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6

무료웹소설 > 자유연재 > 전쟁·밀리터리

D디귿
작품등록일 :
2018.01.08 19:24
최근연재일 :
2018.04.02 14:34
연재수 :
1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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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1.30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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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뺨 맞은 남자의 어줍잖은 꼼수

DUMMY

짝!


찰진 소리가 좁은 식당 안을 시원하게 울렸다. 식당 노파를 비롯해 아현의 치켜든 손을 숨죽이며 지켜보고 있던 모든 이들이 놀라 입을 가렸다.


놀란 건 제강도 마찬가지였다. 분명 아현의 눈빛은 당장 치켜든 손을 휘둘러도 이상할 게 없어 보이긴 했다. 아니, 뺨 한두 대 정도는 맞을 각오를 하고 있었다. 아현의 손이 포물선을 그리며 세차게 내려올 때 눈을 슬쩍 감았다. 뺨을 맞을 때 고개가 돌아가지 않고 의연히 버틸 생각으로 몸에 힘을 줬다. 아현의 손이 뺨에 머물면 슬며시 눈을 뜨고 미소로 자연스럽게 받아낼 생각이었다. 그런데 예상하지 못한 현상이 제강을 덮쳤다.


순간 눈앞에 번쩍인 번개와 불에 닿은 듯 화끈 거리는 왼쪽 볼, 그리고 세상이 도는 듯한 어지러움을 느끼며 몸을 휘청거렸다.


너무 놀라 머릿속으로 그렸던 말들이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다. 뺨을 강타한 충격은 골이 울릴 정도였고, 거기에 놀라움이 더해져 다리도 후들거렸다. 아현은 그런 제강의 상태를 아는지 모르는지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 같은 얼굴로 다시 한 번 손을 높이 치켜들었다.


“자, 잠깐. 잠깐만!”


뺨을 잡고 놀란 토끼눈을 껌벅거리던 제강은 황급히 정신을 차리고 치켜든 아현의 손을 덥석 잡았다.


“미안. 내가 잘못했으니까 우리 말로 하자.”


여자에게 사정을 해 보는 건 어머니 여와 이후 처음이었다. 아니, 성별을 떠나 어머니 여와 외에 누구에게도 사정을 해 본적이 없었다. 그렇게 무서워하는 아버지 반고에게도 사정이라곤 단 한 번도 해 본적이 없었다.


체면과 자존심의 문제도 있었지만 누군가에게 사정할 만큼 아쉬운 상황에 처한 적도 별로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것들을 생각할 겨를이 전혀 없었다. 마치 배구 선수에게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몇 번 더 당하면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말? 무슨 말? 이번에 또 네 말만 하려고?”


“아니, 아니야. 내가 제대로 설명할게.”


“뭘 제대로 설명해?”


“네가 화나게 된 일 말이야.”


“내가 화가 났다고? 아니. 그냥 네 얼굴이 기분 나빠서 때린 거야. 혹시라도, 만약에 우연히 널 다시 보게 되면 그 얼굴 한 대 때려주고 싶었던 것뿐이야.”


아현은 격해진 감정 탓에 입 밖으로 튀어나가는 말을 조절할 수가 없었다. 마음에 없는 말들이 입 밖으로 튀어나갈 때마다 후회로 가슴을 쳤지만 이미 내뱉은 말을 주워 담을 순 없었다. 그러면서도 마음에도 없는 험한 말은 계속 튀어나왔다.


답답한 건 제강도 마찬가지였다. 바로 조금 전까지만 해도 모든 상황은 예상대로 흘러갔다. 뺨을 맞은 후에 아현에게 장난스러우면서도 진지하게 건넬 말도 다 생각해 뒀었다. 그런데 정말 예상치 못한 충격에 그 모든 것이 무너져 버렸다. 그 덕에 분노로 가득 찬 아현의 말에 한 마디도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고 어정쩡한 변명만 늘어놓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러지 말고 진정 좀 해봐. 우리 천천히 얘기를 좀 해 보자.”


“난 너랑 할 말 없어. 그러니까 이 손 놔.”


