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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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디귿
작품등록일 :
2018.01.08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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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02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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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2.22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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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 못하는 광대 - 1

DUMMY

혹독한 여름의 태양 볕은 마치 보이지 않는 송곳이나 칼날이라도 된 듯 따갑도록 살을 찔렀다. 평일 낮의 거리는 한산했다. 살인적인 더위와 공격적인 볕을 피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시원한 냉방기와 함께 실내를 지키는 것이란 사실을 사람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갖은 사연으로 어쩔 수 없이 거리로 나설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무거우면서도 빨랐다. 땀을 흘리면서도 조금이라도 빨리 더위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열망으로 걸음을 빨리 했지만 그 덕에 생기는 열에너지의 고통에 발은 다시 무거워진 탓이었다.


건물의 그림자가 있고, 가로수가 만들어낸 작은 휴식처가 있는 거리와 달리 시립 미술관 앞 광장은 그야말로 찜통과 다를 게 없었다. 드넓은 광장 바닥을 메운 대리석은 아침부터 쏟아진 햇볕을 그대로 받아 잔뜩 쌓아두면서 반대로 계속 세상을 향해 열심히 뱉어내고 있었다.


거기에 지난봄에 조경 사업을 새로 시작하며 심은 잎사귀 몇 장 달리지도 않은 나무들은 변변한 그늘 하나 만들지 못했다. 주차장에서도, 지하철역이나, 버스 정류장에서도 최소 오 분 이상을 걸어야만 미술관으로 들어갈 수 있는 생지옥이 바로 미술관 앞 광장이었다.


도대체 어떤 정신 나간 인간이 이따위 무계획적이고, 한심한 조경을 계획한 걸까. 꼭 이런 무더위 속이 아닌 어떤 날씨에도 반갑지 않은 토지 낭비였다.


제강은 죽을 맛이었다. 어째서 이 날씨에 약속 시간보다 이십 분이나 일찍 나온 걸까하는 후회가 사라지지 않았다.


지금까지 만났던 여자들과 달리 결코 약속 시간에 늦는 법이 없는 아현을 만날 때면 늘 약속 시간보다 삼십 분 정도 일찍 나왔다. 부지런한 그녀가 얼마나 일찍 나올지 알 수 없으니 적어도 남자인 자신이 그 보다는 일찍 나와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그래도 그나마 오늘은 버스 고장으로 예상보다 이십 분 늦어서 다행이지 제대로 왔으면 아마 아현을 만나기 전에 녹아 없어졌을 것 같았다.


꼭대기 잘린 피라미드처럼 보이면서도 거대한 제단 같아 보이기도 했고, 어찌 보면 마징가제트 대가리처럼도 보이는 미술관 건물이 아지랑이 너머로 흉물스럽게 보였다.


그건 꼭 날씨 탓만은 아니었다. 가끔 버스나 택시로 이 옆을 지날 때면 가졌던 생각이었다. 도대체 저건 또 어떤 무식하고 미련한 작자가 저따위로 지은 걸까.


그렇지 않아도 더위에 불쾌지수는 올라가고 짜증이 몰아치는 제강의 눈엔 평소에 좋았던 것도 안 좋게, 그저 그랬던 것도 안 좋게, 안 좋았던 건 더 안 좋게 보였다.


담배라도 한 대 태우고 싶었다. 아현을 만나는 게 아니라면 분명 한 대 꺼내 물었을 텐데······. 아쉬운 마음에 서럽게 입맛만 다시고 있는데 등 뒤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오빠!”


제강은 얼굴 가득 품었던 짜증을 바닥에 떨쳐버리고 활짝 웃는 얼굴로 몸을 돌렸다.


“일찍 왔네?”


괜히 하는 소리가 아니었다. 이 지옥을 계획하고 선물한 것도 그녀였지만 약속시간보다 십오 분이나 일찍 온 그녀는 구원자였다.


“우리 오빠 또 일찍 왔을 것 같아서 나도 일찍 왔지요. 자, 이거!”


