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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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디귿
작품등록일 :
2018.01.08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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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02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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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1.12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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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ntiago de Compostela

DUMMY

오월의 문턱에 가까워졌음에도 스페인 북부 도시 산티아고엔 완연한 봄은 아직 찾아오지 않았다. 세상을 아름답게 꾸밀 의무를 갖고 태어나기라도 한 것처럼 세상에 뿌리 내린 온갖 것들은 푸른빛으로 자신을 치장했지만 멀리 보이는 산들은 아직도 머리에 흰 눈을 덮고 있었고 날씨 또한 변덕이 심해 따뜻함과 추위, 더위를 제멋대로 내보였다.


산티아고 대성당 뒤쪽 광장은 이른 아침부터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쉴 새 없이 바쁜 걸음 하는 것을 볼 수 있는 곳이다. 다양한 목적과 의미를 안고 기독교의 유명한 성지 주변을 바삐 걷는 이들 중 가장 인상 깊고, 시선이 가는 것은 역시 순례자들이다. 짧게 수십에서 길게 수백 킬로미터의 여정의 끝에 닿은 허름한 차림과 배낭을 짊어진 순례자들은 정말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제강은 보름 전 한 여행 잡지사로부터 산티아고와 그곳으로 향하는 순례길, 그리고 그 길을 걷는 순례자들에 대한 기사를 의뢰받았다. 때맞춰 레온에서의 의뢰도 있었기에 흔쾌히 수락했는데 생각보다 훨씬 괜찮은 선택이었다. 순례길을 직접 걸은 건 아니었지만 산티아고에 도착해 지난 사흘 동안 만난 순례자들은 머릿속으로 그렸던 것 보다 훨씬 많은 사연과 저마다의 의미를 가슴에 담고 있었다.


제강은 광장 주변의 높은 담벼락이 만든 그늘 드리운 노상 탁자에 앉아 식당에서 주문한 와인을 홀짝이며 지난 사흘 동안 만난 순례자들의 이야기를 정리하고 있었다.

근무 중 순직한 동료 경찰의 사진을 가슴에 품고 팔백 킬로미터를 걸어온 이탈리아 남자, 육십 나이에 무언가 새로운 것을 찾고 싶다던 프랑스 남자, 이삼 년에 한 번씩 순례길을 찾는 중년의 캐나다 여자, 프랑스 남부 마을 생장에서 출발하는 ‘프랑스 길’을 반대로 걷기위해 산티아고에서 출발 준비를 하던 스페인 여자 등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나둘 정리하고 있을 때 광장의 북쪽 계단 쪽에서 밝은 감정이 잔뜩 묻은 젊은 여자 목소리가 큼직한 벽돌로 둘러싸인 광장을 울렸다.


“헤이, 사라!”


주변의 소음에 크게 신경 쓰지 않던 제강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 소리 나는 곳을 쳐다봤다. 그의 시선이 머문 곳은 계단의 위쪽 골목이었다. 이제 막 골목을 빠져나온 것으로 보이는 붉은색 등산복 차림의 동양 여자가 계단 중간에 앉아있는 백인 여자를 발견하고 반가움에 외친 소리였다. 계단에 앉아있던 중년의 백인 여자도 동양 여자를 알아보고 벌떡 일어나 얼싸안고 반가운 인사를 나눴다.

제강은 얼굴에 흐뭇한 미소를 띠며 다시 고개를 숙였다. 이곳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같은 길을 걸어오며 짧은 시간 일행이 되거나 이따금씩 마주치며 안면을 튼 이들이 목적지에서 다시 만나 반가움을 표시하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그녀들의 시끄러운 대화는 꽤나 오래 지속되었지만 처음의 흥미는 사라지고 제강은 다시 하던 일에 집중했다. 사고로 잃은 두 쌍둥이 자식이 아끼던 장난감을 배낭에 넣고 이곳까지 걸어온 미국인 부부의 사연을 정리하고 있을 때였다. 누군가의 시선을 느낀 것도 아니고 주변 환경의 변화를 느낀 것도 아니었다. 지극히 안정적인 평화로움 속에서 일에 집중하며 숙이고 있던 고개가 자연스럽게 들렸다. 알 수 없는 절대자의 힘에 의해 머리만 의지를 벗어난 것처럼 천천히 세워 앞을 향했다.


“어?”