아현은 차가운 목소리와 함께 제강의 손을 뿌리쳤다. 제강도 더는 잡고 있을 수 없어 손에 힘을 뺐다.


“다 싸웠냐?”


노파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답답한 가슴과 복잡한 머리로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할지 찾지 못하던 제강과 아현의 귓속을 파고들었다.


“이 썩을 것들이 어디 밥 처먹으러 와서 싸움질이야? 싸울 거면 밥 다 먹고 나가서 싸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던 상황에 노파의 호통은 상황을 잠시 멈추기에 좋은 핑계거리가 됐다. 아현은 이 순간을 놓치면 다시 의지와 벗어난 행동과 어색한 상황이 이어질 것 같아 몸을 돌려 원래 앉으려던 자리로 걸음을 옮겼다.


“자리도 없는데 어딜 따로 앉아? 그냥 같이 앉아서 처먹어.”


노파는 아현이 마지못한 표정으로 제강의 맞은편에 앉는 것을 보고 주방으로 들어갔다. 어떻게 된 사정인지 정확히 파악할 수 없지만 두 사람 모두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상황이 흘러가고 있다는 건 금방 알아차렸다.


저대로 두면 서로에게 상처만 주고 허무하게 끝나버릴 것 같았다. 괜한 참견을 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일단은 조금 전 상황은 잠시 끊을 필요가 있었다.


이제 나머지는 두 사람이 알아서 할 문제였다.


노파가 주방으로 들어가고 주변의 시선도 차츰 옅어져 갔지만 두 사람의 어색한 공기는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까.

조금 전의 상황을 어떤 식으로 마무리 지어야할까.

이 어색한 분위기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상대의 마음이 상하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두 사람의 고민은 똑같았다. 그렇기에 누구도 먼저 입을 열지 못했다.


제강은 아픈 볼을 만지며 고개를 숙이고 조신하게 밥을 먹는 아현을 곁눈질로 힐끔거렸다. 아현이 밥을 다 먹기 전까지 이 상황을 해결하지 못하고 식당을 나가면 이젠 영영 돌이킬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렇다고 다른 여자들에게 하는 것처럼 그럴듯한 표현으로 포장해 아무렇게나 말을 꺼낼 상황도 아니었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아현의 감정 상태였다. 예상보다 훨씬 격한 분노가 지금 얼마큼이나 잦아들었는지 알아야 그에 맞춰 대화를 풀어갈 텐데 지금처럼 얼굴을 볼 수 없는 상황에선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어떻게 알았어?”


식당 안 여기저기에 의미 없이 시선을 돌리던 제강은 귀를 의심해 눈을 번쩍 뜨고 아현을 쳐다봤다. 아현은 여전히 고개를 살짝 숙이고 있었다.


“뭐?”


당황한 제강의 목소리와 달리 다시 이어진 아현의 목소리는 매우 차분해져있었다.


“내가 여기 있는 건 어떻게 알았냐고.”


“아··· 산티아고에서 네가 말해줬잖아.”


제강은 일부러 한 번에 설명하지 않았다. 그래야 아현이 한 마디라도 더 할 수 있고, 그 속에서 아현의 기분 상태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내가? 난 분식집 이름 밖에 말한 적 없었는데?”


“응. 분식집 이름하고 주변 환경도 설명했어.”


“정말?”


그제야 아현은 의외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뺨을 맞고 노파의 호통에 어쩔 수 없이 마주앉은 뒤로 처음 보는 눈이었다.


제강은 아현의 눈을 보는 순간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큰 감정의 변화가 찾아온 것으로 보이진 않았으나 지금 주고받는 대화에 빠져들고 있는 것만은 확실했다.


“주변에 있는 여대생하고 여고생이 점심하고 저녁 시간에 줄을 서서 먹는다고 했잖아. 그 얘기 듣고 찾는 게 어렵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


“대학교하고 고등학교 근처에 있는 같은 이름의 분식집이 또 있을 수도 있잖아.”


