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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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디귿
작품등록일 :
2018.01.08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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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02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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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1.09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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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 발표회

DUMMY

탕!


총소리와 함께 화면이 검게 변했다. 갑자기 검게 변한 화면 덕에 실내는 완전한 어둠에 잠식됐다. 하지만 이내 옅은 조명이 커지며 눈에 자극이 가지 않을 정도의 빛이 총성의 여운이 남아있는 실내를 밝혔다.


“지금까지 보신 사내가 이번 영화의 남자 주인공이었습니다. 이것으로 등장인물 소개를 마치겠습니다.”


화면의 반대편에 앉아있던 중년의 동양 사내가 일어서며 영어로 말했다. 중저음의 매력적인 목소리로 실내를 울린 그의 목소리는 긴 탁자를 따라 양 옆으로 나란히 앉아있는 여섯 명의 가슴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짝짝짝!


여섯 명의 사내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조금 전까지 눈으로 보고 있던 영상에 대한 만족의 표시였다.


“어떠십니까? 마음에 드십니까?”


동양 사내의 이어진 말에 여섯 사내는 영상 속 장면을 다시 떠올렸다. 아직 이십 대의 태를 벗지 못한 것 같은 동양 사내가 별다른 수고 없이 식당 안에 있던 십여 명의 무장한 경호원을 처치하고 두 명의 무기밀매조직 간부를 살해하는 데까지 걸린 시간이 불과 오 분도 되지 않았다. 거기에 카메라를 뚫어져라 쳐다본 후 입을 벙긋 거리며 뭔가 말을 전하는 시늉을 했다. 바로 뒤이어 총구는 정확히 카메라를 향했고, 총구에서 불꽃이 뿜어지는 것 같더니 화면이 꺼져버렸다. 정확히 카메라를 노려보던 눈빛으로 마치 실제로 눈앞에서 총구를 들이대고 있는 것 같은 마지막 모습은 전율이 일정도로 인상적이었다.


“아주 인상적이었어요. 어디서 저런 멋진 배우를 찾은 겁니까?”


“역시 감독입니다. 이번 영화도 너무 기대돼요.”


“훌륭합니다. 환상적이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완벽합니다.”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칭찬 일색의 탄성에 감독이라 불린 동양 사내는 옅은 미소로 대답을 대신했다.


“감독, 몇 가지 궁금한 게 있습니다.”


백발을 말끔하게 뒤로 넘긴 백인 남자의 말에 시선이 쏠렸다. 먼지 하나 붙지 않은 것 같은 흰색 양복을 입은 그는 감독을 포함한 여섯의 시선에 신경 쓰지 않고 말을 이었다.


“우선 첫째로 저자가 부서뜨린 카메라를 어디에 설치한 겁니까? 설마 CCTV 같은 걸로 위장하진 않았을 테고.”


“역시 큐Q 회원다운 날카로운 지적입니다. 자동소화장치에 설치했습니다. 여러 회원들도 잘 아시다시피 저희 제작소의 소형 카메라는 크기나 성능 면에서 최고입니다. 절대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을 거라 자신했는데 이런 사태가 벌어져 매우 죄송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닙니다. 아니에요. 그건 감독의 잘못이 아니죠. 그리고 저자가 카메라를 발견한 덕에 저런 멋진 장면이 나온 것 아닙니까.”


Q의 맞은편에 앉아있던 숱 많은 검은 머리의 동양 사내가 동의를 구하듯 다른 사람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기다렸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 의사를 밝히는 다른 이들에게 여전히 시선도 주지 않으며 Q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감독을 책망하잔 게 아니라 저자가 어떤 실력을 가졌는지 궁금해서 물은 것이니 기분 나빠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Q의 정중한 말에 감독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닙니다. Q 회원께서 왜 그런 말을 꺼냈는지 십분 공감합니다. 그리고 또 궁금하신 게 있습니까?”