평소라면 절대 의도하지 않은 반응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을 제강이지만 바로 앞을 지나가는 여자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짧은 탄성을 질렀다.


“부에노스 디아스.”


계단 위에서 큰 소리로 사라라는 백인 여자와 인사를 나눴던 그 동양 여자였다. 그녀는 제강과 눈이 마주치자 자연스럽게 스페인어로 아침 인사를 건넸다. 그녀가 앞을 지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먼발치에서 본 그녀의 모습이 인상적이지도 않았다. 시선을 거둔 후로 그녀에 대해 전혀 신경 쓰지도 않았다. 그런데 기다렸다는 듯이 그녀가 앞을 지날 때 고개가 들렸다. 지금까지 한 번도 겪어보지 않은 상황에 당황했지만 겉으로 드러내진 않았다.


“부에노스 디아스. 부엔 카미노.”


제강은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순례자들에게 건네는 인사를 덧붙였다.


“부엔 카미노. 아디오스.”


뒤로 묶은 검은 긴 생머리, 화장을 하지 않았음에도 선이 분명한 눈썹과 겁이 많을 것 같은 짙게 쌍꺼풀 진 둥글고 큰 눈, 갸름한 얼굴에 높지도 낮지도 않은 콧대와 둥근 콧날, 얇고 미소가 잘 어울리는 붉은 입술까지 어디 하나 흠 잡을 데 없는 미인이었다.

나이는 대략 이십대 중후반 정도로 보이는 동양 여자는 작별 인사를 하고 제강을 지나쳐 대성당 앞 광장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예쁘네.”


제강은 두 손을 깍지 껴 뒷목에 대고 몸을 뒤로 한껏 기대며 사라져 가는 동양 여자의 뒷모습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작은 흔적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유심히 그녀를 관찰하던 제강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깍지를 풀고 다시 고개를 숙였다.


* * *


미사 직전의 산티아고 대성당 안은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과거의 피와 땀이 서린 웅장하고 아름다운 건축양식을 구경하려는 사람들과 미사 자체를 목적으로 온 사람들이 뒤엉켜 서쪽과 북쪽, 남쪽 출입구는 유난히 복잡했다.

제강은 서쪽 입구의 복잡한 틈을 비집고 들어와 바쁘게 시선을 움직였다. 이미 미사에도 참여하고 성당 내부도 질릴 만큼 본 그의 목적은 이곳의 다른 수많은 사람들과 전혀 달랐다. 성당 관계자로 보이는 사람들이 바삐 움직이며 관광객들의 소음을 줄이고 미사의 시작을 준비하는 사이 제강의 눈에 원하던 것이 들어왔다.


한 시간 가량의 미사가 끝나고 아직도 은은하게 공기 속에 녹아있는 향내를 맡으며 제강은 미사 시작 전 확인한 목표를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미사가 끝나고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나 저마다의 목적을 위해 걸음을 옮김에도 여전히 그 자리에 곧은 자세로 앉아 있는, 검고 긴 생머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있는, 어제와 다른 옷을 입고 있는 그녀를 향하는 제강의 걸음은 한없이 가벼웠다.


“안녕하세요.”


등 뒤에서 들려오는 제강의 목소리에 놀란 검은 머리 여자는 어깨를 움찔하며 황급히 몸을 돌렸다.


“어머, 안녕하세요. 한국 사람이었어요?”


전날 제강의 시선을 훔쳤던 붉은색 등산복 차림의 동양 여자였다. 그녀는 전날 땀과 먼지에 덮이고, 더위에 눌려있던 모습이 아니었다. 말끔한 차림에 옅게 화장까지 한 그녀의 모습은 확실히 상당한 미인이었다.


“기억하시네요.”


“네. 어쩌다 보니······. 근데 제가 한국 사람인 건 어떻게 아셨어요?”


“어제 보니까 배낭 한쪽에 태극기가 박음질 되어 있더라고요.”


“아, 되게 작았는데 그걸 보셨네요?”


“네. 눈에 띄었어요. 아침 식사는 하셨어요?”


제강은 처음 말을 건 순간부터 여자의 행동, 말투, 표정 하나까지 세심하게 살피고 있었다. 그녀의 반응에 따라 대답과 질문을 선택해야 했기에 어느 것 하나 놓치면 안 됐다.


“아뇨. 아직 못 했어요.”


