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균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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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빛의균형자
작품등록일 :
2012.03.18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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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18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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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1.09 0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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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쪽

3rd 02. 불씨(2)

DUMMY

그렇게 자르카를 희생한 채, 우리는 출정준비를 시작했다. 하지만 말릴 수도 없는 것이 자르카의 말대로, 누군가가 악역이 있어야 한다. 비정하지만 효율적으로 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누군가가......

‘나도 참 못난 놈이지... 내가 해야 하는 일인데. 그걸 남에게 떠맡겨버리다니’

그런 씁쓸한 기분을 지은 채 천막에 모여있는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다들 내가 아는 사람들이다. 원래 다른 귀족이나 고위 신관에게 넘겨주려 했으나, 다들 맡으려하지 않았기에 얼떨결에 우리가 맡게 된 상태로 2년이나 지나버리고 말았다.

“신예. 군량의 준비는?“

“이번에 상단에서 가져온 것들로 그럭저럭 군량은 만들 수 있지만... 조금 모자란데요. 다음 행렬이 들어 올 때까지 잠시 기다리면......“

성도의 5천 병사들은 그럭저럭 먹일 수 있겠지만 계속해서 합류할 병사들까지 합한다면...

“괜찮아.“

그 대화에 자르카가 옆에서 끼어 들었다.

“어차피 중간에 죽어 가는 병사들의 것으로 채우면 되니까.“

“......“

신예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하긴, 생각해보면 맞는 말일지도 몰랐다. 굳이 처음부터 끝까지 20만명으로 계산할 필요는 없다.

“자르카...“

“틀린 말은 아니잖아.“

자르카는 별 일 아니라는 표정이었다.

“......정말... 그 소문이 사실이었군요.“

“뭘? 내가 변했다는 거?“

“......네.“

“신예. 그건...“

“원래 내 성격이 그런 것 뿐이야. 다급해지니까 이런 것 저런 것 신경 쓸 여유가 없어서 원래 성격이 드러난 것 뿐.“

“......“

내가 나서서 막으려 했으나 이미 자르카가 먼저 선수를 치고 말았다. 당당한 자르카의 태도에 신예는 할 말을 잃었고, 자르카는 그런 모습을 보고 한번 웃더니 밖으로 나갔다. 그 뒷모습을 본 신예는 살짝 웃음을 터트렸다.

“......어설프시군요.“

“그렇지?“

누가 봐도 방금 그건 나쁘게 보이려고 한 말이다. 무슨 애도 아니고...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우리 앞에서만 저런다는 것 정도? 병사들에게는 아직까지 그냥 소문으로만 자르카의 변화가 퍼지고 있었다.

“원래 착한 사람이라서 저런게 익숙하지 않을 거야.“

“하아... 정말 어쩌다가 자르카님까지 저렇게 되셨는지...“

“......“

이렇게까지 된 이상, 내가 할 일은 단 하나밖에 없었다.

“전쟁을 빨리 끝내야 이런 일도 없겠지.“

“그렇군요. 그렇게 되면 정상적인 무역도 할 수 있겠군요.“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식량만 가져다 날랐지?“

“네. 가격은 비싸게 받았지만... 조금 재미는 없어서요. 역시 상인하면 여러 가지 물건을 취급하고 안 팔리는 물건에 머리 아파야 정상 아닌가요?“

신예도 조금 특이한 사람이라니깐... 상단의 위기에 골치 썩는게 좋다니.

“잘 팔리면 좋지 뭘 그래.“

“재미없잖아요.“

“......“

할 말이 안나오는군. 아, 그러고 보니 물어볼 것이 하나 있었다.

“사준은?“

이번에는 신예만 오고 사준은 오지 않았다. 매번 붙어다니던 사준이 말이다.

“사준은 첫째 따님이 출산을 하셔서... 얼마동안 못 오겠어요.“

그 26살짜리 딸 말인가?

“그래? 나중에 축하한다고 전해 줘.“

“그러죠.“

대화가 끝나자 신예는 자신의 가방(중요한 문서라던가 도장이 들어있는, 진성상단의 운영에 꼭 필요한 가방이다)을 뒤적거리더니 한 서류를 내밀었다.

“이게 뭔데?“

“별 것은 아니고... 한번 읽어보세요.“

“......?“

무슨 보고서는 아니고 이야기가 쓰여 있었다.

“엥?!“

그리고 그 이야기에는 내 이름이 쓰여 있었다. 거기까지는 문제가 없는데, 이건 내 이야기가 무슨 전설처럼 쓰여 있는 것이 아닌가!