“저 자가 되뇌듯 혼자 중얼거리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의뢰할 때 최대한 화려한 방식으로, 세상에 큰 사건으로 보도 되도록 부탁했습니다. 저 사내가 중얼거린 말은 한국어로 ‘화려하게’ 라는 뜻입니다.”


Q를 포함한 네 명의 회원은 그제야 알겠다는 듯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화면 가까이 앉은 또 한 명의 동양인만은 아무런 반응 없이 고개를 숙인 채 잠자코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묻겠소. 저 자가 카메라를 보고 입을 벙긋 거리는 것이 마치 무언가 말을 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맞는 거요?”


Q의 이번 질문 역시 회원들이 공동으로 궁금해 하는 내용이었다.


“네. 맞습니다. 그 이야기를 드리기 전에 일단 남자 주인공인 동양 사내에 대한 설명부터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어둡게 변했던 화면이 다시 밝아지며 조금 전까지 화면 속에서 인상적인 살인을 자행했던 동양 사내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름은 제강입니다. 공식적인 국적은 한국이며, 정확한 나이는 알 수 없지만 대략 스물여덟에서 서른 둘 사이로 파악됩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는 곤륜의 일원이며, 이쪽 세계에 발을 들인지 십 년 이상 된 것으로 파악됩니다.”


감독은 회원들의 수군거림에 잠시 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의 입에서 나온 ‘곤륜’이라는 짧은 단어는 회원들의 마음을 복잡하게 만들기 충분한 단어였다. 그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지만 그건 설명이 끝난 후에 회원들이 결정할 문제이기에 무시하고 다시 말을 이었다.


“의뢰 대부분은 곤륜을 통해 전해지며, 간혹 그들의 규율을 어기고 스스로 의뢰를 받기도 하는데 이번에도 저희 쪽에서 제강 본인에게 직접 접촉해 의뢰하였습니다. 가족인 곤륜의 규칙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성격에 화려한 것을 좋아하고, 여자를 밝히는 그는 제강이라는 이름을 세상 속에서도 그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대범한 듯 하면서도 때론 무모하기까지 한 그는 세상 속에서 자유계약 작가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곤륜이라는 단어가 나올 때마다 수군거리는 회원들의 마음을 이해하면서도 한 편으론 한심하고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감독은 어떤 내색도 하지 않고 빠르게 말을 이었다.


“조금 전 Q 회원의 질문에 답변을 드리겠습니다. 그의 말은 한국어로, ‘한 번만 더 장난치면 직접 찾아가겠다.’였습니다.”


실내는 찬물을 끼얹은 듯 갑작스런 적막이 찾아왔다. 그 한 문장은 마치 지금 행해지고 있는 모든 사실을 알고 있으며, 그것에 대한 경고처럼 들렸다. 하지만 실내의 일곱 명 중 누구 하나도 표정에 걱정을 담지 않았다. 그저 예상 못한 상황에 대한 놀라움과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더 훌륭한 인재라는 사실에서 오는 즐거운 흥분이었다.


“세상모르는 철부지의 객기지만, 저런 모습을 보고 이번 ‘여섯 번째 이야기’의 남자 주인공으로 발탁한 것입니다.”


감독은 쐐기를 박고 싶었다. 어차피 이들 여섯 명이 걱정하는 것은 생명의 위협이나 엄청난 경제적 손실 같은 게 아니었다. 그저 손에 쥐고 있는 수많은 것들 중 한두 가지를 잃을 수도 있다는 것뿐이었다. 그런 이들에게 손실보다 중요한 것은 즐거움이라는 것을 감독은 잘 알고 있었다.


“감독 말은 충분히 공감합니다. 하지만 곤륜을 건드리긴 조금 껄끄럽군요.”


Q의 오른쪽에 앉은 터번을 두른 중동 사내의 말이었다. 다른 회원들도 터번을 두른 늙은 사내의 말에 공감한다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유독 화면 가까이 앉은 동양 사내만 어떠한 반응 없이 생각을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일관했다. 감독은 지금 기세에서 밀리면 완전히 끝이라는 생각에 조금도 굽히지 않았다.