됐다! 제강은 속으로 쾌재를 질렀다. 경계심을 갖은 상대의 마음을 허물기는 상당히 어렵다. 하지만 다행히 이 여자는 처음부터 별다른 경계심을 보이지 않았다. 적당히 대답과 질문이 조화되었다는 게 그 증거였다. 물론 그것만으로 상대를 파악하긴 어렵다. 그래서 조금 성급할 수도 있지만 일부러 식사 여부를 넌지시 물은 것이다.

‘아직’이라는 표현은 앞으로 식사할 계획이 있다는 의미이며, 그 의미는 ‘네가 같이 가자고 할 걸 알고 있다.’와 연결이 된다.


“그럼 같이 식사 하실래요? 근처에 괜찮은 집 있어요.”


“정말요? 그렇지 않아도 어디서 먹을지 고민했는데 잘 됐네요.”


* * *


제강이 그녀를 데려간 곳은 매일 아침 와인을 마시던 곳이었다.


“어제 거기네요?”


“네. 여기 순례자 음식이 괜찮아요.”


제강은 늘 앉던 자리로 걸어가 먼저 자리를 양보하고 맞은 편 의자에 앉았다. 이내 밝은 표정의 남자 점원이 다가왔다.


“음료는 어떻게 하실래요?”


“저는 와인이요.”


음식을 시킬 때 기본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음료는 물, 맥주, 콜라, 와인의 네 종류였다. 제강은 와인을 마시고 싶었지만 아침부터 와인을 마실 한국 여자는 없을 거란 생각에 포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상대가 먼저 와인을 선택했다. 점점 상대에게 깊은 호감을 느끼며 평소보다 더 친절한 목소리와 표정으로 점원에게 주문을 했다.


“와인 좋아하시나 봐요?”


“네. 좋아해요. 그쪽도 좋아하시죠?”


제강은 상대가 한 말의 의미를 파악하려고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어제 안주 하나 없이 와인만 마시는 것을 보고 한 말임은 분명했다. 하지만 이것이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한 긍정적인 의미인지 아니면 아침부터 술만 마시는 남자에 대한 부정적인 의미인지 쉽게 가늠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생각만 하고 대답을 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네. 한국에선 가격도 비싸고 먹을 기회도 많지 않잖아요. 그래서 먹을 수 있을 때 먹어두려고요.”


말을 마치며 후회로 가슴을 두드렸다. 생각과 다르게 대답이 변명처럼 들릴 것 같았다.


“맞아요. 한국에서 마셔본 와인 여기 상점에서 봤는데 가격이 반도 안 되더라고요. 마실 수 있을 때 마셔야죠. 그런데 우리 서로 이름도 모르네요.”


제강은 다시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제 이 여자가 도착한 이후엔 순례자를 위한 미사가 없었다. 순례자에게 있어 순례의 마지막은 순례증서 만큼이나 미사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미사 시간을 맞춰 성당에 몇 번 가다보면 만날 수 있는 확률이 높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순례자들이 관광이나 기념품 구입을 위해 짐을 풀고 하루를 보낼 곳도 잘 알고 있었지만 성당에서 자연스럽게 만나는 것이 노골적인 의도를 조금이라도 숨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비록 원초적인 순수함에서 나오는 이 의도가 발각될지라도 남녀 간의 지극히 자연스러운 호감이라는 포장을 씌우면 그만이었다.

이런 것들이 대략 머릿속에 그렸던 흐름이었다. 그런데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그림을 만났다. 그것은 마치 주객이 전도된 것 같은 상대의 적극적인 자세였다. 그렇지만 그녀의 눈빛 어디에서도 자신과 같은 의도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네요. 전 이제강이라고 합니다.”


“전 서아현이라고 해요. 생장에서 출발하셨어요?”


생장은 일반적으로 선택하는 ‘프랑스 길’의 출발지였다.


“아뇨. 전 일 때문에 이곳에 온 거예요. 순례길은 못 걸었고요.”


“아··· 그러셨구나.”


아현의 실망하는 표정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났다. 제강은 그 이유에 대해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생장에서 출발하신 거예요?”


“네.”


이전과 다르게 대답이 짧았다. 같은 길을 걷지 않은 것에 대한 실망한 것처럼 보였다.


“며칠이나 걸리셨어요?”


“삼십삼 일이요.”


짧은 대답은 대화를 이어나가기 어렵게 만들었다. 하지만 제강은 쉽게 포기할 수 없었다. 한국에서도 보지 못한 이상형에 가까운-그저 예쁜- 여자를 이렇게 보낼 수는 없는 일이었다.