“이게 뭐야?“

“그쪽에 신상품으로 팔 새로운 동환데요.“

“동화?“

“네. 애들 읽는 이야기책...“

“아니, 그걸 물어 본게 아니라... 왜 내가 동화에 나오냐고.“

“그거야 동화에 나올만한 분이잖아요.“

“난 별로 한 일이 없는데? 게다가 이런 건 먹고살기도 힘든 게론에서 팔 생각은 아닐거 아니야. 신예의 고향에서 팔 내용이잖아? 그런데 내가 주인공으로 나와봐야......“

내 말에 신예는 고개를 저었다.

“라드님의 소문은 저희 쪽에도 널리 퍼져있어요. 마족들을 상대로 전쟁을 하고 있는 빛의 신관... 거의 신화급으로 미화되어 있던데요?“

“신예... 그럼 네가 진실을 알려야지.“

“왜요?“

왜냐니...

“지금 그쪽도 흉작인데 식량을 가져올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라드님의 전쟁을 돕는다고 하면 식량을 가져 온다고요. 물론 값을 다른 상단보다 조금 비싸게 쳐주기는 하지만.“

그건 그냥 값을 비싸게 쳐줘서 그런거 아닌가?

“아, 값을 비싸게 쳐주기는 해도 다른 곳보다 그다지 많지는 않아요.“

“......그래?“

신예가 있는 죽음의 사막 남쪽. 그 곳은 해안가를 따라서 도시가 발전한 곳인데(나라는 아니다. 커다란 도시끼리의 무역만 활발할 뿐), 이곳과는 문화가 많이 다르다고 했다.

“오죽하면 라드님을 보러 오겠다는 사람이 우리 상단에 잔뜩 몰려들어서 고민이라니까요. 서로 죽음의 사막을 넘어서 이곳까지 오겠다고 하니까...“

“......“

실감이 잘 안 나는걸... 이곳에서는 내 행동을 직접 봐서 그렇다고는 하지만 소문으로만 들었을 텐데, 나를 보고 싶어한다고...?

“잘... 안 믿겨지네.”

“원래 소문의 본인은 그런 법이에요.”

이런 화제는 조금 부끄러웠기에 재빠르게 다른 화제로 전환시켰다.

“사구레트는?“

3년 전, 로켄을 잡으러 갔을 때 도움을 받았던 사막의 카라반. 죽음의 사막이라는 얘기가 나오니까 갑자기 떠올랐다.

“뭐... 잘 모르겠는데요.“

“그래?“

하긴... 식량을 빨리 가져오는 것도 힘들었을 테니까 사막에서 정보를 수집하거나 할 여유도 없었겠지.

“아, 참. 그러고 보니 오늘 만월제네요.“

“응... 그렇네.“

아직 점심때지만, 사람들은 밤에 열릴 만월제를 기대하며 준비하고 있었다.

“원래 오늘 출발하기로 했다면서요?“

“응. 자르카가 그랬는데 내가 만월제만 즐기고 가자고 했지.“

“그래요?“

나는 천막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달빛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좋은 것 못보고 가면 아쉽잖아.“

신예도 동의한다는 듯이 살짝 미소짓고 있었다.

만월제가 끝난 다음날 아침. 나는 황제를 찾아갔다.

“......출정이군.“

내 제안에 황제는 나에게 예삿말을 쓰기 시작했다. 황제의 체면을 살려줘야 기사들이 나의 명령에 불만없이 따르겠지. 만약 황제에게 꼬박꼬박 존대를 듣는다면 기사들이 좋지 않게 생각할 것이 뻔했다.

“그렇습니다.“

“나도 가야 하는 건가?“

“그거야 폐하 맘이죠.“

“......“

황제는 자신의 턱을 붙잡고 고민에 빠져들었다. 따라온다면 군의 사기가 올라가지만 위험할지도 몰랐고, 따라오지 않는다면 안전하겠지만 군의 사기나 명령체계의 문제가 생긴다.

“이곳에 남아있도록 하지.“

어차피 데려갔다가 위험에 빠질 수도 있고, 아니면 이곳에 있어도 위험할지도 모른다. 어떤 것을 선택하더라도 차이는 없다. 무엇이 더 위험할지는 마족들의 머리를 뜯어보지 않는 이상은 모르니까.

“알겠습니다. 그럼 황룡기사단을 남겨놓도록 하지요.“

“아니. 호위는 별로 필요 없을 것 같군. 안전하지 않나?“

나는 고개를 저어 황제의 의견을 부정했다.

“황룡기사단은 이번에 폐하를 구하러 가느라 많이 지치고 부상자들도 많습니다. 데려가느니 이곳에서 쉬게 하는 것이 더 낫지요.“

황제는 내 말을 듣고 조금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자네 너무 솔직하군.“

그런가? 다른 귀족들이 어떻게 하는지 평민출신인 내가 알 수 있겠어?