“곤륜이 어떤 이들인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열 명도 되지 않는 청부조직일 뿐이지 않습니까. 말벌의 독침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코끼리를 쓰러뜨릴 수는 없는 법입니다. 코끼리가 말벌을 무서워해야 되겠습니까. 그리고 이런 엄청난 배우를 찾기란 그리 쉽지 않습니다.”


감독의 말은 확실히 회원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가진 것이 많은 이들일수록 눈에 들어온 것을 놓치기 싫어하고, 자존심이 상처 받는 걸 견디지 못한다는 점을 건드린 것이 적중했다.


“나도 한 마디 하겠습니다.”


Q의 맞은편에 앉아있던 숱 많은 검은 머리카락의 동양 사내였다.


“일단 결론부터 말하면 이번 제작에 참여하겠습니다. 다만, A 회원이 말한 껄끄럽다는 의미에 대해선 설명을 하고 넘어가야할 것 같습니다. 칠 년 전에 곤륜과 불편한 관계가 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여간 곤란했던 게 아닙니다.”


“그래서 J 회원이 하고 싶은 말씀이 무엇입니까?”


화면 가까이 앉은 동양 사내의 말이었다. 다른 다섯 회원에 비해 젊은 얼굴을 한 그는 감독의 말처럼 말벌을 무서워하는 늙은 코끼리들이 못마땅했다.


“악수를 두지 말자는 것뿐입니다. 퀸을 잃을 일은 없지만 쓸 만한 말들을 다 희생하고 퀸만 남겨봐야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J의 한 마디는 R-젊은 동양 사내를 제외한 회원들의 공감을 얻어 자연스럽게 최종 결론이 되었다.


“그럼 여러분의 의견대로 이번 ‘여섯 번째 이야기’의 제작에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기존과 동일하게 최소 상영기간을 이 년으로 잠정 결정하겠습니다. 그리고 우선 제작비용 역시 기존과 동일한 백억 달러이며, 이 금액은 회원들께서 부담하십니다. 프롤로그는 삼 개월 안으로 제작해 상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제작 방식에 대해선 이번에 K 회원을 대신해 새로 합류한 R 회원을 위해 다시 한 번 설명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잠깐만, 감독. 그 전에 정식으로 인사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얼굴이야 모르는 처지가 아니지만 그래도 이 자리에서 만나는 건 처음 아닙니까?”


회원 중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F의 의견을 듣고서야 감독도 R을 소개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회의 시작부터 마치 이 모임의 일원인양 너무 자연스러운 그의 행동에 감독을 포함해 다른 회원들도 그가 처음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그렇군요. R 회원은 얼마 전에 작고한 K 회원을 대신해 오늘부터 우리와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처음 소개했던 여자주인공 ‘시바’를 후원해 주셨습니다.”


감독의 입에서 시바라는 말이 나오자 여기저기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남자주인공과 비교해 절대 부족하지 않은 그녀의 모습을 떠올리는 회원들의 머릿속으로 R의 목소리가 파고들었다.


“반갑습니다. 오늘부터 여러 회원들과 함께 하게 된 R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성의 없이 보일 정도로 간략한 소개였다. 하지만 F의 말처럼 이미 서로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처지에 더 긴 소개가 필요하지도 않았다. 감독은 몇몇 회원들의 눈빛에서 R을 곱게 보지 않는 시선을 느꼈지만 내색하지 않고 진행 방법에 대한 설명을 다시 시작했다.