“여자분 치고는 굉장히 빨리 걸으셨네요? 그럼 어제는 ‘몬테도 고소’에서 묵으신 거예요?”


제강은 아현의 눈이 빛나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거기 알베르게가 넓어서 좋다고 하던데, 진짜에요?”


“다른 일 때문에 오셨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어떻게 그렇게 잘 아세요?”


역시 예상대로 눈앞의 예쁜 여자는 같은 길을 걸은, 혹은 그 길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에게 반응하고 있었다. 마치 주객이 전도된 것 같던 상황도 그녀에겐 처음 보지만 같은 길을 함께한 동료 의식 같은 것에서 오는 친근함이 원인인 것 같았다.


“그 다른 일이 산티아고하고 순례길, 순례자예요.”


제강은 점원이 전식傳食으로 들고 온 감자 파이와 와인을 탁자에 올려놓는 바람에 잠시 말을 멈췄다. 만약 이 상황을 파악하지 못했다면 그런 사소한 주변 상황으로 말을 멈추지 않았겠지만 이젠 다시 관계를 조절할 수 있다는 생각에 여유가 생겼다.


“보기하곤 다르게 자유계약 작가거든요. 이번에 의뢰 받은 내용이 이 길과 순례자들에 대한 내용이에요.”


“와, 작가세요? 멋있어요.”


그 큰 눈을 더 크게 뜨며 아낌없이 내뿜는 초롱초롱한 빛은 제강의 심장을 강하게 압박했다. 세상의 때라곤 전혀 묻지 않은 것 같은, 자신과는 너무도 다른 순수한 표정과 눈동자는 오래 보고 있지 못할 정도였다.


“아니, 뭐 그 정도까지는 아니고요······.”


“어, 어. 지금 쑥스러워 하시는 거죠? 나름 귀여운 면도 조금 있네? 건배해요. 건배.”


아현은 와인 병을 들고 빠르게 잔을 채워 제강에게 내밀었다.


“아까는 제 태도가 바뀌어서 기분 나쁘셨죠? 제가 좀 그래요.”


잔을 부딪치자 얇은 와인 잔이 맑은 소리를 내며 울렸다. 제강은 눈치를 살피며 와인을 반쯤 비우고 슬그머니 상대의 대화를 유도했다.


“전혀 아니라고는 못 하지만 기분 나쁠 정도 까지는 아니었어요. 그런데 뭐가 그렇다는 거예요?”


“제가 원래 처음엔 낯을 진짜 많이 가려요. 그런데 여기선 다르더라고요. 물론 여기서도 처음엔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어요. 그런데 나이나 국적, 언어에 상관없이 사람들이 같은 순례자라는 이유 하나로 가족같이 대하는 거예요. 처음 보는 사람이 웃으면서 인사하고, 대가 없이 친절을 베풀고, 다시 만나면 헤어진 가족 만나는 것처럼 정말 반갑게 반겨줘요.”


제강은 어제 처음 본 아현의 모습을 떠올렸다. 사라라는 백인 여자를 만난 반가움에 주변 신경을 조금도 쓰지 않고 반갑게 인사하는 그녀의 모습이 눈앞에 펼쳐진 것처럼 생생하게 살아났다.


가식 없는 표정과 몸짓, 목소리.


그녀가 간직하고 있는 순례길의 아름다움에 대해 경험하지 못하고 상상으로만 이해해야 하는 사실이 조금은 씁쓸했다.


“저도 제가 그들처럼 행동할 줄은 몰랐어요. 그런데 어느새 그렇게 행동하고 있는 거예요. 그런 제 모습에 진짜 많이 놀랐어요. 저 같은 애도 바꿔주는 이곳이 정말 아름답기만 하고 좋은 곳이더라고요. 나이랑 어울리진 않지만 세상에 다시없을 것 같은 낙원이란 생각까지 들었어요.”


스스로 뱉은 말에 쑥스러운 듯 고개를 살짝 숙이고 감자 파이를 포크로 잘게 자르기 시작했다.


“제가 보기엔 아현 씨 성격이 말씀하신 것처럼 그렇게까지 내성적일 것 같진 않은데요. 완전히 외향적인 성격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남들만큼 밝고, 농담이나 장난도 잘 할 것 같구요.”


