입이 떨어질 리 만무하지만 묻고 싶었다. 자신을 밀어내는 이유를. 알고 싶었다. 그녀의 마음을. 이윽고 강유는 사내의 모습을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길 위에 서 있는 사람은...... 사람이 아니었다. 아니, 방금 전만 해도 분명 사람이었는데. 그의 눈에 짐승의 모습. 즉, 늑대 한 마리가 서 있었다. 강유는 제 눈을 의심하듯 양쪽 손으로 눈을 비비고 다시 쳐다봐도 사람의 모습으로 바뀌지 않았다. 그때. 늑대가 슬금슬금 자신이 있는 쪽으로 다가오자 담장 옆에 몰래 몸을 숨겼던 강유가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앞으로 걸어오던 낯선 사내가 자신의 앞을 막아서자 늑대로 변한 경은 ‘움찔’ 거리며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서로의 존재를 모르고 살아가던 두 사람은 그날 처음으로 맞닥뜨렸다. 강유가 먼저 입을 열었다.


“허튼, 수작 부릴 생각 말아라. 대체 네놈 정체가 무엇 잇길래. 인간의 모습을 하였다가 이렇듯 짐승의 모습으로 바뀐 것이냐?”


“......”


경은 선비의 물음에 선뜻 대답을 하고 싶지 않았다. 좀 더 지켜보기로 했다.


“대체, 네놈의 정체가 무엇이냐? 사람인 것이냐? 아니면 짐승인 이냐? 혹, 그것도 아니라면, 반인반수인 것이냐?”


다음 물음에 경은 제 입을 뗐다.


“그 이유에 대해 알려고도, 오늘 나를 본 일에 대해 궁금해하려고도 하지 마시오. 선비께 사실을 얘기한다고 해서 내 말을 믿을지 안 믿을지 내 알 수 없으니. 더는 내 발목을 잡지 말고 이대로 보내주면 좋겠소.”


늑대의 모습으로 바뀐 경은 네 발을 움직이며 앞으로 걸어갔다. 그때, 강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깐, 하나 묻고 싶은 것이 있소.”


경은 앞으로 내딛던 앞발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 아이와 어떻게 알고 지내는 사이인 것이오?”


“내가 어떤 답을 해주기 바라는 것이오? 아니면 내게서 어떤 대답을 듣고자 하는 것이오?”


“내 질문에 먼저 답하시오. 그 아이와 무슨 관계냐고 먼저 물었소.”


“사사로운 감정에 관한 일은 내 관여할 바 아니니 불가피한 답변은 묵묵부답(默默不答)으로 일관하리다. 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 하였지만 내 선비를 보니. 사람 좋은 인상을 하고 있는 걸로 봐서 나쁜 사람 같아 보이지 않소. 그러니 오늘 있었던 일은 세간(世間)에 나가는 일 없도록 해주셨으면 좋겠소. 나도 이런 모습으로 살아가고 싶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니. 내 뜻을 조금이나마 헤아려 주길 바라겠소.”


막상 대면하고 보니 상대방의 술수에 넘어가고 있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대체, 저자는 무슨 뜻하지 않는 일을 겪었기에 늑대의 모습으로 하고 있는 것인지? 한데, 방금 전, 세간(世間)에 나가는 일 없도록 해달라니. 그렇다는 건. 그 사실을...... 강유 혼자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 강유는 오늘을 시작으로 맞은편에 늑대의 모습을 하고 있는 선비를 예의주시했다. 강유의 눈빛은 여러 의미가 담겨 있었다. 한 편, 경은 말하지 않아도 맞은편 선비가 자신을 향해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건, 경멸의 눈빛이었다.


이제,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해 첫 대면을 하며 불꽃이 튀는 서막이 올랐다는 듯 만월의 밤. 잠시 먹구름으로 가려진 사이로 붉은 달이 모습을 드러냈다. 강유는 섣불리 행동을 하지 않기로 했다. 그는 한 발짝 옆으로 물러서며 길을 내어주었다. 경은 그 즉시 달리며 마을을 벗어나 드넓은 광야를 질주했다. 그는 생각했다. 자신이 늑대로 변한 다는 건 자신의 벗인 이율 이외는 알아서도, 알게 해서도 안 된다는 사실을 숨기고 있었건만. 어째서 또 다른 사람에게 들킨 것인지. 그 길로 그는 제 벗에게로 향했다.


그에게 오늘 밤의 자신에게 닥친 위기를 알려야 했다. 두려웠다. 세간에 새어나간다면 필시 그는 산목숨을 부지할 수 없을 것이다. 자신을 잡기 위해 관아에서 포졸들을 풀어 그를 헤치려 할 것이고 또 한 벽보(壁報)를 붙여 현상금을 내 걸며 보는 즉시, 관아에 알리라고 할 게 뻔했다. 제발, 오늘을 무사히 넘기기를...... 하고 그는 그 어떤 날보다 간절히 원했다. 이윽고 경은 날렵한 늑대의 몸으로 제 벗의 집으로 재빨리 달렸다.