그녀는 뒷짐 지고 있던 손을 앞으로 뻗었다. 손에는 시원한 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 콜라 캔 두 개가 들려있었다.


“와, 이런 센스 쟁이!”


제강은 얼른 손을 뻗어 아현의 손에 있는 콜라 하나를 받아들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계획일 뿐 콜라는 아현의 손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왜··· 왜?”


힘을 줘서 뺏으면 뺏을 수 있겠지만 굳어있는 아현의 표정은 장난 하는 걸로 보이지 않았다.


“대답이 굉장히 성의가 없네. 형식적인 것까지는 좋은데 국어책 읽더라?”


“에이, 무슨 소리야? 오빠가 더워서 표정 관리가 안 됐나봐.”


아차 싶었다. 탄산이 강한 콜라는 좋아하지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잘 마시질 못했다. 더군다나 차라리 맥주라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도 했는데 그게 여실히 표정으로 드러난 것 같았다.


“맥주 생각했지?”


귀신같은 년.


“응. 솔직히 조금 하긴 했는데 우리 아현이가 주는 거면 양잿물도 황송하지. 오빠가 주제넘게 뭐 가리는 거 봤어?”


제강은 능글맞게 웃으며 슬그머니 콜라를 아현의 손에서 빼냈다.


“느물거리는 게 뱀이야. 뱀.”


“그게 또 오빠의 매력이잖아.”


도대체 이 상황 어디에서 여자가 화를 내는 것이며, 어째서 자신이 사과하듯 달래줘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매번 반복되는 현상에 대해 길게 생각하지 않고 속 깊은 곳으로 밀어 넣었다.


“근데 왜 여기서 만나자고 한 거야?”


활동적인 아현이지만 이 날씨에 이 찜통 속에서 무언가 할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미술관에 뭐 하러 왔겠어?”


“응? 저기 가자고?”


피라미드도 아닌 것이 마징가제트 대가리도 아니고, 그렇다고 제단도 아닌 그 한심한 건물을 가리키는 제강의 손과 눈이 당황해 떨리고 있었다.


미술관.


그것은 제강의 인생에 없는 장소였다. 컴퓨터 앞에서 손가락 몇 번만 움직이면 세계 명화를 전부 감상하고 자세한 설명까지 보고 들을 수 있는 시대에 돈을 내고 그림을 본다는 발상 자체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싫어?”


조금 전과 같이 이유 불문하고 피고와 원고로 갈리는 어이없는 상황이 벌어질 순간이었지만 이번만큼은 양보할 생각이 없었다.


“오빠가 전에도 얘기 했잖아. 저런 데 싫어한다고.”


“알지.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작가 전시회를 하더라고. 그리고 원화래. 꼭 보고 싶었단 말이야. 같이 가자. 응?”


“얼만데?”


“만 오천 원.”


“미쳤나봐. 그림 몇 장 보는데 그렇게 비싸?”


“아니야. 비싼 거 아니야. 그래도 여기는 시립이라서 싼 거야.”


제강은 아예 시선을 아현에게서 돌려버렸다. 어떻게든 가겠다는 강한 의지가 가득 담긴 눈을 계속 보고 있으면 또 당할 것만 같았다.


아현은 연애가 처음이라고 했다. 그 나이에 그 얼굴에 그것이 과연 가능할까? 하지만 남녀 관계의 모든 게 서툰 그녀를 보면 믿을 수 밖에 없었다.


나이 차이도 있고 첫 연애란 사실에 늘 조심스럽게 대하고 큰오빠처럼 오냐오냐 받아준 게 실수였다. 이제는 완전 능수능란한 여우가 돼서 가끔씩 머리 꼭대기에 앉아 제 원하는 대로 조정하기까지 했다. 물론 그 모든 게 싫었다면 결코 수긍하지 않았을 것이다.


“일단 저기까지만 가서 팸플릿이라도 좀 보자. 응? 보면 오빠도 생각이 바뀔지 모르잖아. 응?”


안 돼. 저기까지 가면 들어갈 수 밖에 없어. 안 돼. 따라가면 지는 거야. 안 돼. 안 된다고!