아현은 놀란 눈으로 고개를 들어 제강을 바라봤다.


“어떻게 아셨어요?”


“글쎄요. 그냥 그렇게 보여요.”


가벼운 농담을 섞을까 하는 고민이 잠깐 스쳤지만 지금은 때가 아닌 것 같아 속으로만 삼켰다.


“그래요? 난 또 얼굴에 다 드러나는데 나만 모르는 줄 알았네요. 히히.”


아현은 가볍게 웃으며 쑥스러움에 멈췄던 말을 계속 했다.


“그런데 사흘 전에 휴대전화를 도둑맞았어요. 충전기에 꽂아뒀는데 아침에 보니까 없더라고요.”


“네? 어디에 두셨는데요?”


“숙소 입구 쪽에 뒀었어요. 침대 근처엔 콘센트가 없었거든요.”


“아이고, 그럼 당연히 가져가죠.”


“아니에요. 지난 한 달 동안은 그런 걱정 전혀 하지 않았어요. 저도 처음에는 이것저것 굉장히 조심했는데 지내다 보니까 괜찮았어요. 다른 사람들도 아무 곳에나 물건 막 두고 다니고요. 그래도 아무도 안 가져가요.”


아현은 잃어버린 휴대전화 생각에 가슴이 답답해 반쯤 남아있던 와인을 비우고 다시 잔을 채웠다.


“어떤 포르투갈 아저씨가 얘기해 줬는데 사람들이 갑자기 많아지는 사리아부터는 도둑들이 조금씩 있다더라고요. 잘 몰랐던 제 탓이죠.”


“속 많이 상했겠네요. 다른 것도 다른 거지만 여기 와서 찍은 사진도 꽤 많을 텐데······.”


“내 말이. 그건 돈 주고 살 수도 없잖아요.”


본식인 닭고기를 들고 나온 점원 때문에 대화가 다시 멈췄다.


“그러고 보니 얘기 하느라 거의 못 먹었네요. 좀 드시고 말씀하세요. 빈속에 와인만 드시고 있잖아요.”


제강이 먼저 포크와 나이프를 들며 말했다. 아현은 그제야 잊고 있던 허기를 느꼈던지 쑥스럽게 미소를 지으며 식사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근데 술을 정말 잘 하시나 봐요. 빈속에 한 잔을 그냥 들이키시네.”


“저요? 아니에요.”


“에이, 아닌 게 아닌데. 손끝에서 목 넘김까지 예사롭지 않던데요.”


“누가 들으면 술고래인줄 알겠어요. 그리고 자기는 아침부터 와인을 병으로 놓고 마시면서······.”


“전 밥 다 먹고 마시는 거예요. 그건 그렇고 아현 씨 주량이 얼마나 돼요?”


“주량? 소주로?”


“그럼 맥주겠어요? 와인이겠어요?”


제강은 와인이 반쯤 남은 잔을 흔들어 보였다.


“음··· 두 병? 상태 괜찮은 날은 서너 병까지 마실 수 있어요.”


아현은 마치 큰 자랑인양 자신 있게 숫자에 힘을 주며 말했다.


“와, 고래네요. 고래. 고래 맞네! 우리 한국에서는 소주로 한 잔 해요.”


재회에 대한 분명한 약속은 마지막에 남길 대사다. 굳이 대화 중간에 재회에 대해 확답을 받기 위한 질문을 던지는 건 대화의 흐름과 지금까지의 관계를 어색하게 만들 수도 있다. 그래서 제강은 대화 속에 재회가 당연한 것처럼 자연스럽게 끼워 넣었다.


“그래요. 와인도 맛있지만 한국 사람은 소주지.”


이런 사소한 대화가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가지만 대화가 지속되면서 머릿속에 아주 작은 망울 하나라도 남게 되면 마지막 승부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제강은 그렇게 믿고 있었다. 어떤 정신의학적 근거도 없고, 그동안의 경험 속에서 성공 사례를 연구해 본 적도 없지만 자신만의 연애기술과 접근 방식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었다.


두 번째 와인 병도 반을 넘게 비우며, 식사가 거의 끝날 무렵까지 순례길에 대한 이야기는 계속 되었다.


“근데 아현 씨는 무슨 일 하세요? 이 계절에 한 달이 넘도록 시간을 낼 수 있는 게 부럽네요.”


