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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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디귿
작품등록일 :
2018.01.08 19:24
최근연재일 :
2018.04.02 14:34
연재수 :
1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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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7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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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1.21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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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아현"

DUMMY

제강과 예가 도착한 곳은 역 인근의 큰 서점이었다. 계단을 통해 출입구로 들어서자 거리만큼이나 많은 사람이 그들의 시야를 막았다.


“이 시간엔 어딜 가도 이렇게 사람이 많네.”


제강의 혼잣말에 예는 여전히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대답을 바란 것이 아닌지 제강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휴대전화를 꺼내 무언가 확인하기 시작했다. 한동안 휴대전화 화면을 보던 제강은 다시 사람들 틈을 지나 걸음을 옮겼다.


말없이 친구의 뒤를 따라 걷던 예의 눈에 벽에 기대 앉아 책을 읽고 있는 여자가 눈에 들어왔다. 검고 긴 머리카락을 늘어뜨려 얼굴도 보이지 않는 평범한 여자였다. 그런데 왜 눈에 들어왔을까? 어디 하나 특별할 것 없는 여자였는데 자연스럽게 눈이 갔다.


“저기 있다.”


갑자기 눈에 들어온 여자에 쏠린 시선과 신경은 제강의 밝은 목소리에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 그런데 제강의 걸음이 그 여자에게 향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예는 우연의 일치라고 생각했다. 원인 모를 끌림을 가져온 여자에게 향하는 제강의 걸음이 꼭 연관 있을 거란 보장은 없었다.


“자기야.”


예상, 불안, 걱정, 의심이 모두 적중하는 순간이었다. 제강의 밝은 목소리에 예의 시선을 빼앗은 여자가 환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분명 ‘자기’라 불렀고 여자가 고개를 들었다. 더 볼 것도 없이 애인 사이다. 제강의 옆엔 늘 여자가 있었다. 인종도 나이도 다양했다. 때론 여러 명을 같이 만나기도 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애인이라 말하지 않았다. 아직 그의 입에서 직접 들은 건 아니지만 ‘자기’라 부른 대상을 굳이 만나게 했다는 건 진지하다는 의미였다.


절대 안 될 일이다.


‘너 내 친구지?’


머릿속에 그 한 마디가 메아리 쳤다. 그 말이 그토록 잔인한 말일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모든 상황과 선택에 동조를 부탁-강요하는 말이었다.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일임에도 그 말 한 마디 때문에 이젠 선택의 여지조차 사라져 버렸다.


“오래 기다렸어?”


“아니, 나도 온지 얼마 안 됐어. 오빠는? 오는데 힘들지 않았어?”


“지하철 타고 온 건데 뭐.”


“지금 퇴근 시간이라 사람 많잖아. 우리 오빠 사람 많은 거 싫어하는데 힘들었겠다.”


“아냐. 다행히 앉아서 왔어. 오늘 수업은 어땠어?”


“매일 똑같지. 밥 먹으러 갈래?”


“그래. 오늘은 뭐 먹지?”


두 사람의 달달한 대화를 들을수록 점점 확신은 굳어졌다.


“참, 나 친구랑 같이 왔어. 야, 거기서 멀뚱멀뚱 서 있지 말고 이쪽으로 와.”

제강의 시선을 따라오는 마주선 여자의 시선과 마주쳤다.


눈에 띌 정도로 예쁜 얼굴이었다. 남자라면 누구나 호감 가질만한 얼굴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것뿐이었다. 아직 대화를 나눠보진 않았지만 어떤 특별한 매력은 느껴지지 않았다. 단지 책을 읽던 그녀에게 시선을 뺏긴 것만이 조금 특별하다면 특별할 수도 있지만 제강의 마음을 휘어잡을 만한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예, 내 여자 친구 아현이야.”


제강이 손을 뻗어 예와 아현을 번갈아 가리켰다. 예는 복잡한 머릿속 생각을 잠시 접어두고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살짝 고개를 숙였다.


“처음 뵙겠습니다. 제강 친구 예라고 합니다. 말씀 많이 들었어요.”


이 상황에 대해 상상조차 하지 못했지만 예의상 아는 체 했다.


