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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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디귿
작품등록일 :
2018.01.08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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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02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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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1.24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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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생긴 남자가 살아가는 법

DUMMY

이른 여름이 오고 있는 오월은 연녹색 빛을 거의 지우고 진한 새 옷으로 치장을 마쳐가고 있었다. 거리엔 아카시아나무 꽃향기가 가득하고 새 학기의 어색함을 벗은 여대 앞 거리는 신선한 활기가 넘쳐흘렀다. 아직 쌀쌀함이 조금 남아있는 오전이었지만 여대생들의 차림은 봄의 화사함에 아직 오지 않은 여름의 시원함까지 더해져 있었다.


제강은 색안경 안쪽의 눈을 바쁘게 움직였다. 벌써 나흘째 같은 걸음을 하고 있지만 하루도 실망스러운 날이 없었다. 언제부턴가 유행하기 시작한 ‘하의 실종’이라는 단어가 새삼 고마웠다. 만약 다른 목적이 없었다면 눈으로 보는 걸로 만족하지 못하고 새로운 인연을 만들기에 주저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눈앞의 작은 만족을 위해 더 큰 목적을 잃은 순 없었다.


제강은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카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익숙한 점원의 인사를 받으며 주문대로 향했다.


“안녕하세요. 또 오셨네요.”


나흘째 같은 점원이 밝은 표정으로 인사를 건넸다. 그녀의 눈빛에서 강한 호감을 읽었지만 제강은 내색하지 않고 활짝 웃으며 자연스럽게 인사를 받았다.


“여기 커피가 맛있더라고요. 아이스 아메리카노 트리플 샷으로 한 잔 주세요.”


“네. 아이스 아메리카노 트리플 샷이요. 나오는 대로 말씀 드리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어요?”


“감사합니다.”


제강은 주문대 앞 의자에 걸터앉았다. 오전 아홉 시의 한산한 카페에 손님은 제강뿐이었다.


“여기 학생은 아니시죠?”


창밖 거리에 시선을 두고 있던 제강은 점원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여유로운 손놀림으로 커피를 내리던 점원과 눈이 마주쳤다.


“제 성별이 의심스러우세요?”


부끄러운 미소로 바라보는 점원에게 활짝 웃으며 가벼운 농담을 건넸다.


“아, 아뇨. 어제 본의 아니게 외국어로 통화 하시는 거 얼핏 들었거든요. 그래서 혹시 교환 학생으로 온 외국인인가 했어요.”


“아하하. 외모도 얼핏 보면 한국사람 같지 않죠?”


“아뇨. 그런 뜻은 아니고······. 외국어가 굉장히 유창하셔서··· 어느 나라 말이에요?”


“스페인어요.”


여자 점원은 말을 이어가고 싶었지만 선을 긋는 듯한 짧은 대답에 주눅이 든 듯 했다. 제강은 미안한 마음에 다시 부드럽게 말을 이을까 생각했지만 쓸데없이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아 목에서 넘어오는 말들을 다시 삼켰다.


“여기 커피 나왔습니다.”


“감사합니다.”


제강은 여자 점원이 뭔가 대화를 이어나가려 하는 걸 알면서도 커피를 들고 빠르게 일어나 몸을 돌렸다. 제강은 거리가 보이는 창가 앞 긴 탁자 앞에 앉았다. 커피를 내려놓고 가방에서 책을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이로써 모든 준비가 끝났다. 이제 책을 읽으며 중간에 한 번씩 시선만 살짝 움직이면 됐다. 급하지 않은 손놀림으로 책을 펼치며 고개를 들었다.


창밖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의 모습 위로 창에 비친 여자 점원의 모습이 들어왔다. 안절부절 못하고 자신의 뒷모습만 바라보는 점원을 보고 있자니 원초적인 본능이 움트는 게 느껴졌다. 이십대 초반의 학생으로 보이는 점원은 호감을 갖기에 충분한 외모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이성異性을 향한 본능은 이성理性의 무게에 눌려 이내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었다.




높다란 건물들의 그림자에 덮여 있던 거리는 어느새 부드럽고 따스한 볕의 손길에 싸여 있었다. 봄의 따스함을 머금은 거리 위로 드리운 그림자의 길이가 짧아짐에 따라 사람들의 수도 많아지더니 어느새 거리는 화사한 차림의 여대생들로 가득 찼다. 거리 위의 여대생들이 많아진 만큼이나 높아진 소음에 이어폰을 꺼내 귀를 막은 게 벌써 두 시간쯤 전이었다. 지난 사흘과 마찬가지로 아직까지 아무런 소득도 없었다. 어쩌면 오후의 남은 시간도 지난 사흘과 같을 수도 있었다.