마음속의 외침과 달리 이미 제강은 아현의 손에 이끌려 미술관을 향해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만 오천 원이 큰돈은 아니었다. 제강의 수입에 비하면 푼돈이었지만 원하지 않는 곳에 돈을 쓰는 건 액수에 상관없이 과소비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미술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런 거 다 무시하고 그냥 들어가서 시원한 냉풍기 바람 맞으며 적당히 아현의 비위를 맞춰주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하기 싫은 걸 억지로 하는 건 성격에 맞는 일이 아니었다.


제강이 속으로 구시렁거리는 사이 어느새 두 사람은 미술관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계단을 오를수록 미술관 입구를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는 이름이 하나둘 눈에 들어왔다.


‘조르주 루오’


미술관 벽에 길게 늘어뜨린 엄청난 크기의 현수막에서부터 입구엔 그의 그림으로 보이는 바탕에 ‘조르주 루오’라는 글씨와 그의 그림과 이름을 표현하는 문구들이 새겨진 작은 현수막들이 여기저기 걸려 있었다. 한편에는 팸플릿이 쌓여 있었고 평일 낮임에도 사람은 생각보다 많아 보였다.


“유명한 사람이야?”


“오빠 몰라? 학교 다닐 때 미술 시간에 안 배웠어?”


“너야 미술에 관심이 있으니까 알지만 나 같은 사람은 피카소하고 고흐밖에 모르는 게 정상이야.”


“그럼 오늘 한 명 더 알면 되겠네.”


여기까지 와서 안 들어간다고 버틸 수도 없고, 괜한 객기에 한 번 더 튕겼다간 진짜 삐칠 수도 있었다.


“다음에 또 이러면 박치기 한다. 이번 한 번이야.”


“와! 들어갈 거야? 고마워. 오빠.”


아이처럼 신나서 방방 뛰며 매달리는 모습을 보니 들어가기 싫었던 마음이 조용히 사라졌다.


“잠깐만 기다리고 있어. 표 끊어 올게.”


제강이 몸을 돌리려는데 아현이 잡고 있던 손에 힘을 주며 제강을 잡아당겼다.


“괜찮아. 내가 미리 사뒀어.”


“뭐?”


못 들은 게 아니었다. 너무 황당해서 되물은 것이었다. 아현은 이미 이 모든 걸 계산에 두고 표를 준비한 것이었다.


“들어가자. 들어가. 안에는 시원할 거야.”


제강이 뭐라 할 새도 없이 아현은 능청스럽게 앞장섰다.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아현의 뒷모습을 보던 제강은 이내 밝은 표정을 지으며 뒤따랐다.



겉에서 보는 만큼 넓은 실내는 바깥의 무더위를 잊을 만큼 시원했다. 건물을 지탱할 목적으로 보이지 않는 천장에 닿지 않은 벽들이 불규칙하게 서있고 그 벽엔 여지없이 익숙지 않은 그림들이 걸려있었다.


마치 물감을 덕지덕지 바른 것 같은 결코 아름답지 않은 그림은 제강의 흥미를 쉽게 이끌어내지 못했다.


조르주 루오 특유의 유화를 제강이 쉽게 받아들일 거란 기대는 애초에 없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좋은 인상을 받길 바라는 마음에서 함께 온 것인데 표정을 보니 아직 탐탐치 않은 것 같았다. 아현은 그래도 꿋꿋이 제강의 손을 잡고 그림 앞에 섰다.


“아까는 그래도 그나마 정상적인 그림이던데 어째 갈수록 초등학교 미술시간이 되냐?”


작가의 초기 작품은 그래도 흔하게 볼 수 있는 그런 정상적인 그림이었다. 하지만 미술관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점점 장난스럽게 보였다. 그림에 대해 평가 기준은 없지만 이런 그림이 도대체 어떤 감흥을 일으킬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마음에 안 들어?”


“응. 왜 유명한지 모르겠어.”


“몰라도 돼. 그냥 봐.”