한편, 강유는 집으로 돌아온 후에도 직접 두 눈으로 확인까지 한 마당에 여전히 아리송했다. 그리고 사람 말을 하고 있는 늑대라니. 이윽고 불 꺼진 방 안에서 잠자리에 들 때까지도 그는 오늘 밤, 겪었던 일을 쉽게 떨쳐버리지 못하고 깊게 생각하느라 도통 잠을 못 이루었다. 또 한 편으로는 초희를 알고 있는 사내라니. 내일 초희에게 물어볼 생각을 하였지만. 곧바로 떨쳐냈다. 어쩌면 물어보지 않는 편이 더 낫지 싶었다. 괜히, 물었다가 초희가 오늘 일에 대해 자신을 더 멀리하지 않을까? 염려하는 마음에 그는 그 일에 관해서는 가슴 한 편에 묻어 두었다. 그리고 잠이 오지 않는 상태로 그대로 눈을 감았다. 두 눈을 감아도 초희의 얼굴이 자신을 향해 바라보고 있는 듯했다.


‘대체, 너를 어찌하면 좋단 말이냐.’


그의 눈가에 촉촉한 눈물이 살짝 맺혔다. 자꾸만 초희의 대한 집착 어린 생각으로 인해 한동안 깊은 잠을 이루지 못 하는 강유였다.

한 편, 벗의 집으로 도착한 경은 방 안에서 헌에게 이곳에 오기 전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뭐? 늑대로 변한 자네의 모습을 본 자가 있다고? 아니, 어쩌자고 들킨 건가? 내 필시 조심하라 일렀거늘.”


“나도 지금 그 일에 대해 목이 바싹 타서 미칠 지경이네.”


“흠,”


헌은 팔짱을 낀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좀처럼 눈을 뜨지 않고 명상에 잠긴 사람처럼 행동하는 벗을 바라보니 이번에도 딱히 방도가 없는 듯했다. 대체, 그 자는 어째서 자신을 보게 된 것인지. 분명, 그곳엔 그녀와 오직 자신뿐이었다. 한고비를 넘기면 또 다른 고비가 찾아오니 하루도 편할 일 없었다. 그때, 이 각쯤 되어서 헌이 눈을 떴다.


“내 깊게 생각을 해 보니......”


경은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그의 대답을 들었다. 헌이 다음 말을 이었다.


“내 생각이네 만. 자네의 모습이 늑대로 변한다는 사실을 관아에 고발하는 일은 그리 쉽게 하지 못 할 걸세.”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인가?”


“분명, 자네는 그 자에게 자신의 모습을 본 것에 대해 세간에 나가지 않게 해달라고 하지 않았나? 그 자는 아마 자네가 늑대로 변한 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 본인뿐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네. 그러니......”


“허면?”


헌은 얼굴에 가벼운 웃음이 번졌다.


“누가 그 자의 말을 믿어 주겠나? 내가 포졸이라면 그 자의 말엔 전적으로 수긍하지 못 할 걸세. 섣불리 행동했다가 오히려 되려 거짓을 고한다고 그 자에게 추궁을 할 것이네.”


“역시. 자네라면 명답을 내놓을 줄 알았지. 문득, 공자께서 한 말이 생각이 나는 군. 유익한 친구 셋, 정직한 친구. 성실한 친구. 박학다식하는 친구는 유익하고, 해로운 친구 셋. 허세를 부리는 친구. 아첨하는 친구. 감언이설 하는 친구는 해롭다.라고. 유익한 친구 셋 중에 자네는 박학다식하는 친구가 아닌가. 역시, 현명하군.”


“그러면 자네는......”


“나야, 자네처럼 유익한 친구에 속하지. 설마, 해로운 친구이겠나?”


“자네는 허세...를...... 부리는 친구가 아...... 닌 가? 늘 풍류에 젖어 살지 않나? 아, 그러고 보니 저번에 어떤 선비와 알게 되었다고 했었지?”

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술도 마시는 사이로 발전했네.”


“그......래? 언제 한 번 나도 소개 좀 시켜주게. 셋이 다 같이 모여서 술 한잔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군."


“그건, 좀 곤란할 것 같네.”


“아니, 왜? 술 한잔하다 보면 술기운에 금세 교분(交分)이 두터워 질텐데.”


“평소에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이라서. 나와도 안면이 트이고 나서 이제야 조금 친해진 정도라네.”


“한데, 방금 전. 술도 마시는 사이라고 하지 않았나? 흠, 부끄러움을 타는 선비라. 아니, 무슨 사내가 여인처럼 부끄러움을 그리 탄단말인가?”