“영화는 언제나처럼 총 여섯 막으로 꾸며집니다. 회원들께선 추후에 상영될 프롤로그를 보시고 이후 재모임까지 각자 첫 번째-일 막의 시나리오를 작성해 오시면 됩니다. 시나리오 작성 방식은 자유이며, 결론을 도출하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내용은 프롤로그를 위배하지 않는 선이라면 무엇이라도 가능합니다. 하지만 절대 잊지 마셔야 하는 것은 오늘 소개해 드렸던 모든 인물이 등장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다섯 번의 영화를 제작하는 동안 들었던 이야기지만 R을 제외한 회원들은 묵묵히 감독의 설명을 듣고 있었다. R도 이미 들어 알고 있는 내용이었지만 내색하진 않았다.


“각자 준비해 오신 시나리오는 제비뽑기를 통해 결정하며, 한 번 시나리오에 뽑히신 분은 다음 막부터 시나리오 선발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결국 영화가 끝날 때까지 시나리오가 뽑힐 기회는 단 한 번이라는 얘기입니다.”


감독은 탁자 위에 놓인 와인 잔을 들어 살짝 목을 축이고 다시 말을 이었다.


“뽑힌 시나리오는 저희 제작소에서 한두 달 안에 제작해 상영해 드립니다. 현실의 인물들에게 적당한 요소를 제공해 시나리오에 맞도록 상황을 이끌어 가는 방식이기 때문에 아시는 것처럼 현실은 시나리오대로 흘러가지 않을 확률이 높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시나리오대로 영화가 전개되는지, 결론은 어떻게 나는지 등을 맞히시면 됩니다. 매 회마다 일억 달러씩 배팅하며, 결론과 가장 근접한 한 분이 모든 금액을 획득하게 됩니다. 참고로 회원들이 제시한 결론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영화가 전개될 경우 금액은 다음 회로 이월됩니다. 여기까지 이해되셨습니까?”


감독의 시선은 R을 향하고 있었다. R은 고개를 끄덕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제작 방식은 충분히 이해가 됐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요청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회원들만 동의하시면 가능하다고 들었습니다.”


“미리 감독과 상의를 하셨나보군요.”


A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말투는 노골적으로 감정을 드러내고 있었다. 중요하지 않은 문제이니 말만 꺼내면 동의를 구하는 건 어렵지 않다는 감독의 말을 그대로 뱉은 건 분명한 실수였다. R은 일을 그르칠 수 있다는 생각에 목이 바싹 타들어갔다. 하지만 이미 꺼낸 말을 도로 삼켜 없던 일로 만들 수도 없었다.


“처음부터 이런 말씀 드리는 것이 예의에 어긋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어렵게 부탁드리겠습니다. 이 영화의 마지막 육 막의 시나리오를 제가 맡으면 안 되겠습니까?”


R의 말이 끝나자마자 갑작스런 적막이 실내를 덮쳤다. 하지만 그 정적은 몇 초를 넘기지 못하고 민망할 정도로 큰 웃음의 파도에 휩싸였다. 갑작스런 웃음바다에 R은 영문을 깨닫지 못하고 이리저리 눈치만 살폈다.


“하하하. R 회원. 그거 진심으로 하는 말입니까?”


“이 모임에 함께 한다는 건 어느 정도 모임에 대해 알고 온 것 아닌가요?”


비웃는 듯한 기분 나쁜 웃음 속에서 들려온 물음이 조롱으로 들렸다. R은 화가 치밀었지만 감정을 누를 수밖에 없었다. 웃음이 어느 정도 잦아들 즈음 지금까지 침묵을 지키고 있던 D가 철없는 손주를 달라내는 듯한 눈빛과 표정으로 말을 시작했다.


“R 회원이 알고 있는 것처럼 우리는 회원 수에 맞춰 여섯 막으로 영화 제작을 시작합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오 막의 시나리오를 써보지 못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처음부터 함께 했던 회원 중 두 분은 이곳에 계시지 않지만 다들 어찌나 짓궂은지 주인공은 물론이고 처음 소개 받은 등장인물 모두 사 막 안에 죽게 만들더군요. 그래서 아쉽게도 우리는 한 번도 오 막과 육 막의 시나리오를 쓴 적도, 영화를 본 적도 없답니다.”


