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6

무료웹소설 > 자유연재 > 전쟁·밀리터리

D디귿
작품등록일 :
2018.01.08 19:24
최근연재일 :
2018.04.02 14:34
연재수 :
17 회
조회수 :
1,647
추천수 :
1
글자수 :
121,782

작성
18.03.19 18:45
조회
79
추천
0
글자
9쪽

귀신 종규 - 사토미

DUMMY

득 메운 먹구름은 달빛 한 움큼, 별빛 한 조각도 허락하지 않았다. 그 덕에 골목을 비추는 가로등 불빛이 유난히 밝아보였다. 하지만 언제 쏟아져도 이상할 것 없는 하늘과 늦은 시간인 덕에 유난히 밝은 가로등 아래를 거니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사람은 고사하고 고양이 한 마리, 쥐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는 게 죽은 도시처럼 을씨년스러웠다.


또각또각.


가로등 빛조차 닿지 않는 골목 깊은 곳에서 하이힐 딛는 소리가 메아리 쳤다. 늦은 시간과 골목의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 하이힐의 날카로운 소리는 규칙적이며 여유로웠다. 건장한 남자도 빨리 벗어나고 싶을 만큼 음산한 골목을 걷는 여자의 걸음 소리라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깊은 어둠 속에서 점점 가까워진 소리의 주인공이 가로등 아래로 모습을 드러냈다. 흰색 블라우스에 검은색 상의, 무릎 위까지 올라오는 검은색 스커트에 화려하지 않은 핸드백을 왼쪽 어깨에 걸친 젊은 여자였다. 가슴까지 오는 검고 탐스러운 긴 생머리의 여자는 살짝 고개를 숙은 채로 천천히 가로등 아래를 걸었다.


뚜벅뚜벅.


여자의 날카로운 하이힐 소리 너머로 남자의 구둣발 소리가 울렸다. 언제부터 울리고 있는지 모를 남자의 발소리는 여자의 발소리와 분명한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소리를 죽이려는 듯 조심스러우면서 빠르고, 급했다. 그건 분명 여자를 뒤쫓는 소리였다. 골목 양 옆으로 차가 주차되고도 차 한 대가 여유롭게 지나갈 정도로 넓은 길이었지만 두 사람의 발자국 소리는 선명하게 골목을 울렸다.


여자의 귀에도 남자의 귀에도 서로의 발자국 소리가 들릴 게 분명했다. 하지만 어느 쪽도 상대의 소리에 신경을 쓰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여자도 남자도 지금까지 걸어온 것처럼 같은 소리의 강약과 간격을 유지하고 있었다.


남자의 모습도 가로등 아래 드러났다. 백 팔십을 훌쩍 넘는 훤칠한 키에 기름을 발라 깔끔하게 뒤로 넘긴 머리, 머리 위에서 쏟아지는 가로등 빛에 얼굴 가득 그림자가 드리워 이목구비를 알아볼 수 없었지만 말끔하게 차려입은 밤색 양복차림은 눈의 띄었다.


회사원 같기도 하고 야쿠자 같기도 한 사내와 앞서 걷는 여자의 거리는 조금씩 좁혀졌다. 여자의 입장에서 보면 분명 뒤에서 걷는 남성의 발자국 소리가 가까워지는 것을 느꼈을 텐데 어떤 반응도 드러내지 않았다. 남자도 여자의 경계 유무를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어느새 두 사람의 거리는 닿을 듯 가까워졌다. 만약 남자가 어떤 의도가 있어 손을 뻗으면 어깨에 닿을 정도였다. 그 넓은 골목을 걸으며 바로 뒤를 바짝 따라 걷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남자는 여자를 그냥 지나쳐 버렸다. 여자는 몸이 닳을 만큼 가깝게 다가온 남자가 자신을 지나쳐 앞지르는 것을 보고서야 고개를 들었다.