“그렇지. 그런데 조금만 생각해 보면 여고생이 그 짧은 점심시간을 이용해 분식집 앞에서 줄을 설 수 있으려면 대학교보다 고등학교에 가까운, 고등학교 교문 앞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어야 하잖아. 전국에 있는 고등학교 앞에 분식집이 한두 개가 아니고, 동일한 이름도 한두 개가 아니겠지만 인근에 대학교가 있는 곳은 얼마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 그리고 이건 단순한 내 추측이었지만······.”


제강은 잠시 말을 멈추고 물을 마셨다. 목이 마른 탓도 있지만 꼭 물을 마시는 것만이 목적은 아니었다. 말을 멈춤으로써 보일 아현의 반응을 보기 위함이었다. 역시 예상대로 아현은 이 짧은 이야기에 완벽하게 빠져있었다.


“또 뭐가 있었다는 거야?”


“네가 여고생이라고 말한 게 걸리더라고. 여자들이야 나이에 상관없이 충분히 그럴 수 있지만 대학생씩이나 된 남자들이 굳이 분식을 먹기 위해 줄까지 서있진 않잖아. 그래서 여대생이라는 표현은 꼭 여대를 지칭하는 게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고등학생은 달라. 네가 그랬잖아. 여대생하고 여고생이라고. 그래서 남녀 공학이 아니라 여고일 확률이 높겠구나 생각했어. 근데 한국에 와서 인터넷 확인해 보니까 조건에 맞는 곳이 여기 한 곳이더라.”


“정말 그렇게 쉽게 찾은 거야?”


“인터넷에 검색해 보니 같은 이름의 분식집이 몇 개 되긴 했어. 그런데 그 중에 고등학교와 대학교가 인근에 있는 곳이 한 곳이었고. 내 추측대로 다행히 분식집은 여고 앞에 있더라. 그게 사흘 전이었어. 사흘 전부터 근처 가게에 들어가서 마냥 기다리고 있었어.”


아현은 확실히 뺨을 맞은 제강이 다급하게 말했던 그 ‘설명’이 무엇인지 궁금하긴 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급한 일은 어색한 상황을 자연스럽게 풀어가는 일이었다. 대화는 그 뒤에 해도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입 안으로 어떤 음식이 들어가서 씹히고, 삼켜지는지도 모를 정도로 복잡한 머릿속에서 겨우 생각해 낸 방법이 제강으로 하여금 이야기를 시작하게 한 것이었다.


상황을 타개하고 싶은 건 제강도 마찬가지였기에 분위기는 두 사람이 원하는 방향으로 자연스럽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만약 네 생각이 틀렸으면 어쩌려고 그렇게 막무가내로 기다린 거야?”


그날 들었던 말 중에 식당 이름이나 설명을 잘못 알아들었을 수도 있다. 혹은 아현이 거짓말을 했을 수도 있다. 어쩌면 그 사이에 이사를 갔거나 사정이 생겨 오랜 시간 이곳을 떠나 있을 수도 있다. 그 밖에도 생각할 수 있는 변수는 무수히 많았다.


“카미노에서 만났잖아.”


준비된 대답이었다. 조금 전엔 당황해서 말이 두서없이 나왔지만 이젠 완전히 원래대로 돌아왔다.


“무슨 말이야?”


“인연이 아니라면 무슨 수를 쓰더라도 만나지 못하겠지만, 만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어떻게든 다시 만날 거라고 생각했어.”


안정을 찾은 제강의 목소리에는 어느새 다른 여자들을 대할 때처럼 여유와 매력이 가득 담겨있었다.


“그럼 그저 우연에 걸은 거야?”


아현은 살짝 기분이 상했다. 남자의 이해할 수 없었던 그 날의 행동이 그저 우연과 요행을 바라는 성의 없는 선택이었다는 것에 부아가 치밀기 시작했다.


“그럴 리 없잖아.”


아현의 표정과 목소리가 굳어지는 것을 느꼈지만 제강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 마저도 예상한 반응이었다.