“휴······.”


제강은 쓸쓸하고 낮은 한숨을 창 밖 거리를 향해 흘려보냈다. 왠지 아무런 소득 없던 지난 사흘의 시간이 영원할 것 같은 불길함이 몰려온 탓이었다. 제강은 손에 들려있는-간간히 읽고 있는 책과 거리 위 사람들에게 시선을 던지느라 어느새 카페를 가득 메운 여대생들의 시선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시선 속에 담긴 –그의 표현에 따르면-원초적인 순수함에서 나오는 의도를 모르고 있었다.

직업 특성상 보통 사람보다 날카로운 감각은 자신에게 향하는 시선 하나하나에 대해 벌써부터 파악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시선 속에 담긴 호감에 대해서도, 그녀들의 시선과 신경이 자신에게 자주 향하고 있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었다.


“괜찮으세요?”


마침 노래 한 곡이 끝나고 다음 곡으로 넘어가는 짧은 무음無音 구간에 옆에 앉아 의류 잡지를 보며 커피를 마시던 세련된 차림의 여자가 말을 걸어왔다.


“무슨 말씀이시죠?”


갑자기 말을 걸어오는 여자의 의도가 파악되지 않았다. 제강은 이어폰을 빼고 그녀를 향해 몸을 돌리며 물었다.


“아뇨. 방금 너무 크게 한숨을 쉬셔서요. 남들에게 말 못할 어떤 힘든 일이 있으신가 해서요.”


속으로 쉰 한숨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주변에 들릴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겉으로 쉬었나 보네요.”


“죄송하긴요. 그런데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무슨 일이 있으신지 물어도 될까요?”


처음 보는 남자에게 의미 없는 대화를 길게 이어가는 의도는 뻔했다. 제강은 그제야 거리에서 시선을 거두고 옆자리 여자의 눈으로 바라봤다. 분명 한 가지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있는, 점원과 같은 눈빛이었다.


“마음먹은 일이 며칠째 잘 풀리지 않네요.”


“저런··· 힘드시겠네요.”


여자의 표정과 말투, 목소리는 마치 제강의 상황을 이해하고 있는 사람 같았다. 그것을 접한 제강의 마음속에 제법 큰 짜증의 너울이 일었다. 호감을 가진 상대의 상태에 공감하는 듯 표현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했다. 하지만 지난 기다림과 기약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에 지친 제강의 신경은 상당히 예민해져 평소라면 전혀 신경 쓰지 않을 상황에 감정을 만들고 있었다. 그렇지만 제강의 표정과 목소리, 말투는 전혀 그런 감정을 담지 않았다.


“조금 지치긴 해도 힘들진 않아요. 그리고 풀리길 기다리는 동안엔 계속 기대라는 걸 할 수 있잖아요. 기대되는 일은 항상 즐겁고요.”


“굉장히 긍정적이시네요. 저도 좀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싶은데 상황이 좋지 않을 때는 어쩔 수 없이 부정적인 생각이 먼저 떠오르더라고요.”


“부정적인 것도 경우에 따라선 필요하기도 하죠.”


제강은 한숨 쉬듯 대답하곤 슬그머니 고개를 창밖으로 돌렸다. 필요한 것만을 쫓기 위함이 아닌, 그저 눈앞에 부담될 만큼 강한 호감을 보이는 상대에게서 눈을 떼고 싶었다. 창밖 거리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사람이 많아지고 있었다. 옆자리 여자가 떠드는 소리를 흘려들으며 시간을 확인해 보니 벌써 한 시를 훌쩍 넘어가고 있었다.


“벌써 점심때가 됐네요.”


혼자 열심히 떠들던 여자는 제강의 웅얼거리는 듯한 말에 눈을 빛내며 황급히 말을 받았다.


“아직 식사 안 하셨어요?”


“네.”


“저도 아직 점심 전인데 불편하지 않으시면 같이 하실래요? 뭐 좋아하세요? 근처 음식점은 제가 잘 알아요.”


성의 없는 짧은 대답에도 여자의 반응은 적극적이었다.


“그냥 간단하게 따뜻한 국물이 있는··· 국밥 종류 잘 하는 곳 있나요?”