“아, 네. 안녕하세요. 서아현이에요. 저도 오빠한테 얘기 많이 들었어요. 어렸을 적부터 같이 자란 친구시라고······.”


아현도 살짝 고개를 숙이며 마주 인사를 건넸다.


“예, 내 여자 친구 예쁘지?”


제강은 아현의 볼을 살짝 꼬집으며 잔뜩 신난 표정으로 예를 쳐다봤다. 당장 원하는 대답을 하라는 눈빛을 보내고 있는 걸 알면서도 예는 이내 대답하지 않았다. 속이 타들어가는 자신의 속내도 모르고 그저 싱글벙글 좋아 죽는 표정을 짓고 있는 제강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떡이 되도록 패주고 싶은 충동까지 일었다.


“오빠! 제발 그런 것 좀 하지 말라니까. 창피하게 왜 그래?”


아현은 쑥스러움에 얼굴까지 빨개져 고개를 숙이고 제강의 팔을 꼬집었다. 하지만 여전히 제강의 표정은 밝았고, 대답을 강요하는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그래. 진짜 듣던 것 보다 훨씬 미인이시네. 그런데 왜 이런 여자 친구 두고 아까는 지하철역에서 지나가는 여자들한테 눈웃음 살살 쳤냐?”


“야, 야. 내가 언제!”


“오빠······.”


“나한테도 그랬잖아. 이렇게 예쁜 여자 많은 데 자주 나와야 된다고.”


예는 일부러 없는 말까지 지어냈다.


“이 미친놈아. 내가 언제 그랬어?”


“오빠, 또 지나가는 여자들 다리 보고 그런 거야?”


“아니야. 아니야. 저 새끼가 일부러 나 곤란하게 하려고 그러는 거야.”


제강은 말을 하고나서야 아차 싶었다. 처음으로 이성에게 감정을 주고 진지하게 만나는 관계가 되었음을 축하받고 싶었다. 자랑하고 싶었다. 그래서 예를 굳이 한국까지 불렀다. 유일한 친구고 형제인 예에게 제일 먼저 소개 시켜주고 싶었다. 하지만 예의 입장은 조금도 고려하지 않은 행동이었다.

사랑이란 살인을 업으로 삼는 이들에겐 감히 다가가선 안 될 신성한 영역이다. 인륜적인 문제 외에도 그런 일은 신조차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보다 어둠을 등에 업고 사는 이들에게 사랑이 금기시 되는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바로 사랑은 빛이기 때문이다.


어둠 속에서 작은 불빛 하나를 밝히는 순간 표적이 될 수 밖에 없다. 빛은 지켜야할 존재를 만들고, 목숨보다 소중한 것을 만들어 끝내 손에 정을 두게 만든다. 예가 걱정하는 바를 제강도 잘 알고 있었다. 그동안 수 없이 생각하고 고민했다. 하지만 결국 제강이 선택한 것은 아현이었다.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문제는 애써 외면하고 있었다. 아현을 만나는 시간동안 억지로 무시한 채 저만치 밀어뒀던 불안이 예에게 똑같이 찾아왔다는 것을 이제야 알아차렸다.


“나중에 우리끼리 있을 때 따로 얘기하자. 응?”


아현은 이를 악 물며 제강을 노려봤다. 하지만 제강은 토라진 아현의 마음을 풀어줄 생각보다 예의 입장을 생각하지 못한 미안한 마음이 더 컸다.


“농담이에요. 농담. 너무 그러시면 제가 미안하잖아요.”


아현이 그 정도까지 기분 나빠할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곤란한 상황에 처하길 바란 건 맞지만 친한 친구의 그렇고 그런 농담으로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아현의 반응은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다.


“아니에요. 우리 오빠 항상 이래요. 어떤 줄 아세요? 같이 있을 때도 지나가는 여자들이 짧은 옷 입고, 다리 날씬하고 그러면 고개가 휙휙 돌아가요.”


“그걸 그냥 둬요? 또 그러면 바로 울대를 쳐버려요.”


“저도 진짜 그러고 싶다니까요. 그런데 소심하긴 어찌나 소심한지 가끔 장난치다 조금이라도 세게 꼬집으면 삐쳐가지고······.”