“난 그 길을 직접 걷지 않았지만 정말 많은 사람을 만나고 얘기를 나눴어. 그때 들은 말 중에 인상 깊었던 말이 몇 가지 있었어. 그 중에 하나가 ‘카미노는 카미노가 선택한 사람만이 걸을 수 있다.’였어. 듣기에 따라 굉장히 오만하고, 신비와 운명을 강조하는 것처럼 들리지만 내겐 긍정적으로만 들렸어. 선택을 받지 못해 걷지 못한 내게 다른 무언가를 주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


대화를 카미노와 연관 짓기만 해도 반 이상 의도한 대로 상황을 이끌어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생각대로 아현은 그 길의 환상에 덮여 초롱초롱해진 눈빛으로 제강의 다음 이야기가 이어지길 기다렸다.


“그 말이 지워지지 않고 머릿속을 맴돌고 있을 때 널 만난 거야. 솔직히 말하자면 처음 봤을 땐 그저 그런 호감이었어. 오랜만에 보는 한국 미인이었거든. 그저 다시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그리고 약간의 기대감을 갖고 성당에 가서 널 만난 거야.”


“날 찾으러 성당에 왔다고?”


“아니, 꼭 그렇진 않았어. 매일 성당에 가서 미사에 참여하고 그 곳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그 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게 하루 일과였거든. 꼭 성당이 아니라도 산티아고 어딘가에서 다시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거야.”


“아······.”


무언가 아쉽고 서운한 듯한 표정을 짓는 아현을 보고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다시 말을 이었다.


“고작 그걸 가지고 운명이나 인연이라고 생각했으면 내가 진짜 또라이지.”


“쿡!”


아현은 지금까지 제강을 이름 대신 ‘또라이’라고 불렀던 사실이 생각나 자기도 모르게 벌컥 웃음이 튀어나왔다. 급하게 입을 가리고 터지는 웃음을 삼켰지만 제강의 의아한 눈빛을 피할 순 없었다.


하지만 제강은 아현이 웃는 이유가 단순히 ‘또라이’라는 단어나 말투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별로 웃기지도 않은 표현에 웃음을 터뜨린 아현이 이해가 되질 않았지만 흐름을 잃지 않기 위해 말을 이었다.


“그 식당에서 같이 얘기 나누면서 상당히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어떻게 잘 해보려고 하는데 누군가한테 들은 말이 또 떠오르는 거야. ‘내 손에 있다고 다 내 것이 아닌 것처럼 내 것이라면 언제고 다시 돌아온다.’ 그 말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순간 평소 같지 않은 선택을 하고 싶어졌어. 운에 모든 걸 맡기는 도박이 아니라 추상적인, 카미노라는 그 길이 사람들에게 알려준 그 말들을 믿고 싶어지는 거야.”


“보통 그런 걸 보고 도박이라고 하는 거 아닌가?”


“아니야. 조금 달라.”


“뭐가 다르다는 거야? 다시 만나게 되면 좋은 거고, 안 되면 마는 거잖아.”


“믿음이지. 그 길을 믿고 싶었어. 그 길이 내게 들려준 말과 그 길에서 우연찮게 너와 만나게 된 것까지 믿고 싶어졌어.”


“그래. 결국 운명을 믿고 싶었던 거네.”


제강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카미노가 가진 기적과 같은 아름다움을 알고 있는 그녀에게 아주 쉽게 먹힐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 생각은 그곳에서 대화를 나눌 때 직접 경험했고, 확신했다. 그래서 그날 그곳에서 이 모든 것을 계획했었다. 마치 배구 선수에게 뺨을 맞은 것 같은 충격만 제외하곤 모든 것들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현의 반응은 전혀 뜻밖이었다.


“상황만 놓고 보면 운명을 기대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 길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불가능한 거지.”


“걷지도 않았잖아.”


제강은 대답할 수 없었다. 아현의 표정은 이미 스페인 산티아고에서 대화를 나눌 때처럼 평안해져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제강을 당황시키고 입을 다물게 만들었다.


“이제 다 싸웠냐?”


언제부턴가 부드러워진 분위기로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에게 다가온 노파는 부드러운 음성과 함께 종이컵에 담긴 커피 두 잔을 식탁에 올려놓았다.


“그렇게 웃으면서 마주 앉으니까 얼마나 보기 좋냐? 싸울 땐 싸우더라도 다른 사람한테 피해는 안 가게 해야 할 거 아니냐?”


