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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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디귿
작품등록일 :
2018.01.08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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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02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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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2.01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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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시자 - 경고

DUMMY

아현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취기로 어지러웠던 예의 머릿속은 조금씩 맑아지고 있었다. 거기에 유치하다 못해 어이가 없을 정도로 황당한 제강의 꼼수에 기가 차 이야기를 듣는 동안 헛웃음을 몇 번씩 토해냈다.


“그렇게 사귀게 된 거라고?”


“네. 진짜 유치하죠?”


“내가 다 창피해서 몸이 오그라드는 것 같다.”


“창피하게 만들어서 미안하다.”


언제 돌아왔는지 제강이 의자에 앉으며 비아냥거렸다.


“어디 갔다 온 거냐?”


“앞에 잠깐.”


제강은 별 거 아니라는 듯 짧게 대답하곤 다시 말을 이었다.


“예가 이런 반응을 보이는 거 보니까 조목조목 자세히도 얘기 했나봐.”


“왜~? 얘기 들려주기 싫었어?”


아현도 술이 꽤 취했는지 살짝 혀 꼬부라진 소릴 냈다.


“요 맹추야! 뭐 대단한 일이라고 그런 걸 일일이 얘기 하냐? 그냥 우리 둘만 알고 있으면 되지.”


“뭐 어때. 이미 지난 일이잖아.”


그렇지 않아도 큰 눈을 더욱 동그랗게 뜨고 말똥말똥 쳐다보는 아현을 보며 얕은 한숨을 쉰 제강은 아예 시선을 예에게 돌렸다.


“괜찮냐? 많이 취한 것 같다.”


“조금 전까진 죽을 것 같았는데 네 흑역사 듣다 보니까 다 깼다.”


“그래. 놀려라. 놀려. 내가 더 재미난 얘기 해줄까?”


“방금 것보다 재밌는 얘기가 있다고?”


제강은 노골적으로 놀리는 예의 말투를 무시하고 입을 열었다.


“이 녀석 완전 여우야. 여우. 그때 식당에서 만나서 뺨 맞은 뒤에 자리에 앉아서 얘기 할 때 이미 눈치 챘더라. 내가 그 순례길을 관계에 이용하고 있다는 걸.”


“무슨 말이야?”


예는 제강과 아현을 번갈아 쳐다봤다.


“내가 자기한테 마음이 있다는 건 아현도 알고 있고, 자기가 나한테 호감을 갖고 있는 걸 내가 알고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어. 그럼 이제 서로 각자의 감정만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되는 상황에서 내가 어줍지 않은 변명만 계속 늘어놓은 거지. 그게 이상해서 산티아고에서 처음 만난 날의 대화부터 잘 생각해 봤대. 그랬더니 내가 관계나, 감정, 우연이나 인연 등을 이야기할 때 카미노의 기적을 계속 강조하더라는 거지. 난 그것도 모르고 카미노와 연관 지어서 이야기를 완성하려고 발버둥 치고 있었던 거야.”


“결국 아현이 손바닥 위에서 헤엄치고 있었던 거네?”


“내가 쪽팔려서 진짜······.”


“옛날 이제강이 아니구나. 너도 이제 끝났다 야.”


“그리고 또 하나 재밌는 건, 얘 중학교 때까지 배구 선수였단다. 그런 애가 어떻게 사람 뺨을 때릴 생각을 하냐? 대낮에 별 본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에이, 오빠. 미안해. 설마 아직도 담아두고 있던 거야? 이리 와봐. 내가 호 해줄게. 호.”


상 위에 놓인 빈소주잔을 빙글빙글 돌리던 아현의 갑작스런 애교에 제강은 예의 눈치부터 살폈다. 예상대로 예의 눈빛은 싸늘했다.


“적당히 해라. 상 엎어버린다.”


* * *


늦은 새벽 태양을 흉내 내듯 뿜어져 나오던 도심의 조명은 하나둘 자취를 감춰가고 있었다. 아직 제 모습을 지키고 있는 조명 아래를 걷는 사람들의 수도 현저히 줄어들었다.


식당에서 나와 아현을 택시에 태워 보낸 제강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두 개비를 입에 물어 불을 붙이고 하나를 예의 입에 물렸다.


“독한 놈. 아현이 있다고 지금까지 담배를 안 핀 거냐?”


“개 코다. 개 코. 만나기 이틀 전에 핀 것도 맞추더라.”


“오늘 보는 이제강은 너무 낯설다.”


“그러냐?”


제강은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렇게 좋으냐?”