아현의 설명을 바랐다. 하지만 그녀는 어떤 설명도 없이 그저 묵묵히 손을 잡아끌며 그림 하나하나에 집중할 뿐이었다.


“왜 이렇게 그리는 거야?”


조금 전에 지나쳤던 단체 관람객은 미술관 직원의 설명을 듣고 있었다. 아현은 그 무리에 낄 생각이 전혀 없는지 바로 지나쳤다. 설명이라도 들으면 조금이라도 받아들이는 대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란 생각은 아현의 이끌림에 깨졌다. 그렇다고 직접 설명해 주는 것도 아니었다.


“그림은 그냥 보는 거야. 작가의 의도도 중요하지만 보는 사람이 저마다 느끼는 마음에 따라 달라 보이는 거야.”


아현은 그림에서 눈을 떼지 않고 말했다.


“이야, 서아현. 뭐 좀 있어 보이는데.”


제강은 손가락으로 볼을 쿡쿡 찔렀다.


“까불지 말고 그림이나 봐.”


하지만 아현은 서리가 내릴 것 같은 차가운 목소리로 시선도 돌리지 않고 제강의 장난을 막았다. 흥미가 생기지 않는 그림 감상이 지겨웠던 제강은 장난이라도 칠 생각이었는데 차가운 아현의 반응에 엄두가 나지 않았다.


“화장실 다녀올게.”


풀이 잔뜩 죽은 제강은 축 처진 어깨로 터벅터벅 화장실을 향해 사라졌다.



그림 감상에 깊이 빠져있던 아현은 그만 제강이 화장실에 갔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화장실을 간 시간을 모르니 시간도 얼마나 흘렀는지 알 길이 없었다. 적어도 십 분은 훌쩍 넘었을 것 같은데 아직 나타나지 않는 게 걱정됐다. 혹시 조금 전 차갑게 대답한 것 때문에 삐친 건 아닌지, 갑자기 몸이 안 좋아 어딘가에서 쉬고 있는 건 아닌지 불안했다.


아현은 바로 주변을 둘러보며 화장실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화장실을 가는 동안 보이는 의자나 구석에 제강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남자 화장실에 들어갈 수도 없는 노릇이라 그 앞에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데 저만치 제강의 뒷모습이 보였다. 아직 관람하지 않은 곳이었는데 어떤 그림을 보는지 허리를 숙이고 벽에 걸린 그림에 집중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 그림 마음에 들어?”


아현은 슬그머니 다가가 제강의 손을 잡았다. 혹시라도 삐쳤다면 자연스럽게 풀어주려는 의도였다.


“응. 이상하게 눈이 가네.”


제강이 뚫어져라 보고 있는 그림은 어른 손바닥 두 개만한 작은 캔버스 위에 그려져 있었다. 그 작은 캔버스엔 제강이 이해하지 못했던 지저분한 유화로 그린 밝은 표정의 광대의 얼굴이 있었다. 제목도 광대였다.


“어떤 점이 마음에 들어?”


미술관에 들어와 처음 집중하는 제강의 모습에 흐뭇해져 다시 부드럽게 물었다. 제강은 아현에게 시선도 돌리지 않고 미간을 찌푸리며 여전히 그림에 시선을 박은 채로 대답했다.


“이 광대 아저씨 못 웃는 것 같아.”


“응?”


“억지로 웃는 척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웃는 방법을 모르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달까?”


캔버스 위의 광대는 정말 제강의 말처럼 억지웃음을 짓고 있었다. 뭔가 슬픈 것을 감추기 위한 것처럼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봤을 땐 웃음 속에 감추고 싶은 슬픔이 있는 정도로 보이는 그림이었다.


“오빠 눈엔 그렇게 보여?”


“응. 얼굴은 사십대 후반 정도로 보이잖아. 저 나이 먹도록 한 번도 진짜 웃어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아. 그래서 표정을 저기까지만 지을 수 있는 것 같지 않아?”


제강이 고개를 돌려 아현을 쳐다봤다. 그런데 아현을 향한 제강의 표정이 그림 속 광대를 따라하는 듯 우스꽝스럽게 일그러져있었다.