“일은 무슨··· 백수에요. 백수. 다니던 직장 그만두고 여기 온 거예요. 전부터 와보고 싶었거든요.”


“순례길 때문에 그만둔 거예요? 아니면 그만둔 김에 온 거예요?”


“둘 다. 아까 얘기한 것처럼 내가 낯을 많이 가려요. 그런데 하는 일은 사람 상대하는 일이다 보니 일하는 내내 힘들었어요. 그래서 그만둔 것도 있고, 봄에 순례길 걸으면 경치가 그렇게 좋다고 해서 일부러 지금 그만 두고 온 거죠.”


“그런 게 있는 것 같아요. 남들은 다 잘 하지만 내게는 힘든 부분인데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힘든 상황 같은 거요. 그런 거 참 괴롭죠.”


“맞아요. 맞아. 내가 병원에서 일했거든요. 학교 졸업하고 삼 년째 일했는데 나랑 안 맞는 일을 계속 한다는 게 너무 힘든 거예요. 거기다 아픈 사람들 보는 것도 힘들고, 치료 받으면서 친했던 환자들이 퇴원하지 못하고 하늘나라 가는 걸 보는 것도 너무 힘들었어요.”


지금까지의 밝은 표정 속에 숨어있던 어둡고 쓸쓸한 표정이 빠르게 밖으로 나와 아현의 온 얼굴을 덮었다. 그 큰 눈이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고 있었다.


“어허, 밥 먹다가 우는 거 아니에요. 그러면 복 나가. 복. 와인 마셔. 와인.”


제강은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아낼 것 같은 아현을 달래려고 다급하게 말하며 그녀의 잔을 채웠다.


“안 울어요. 내가 나이가 몇 살인데.”


기억 속 슬픔을 떨치려는 듯 고개를 가로 저으며 고개를 든 아현의 눈 속에는 아직도 슬픔과 약간의 눈물이 맺혀 있었다.


“에이, 아닌데? 아직도 눈물이 그렁그렁 하는데?”


일부러 분위기를 밝게 만들 생각으로 제강의 농담은 계속 됐다.


“아니거든요. 근데요.”


아현의 표정이 갑자기 단호하게 바뀌었다. 제강은 농담이 너무 지나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장난스런 표정을 지우며 아현의 눈치를 살폈다.


“아까부터 은근히 말 놓네요? 몇 살이에요?”


걱정했던 것과 달리 아현의 말투와 표정은 장난기를 머금고 있었다. 제강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도 한 편으론 어이가 없었다.


“무슨 소리래? 아까부터 은근슬쩍 한두 마디씩 놓는 건 아현 씨였잖아요. 누가 봐도 내가 오빠겠구만. 버릇없이 말이야.”


“어머, 별꼴이네. 내가 언제 말을 놨다고 그래요. 그건 그냥 내 말투가 그런 거예요.”


“하하하. 뭐야 그게. 하하하.”


제강은 너무나 당당한 아현의 말에 그만 큰 웃음을 터뜨렸다. 갑작스런 웃음소리는 주변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장난을 목적으로 한 농담이었지만 순식간에 쏠리는 주변 시선에 아현은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뭘 또 창피해 하고 그래요. 전 서른두 살이에요. 아현 씨는요?”


“그냥 이십대요. 됐어요?”


제강은 처음부터 정확한 나이를 물을 생각이 전혀 없었다. 어차피 잘 되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것이고, 다시 만날 일이 없다면 나이를 아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일이었다.


“그럼 이제 말 놓는다.”


“편하실 대로 하시던가요.”


“너도 편하게 말해. 난 나이 같은 거 크게 신경 안 써.”


“후회하실 걸요.”


“왜?”


“제가 말 놓는 순간 오빠 멱살 잡는 건 예사에요.”


아현은 손을 뻗어 제강의 멱살 잡는 시늉을 했다. 하지만 제강의 눈엔 그 모습이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 예상치 못한 ‘오빠’라는 음성만 귓가에 메아리쳤다.


“그거 듣기 좋네. 오빠.”


“내가 이럴 줄 알았어. 하여간 한국 남자들은 오빠라고만 하면 그저 좋아가지고······.”


“오빠라는 단어에 대한 로망은 어쩔 수 없는 거야. 그리고 너 거짓말 했지?”


“뭐가요?”


아현은 생뚱맞다는 표정으로 제강을 쳐다봤다.