“······.”


“네가 아현이한테 어떤 매력을 봤는지 모르겠지만 눈이 가는 것만은 확실하더라.”


“무슨 소리야?”


“너도 그랬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러니까 뭐가?”


정작 필요한 이야기는 하지 않고 계속 말을 돌리는 예가 답답했다.


“아현이 처음 봤을 때 그냥 시선이 가지 않았어? 마치 꼭 봐야 할 사람을 본 것처럼 말이야.”


제강은 예도 같은 것을 느꼈단 사실에 놀라 바로 대답을 하지 못했다.


“서점에 들어갔을 때 내 의지완 상관없이 아현이에게 시선이 갔어. 내 취향도 아니고, 예쁘긴 하지만 후광이 비출 정도의 미인도 아닌데 왜 그랬는지 계속 생각해 봤는데 도무지 모르겠더라.”


제강도 같은 생각을 무수히 많이 했다. 산티아고에서 아현이 앞을 지나갈 때 무의식적으로 시선이 향했고, 평소에 느껴보지 못한 강한 끌림의 원인에 대해 계속 생각했다. 하지만 아직도 그 답을 찾지 못했다.


“고기 집에서 같이 앉아서 술을 마실 때도 몰랐는데, 네가 나갔다가 들어오니까 알겠더라.”


“그래? 뭔데?”


수많은 생각 속에서 찾지 못하고 결국 포기해 버린 것에 대한 답이 눈앞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조급해져 예를 다그쳤다.


“그 전에 하나만 묻자.”


답이 늦어지는 것이 답답했지만 영영 돌아오지 않을 곳으로 떠나는 것도 아니니 기다리기로 했다.


“뭔데?”


“아현이 직업이 뭐야?”


“직업? 그건 갑자기 왜?”


“다 이유가 있으니까 잠자코 대답이나 해봐.”


고기 집에서 나와 술에 취해 비틀 거리며 아현과 농담을 주고받으며 밝은 목소리로 떠들던 예의 모습은 사라지고 없었다. 지금 제강의 눈앞에는 작업에 임했을 때와 같은 일말의 감정도 섞이지 않은 진지한 예의 모습만 있었다.


“지금은 카페에서 시간제 근무 하면서 미술학원 다녀.”


여전히 굳은 예의 표정에 슬며시 불안한 마음이 피어올랐다.


“그럼 그 전엔 무슨 일 했어?”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 했대. 사람 아파하고 죽는 거 보는 게 힘들어서 그만뒀다는 거 보니까 아마 종합병원에 있었던 게 아닐까 싶어.”


“아······.”


예는 짧은 탄식과 함께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뭐야, 답답하게 그러지 말고 똑바로 말 좀 해봐. 이 새끼는 생전 처음으로 여자 친구 보여줬더니 축하는 못해줄망정 사람 불안하게 겁이나 주고 그러냐.”


조금 전 예의 한숨이 답답함을 풀기 위한 한숨이 아니라 안도의 한숨처럼 들렸다. 그래서 일부러 장난스럽게 말했지만 그렇다고 불안함이 완전히 해소되진 못했다.


“우리랑 같은 냄새가 났어.”


“······.”


그 말의 의미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살(殺)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의 몸에선 특유의 냄새가 난다.


죽음, 피, 공포, 두려움 같은 냄새.


그것은 말 그대로의 향(香)은 아니다. 오감 중 어떤 것으로 표현하기 어렵고, 어쩌면 오감 모두로 느끼는 것일 수도 있다. 정확히 어떤 감각이라고 정의 내리기는 어렵지만 그것의 느낌은 냄새에 가까웠기에 일반적으로 냄새라 했다. 수많은 인파 속에서도 같은 냄새가 나는 사람을 바로 찾을 수 있을 만큼 그 냄새는 강렬했다. 하지만 아현을 처음 만났을 때 같은 냄새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설마, 그랬다면 내가 모를 리 없잖아.”


“그래. 나도 그게 이상했어. 근데 아까 네가 자리를 비웠다가 다시 돌아왔을 때 우리의 냄새가 엷어졌다가 진해지는 걸 느꼈어. 뭔가 우리랑 비슷하면서도 다른 냄새라고 할까. 분명 아현에게서 우리와 같은 냄새가 나는 건 분명했어. 그런데 우리에겐 있지만 아현에겐 몇 가지 냄새가 없는 느낌? 그게 뭘까 생각했는데 간호사였다는 말을 들으니까 이해가 되네.”