“풉, 뭐야. 오빠 표정 너무 웃겨.”


아현은 터지는 웃음을 겨우 두 손으로 입을 막고 삼켰다.


“왜? 왜 웃어?”


“오빠 지금 표정이 완전 저 광대 아저씨랑 닮았어.”


“그래?”


제강은 다시 그림 속 광대를 쳐다봤다. 거울이 없어서 자신의 표정을 볼 수 없으니 닮았다는 원래 그림에 눈을 돌렸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여전히 전혀 웃기지 않았다.


“저 표정이 웃겨?”


“아니, 그림은 안 웃긴데 오빠 표정이 너무 웃겼어.”


“아······.”


생각해 보니 그럴 수 있을 것 같았다. 일부러 따라한 건 아니었다. 마치 만화책이나 영화를 볼 때 등장인물의 심리에 동화 돼 자연스럽게 그들의 감정과 표정을 얼굴로 따라하게 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표정이 동화된 것이었다.


“갖고 싶다. 이 그림.”


제강은 손을 뻗어 그 작은 그림을 잡는 시늉을 했다.


“할 거면 나 없을 때 하세요. 콩밥 먹기 싫습니다.”


“당연하지. 둘 다 큰집 들어가면 누가 옥바라지 하겠어.”


“뭐래? 그럼 나보고 오빠 옥바라지 하라고?”


“당연한 거 아니야? 손해 보는 느낌 나면 미리 말해. 네가 마음에 드는 그림도 같이 훔쳐볼게.”


“하여간 말이나 못하면······.”


아현은 제강의 머리를 쥐어박듯 살짝 밀었다.


“그래도 여기 오기 잘 한 것 같아.”


“정말?”


제강의 말은 의외였다.


“응. 왠지 저 그림을 안 봤으면 엄청 후회했을 것 같은 기분이라고 해야 하나? 남들 다 아는 유명한 그림은 그냥 유명할 뿐인데 저 그림은 뭔가 여운이 남아. 어지간해선 잊히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이야.”


“우리 오빠 미술관 데려오길 잘 했네.”


“역시 문화생활은 직접 겪어봐야 아는 것 같다. 만 오천 원도 전혀 비싼 게 아니네.”


“그치? 오빤 내 말 들으면 자다가도 떡을 얻어먹는다니까.”


미술관에 들어오기 전과 심경이 정 반대로 바뀐 것에 신이 난 아현은 제강의 말이 끝날 때마다 기분 좋은 맞장구를 쳤다.


“다음엔 누구나 다 아는 유명한 화가 전시회도 가보자. 왜 사람들이 그렇게 극찬을 하는지 보고 싶어졌어.”


“오, 우리 오빠 벌써 거기까지 발전한 거예요?”


“당연하지. 내가 누구 남자친구인데.”


“아이고 기특해라. 예쁘다. 우리 아기.”


아현은 기분이 더욱 좋아져 제강의 머리를 쓰다듬고 엉덩이까지 두드렸다. 평소라면 사람이 많은 공공장소에서 절대 하지 않을 행동이었지만 지금은 그런 것들이 신경 쓰이지 않을 만큼 기분이 좋았다.


“우리 다음에 또 오자.”


“응?”


‘출구’라는 두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그러고 보니 제강의 손에 이끌려 걷는 동안 그림은 한 점도 보지 못하고 줄곧 출구를 향해 걷고 있었다. 흐뭇한 기분에 취한 덕에 그런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고개를 들어 제강의 얼굴을 보니 미술관 탈출의 문전에서 계획에 실패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배··· 안 고파?”


“으이그, 인간아.”


아현은 제강의 옆구리를 꼬집어 끌며 출구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작가의말

다친 팔이 다시 재발합니다.

휴식이 필요한데.. 고민입니다.

선배가 이야기합니다.

잘 생각해라. 우리 일은 단거리가 아니라 마라톤이다.

쩝...

고민입니다.

‘기적과 함께’도 읽어주세요ㅠㅠ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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