“뭐, 알겠네. 그럼 황룡기사단과 나는 이곳에 남도록 하지. 남은 병사들은......“

“전부 갈 겁니다.“

“......알겠네.“

이렇게 황제의 허락도 떨어졌다. 나는 황제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는 밖으로 나왔다.

“......병사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파리아가 나를 반겼다.

“알았어. 가자.“

성도에서 수도까지는 약 10일거리. 그 중간에 있는 집결지에서 흩어져있는 20만의 병사를 모은 뒤, 수도로 진격한다.

‘각개격파가 조금 걱정되기는 하지만...’

그래도 별 방법이 없다. 이대로 있어봐야 나아지는 것은 없으니까.

“용족도 다 불렀어.“

가는 길에 아세아도 있었다. 등에 스파르를 매고 있었는데, 스파르가 아세아의 키보다 조금 많이 컸기 때문에 조금 우스워 보이기도 했다.

“응. 알았어.“

확실히 병사들이 도열해 있는 곳 사이에 원래의 거대한 모습을 한 용족들이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다 모였다.“

마지막으로 단상에서는 자르카가 기다리고 있었다.

“부상자는?“

“다 뺐지. 강행군이 될 테니까. 덕분에 겨우 3천 정도밖에 안 돼.“

“3천이라...“

3천의 인간과 약 30마리의 용족. 인간은 현재 성도에 있는 사용가능한 병력 전부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용족들이다. 아, 물론 렌드는 제외다.

“전체! 차렷!“

내가 단상에 올라가자 지휘관들이 병사들을 정렬하는 것이 보였다. 어찌보면 이들이 나보다 높지만, 그 동안 퍼진 소문들 때문에 나를 상급자로 여기는 것이 조금 부담스럽다.

“......지금 해주세요.“

내 말에 옆에 있던 바람의 신관이 내 목소리가 멀리 퍼지도록 신력을 사용했다.

“모두......“

목소리는 별로 크지 않았지만, 바람을 타고 모두의 귓가에 직접 들릴테니 굳이 크게 할 필요는 없겠지.

“지금 우리가 어디로 가는지 알고 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말하며 자르카를 슬쩍 돌아봤지만 자르카는 나를 바라보지 않고, 먼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네. 우리는 이 모든 비극의 근원.“

사실, 나의 비극은 아니다. 나의 비극은 신영과 갈레스의 일이지, 마족과는 관계가 없었다. 하지만 피하지 않겠다.

“수도 지하에 있는, 마계에서 인간계로 오는 일방통로를 파괴하러 갑니다.“

마족에게 원한도 없는 내가 이들을 이끌다니... 누군가가 본다면 비웃어도 할 말이 없으리라.

“우리는 지금, 그 모든 비극을 끊으러 가는 겁니다.“

사방은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조용했다. 하지만 그들의 눈에서 느껴지는 불안감. 그것은 말로 하는 것보다 확실하게 나에게 전해졌다.

“......무모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용족의 가호와 신무기들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마황자를 막을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단 한 치의 망설임 없이. 한순간의 두려움 없이.”

펄럭-

나의 의지는 빛나는 날개가 되어 펼쳐졌다. 그 어느 때보다 강한 의지를 가지고, 그 어느 때보다 아름다운 빛의 날개가.

“가슴에 품은 희망을 힘으로. 우리는 이길 것입니다.”

모두가 숨조차 쉬지 못한 채 나를 바라보고 있다. 나의 진심, 나의 희망의 빛이 내 날개가 되어 사방에 노란빛을 뿜어냈다. 거짓은 사람들을 움직이지 못한다. 진실, 내가 강하게 믿는 진실만이 사람들을 움직인다.

“영원의 이름을 가진 여신의 이름으로. 우리에게 승리를!!”

내가 양손에 잡아 들어올린 빛으로 이루어진 검은, 그 어느 때보다 밝게 빛나고 있었다. 그래, 나도 믿는다. 우리는 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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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 3rd 06. 실론 전투(2) +1 11.11.16 407 7 63쪽
146 3rd 06. 실론 전투(1) +2 11.11.16 424 7 58쪽
145 외전 - 이카온의 주인 +1 11.11.15 434 8 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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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 3rd 05. 신살검의 향연(3) 11.11.14 353 9 76쪽
141 3rd 05. 신살검의 향연(2) +3 11.11.14 411 8 73쪽
140 3rd 05. 신살검의 향연(1) +2 11.11.13 427 8 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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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rd 02. 불씨(2) +2 11.11.09 430 10 5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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