고통 받는 환자들과 그들의 죽음을 견디지 못한 간호사, 그만큼 많은 죽음을 봐왔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두려움, 고통, 불안 같은 짙고 어두운 감정의 냄새와 피, 죽음 같은 직접적인 냄새가 어우러져 어둠의 사람들과 비슷한 냄새가 만들어졌는지 모를 일이다.


“단순히 그 냄새에 끌린 거란 말이야?”


아현에게 향하는 감정의 시작이 고작 비슷한 냄새를 가진 사람에게 끌리는 원초적인 본능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에게 향하는 감정의 깊이는 고작 그런 것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판단하기엔 너무 깊었다.


“그거야 나도 모르지. 아무튼 시작은 그렇지 않았을까? 우리처럼 비릿하고 역한 살의의 냄새가 나진 않지만, 죽음의 냄새가 밴 여자라면 적어도 네 마음이 편해질 수 있는 계기는 될 수 있잖아. 원래 끌림은 어디에서나 시작할 수 있지만 그 관계의 과정이나 깊이는 결국 마음이 시키는 거잖아. 그걸 가지고 뭘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거야?”


“심각하게 시작한 건 너잖아.”


“그건 그렇지만 결과는 그다지 심각하지 않았잖아.”


“와, 이 미친놈. 사람 속을 벅벅 긁어놓고 이제 와서 나 몰라라 하네. 그리고! 연애도 한 번 못해본 놈이 뭘 안다고 잘난 듯 떠드는 거냐?”


제강의 비아냥거림에 예는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치며 대꾸했다.


“누가 그래? 내가 연애 한 번 못해봤다고. 봤냐?”


“안 봐도 비디오지. 아버지 말씀이라면 세상이 두 쪽이 나도 따르는 네가 연애를 했다고? 오밤중에 날아다니던 드론이 웃겠다.”


예는 뭔가 말을 받아치려다 말고 고개를 들어 별빛 하나 보이지 않는 어두운 하늘을 올려봤다.


“저거 아직도 있네? 아까 거랑 다른 건가?”


“그렇지? 저것도 우리 따라 오는 거 맞지?”


“너 또 뭔 짓 했냐?”


예는 어둠 속에 떠있는 검은색 드론에서 시선을 제강에게 돌렸다.


“야, 너도 아버지 닮아 가냐? 그때 스페인 일 말고는 최근에 아무 짓도 안 했어.”


“그러면 저건 뭐야? 아주 대놓고 따라다니네. 아까 저녁에 감시하던 것들도 그렇고.”


“내가 어떻게 아냐? 어쩌면 우리 둘에게 관심이 있는지도 모르지.”


“하는 짓을 보면 착한 놈들은 아닌 것 같고······. 무슨 배짱으로 우리 둘한테 관심을 보이는 걸까? 곤륜이라는 걸 모를 리 없을 텐데.”


“모르지. 아까 잠깐 나가서 겁을 주고 오긴 했는데 먹혔는지 모르겠다. 며칠 지켜보면 알겠지.”


들켜도 상관없다는 듯이 대놓고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사람과 기계의 시선이 짜증이 나긴 했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처음 겪는 일도 아니거니와 곤륜인 것을 알면서도 이유도 없이 섣부른 행동을 할 만한 멍청이라면 그건 정말 멍청이일 뿐이었다.


* * *


“대상이 식당에서 나왔다.”


제강과 예, 아현이 들어간 식당을 감시하던 다섯 개의 시선이 동시에 외친 말이었다. 인원도 다르고, 가지고 있는 카메라의 종류나 성능, 위치도 달랐지만 그들의 목적은 동일했다. 오로지 제강과 예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것이었다.


그 자리에 있는 이들 모두 의뢰자를 알지 못했다. 의뢰의 정확한 내용도 몰랐다. 그저 몇 장으로 사진으로 확인한 두 남자를 지켜보며 가능한 그들의 모든 행동을 카메라에 담으란 지시뿐이었다.


사이먼은 손에 쥐고 있던 망원경을 빠르게 눈에 댔다. 히로의 보고처럼 대상은 식당을 나와 양손을 맞잡고 머리 위로 뻗으며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사이먼은 빠르게 시선을 다른 감시자들에게 향했다. 정확한 움직임을 알 수는 없지만 그들 모두 대상을 촬영하고 있다는 사실은 확인할 수 있었다.


사이먼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저들 중 최소 한둘은 동료가 아니었다. 그것 또한 어디까지나 확인된 숫자일 뿐 찾아내지 못한 또 다른 이들이 있을지 모를 일이었다. 지금이야 그들이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고 있지만 정확한 의도를 모르는 한 절대 방심할 수는 없었다.