“낯가린다며? 사람들 대하는 게 어렵다며? 완전 뻥이네. 뻥.”


“뻥 아니거든요. 아까 그랬잖아요. 처음에 낯가린다고. 조금 친해지면 괜찮아요. 그리고 지금 술도 조금 들어갔잖아요.”


“하여간 말은 잘 해요. 식사는 입맛에 맞았어?”


“네. 맛있었어요. 근데 아무래도 입맛에 맞으려면 고추장이나 된장이 있어야죠.”


아현은 병에 남은 와인을 잔 가득 따랐다.


“공감. 직업 때문에 가끔 이렇게 외국 다니는데 다른 건 다 괜찮은데 한국 음식 오랫동안 못 먹는 게 제일 힘들어.”


“맞아요. 전 이번이 외국 처음인데 힘들어 죽을 것 같아요. 한국 음식 먹고 싶어서······.”


“뭐가 제일 먹고 싶은데?”


“떡볶이! 세상에서 떡볶이가 제일 좋아요. 우리 집 근처에 ‘봉식이네 분식’이라는 곳이 있는데 근처 여고생, 여대생 애들이 점심, 저녁으로 줄을 서서 먹을 정돈데 거기 떡볶이가 최고에요. 하지만 급한 대로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인스턴트 즉석 떡볶이라도 사 먹을 거예요.”


붉은색 고추장 국물에 덮인 얇은 가래떡과 어묵, 삶은 달걀, 양배추며 파 같은 채소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매콤한 자태.

거기에 어묵 국물 한 그릇.

아현의 머릿속에 떡볶이 그릇이 그리운 향기를 내며 맴돌았다.


“오빠 떡볶이 잘 하는데, 나중에 한국에서 한 번 만들어 줄게.”


“저기요. 이제강 씨.”


다양하게 변하던 아현의 표정이 다시 진지하게 굳어졌다. 하지만 이제 제강도 그 표정이 특정한 농담을 위해 일부러 짓는 표정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까부터 한국에서 당연히 보는 것처럼 이야기 하는데, 누가 오빠 본대요?”


“그래?”


제강은 별 거 아니란 듯 슬쩍 미소를 지으며 일부러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눈에 힘을 주고 노려보는 아현의 눈을 피했다.


“뭐야? 그 반응은?”


“건배.”


제강은 대답대신 와인 잔을 들어 아현에게 내밀었다. 아현은 얼떨결에 잔을 들어 제강이 내민 잔에 부딪혔다.


“너 그거 마시면······.”


제강은 정우성과 손예진 주연의 영화 ‘내 머릿속의 지우개’에 나오는 유명한 대사를 흉내 낼 생각이었다.



영화 속에서 잦은 인연으로 정우성에게 호감을 갖게된 손예진은 포장마차에서 동료들과 술을 마시고 있는 정우성 일행 자리에 친구들과 합석을 한다. 시간이 흐르고 친구들의 야유 속에서도 정우성과 손예진은 손을 잡은 채 둘만의 분의기를 유지한다.


이어 손예진의 소주잔이 넘치도록 잔을 따른 정우성의


“이거 마시면 나랑 사귀는 거다.”


라는 대사에


“안 마시면?”


하고 도발적인 눈빛으로 튕기듯 이야기 한다.


그 말에 정우성은


“볼 일 없는 거지. 죽을 때 까지.”


라고 말하며 술에 취해 흐릿했던 표정과 눈빛을 그윽하게 바꿔 손예진을 쳐다본다. 손예진은 정우성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단숨에 소주를 들이 키고 이어 진한 키스가 이어진다.



아현이 그 대사를 알고 있을 거라는 전제 하에 장난스럽게 던진 대사였지만 정작 중요한 부분은 꺼내지도 못하고 막혀버렸다.


“악! 악! 하지 마! 하지 마! 계속 하면 죽여 버릴 거야. 어디 감히 우리 정우성님만을 위한 대사를 미천한 인간 따위가! 그리고 오글거리니까 그런 거 하지 마요.”


아현은 온몸을 부르르 떨며 진저리를 쳤다. 하지만 그럴수록 제강의 장난기는 더욱 커졌다.


“나도 양심이 있는데 똑같이 따라 하겠냐?”


“안 돼. 비슷하게도 안 돼.”


“야, 너무 한다. 네가 처음에 와인 마시겠다고 할 때부터 생각했던 건데 한 번만 하게 해주면 안 되냐?”