“죄송합니다.”


두 사람은 고개를 살짝 숙이며 속삭이듯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알았으면 됐다. 그리고 아무리 속상한 일이 있어도 그렇게 쉽게 손찌검 하는 거 아니여. 총각 얼굴 좀 봐라. 네년 손자국이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있잖냐. 저래서 어디 고개 들고 돌아다니겠냐?”


아현은 그제야 제강의 왼쪽 뺨에 남아있는 선명한 붉은 손자국을 봤다. 격한 감정에 싸여 생각 없이 손을 휘두른 결과가 이렇게까지 흉하게 남을 줄 몰랐다. 아현은 당황함과 미안한 마음에 손을 뻗어 제강의 왼쪽 뺨에 올렸다.


“괜찮아?”


미친년인가?


갑작스런 재회로 놀란 마음이 분노로 바뀌고 다시 안정을 찾았다. 그리고 원만하게 분위기가 흐르는 듯 했으나 산티아고를 이용해 억지로 인연을 완성시키려는 의도를 알아차린 듯 다시 차갑게 구는 것까지도 이해가 됐다. 그런데 지금 이 행동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산티아고 대성당 뒤 광장에서 대화를 나눌 때 아현이 자신에게 호감을 갖기 시작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이미 다 잡은 물고기를 뜰채로 들어 올리는 건 재미없었다. 그래서 그 짧은 시간에 머리를 굴려 새로운 방법을 떠올렸다. 의미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재밌고, 추억할 수 있는 –놀랄만한-사건이 필요했다. 나름 괜찮은 계획이라 생각했고, 한 시간 정도 대화를 나누며 파악한 상대의 성격을 미뤄보아 충분히 성공할 거라 믿었다.


하지만 결과는 전혀 달랐다.


결과를 되돌리기 위해 실패의 원인에 대해 생각해 봤지만 예상치 못한 변수 외엔 별다른 것이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가장 큰 실패의 요인은 상대를 잘못 파악하고 있었던 점이었다. 아니, 보다 정확히 말하면 파악할 수 없는 상대를 파악했다고 착각한 것이었다.


“정말 종잡을 수 없다.”


뜨끈한 열기가 느껴지는 제강의 볼에 손을 얹고 있던 아현은 말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눈만 말똥말똥 뜨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나름 그럴듯한 계획이라고 생각했어. 예상 못한 어느 날 ‘짠’하고 나타나 다시 반갑게 재회하고, 시간이 지난 뒤에도 재밌게 기억될 이야기가 되길 바란 거였어. 물론 욕먹을 각오는 하고 있었지 뺨까지 맞을 줄은 몰랐지만······.”


뺨 한두 대 정도는 각오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엄청난 손맛을 느낄 줄 몰랐다.


“······.”


아현은 대답 없이 제강의 말이 이어지길 기다렸다.


“좋은 기획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수였던 것 같다. 다시 만날 걸 설레며 기다리는 재미도 있었지만 차라리 그때부터 쭉 사귀고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더 크네.”


잠자코 듣고 있던 아현은 제강의 뻔뻔한 말투에 기가 찼다.


“허, 뭐래는 거야? 누가 너랑 사귄대?”


“우리 당연한 소리는 이제 빼자. 앞으로 할 일도 많은데 그런 걸로 왈가왈부 하긴 시간이 아깝잖아.”


“어머, 점점······.”


“나가자.”


작가의말

올 여름은 크게 덥다는 생각을 거의 못했는데 내일부터 다시 30도 아래로 떨어진답니다(이예~!!!!)

어여 여름이 가고 겨울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겨울이라고 해봐야 한국의 가을 날씨 밖에 안 되지만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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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감시자 - 뒷골목 삼겹살 집 18.01.23 69 0 19쪽
5 "아현" 18.01.21 112 0 10쪽
4 "예" 18.01.14 74 0 9쪽
3 Santiago de Compostela 18.01.12 69 0 29쪽
2 제작 발표회 18.01.09 95 0 17쪽
1 레온(Leon) 18.01.08 112 1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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