“하하하. 진짜요? 하긴 저 놈이 어렸을 때부터 좀 소심 하긴 했어요.”


“그렇죠? 내가 그럴 줄 알았어. 참, 제가 오빠라고 불러도 되죠?”


“당연하죠. 편할 대로 부르세요.”


“그럼 오빠도 저한테 편하게 대하세요.”


“그럴까? 그러지 뭐.”


바라던 대로 두 사람이 친해진 것까진 좋은데 흘러가는 방향은 조금도 제강이 원하던 그림이 아니었다. 자신만 따돌리고 죽이 맞는 두 사람을 바라보는 제강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비위가 잔뜩 상한 표정으로 팔짱을 끼고 짝다리까지 짚고 한쪽 다리는 신경질 적으로 떨고 있었다.

하지만 제강의 마음속은 전혀 달랐다. 어떤 심정일지 뻔히 알고 있는 예가 애써 밝은 표정으로 아현에게 살갑게 다가가주는 것이 고마웠다. 또, 낯가림 심한 아현이 웬일인지 예에게 스스럼없이 다가가는 것 또한 고맙고 안도가 됐다. 속으로 흐뭇한 미소를 지으면서도 두 사람의 대화가 이어질 수 있도록 일부러 삐친 척을 하는 중이었다.


“저 봐요. 또 삐쳐가지고 저러고 있잖아요.”


뻔히 다 들리지만 아현은 속삭이듯 예의 귀에 바짝 다가가 손으로 입을 가리며 말했다. 이 상황극이 점점 재밌어진 예도 즐겁게 아현의 말을 받았다.


“쟤가 원래 저런 애가 아닌데······. 미안해. 내가 버릇을 잘못 들였나 봐.”


“아니에요. 이젠 제가 사람 만들어야죠.”


“놀고들 있다. 재밌어? 응? 놔두면 밤새 그러고 있겠다?”


제강은 그만 자리를 옮길 생각으로 말을 잘랐다.


“왜? 샘나?”


“그래. 내 여자 친구가 다른 놈팡이랑 친하게 지내는 게 샘난다.”


익살스럽게 웃으며 말하는 제강에게 예가 활짝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는 아현을 만나기 전 제강이 던졌던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다. 이미 벌어진 일이다. 누구 보다 이런 상황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제강의 선택이다. 스스로 내려놓기 전까진 누구의 말도 듣지 않으리란 것도 잘 알고 있다. 경우는 다르지만 아버지와 어머니도 분명 사랑으로 만났고, 지금도 사랑으로 함께 계신 걸 보면 절대 불가능한 일이란 건 없는 것 같다.


도와주진 못할망정 나라도 나무라진 말자.

형제의 가슴에 타오른 빛을 지켜주자.


예는 더 이상 이 문제로 왈가왈부 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쓸데없는 농담 그만 하고 밥 먹으러 가자. 아현아, 근처에 괜찮은 곳 있어?”


“예 오빠, 술 좋아해요?”


“술?”


예는 빠르게 시선을 제강에게 옮겼다. 제강은 술이라는 단어에 눈을 감고 손바닥으로 이마를 짚고 있었다.


“네. 소주 좋아해요?”


“응. 좋아하긴 하는데······.”


다시 제강의 눈치를 살폈다. 별다른 반응이 없는 걸로 봐서 술 자체에 문제가 있을 것 같아 보이진 않았다.


“그럼 우리 술도 마실 수 있는 곳으로 가요. 근처에 삼겹살 맛있는 집 있는데 거기로 가요.”


“소주에 삼겹살. 좋지.”


“정말요? 제강 오빠 우리 이모네 또 가자.”


아현이 팔을 제강의 팔에 걸며 잡아끌었다. 아현의 걸음에 반강제로 끌려는 제강의 뒤를 예도 의아한 표정으로 따랐다.


작가의말

문득.. 소주에 삼겹살이 댕깁니다.

한국은 아니지만 한국인이 많이 모여 사는 곳이기에 삼겹살에 소주를 먹을 수는 있지만....

비쌉니다.. 특히 소주가....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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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Santiago de Compostela 18.01.12 70 0 29쪽
2 제작 발표회 18.01.09 95 0 17쪽
1 레온(Leon) 18.01.08 113 1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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