갸름한 얼굴에 짙게 화장된 이목구비는 서양인들이 생각하는 전형적인 일본 미인의 얼굴이었다. 가늘게 찢어진 눈하며 높고 길진 않지만 선이 또렷한 오뚝한 코, 도톰한 입술까지 누가 봐도 매력을 느낄만한 얼굴이었다. 거기에 감정이 없는 듯 정적인 표정까지 더해져 몽환적인 매력을 풍겼다.


“날 찾아온 게 아닌가요?”


여자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앞서 걷던 남자가 걸음을 멈췄다.


“당신이 시바인가?”


여자의 일본말에 남자의 대답은 홍콩 억양이 강한 영어였다.


“사람 잘못 보셨습니다.”


여자의 목소리는 표정과 마찬가지로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건 남자의 목소리나 말투도 마찬가지였다.


“실수 했군.”


남자는 짧게 대답하고 다시 걸음을 옮기려 했다. 하지만 채 한 걸음도 떼기 전에 걸음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살기. 마치 목덜미를 노리며 숨을 죽이고 있는 굶주린 범의 아가리 앞에 선 것과 같은 살기가 온몸을 감쌌다.


“며칠 전부터 주위를 맴돌던 사람이 당신이군요. 목적을 말씀해 주셔야겠습니다.”


“다른 이와 착각했다.”


“며칠을 지켜보면서도 알아보지 못하다가 이제와 찾던 이가 아님을 어떻게 확신하십니까?”


여자의 살기는 더욱 거세졌다. 조금이라도 이상한 낌새를 보이면 목덜미를 뜯을 듯 했다.


“당신이 아니라고 했다.”


사무적이다 못해 기계적인 말투였다.


“고작 그 한 마디를 믿습니까?”


“······.”


남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당신에게 노출된 내 일상을 어떻게 보장하시겠습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난 당신을 잊을 것이다.”


흥.


여자는 콧방귀를 뀌었다. 원래 말투가 그런 것인지 긴장을 감추려는 것인지 눈앞의 사내는 기계적인 말투를 유지했다. 그 말투는 묘하게 의심이 생기지 않게 했지만 그렇다고 신뢰가 가는 건 아니었다. 처음 보는 사람의 말만으로 안전을 확신할 만큼 어수룩하진 않았다.


“당신 같으면 그 말을 신용할 수 있겠습니까?”


“······.”


“죄송하지만 당신이 선택한 일에 대해 스스로 책임지셔야겠습니다.”


여자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손을 뻗었다. 남자를 향해 뻗어나가는 여자의 소매에서 반짝이는 물체가 빠르게 빠져나와 손에 들렸다.


그것은 폭은 엄지 굵기와 비슷하고 약 이십 센티미터 정도의 얇고 날카로운 쇠붙이였다. 여자의 손에 들린 쇠붙이는 남자의 왼쪽 등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머리를 노리기엔 키 차이가 너무 많았기 때문에 등 뒤에서 심장을 직접 찌를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계획은 성공하지 못했다.


퍽!


여자는 명치에 느껴지는 엄청난 충격으로 터져 나오려는 비명을 이를 악물고 참았다. 하지만 참은 건 비명뿐이었다. 몸은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뒤로 날아가 바닥을 구르는 신세가 됐다.


“으윽······.”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눈앞도 캄캄해져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 분명 칼날은 사내의 등에 꽂히기 직전인 것까진 기억이 났다. 하지만 다음 기억은 가슴에 느껴진 충격과 고통뿐이었다.


여자는 간신히 정신을 추스르며 고개를 들었다. 만약 상대가 살의를 가지로 있었다면 짧게나마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순간에 죽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상대가 아직 자신을 살려줬다고 확신할 수도 없었다.


“군인인가?”


어느새 다가온 사내의 말투는 여전히 기계적이었다.


“······.”


해상 자위대 장교에서 대테러특수부대 교관으로, 그리고 아직 대외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정보국 요원으로 발탁됐다.