“움직여요.”


“계속 쫓아.”


사이먼의 시선도 히로의 카메라가 향하는 곳과 같은 곳을 향했다. 제강은 골목을 벗어나 번화가로 나와 사람들로 북적이는 복잡한 인도 위에 서서 무언가를 찾듯 주변을 둘러봤다. 제자리에서 한 바퀴 몸을 돌려 살피던 제강은 원하던 것을 찾은 듯 느린 걸음을 옮겼다. 그의 걸음은 유명 의류 가맹점으로 향했다.


제강의 모습을 쫓던 이들은 식당에서 나와 갑자기 옷가게로 들어가는 그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해 고개를 갸웃 거렸다. 하지만 아무도 그 이유를 예상하지 않았다. 아무 의미가 없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간 이상 촬영이 어렵다는 상황만 있을 뿐 그의 행동에 대해 일일이 신경 쓸 필요는 없었다.


히로의 카메라도 제강이 들어간 옷가게 입구를 향하며 그가 나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히로가 집중하는 사이 사이먼의 망원경은 바쁘게 움직였다. 식당에 같이 들어간 혼혈 남성의 행동과 다른 감시자들의 동태 확인을 위함이었다.


“안 나오네요.”


“계속 주시해.”


히로는 눈이 빠져라 식당 입구와 주변만 지루하게 살피다 이제 겨우 상대가 움직이는 것이 반가웠다. 하지만 대상이 다시 건물 안으로 들어간 덕에 지루함이 다시 찾아왔다. 사이먼도 그 기분을 모르는 바가 아니었지만 돌아가는 상황을 알길 없는 불안함에 긴장을 놓을 수 없었다.


쉬지 않고 움직이던 사이먼의 흐르는 시선에 뭔가 이상한 것이 스쳐갔다.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시선을 돌렸다. 사이먼의 망원경이 향한 곳은 대상이 들어간 옷가게 건물 옥상이었다.


“건물 옥상.”


사이먼의 기계적인 말에 히로의 몸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빠르게 반응했다. 히로의 카메라가 건물의 어두운 옥상을 향했다. 그곳엔 조금 전 옷가게로 들어갔던 제강이 서있었다.


“저 녀석 뭐하는 거죠?”


옥상에 나타난 대상은 뭔가 생각하는 듯 짧은 거리를 왔다 갔다 할 뿐 특별한 행동의 조짐은 보이지 않았다.


“담배라도 피러 올라왔나 보네요.”


“집중해!”


나무라듯 짧고 건조한 사이먼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대상의 움직임이 멈췄다. 거리 위 화려한 조명과 가로등의 불빛이 닿을 수 없는 높이의 옥상은 어두웠다. 하지만 그 보다 높은 주변 건물에 반사된 빛 덕에 그의 행동만큼은 주변 감시자들에게 확실히 보였다.


“저게 뭐 하는 거야······.”


히로는 대상의 알 수 없는 움직임에 혼잣말 하듯 중얼거리며 카메라를 조작해 천천히 확대했다.


점점 앞으로 다가오는 대상은 어둠 속 어딘가를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었다. 마치 훈계하듯 길게 뻗은 손을 두어 번 흔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리고 바로 몸을 조금 돌려 다른 어딘가를 가리키며 같은 행동을 했다. 그리고 다시 몸을 돌려 알 수 없는 어딘가를 가리켰다.


“저게 술 처먹고 미쳤나······.”


사이먼의 귀엔 히로의 구시렁거리는 소리가 들어오지 않았다. 등줄기에 소름이 돋았다. 식은땀도 흐르는 것 같았다.


처음엔 어둠속을 가리키는 그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에 있는 무언가를 나무라는 듯 보였다. 그 뒤로 같은 행동이 두 번째 이어질 때 머릿속에 엉킨 조각들이 맞아가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 것이 무엇인지 여전히 알 수 없었다. 그런데 다시 이어진 그의 세 번째 행동을 본 후에 그 의미를 짐작할 수가 있었다. 그리고 이어진 네 번째 똑같은 행동. 이제 그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확실히 알아차렸다.


“꿀꺽.”


침 삼키는 소리가 건물 아래 도심을 질주하는 자동차들의 소음보다 크게 느껴졌다.


공포일까?

두려움을 느껴본 것이 얼마만인가?

아니다. 아니야.

지금 저 자의 행동은 불가능하다.

인간인 이상 저럴 수는 없어.