경은 감출 수 없는 표정을 애써 숨기며 표정 관리에 나섰다. 경은 제 앞에 앉아 있는 벗에게 초희를 사내가 아닌 자신의 정인으로 소개하고 싶었다. 두 사람은 오늘도 함께 담소를 나누며 야심한 밤을 보냈다.


다음 날, 날이 밝아 오자. 거짓말처럼 그의 몸은 다시 원래대로 바뀌었다. 경은 다시 돌아온 제 몸을 이끌고 새벽 공기와 이슬을 맞으며 곧장 집으로 향했다. 이윽고 자신의 집 앞으로 발길이 닿자 대문 쪽이 아닌 담장 쪽으로 향했다. 그는 가뿐히 담장을 넘으며 서둘러 사랑채로 향했다. 그리고 몸종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숨죽이며 제 방으로 건너갔다. 그는 곧바로 이불 위로 다리를 쭉 뻗으며 밤 새 이루지 못 잔 잠을 이루며 금세 골아 떨어졌다.


새벽아침이 밝아 왔다. 어느덧 해는 하늘 위로 솟아나 있었다. 새벽 사이로 잠깐 동안 효우(曉雨)가 내렸다. 푸른 잎사귀 위에 투명하게 맺힌 빗물은 금세 땅으로 떨어졌다. 다시 다른 잎사귀 위에 맺힌 빗물이 땅으로 떨어지기를 몇 번 반복하자 방 안에 있던 초희가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정갈하게 땋아 내린 머리카락이 허리에 길게 닿아있었다.


이제, 곧 있으면 따뜻한 봄 날씨에서 입하(立夏)로 접어든다. 그녀는 곧장 마루 위에서 내려오며 장돌 위에 높여진 꽃신을 신고 부모님께 문안인사를 드리러 마당 아래로 내려갔다. 이윽고 안채를 벗어나며 마당 안으로 향했다. 그때, 마당 한가운데서 빗자루 질을 하고 있는 몸종을 발견하며 곁으로 다가섰다. 몸종은 초희를 알아보고 머리를 숙이며 아침 인사를 건넸다.


“한데, 어젯밤 대문이 반쯤 열려 있던데. 문을 제대로 확인도 하지 않으면 어떡하는가?”


“네? 그럴 일이 없을 텐데요? 쉰네, 여러 번 확인하고 또 확인하였습니다.”

몸종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내비쳤다.


“그 말이 사실이냐?”


“암요. 그렇고말고요. 쉰네 가 아씨께 뭣 하러 거짓을 고하겠습니까?”


“그래, 알겠네.”


초희는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할 발짝 발걸음을 뗐다. 몸종은 다시 빗질을 하며 마당 안을 쓸었다.


‘대체, 누가 밤중에 왔다 간 것인지?’


그때, 문득 한 사람이 그녀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자신의 집을 자유자재로 들락거리는 사람은 오라비인 강유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또, 자신이 귀가를 늦게 한 것을 알고 기다렸다가 간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고 반쯤 문을 열어 놓고 나가다니. 평소의 강유라면 그럴 리 만무했다. 이내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던 궁금증을 해결 한 듯 사랑채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오늘은 또, 어떤 하루가 기다리고 있을지. 뭐, 어제와 매한가지이겠지만 하루가 저물고 새로운 태양이 떠오르면 잔뜩 기대에 부풀었다.


초희는 다시 밖으로 나갈 채비를 했다. 이내 대문 밖으로 나온 초희는 서사가 있는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오늘은 서사로 다른 목적이 있어 향했다. 일전에, 서사 주인이 그녀에게 서책 한 권 써보지 않겠냐고 제안한 것이다. 그녀의 글재주를 또 어디서 익히 주워들은 것인지. 글을 쓰는 동안 서사 안을 특별히 그녀에게만 내어주고 원 없이 서책들을 살펴보라는 달콤한 제안을 해오는 바람에 하는 수 없이 승낙했다. 딱히, 할 일도 없고 다른 여인들처럼 함께 다도나 하면서 담소를 나누는 일엔 일가견이 없었다.


그리고 다도라면 많이 서툴렀다. 그런 복합적인 이유를 들먹여서 그녀는 그런 자리는 피해 다녔다. 흥미가 없는 일에는 나서고 싶지도 개의치 않았다. 하지만, 다른 한 사람. 자꾸만 신경이 쓰이는 한 사내가 그녀의 곁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잔뜩 미소를 머금는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따갑도록 느껴졌다.


“여기서 또, 보게 되는 구려.”


“그러게 말입니다.”


“어디로 가는 것이오”


“제가 왜 선비님께 일일이 보고를 해야 합니까?”


“그야, 우리가 제법 가까운 벗이기도 하니 물어보는 게 또한 알려주는 게 당연한 거 아니오? 한데, 보아하니 서사로 향하는 길 같은데? 아니오?”