패기 넘치던 젊은 여군 장교는 기대에 가득 차있었다. 하지만 정작 정보국 요원이 된 이후로 맡게 된 임무는 영화 속에서 보던 미화된 스파이 임무가 아니었다.


이전의 기록은 모두 삭제되고 사토미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다. 성형수술로 얼굴과 일부 체형까지 바꾼 그녀의 주된 임무는 암살이었다. 명령이 떨어지면 그게 누구라도 처리해야 했다.


설사 그것이 어린아이라도······.


아직 서른도 되지 않은 젊은 요원의 정신은 스스로 죽인 다섯 살 어린아이의 차가운 주검을 보는 순간 돌아올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졌다. 더 이상 요원일 수 없었다.


“정보국에서 나온 건가요?”


남자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가로등을 등진 덕에 얼굴이 정확히 보이지 않았지만 아마 아무런 표정이 없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어째서······.”


“사람을 잘못 봤을 뿐이다.”


거짓말을 하는 걸로 보이진 않았다.


“그 게 단가요?”


“······.”


남자의 침묵은 긍정의 의미로 보였다.


“하······.”


사토미는 몸에 긴장을 풀며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하루하루가 두려움의 틀에 갇힌 긴장의 연속이었다. 식사할 때, 용변을 볼 때도, 잠에 빠져있는 순간에도 긴장을 놓아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목전까지 다다랐던 죽음이 물러간 것을 확인하는 순간 의지와 상관없이 온몸 가득했던 긴장이 날숨처럼 몸에서 빠져나갔다.


“미안하게 생각한다.”


남자는 몸을 돌리며 말을 이었다.


“당신을 쫓던 눈은 나 하나만이 아니었다.”


몸 밖으로 빠져나갔던 긴장이 순식간에 제자리로 돌아왔다. 사토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정말인가요?”


“······.”


이번엔 확실히 정보국일 것이다. 아니면 적어도 자신을 노리는 누군가가 분명했다. 그동안 그들이 알고도 모른 척 했던 건지, 이제야 자신을 찾은 건지 알 길도 없었고 중요하지도 않았다. 단지 이제 더 이상 숨을 곳도, 방법도 남아있지 않은 막막한 현실뿐이었다.


“귀신이 될 수 있겠는가?”


“네?”


작가의말

지인이 놀러왔습니다.

이 나라에 처음인 지인을 위해 주말이 더 바쁘네요..
그래도 오랜만에 제가 좋아하는 장소를 다시 찾을 수 있어서 좋습니다.
그나저나 내일부터 사나흘 비가 많이 온다고 합니다.
그분도 운 참 지지리도 없나봅니다ㅋㅋㅋㅋㅋ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에피소드6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7 귀신 종규 - 히로(#사토미) 18.04.02 47 0 17쪽
» 귀신 종규 - 사토미 18.03.19 79 0 9쪽
15 울지 못하는 광대 - 2 (평범할 수 없는 이의 평범한 일상) 18.03.10 82 0 20쪽
14 울지 못하는 광대 - 1 18.02.22 80 0 17쪽
13 외계인 납치설 18.02.18 82 0 18쪽
12 불가능한 현실 18.02.11 115 0 12쪽
11 프롤로그 18.02.04 71 0 9쪽
10 감시자 - 경고 18.02.01 85 0 19쪽
9 뺨 맞은 남자의 어줍잖은 꼼수 18.01.30 255 0 17쪽
8 의도 속 재회 18.01.26 111 0 15쪽
7 잘 생긴 남자가 살아가는 법 18.01.24 102 0 11쪽
6 감시자 - 뒷골목 삼겹살 집 18.01.23 70 0 19쪽
5 "아현" 18.01.21 113 0 10쪽
4 "예" 18.01.14 75 0 9쪽
3 Santiago de Compostela 18.01.12 70 0 29쪽
2 제작 발표회 18.01.09 96 0 17쪽
1 레온(Leon) 18.01.08 114 1 19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