“아까 감독이 설명했죠? 전개나 결론을 맞히라고. 하지만 우리는 다른 걸 맞히고 있어요. 이번 막에는 누가 죽을 것인지, 누가 악착같이 살아남을 것인지 하는 생사여부에 대한 내기를 하고 있는 셈입니다.”


F가 D의 말을 받았다. 생각했던 것과 다른 상황에 당황한 R이 말을 꺼내기 전 Q가 앞선 두 회원의 말을 이었다.


“아마 프롤로그를 보고 우리가 써온 시나리오를 보면 실망할 지도 모르겠군요. 앞선 회원의 말처럼 우리의 시나리오라는 것도 누구를 어떤 식으로 죽이거나 괴롭힐 것인가에 맞춰져 있어요. 상황이 이러다 보니 빠른 경우 두 번째 막에서 영화가 끝나는 경우도 있었죠.”


R은 아무런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듣던 것과 다른 영화 제작 모임의 현 상태에 대한 충격이 아닌, 신에 가까울 정도의 권력과 부를 가진 이들이 하는 놀이의 저급함에 화가 났다.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들었던 모임의 목적은 분명 신의 흉내 내기였다. 창조주조차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고, 선악의 구별을 허락했다. 하지만 현세에서 신이라 불려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의 부와 권력을 가진 몇몇 인간들은 그 힘을 이용해 인간의 자유의지를 조정하고, 그것을 지켜보며 즐기기 시작했다. 그 엽기적인 놀이는 점점 진화를 거듭해 예술작품이라는 미명을 걸고 그들끼리 즐길 수 있는 영화로 제작되기에 이르렀다.


R에게 이 영화제작모임은 선망의 대상이었다. 자유의지를 가진,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은, 천길 물속보다 더 알 수 없는 인간을 완벽한 시나리오 속에 묶어 원하는 결론을 내고 싶었다. 그리고 그것을 영화-작품으로 만들어 간직하고 싶었다. 세계에서 그런 작업을 할 수 있는 유일한 감독이 눈앞에 있었고, 그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는 힘을 가진 이들 또한 눈앞에 있었다.


하지만 이 늙은 코끼리들은 나무 아래 떨어진 썩은 열매에 길들여져 본래 목적인 나무에 매달린 싱싱한 열매를 잊고 있었다. 모임 첫날 R은 강하게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은 충동을 느끼고 있었다.


“상관없습니다. 마지막을 보지 못하면 신이 제게 마지막을 허락하지 않은 것뿐입니다.”


기를 죽이겠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품고 있던 회원들은 한결같은 R의 태도에 짐짓 놀라고 있었다.


“우리에게 피해가 오는 것도 아니니 난 찬성입니다.”


A가 먼저 손을 들었다.


“저도 찬성합니다.”


그 뒤를 J가 이었고, 줄줄이 R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원하던 것을 얻었으나 R의 기분은 결코 상쾌하지 못했다.


“그럼 결정 됐습니다. 일 막부터 오 막까지 R 회원은 시나리오를 작성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규칙대로 매 막마다 천만 달러의 내기는 동일하게 진행됩니다. 이 외에 세부사항에 대해선 서면으로 다시 통보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삼 개월 후에 프롤로그로 뵙겠습니다.”


R은 이 모임을 통해 신의 권능을 흉내 내고 싶었던 뜻을 이룰 수 없을지 모른다는 불길한 생각에 휩싸였다.


작가의말

웹소설이라는 게 있다는데 한 번 올려볼까?

하고 썼던 게 벌써 3년이 넘었습니다.

아직도 웹소설이라는 게 뭔지 확실히 감도 안 잡힌 상태에서 3년 전 쓴 글을 수정도 하지 않고 올리는 이유는...
제 글을 잠깐이라도 읽으신 분들의 다양한 견해와 제가 구상한 내용이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지...

꾸지람도 달게 받겠습니다.. 많은 조언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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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작 발표회 18.01.09 96 0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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