“그럼 처음부터 불순한 목적으로 접근한 거였어요?”


“불순한 건 아니지. 이성 간에 싹틀 수 있는 가장 원초적이고 본질적인 감정에 이끌려 그 일방적인 감정을 서로 간에 주고받는 감정으로 발전시켜 사회 통념상 인정받는 관계로 발전시키고 싶은 순수한 마음일 뿐이야.”


“와, 작가네. 작가. 진짜 작가네. 그래서요? 어떻게 할 건데요?”


어제 스쳐 지나가며 짧은 인사를 나눌 때 다시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첫눈에 애틋한 감정을 느낀 건 아니었다. 그저 근원을 알 수 없는 끌림이 있었다.


숙소에 짐을 풀고 산티아고 대성당 주변을 돌며 그 남자를 다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졌지만 만나지 못했다. 그 정도 인연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침 미사 직후 그가 먼저 다가왔다. 어떤 사람일지 알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가 순례길을 걷지 않았다는 말에 속에 감춰둔 삐딱한 낯가림이 찾아왔다. 그러면 안 된다고 속으로 다그쳤지만 쉽게 변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의 대화 속에서 전혀 이 길과 무관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는 낯가림이 다시 자취를 감췄다. 마치 순례길이 마음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되어 낯가림을 통제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어진 대화로 이 남자를 완벽하게 알 수 없지만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것 하나는 알 수 있었다. 게다가 많은 공통점을 가졌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사랑에 대한 기대는 하지 않았다. 평생 없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남자라면 한 번쯤 괜찮지 않을까? 꼭 사랑이 아니라 해도 이런 남자라면 연애 한 번은 괜찮지 않을까?


그래.

사랑이 아니라 연애라면 괜찮을 것 같다.

그래, 한 번쯤은 괜찮아.

괜찮아.


“뭘 어떻게 해. 그거 마시고 나중에 한국에서 다시 보게 되면 그때 사귀는 거지.”


“네?”


“나 비행기 시간 때문에 먼저 일어난다.”


제강은 황당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아현을 외면하며 잔을 비우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먼저 일어날게. 나중에 보자.”


제강은 아현이 뭐라 말할 틈 없이 점원에게 돈을 지불하고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아현은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잘못 생각한 걸까?

그가 호감을 갖고 다가온 것은 분명하다.

자신의 입으로 직접 표현했고, 행동 또한 그랬다.

그렇다면 지금 이 상황은 뭐지?

내일 학교에서 다시 만날 친구와 헤어지면서 하는 인사 같은 저 행동은 뭐지?

어설픈 계집 하나 발견해서 장난친 건가?

꼬실 수 있는지 친구와 내기라도 한 걸까?

적당히 끼니 같이 해결할 사람이 필요했던 걸까?

그것도 아니면······.


답이 보이지 않는 생각은 쉬지 않고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하지만 아무리 다양한 방향으로 그림을 그려봐도 어느 것이 정답인지 정확히 찾을 수 없었다. 이야기 중간에 한두 번씩 마치 우리가 다시 만나는 것이 당연한 일인 것처럼 이야기 했다.


그렇다는 건 어떻게든 날 찾아오겠다는 거잖아?

우리가 원래 알 수도 있는 사이였던 걸까?

그건 확실히 아니다.

기억 속에 그런 일은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찾아오겠다는 거지?

방법이야 어떻게든 찾으면 되겠지만, 그렇게 하는 이유는 대체 뭐야?

그렇게 해서 얻어지는 건 또 뭐고?

그냥 단순히 미친놈일까?

그래. 미친놈이다.

제정신인 놈이 저릴 리가 없어.

저런 또라이 같은 인간한테 잠깐이나마 감정이 생긴 내가 미친년이다.

내가 미친년이야.

다시 만나면 반드시 멱살 잡고 패대기치고 말테다.


작가의말

중간에 끊기가 애매해서 한 번에 올렸더니 좀 기네요.

회차를 염두하지 않고 썼던 것이 이런 결과를 낳네요.
다음엔 어떻게든 적절하게 끊어서 올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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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아현" 18.01.21 112 0 10쪽
4 "예" 18.01.14 75 0 9쪽
» Santiago de Compostela 18.01.12 70 0 29쪽
2 제작 발표회 18.01.09 95 0 17쪽
1 레온(Leon) 18.01.08 113 1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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