그래. 우연일 거야. 우연······.


사이먼은 애써 현실을 부정하려 했다. 아니, 그럴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부정하려 해도 예상은 적중했고, 현실로 이루어졌다.


“어!”


히로의 놀라는 소리가 비명처럼 들렸다. 사이먼도 속으로 짧은 비명을 질렀다. 부정하던 예상이 현실이 된 놀라움이며, 불가능할 것 같은 일이 가능해 지는 것을 실제로 확인한 놀라움이었다.


히로가 놀라 뒤로 넘어져 엉덩방아를 찧었지만 카메라는 고정시켜놓은 그대로였다. 그 카메라 화면 속엔 지적하듯 위아래로 흔들거리는 손가락과 제강의 강렬한 눈빛이 있었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제강의 시선과 손끝은 정확하게 카메라 앵글을 향하고 있었다. 제강이 옥상에 올라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은 모두 감시자들이 몸을 숨기고 있는 곳이었다. 그들 중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몸을 숨기는 것에 큰 공을 들이진 않았다 하나 적어도 인도에서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는 위치였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위치를 노출시켰다 해도 정확하게 카메라를 향해 눈빛과 손가락을 향하는 건 불가능 했다.


그런데 그 불가능한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사이먼과 히로뿐 아니라 다른 감시자들 역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저··· 저 자식 뭐··· 뭐예요?”


히로는 엉덩방아를 찧은 그대로 카메라 화면 속 대상을 가리키며 말을 더듬었다. 사이먼은 망원경 너머에 서 있는 사내의 다음 행동에서 눈을 땔 수 없었다. 만약 그의 손에 총이라도 들려있었다면 그를 감시하던 모든 감시자들은 지금쯤 머리에 구멍이 뚫렸을 수도 있었다.


빠져나갈 수 없는 우리 속에 뱀과 마주한 개구리가 된 기분이었다. 그의 행동이 단순한 경고이길 바랄 뿐이었다. 그런데 이어진 그의 행동은 사이먼의 눈을 다시 한 번 의심하게 만들었다.


이미 모든 감사자들에게 무언의 경고를 했을 그의 손가락이 다른 곳을 가리킨 것이다. 사이먼은 빠르게 망원경에서 눈을 때고 육안으로 대상이 가리킨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그 곳엔 그를 감시할 수 있는 어떤 구조물도 없었다. 다시 대상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는 지금까지 했던 것과 똑같은 행동을 하고 있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다시 한 번 정확하게 그의 손과 시선이 가리키는 곳을 쳐다봤다.


역시 아무 것도 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도저히 감시할 수 없는 거리의 건물 밖에 보이지 않았다. 만약 어떤 성능 좋은 장비로 감시를 하고 있다 해도 겨우 지금 대상이 서 있는 건물 옥상이나 확인할 수 있을 뿐 다른 감시자들처럼 대상을 관찰할 수 없는 위치며 거리였다. 그리고 육안으론 도저히 확인할 수 없는 거리였다. 하지만 지금까지 대상이 보여줬던 거짓말 같은 모습을 생각해 보면 그곳에 무엇이 있어도 이상할 게 없을 것 같았다.


대상은 그 행동을 끝으로 옥상에서 자취를 감췄다. 그리고 이내 옷가게를 통해 다시 인도로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사이먼과 히로는 그를 다시 카메라에 담을 자신이 서지 않았다. 아마 그건 다른 감사자들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만약 그의 손가락이 총구였다면··· 그가 품에서 총을 꺼냈더라면······.


사이먼의 등에 다시 소름이 돋았다.


작가의말

회사에서 지급 받은 차가 어제 말썽을 일으켜 오늘 정비소에서 오전을 보냈습니다.

(이예!!!)

정비소 사장님이 한 마디 합니다.

웬만하면 차 바꾸라고...

이 나라에선 흔한 일인지 모르겠지만 한국에서 30년을 넘게 산 전 33만을 넘게 찍은 차는 처음 봅니다.

그래서 오늘 사장님께 강력히 어필했습니다.

차 좀 바꿔달라고... 죽고 싶지 않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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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의도 속 재회 18.01.26 109 0 15쪽
7 잘 생긴 남자가 살아가는 법 18.01.24 102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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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아현" 18.01.21 113 0 10쪽
4 "예" 18.01.14 75 0 9쪽
3 Santiago de Compostela 18.01.12 70 0 29쪽
2 제작 발표회 18.01.09 96 0 17쪽
1 레온(Leon) 18.01.08 113 1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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