경은 확신에 찬 눈빛을 내비치며 눈썹을 치켜떴다. 그 물음에 초희는 대답 대신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며 실쭉 꺼렸다. 무슨 사내가 상대방의 마음을 훤히 들여다보는 능력이 뛰어난지. 혹, 남몰래 독심술(讀心術)이라도 하는 것인지......

다시, 경이 말을 이었다.


“나도 거기 가던 참이었소만. 우리는 아무래도 평생을 함께 해야 할 것 같소.”


“그게...... 무슨? 말 같지 않은 소리입니까?”


“그냥, 그렇게 알고만 있으면 되시오. 한데, 서사로 갔다가 끝나고 뭐 하시오?”


“오늘은 쭉 서사 안에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아니. 어째서? 그러지 말고 나와 함께 차나 마시면서 담소나 나누지 않겠소?”


“제가 선비님의 소유물도 아니고 매번 만나 기만하면 자꾸만 저를 왜 이리 귀찮게 하십니까? 저도 제 나름의 사생활이 있습니다. 이번엔 절대로 그리 못 하겠습니다. 마시고 싶으시면 혼자서 마시면 되지 않습니까?”


“우리 사이가 고작 이것 밖에 안되는 사이었소?”


“저희가 언제부터 친했다고 그리 말 하십니까?”


“정녕, 내가 선비를 귀찮게 하였소? 아니면, 내가 선비에게 귀찮은 존재인 거요?”

초희는 되려 물어오는 경의 행동에 말문이 막혔다.


“......”


“혼자서 무슨 재미로 차를 마신단 말이오? 하물며, 술도 혼자 마시면 청승맞다고 하는데. 차라고 별수 있소?”


이 사내의 옹고집은 꺾어보려 해도 무방비 상태였다. 경은 초희가 말할 틈을 주지 않고 다시 말을 이었다.


“선비의 나이 낭랑 18세가 아니오. 밝을 낭(朗), 명랑할 랑(㫰). 젊음을 맘껏 즐길 수 있다는 뜻이지 않소.”


“그게, 그런 뜻이었습니까?”


“어차피 하나뿐인 인생. 원 없이 즐기다 가는 것도 나쁘지 않소.”


“......”


“난 말이오. 늘 반복되는 삶에 얽매이고 싶지 않소.”


“그래서 이렇다 할 관직에도 오를 생각도 하지 않고 풍류를 즐기시는 겁니까?”


“선비의 눈에도 내가 그렇게 보인 것이오?”


여태, 그걸 모를 리가 있습니까? 딱, 봐도 알만한데. 그녀는 속으로 내뱉으며 겉으로는 미소로 답했다. 이윽고 두 사람이 서사 안으로 몸을 숨기자 길모퉁이에 서 있던 한 사내의 옅은 그림자가 깔려있었다. 언제부터 두 사람을 미행한 것인지. 한참을 그곳에 서 있던 선비는 등을 보인 채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고는 자연의 풍경을 감상하며 유유자적(悠悠自適) 걸어갔다. 그리고 그 뒤를 삿갓을 쓴 젊은 땡중이 몇 걸음 앞서 걷고 있는 선비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서 있다가 발길을 옮겼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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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14. 닿을 수 없는 그대. +1 16.04.03 91 0 21쪽
15 #13. 돌연변이의 탄생(2) +1 16.04.03 32 0 15쪽
14 12화 돌연변이의 탄생(1) +1 16.04.02 76 0 29쪽
13 #11. 수수께끼의 선비(2) +1 16.04.02 45 0 21쪽
12 #10. 수수께끼의 선비. +1 16.04.01 57 0 21쪽
11 #9. 비와 당신...... 그리고 +1 16.04.01 39 1 21쪽
10 #8. 천명(天命) +1 16.03.31 64 0 16쪽
» #7. 달 밝은 밤. 두 사내의 은밀한 조우. +1 16.03.31 30 0 19쪽
8 #6. 님과 함께...... 달 밤을 거닐며. +1 16.03.31 64 0 21쪽
7 #5. 화려함 속에서 살아가는 외로운 부용화 꽃 한 송이. +1 16.03.31 103 0 11쪽
6 #4. 흩날리는 벚꽃 잎이 떨어지는 어느 멋진 봄날. +1 16.03.31 28 0 17쪽
5 #3. 앙칼진 새끼 고양이 +1 16.03.31 22 0 10쪽
4 #2. 한 여인과 두 사내 +1 16.03.31 92 0 21쪽
3 #1. 남장여자 & 묘(妙) 한 선비 +1 16.03.31 85 0 13쪽
2 [프롤로그] #1-2 늑대 선비. +3 16.03.31 86 0 12쪽
1 [프롤로그#1. 만월(滿月)의 밤] +3 16.03.31 198 1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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