여자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맛은 기본이고, 분위기나 청결, 친절까지 염두에 두고 기억 속을 정신없이 뒤지는 탓이었다. 하지만 맛을 따르자니 친절함이나 위생이 부족하고, 친절하고 깔끔한 집은 맛이 너무 평범하거나 평균 이하였다. 다른 음식이라면 쉽게 떠올릴 수 있는데 국밥을 선택한 –너무 마음에 드는-남자가 원망스럽기도 했다.


“음··· 저기 도로 반대쪽 골목에 ‘경성 백반’이라고 맛있는 집이 있긴 한데······.”


“왜요?”


결국 여자는 맛을 선택했지만 목소리엔 자신이 없었다.


“할머니 혼자 하시는 가겐데 너무 지저분해서 좀······.”


“괜찮아요. 음식에서 벌레만 안 나오면 되죠.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제강은 인사와 함께 앉은 채로 고개를 살짝 숙였다. 하지만 여자는 가방과 외투를 챙기느라 제강이 인사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짐을 다 챙긴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밝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할머니가 쌀쌀맞긴 하지만 맛은 진짜 좋아요. 저도 가고 싶었는데 마침 잘 됐네요. 일어나세요.”


“아뇨. 전 조금 있다 가려고요. 먼저 가세요.”


제강은 몸을 돌려 책을 집어 들었다. 여자는 남자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짙게 화장된 큰 눈을 끔벅 거리며 멍하니 서 있었다.


진짜 말 그대로 먼저 가서 기다리라는 말일까.

아니야. 그러면 준비하는 척이라도 하지 저렇게 몸을 돌리진 않을 거야.

그럼 같이 안 가겠다는 뜻인가.

내가 같이 먹자고 했잖아.

물론 그 질문에 대답은 안 했지만 음식하고 식당 물어보면서 이어진 대화 속에 대답이 포함됐던 것 아닌가.


“저······.”


여자는 어렵게 입을 열었다. 마치 접착제로 입술을 붙여놓은 것처럼 쉽게 떨어지지 않았지만 몸 안에 있는 모든 용기를 끄집어 올려 힘겹게 입술을 뗐다.


“네?”


제강은 의아한 표정으로 당혹스런 표정의 여자를 올려봤다.


“저, 식사하러 같이······.”


“아뇨. 전 조금 있다가 혼자 갈 거예요. 호의만 받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제강은 처음부터 여자하고 같이 식사할 마음이 없었다. 그저 여자가 알고 있는 정보만 필요할 뿐이었다. 호감을 갖고 다가온 여자가 혼자 착각해 같이 식사하러 가는 줄 알게 된다면 적어도 맛 하나는 보장될 거라는 계산이었다.


“아, 아니에요. 죄송합니다.”


여자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황급히 가방을 챙겨 카페를 빠져나갔다. 여자가 나가고 문이 닫히자 곁눈질과 귀동냥으로 상황을 지켜보던 이들의 입이 분주해졌다.

온통 여자들로 가득한 카페 안의 대화는 멀끔하고 잘생긴 남자에게 다가갔다 보기 좋게 차이고 도망가듯 나가버린 여자와 마치 놀리는 것처럼 여자에게 필요한 정보만 얻고 단칼에 자른 남자에 대한 것들이었다.


누군가는 불쌍한 여자를 옹호하고 도도하게 창가에 앉아 책을 읽는 남자를 손가락질 하고, 누군가는 창피당한 여자에겐 조소하면서 남자의 외모를 칭찬하고, 누군가는 남녀가 이루어지지 못한 이유에 대해 열띤 토론을 나누고 있었다.

분명 그녀들의 목소리는 속삭이는 듯 조용했지만 제강의 귀에 어느 정도는 들어가고 있었다. 그녀들도 그 사실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본능을 누를 만큼 중요하진 않았다.


제강은 조금 전 상황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더불어 상황을 지켜봤던 다른 이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조차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 의미를 부여할 만큼 특별한 사람이 아닌 이상 자신의 외모를 이용해, 뻔히 보이는 상대의 호감을 이용해 이득을 취하는 행동은 제강에겐 지극히 익숙한 생활의 일부일 뿐이다. 그러니 그 여자에게 미안함이나 양심의 가책 따위 느낄 리 만무했다.


작가의말

제강의 이미지를 잡을 때 정우성 씨를 많이 참고했습니다.

물론 외적인 모습만 참고했습니다.

가끔 생각합니다.

잘 생긴 오징어인 제가 정우성 씨 같은 외모를 가지게 되면 저렇게 살 수 있지 않을까 하고.

그래서 신이 참 위대한 것 같습니다.

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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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Santiago de Compostela 18.01.12 69 0 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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